미술 문화의 대중화와 시장 활성화를 위해 2016년 (주)열매컴퍼니를 설립한 김재욱 대표는
'블루칩 미술품' 시장에 블록체인형 공동구매 방식을 도입했다.
아트 시장에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는 ‘온라인’ 선점 경쟁이 뜨겁다. 현재 자본이 집중되는 아트시장인 ‘옥션’만 해도 전통적인 현장 프리미엄 경매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한 위클리 경매의 장을 활발히 열고 있다. 블록체인, 암호 화폐 등 미술업계의 큰 화두에 더해, 투자 포트폴리오에 ‘아트’ 항목을 추가하기 시작한 젊은 컬렉터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미술품 공동구매’의 연결고리도 온라인이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미술품 소유권을 나누어 판매하는 공동구매형 아트 비즈니스군에서 가장 성공적인 리더로 꼽히는 열매컴퍼니. 100~500만원의 소액으로 김환기, 이중섭, 윤형근, 이우환 화백과 같은 ‘대가’들의 작품 대부분이 10분 이내에 ‘구매 마감’ 된 기록을 갖고 있다. 금융 전문가로 일하다 미술계에 뛰어든 젊은 CEO 김재욱 대표. 사업적으로는 철저히 투자 가치 있는 미술품을 선택하고 판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철저히 ‘취향’에 따르는 수집을 해왔다. 한국 현대미술 생존 작가 중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이우환 화백의 회화에서부터 르네 마그리트 뮤지엄에서 직접 구입한 알람시계까지, 폭넓은 수집력을 가져온 컬렉터이다.
미술품을 소유하는 방식이 변하며 이제는 소셜미디어도 미술품을 판매하는 채널로 기능하고, 중국에서는 위챗을 통한 아트 경매도 열리죠. 미술품 관련 벤처회사인 ㈜열매컴퍼니를 열고 온라인 채널 ‘아트앤가이드’를 통해 미술품 공동구매를 해왔는데, 최근 소셜 미디어 콘텐츠를 강화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글로벌 미술시장 동향, 작가 및 전시 정보, 작품 가격 변화 추이, 작가별 대표 작품 변화, 미술품 재테크 방법 등을 뉴스레터로 보내왔는데, 접근성이 더 열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블로그 채널을 활용하려고요. 각각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정보를 나누어서요. 핵심 정보는 뉴스레터로, 인스타그램은 풍부한 사진을, 주변 정보를 포함한 많은 양의 콘텐츠는 블로그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특히 공동구매에서 다루는 대가들의 고가 작품 외에, 트렌디한 미술 소비 시장이 된 인테리어 목적의 저가 작품들에 대한 정보는 SNS에 적극 노출하고요.
공동 구매하는 미술품의 소유권 구좌 금액을 낮추는 계획도 있다고요.
공동구매 작품 군을 다변화 하면서 1구좌 단위를 100만원에서 10만원으로 더 낮추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원화가 아닌 판화와 같이 가격이 낮은 작품, 한국 근현대미술 대가만이 아닌 살바토르 달리나 베르나르 뷔페, 데미안 허스트와 같은 외국 작가도 소개하려고요. 20-30대 초보 컬렉터들에게도 작품 소유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인데, 더 많은 대중들이 미술품에 투자하고 향유하는 재미를 가질 때 한국미술시장의 외연이 확장될 테니까요. 그림을 한번 사본 사람은 또 사거든요.
오히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적극 참여한 ‘온라인 미술품 공동구매’를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역으로 확장시켜가는 지점이 아이러니네요. 왜 이들은 온라인 미술품 구매에 소극적이었을까요?
미술품을 구매하는 일이 ‘사기’라는 생각이 들어서는 안 돼요. 이런 경우죠. 아트 페어에서 신진 작가 작품을 1천만원에 샀는데 어느 날 보니 가치가 0이라면 다시 그림을 살까요? 투자 가치에 최우선한 작품 구매라면, 작품 가격 상승 조건을 갖춘 작품과 작가 선정이 중요합니다.
에디션이나 아트 프린트가 아닌 ‘판화’를 선택한 배경은요?
제가 접근하는 판화들은 작가 생전에 제작된 목판화나 석판화예요.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여러 이유로 아깝게 스러져간 작가들 작품을 재조명하는데 관심 가져왔어요. 미술사적 맥락에서 가치 있는 수준의 작가들이라 판화 군에서도 높은 가격이지만, 장식용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10만원 초반 가격으로도 좋은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인테리어 그림’을 판매하는 다른 회사들보다 더 싼 가격에 좋은 작품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백만원 어치 주식을 사고는 얘기 거리가 1분도 안 되지만, 그림은 백만원만 주고 사도 한 시간 이상 얘기를 나눌 수 있어요. 가치가 다른 경험의 무게를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느껴보도록 만들고 싶어요.
김재욱 대표의 세컨 하우스에는 이우환 화백 석판화 등의 오리지널 작품과 함께 열매컴퍼니의 온라인 거래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통해 공동구매한 김환기 화백 1961년작 '새와 달', 윤형근 화백 1989년작 '무제' 원본을 디지털 프린트한 작품확인서가 나란히 걸려있다.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작품확인서 개념의 디지털 프린트는 집에서도 예술을 향유하는 작은 즐거움을 선물한다.
회화 중심의 공동구매를 진행해왔어요. 장르 확장 계획도 있나요?
앞으로는 백남준 작가 설치 작품이나 조각과 같은 입체 작품도 다루려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회화를 선호하지만요. 조각이나 설치는 3차원이고 실생활에서 보여지는 모습을 담을 여지가 충분하지만, 회화는 2차원 평면 안에 하나의 세계가 들어있어요. 평면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해요.
회사 근처 세컨드 하우스에 여러 개인 컬렉션이 있는데, 단번에 눈에 띈 작품은 감각적인 색감의 이정록 작가 사진이에요.
블루 컬러를 좋아해요. 이정록 작가 작품은 안정적인 투자 가치도 있어요. 필립스에서 거래가 활발히 되는 작가로, 100호 작품 가격이 1200~1300만원 선이에요. 적당한 가격이라 투자 목적으로 긍정적이라고 판단했어요.
공동구매 작품은 어떤 경로를 통해 가져오나요?
개인 소장가, 딜러, 갤러리, 경매 프라이빗 세일 등을 통해 구매해요. 오픈 경매 작품을 공동구매 하지는 않습니다. 높은 수수료를 감당하면서 리세일 수익을 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첫 번째 공동구매 작품인 김환기 작가 <산월>은 옥션에서 프라이빗 세일로 구매했어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아트 마켓 리서치를 전략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리서치 포인트는요?
첫째, 한국 작가 작품이 해외 시장에 얼만큼 풀려있는가. 두 번째, 현지 컬렉터들은 어떤 작가에게 관심이 큰가. 해외 유명 갤러리들과 아트 페어에 우리나라 작품들의 점유율과 거래 실적을 살핍니다. 해외 작품 트렌드 파악과 갤러리 네트워크도 중요해요. 우리나라 작가들도 해외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요. 예전에는 유행의 속도가 2~3년이었다면, 요즘은 2~3달이면 충분하니까요. 우리 나라 미술 시장에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결국 해외 시장 확대, 그리고 우리 나라 미술 시장에 관심 갖지 않았던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
열매컴퍼니도 글로벌 미술 시장 진출 계획을 갖고 있다는 얘기네요.
전 세계에 지점을 가장 많이 가진 오페라갤러리 한국 디렉터를 맡은 이유도, 저희가 공동구매한 한국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네트워크로 확보하기 위한 점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저희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를 발굴해 해외 진출을 도울 계획이에요. 작가들이 성장하려면 작품이 팔려야 합니다. 한국 작가들의 오페라 갤러리 런던 지점만 봐도 한국 작가 작품을 다수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어요. 디렉터가 귀띔하기를 제일 잘 팔리는 미술품은 한국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글로벌 미술시장에서도 지역마다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작품의 방향성이 다른데요.
결국 정보 싸움입니다. 비대칭 정보를 넘어서 대칭적인 정보들을 취합하기에 오페라 갤러리 네트워크만큼 좋은 경로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세계적인 슈퍼 컬렉터들의 작품 구매 동향도 살피나요?
누가 샀다는 소식 보다는, 전시 정보를 관심 있게 봅니다. 백남준 작가도 작년에 테이트모던에서 전시한다는 소식이 오픈된 이후 작품 값이 계속 상승했어요. 이렇게 돈이 들어가 있는 정보를 어떤 시기에 알았느냐에 따라 작품 구매와 투자 시점이 달라지게 되거든요. 저도 백남준 작가의 드로잉 소품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설치작품은 장단점이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다다익선>만 해도 수리 및 관리에 대한 리스크가 있듯이요. 수리하시는 분들이 백남준 작품 진위 감정까지 하는데, 그들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장점도 있어요. 사후 작가이지만 설치작품이라서 완전 비과세에요. 1천만원에 사서 100억에 팔아도 비과세입니다.
오프라인 아트라운지 취화담. 공동구매한 원본 작품을 볼 수 있는 회원제 프라이빗 라운지에서는 아트 큐레이팅 컨설팅과 함께 인테리어에 활용 가능한 작품과 아트콜라보 상품 구매도 가능하다.
아트앤가이드를 통한 공동구매 작품은 최근까지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들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8월 14일 진행한 살바토르 달리의 과슈화 공동구매 이전까지는요.
한국 작가 작품에 대한 두 갈래의 의견이 있어 왔습니다. 첫째, 한국 작가 작품은 비싸다는 인식입니다. 이 부분은 신진작가들 작품 가격이 과대평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겨우 미술계에 발 들인 신진작가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갤러리나 아트 페어에 내놓은 작품 가격은 마케팅으로 부풀려져 있다고요. 하지만, 국제 시장에서 국내 유명 작가들 작품 가격은 저평가 되어 있다고 봅니다. 소더비나 크리스티 등의 경매에서 작품당 500억~1000억원대를 오르내리는 경매가를 기록하는 마크 로스코에 비견되는 한국의 김환기 화백 작품 가격을 보세요. 로스코 작품가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면 투자 가치가 상당히 높은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신진 작가 작품은 인테리어 적인 요소로 접근합니다. 객관적으로 보세요. 신진들 가운데 10~20년 후 누가 미술계에서 살아 남아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근거 없이 높은 가격으로 내놓으니 작품이 팔리지 않고, 거래량이 떨어지니 한국작가 작품 가격이 비싸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에요.
현재 투자 자본이 가장 집중되고 있는 미술 시장은 어디인가요?
옥션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11개 옥션이 있는데 서울 옥션과 케이 옥션, 두 곳이 가져 가는 매출액 비중이 상위권 갤러리들 비중과 같습니다. 컬렉터들이 전통적인 갤러리에서 옥션으로 작품 구매처를 옮겨가고 있어요. 시대와 세상이 바뀐 만큼 마케팅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한 이력이 20여 년 밖에 안 되는 후발주자인 옥션이 갤러리 매출을 따라잡았잖아요. 자본이 집중되고 수요 확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지요.
투명성, 즉 미술품 거래에 대한 신뢰도가 미치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갤러리에서 작품 판매 시 가져가는 수수료가 몇 퍼센트인지 아세요? 금융을 알고 고가의 미술품을 사고 파는 저도 몰라요. 일반 대중들은 더 모르겠죠. 옥션은 명확하게 써있잖아요.
작품을 소유하는 목적에는 크게 투자 가치와 가치적 소비인데, 대중들에게서 어떠한 니즈를 읽고 ㈜열매컴퍼니의 사업 방향성을 설정했는지요?
누구나 그림을 사고 싶어 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새로운 투자 상품에 대한 니즈입니다. 갈수록 규제가 강화되는 부동산이나 주식, 채권 등의 전통적인 투자 방식 외에도 금, 와인, 다이아몬드 등 새로운 투자처가 생겨났지만, 미술품은 아무래도 다른 투자 대상보다 세금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측면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림에 대해 갖는 소비심리, 향유심리 측면에서도 미술품 공동구매에 니즈가 있다고 판단했고요. 저는 ‘공유’라는 개념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고 봐요. 돈 있는 사람들이 한정적으로 접근하고 소비하는 고급 문화라는 인식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이제는 일반 대중들도 충분히 작품을 소유하고 향유하는 문화로 퍼져 나아가고 있잖아요. 저만 해도 처음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작품을 컬렉팅하면서 점점 더 좋은 작품을 사고 싶어졌거든요. 김환기, 이우환 화백 그림을 좋아하고 그 작품들의 투자 가치도 명확하게 알지만 월급쟁이가 꿈꾸기엔 너무 벅찼거든요. 어떻게 하면 그 한계를 해결 가능한지 고민하다가 공동구매를 생각했어요. 유명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꼭 내 집에 걸지 않더라도 충분히 심리적인 만족감도 얻고 투자 가치도 가질 수 있는 방법으로요.
미술품을 공급하는 쪽의 입장 보다 소비자 입장에 더 많이 서있는 생각이네요.
저는 지금도 컬렉터 입장에서 사업의 방향성을 바라봅니다. 제가 작품을 판매한다고 생각하기 보다 먼저, 제가 지금 갖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작품을 공유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요.
첫 컬렉션이 궁금해요.
이전에도 판화나 소품 구매는 많이 했지만, 개인적인 즐거움과 투자 가치를 모두 가진 원화 작품으로 첫 번째를 꼽으면 진희란 작가의 ‘강북전경’이에요. 지분 투자 형식으로 소유 중인 공동구매 작품으로는 문봉선 작가 작품이고요. 사업적으로는 철저히 투자를 목적으로 미술품을 사지만, 개인적으로는 완벽하게 제 취향을 따릅니다. 진희란 작가의 ‘강북전경’은 간송미술관 근무 시절 구매했는데, 작가를 후원하는 마음으로 그가 제시한 가격 그대로 샀어요.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진희란 작가는 주로 풍경을 그려요. 젊은 나이에 넘쳐나기 마련인 다른 욕망들을 접어두고 하루 종일 산을 타고 그리기에만 열중합니다. 어린 나이에 그렸다고 하기에는 안정감 있는 구도로 대형 화폭을 다루는 기량이 뛰어납니다. 열매컴퍼니 프라이빗 라운지인 취화담에 걸어 두고 있는데, 종종 다른 컬렉터들이 나이 있는 작가냐 물어요. 제가 깊이 관심을 두고 아끼는 작가에요. 저는 동양적, 철학적 사유가 깃든 작품에 이끌려요. 1900년대 초반은 외국의 서양화 기법이 유입되면서 전통적인 수묵화와 접목된 시기로, 서구 문물에 강한 심리적 동경심을 가진 무수한 ‘따라쟁이’들이 탄생했지요. 하지만 현재 대가라고 인정받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이우환, 윤형근, 장욱진, 유영국과 같은 화가들은 서구적인 기법과 재료는 받아들이면서 자기만의 주관과 철학적인 사유를 작품에 담았어요.
이우환 화백의 석판화 한 점을 개인 컬렉션으로 소장 중입니다. 열매컴퍼니에서는 유채화, 과슈화, 수채화까지 다양한 재료와 기법의 <조응> <대화> 작품을 공동구매 대상으로 선택해왔는데, 초기 투자 비용을 낮추는 전략으로 가져온 대가 작품은 또 무엇이 있나요?
김환기 화백 과슈, 이우환 화백 수채, 이중섭 화백 스케치 작품이 있습니다. 이중섭 작 <무제(양면화)>는 종이에 연필 스케치이지만, 작가의 사고와 철학이 충분히 담겨있어요. 화가들은 처음부터 유화로 그리는 작업 외에도 평상 시 스케치를 하며 캔버스에 옮겨 그리기도 합니다. 그리기의 과정이지요. 세계적인 경매 기록을 살펴보면, 오리지널 작품 가격 상승 시 종이나 스케치 작품 가격도 함께 오릅니다.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어요. 이우환 화백의 유화 캔버스 작품도 단번에 구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격 부담이 큽니다. 그렇다면 선회해 종이에 수채 작품 가운데 수작을 선택해도 되겠지요. 김환기 화백은 새, 달, 매화, 산, 강 등 한국적인 소재들을 작품에 담았는데, 그러한 소재를 종이에 그리기도 했습니다. 제게 있는 이우환 화백 석판화는 원작 구매가 부담되어 선택한 차선책이지만, 요즘의 판화와는 질적으로 차이를 가진 석판화라는 점에서 소장 가치가 있어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회계사, 사모펀드 매니저로 활동하던 금융맨이었어요. 이후 분야를 옮겨 간송미술관 운영팀장으로 일하다 미술품 관련 벤처회사 ㈜열매컴퍼니를 설립했고요. 최근 오페라갤러리 서울 지점 디렉터로 겸임을 결정했는데, 미술계에서 드문 금융 전문가로 통해요. 한데 그림도 오래 배우고 그렸더군요. 직접 그린 호랑이 그림은 수준급인데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그림과 서예를 배웠어요. 지금도 가끔 서예는 해요. 제 스승님이 홍대 서양화를 학부 전공하고 석사로 동양화를 한 분이어서 두 분야를 모두 접할 수 있었는데, 제 관심은 동양화 쪽이 더 컸어요. 미대 진학도 생각했지만 천재적인 소질은 없던 터라 작가로 먹고 살아가기는 힘들어 보였어요. 그림보다는 공부를 더 잘했어요. 하하하. 갈수록 그 선택이 맞았다고 느껴요. 제가 하고 있는 활동 자체가 미술 시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 미술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이 시장에서 금융에 대한 이해를 갖고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갤러리 종사자들 가운데는 금융 하는 사람들이 미술 시장을 망가뜨리고 작가의 순수성을 잃게 만든다고 비판하지만, 돈이 유입되지 않는 시장에서 갤러리와 작가가 살아남기는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시야를 넓혀서 금융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미술을 바라보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초보를 졸업한 컬렉터일수록 위험한 투자나 잘못된 선택을 하기 십상이죠. 조언을 한다면요.
작품 구매 시 투자 목적인지, 자기만족 혹은 인테리어 목적인지 명확히 살피세요. 애매한 경계에 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그러한 작품 군은 고수들의 안목이 필요한 세계하고 생각해요. 이제 막 초보를 졸업한 컬렉터라면 작품 거래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작가의 활동, 한때 잘 팔렸으나 현재 거래되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해서요. 아무리 미술품 판매가 갤러리의 영업과 마케팅이 주요하다고 해도, 결국 원칙적으로 작품과 작가가 좋아야 뒷심을 발휘하니까요.
미술 세계에서 탐닉한 화가들은요?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 작품은 <미인도>를 제외하면 정말 작은 사이즈의 한지에 그린 그림인데, 세밀하고 섬세한 인물 표정이 제각기 달라요. 좋아하는 포인트에요. 개인적으로는 풍경 작품을 선호해요.
최근 아트마이닝을 통해 컬렉팅한 유재연 작가 작품 <Palm Calling>도 풍경이에요. 화폭 안 인물은 은근히 감춰져 있죠. 표정을 상상하는 여지를 줘요.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밤의 해변 풍경이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블루’컬러이고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은 작가들이 돈을 벌 수 밖에 없어요. 자기 그림에 자신 없고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림을 판다면 난센스이죠. 아무리 작품을 파는데 팔 할이 영업과 마케팅이라고 해도, 일단은 작품에 대한 확실한 프라이드를 가진 작가를 소개해야 옳아요. 미술품을 매개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도 마찬가지이고요.
5 Remarkable Collection by Jae-Wook Kim
김재욱 대표가 자신의 아트 컬렉션에 의미있는 작품 5점을 꼽았다.
Whan-Ki Kim (B. 1913~ 1974, Korea)
김환기 <산월>. 종이에 과슈. 19 x 27.3 cm. 1963 _ 1959년 파리에서 서울로 귀국 후 그린 작품으로, 2017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김환기 화백이 조카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선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운월'의 축소판으로, 산과 달 같은 우리 자연의 모습을 특유의 '환기블루' 톤으로 작업한 '운월'은 김환기 화백이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해 회화 부문 명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산월'은 고향과 가족,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푸른색과 반추상으로 그려진 산, 달, 구름과 같은 한국적 모티프가 특징이다. 특히 이 작품의 특별함은 평소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검은 달이다. 열매컴퍼니 공동구매 첫 번째 작품으로, 투자 모집 7분 만에 완료되어 화제가 되었다.
U-Fan Lee (B. 1936~, Korea)
이우환 <Correspondance>. 캔버스에 유채. 80.3 x 100 cm. 1996 _ 커다란 캔버스 위에 올려진 짙은 회색 점 하나가 여백과 대비되어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점의 크기, 모양, 위치, 붓 터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점은 여백과 공명하여 '관계'의 의미를 다른 어떤 작품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선으로 표현하고, 점과 선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탄생과 소멸로, 그것의 반복은 시작과 끝이 없는 무한을 의미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전 세계를 누비며 작품 활동을 하는 이우환 화백은 최고의 블루칩 한국 작가로, 국내 생존 작가 중 가장 높은 작품가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현대작가로서는 처음으로 파리 국립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구겐하임, 베르사유 궁전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Nam-June Paik (B. 1932~2006, Korea)
백남준 <무제>. 종이에 아크릴. 20 x 28.1 cm _ 비디오를 사용한 영상, 조각,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백남준 작가는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시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했던 예술가이다.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작가의 드로잉은 기존의 관습과는 다른 급진적 퍼포먼스와는 다르게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가득하다. 그는 다수의 '무제' 드로잉을 남겼는데, 움트는 초록의 싹과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는 모양의 꽃이 피는 집, 기린과 강아지, 거북이, 오리, 호랑이 등 각종 동물을 크레용으로 그리기도 했다. 김재욱 대표가 컬렉션한 아크릴 드로잉은 백남준 작가가 종이에 먹으로 그린 텔레비전이나 마음 심(心)과 같이 붓을 한번 휘둘러 단숨에 써내려 가는 일필휘지를 연상시킨다. 자기 예술에 대한 확신을 '이름'으로 선언한 '백남준' 드로잉은 컬러풀한 색감이 주는 에너지도 특별하다.
Jong-Hak Kim (B. 1937~, Korea)
김종학 <설악풍경>. 과반에 아크릴. 33.5 x 33.5 x 4(d) cm. 2003 _ 한때는 도피처이자 지금은 작가의 유일한 안식처인 설악산에서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가득 핀 화사한 꽃들,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나비, 거미, 무당벌레, 벌 등 다양한 생명체를 그려 넣은 팔각과반 아크릴화는, 조그만 과반에 옮겨 담은 거대한 자연의 생동감이 특징이다. 과반위로 두텁게 쌓아 올린 아크릴 물감으로 대상에 불어넣은 입체감, 능숙한 붓 터치로 거침없이 표현한 질감은 김종학 화백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의 희소성은 캔버스가 되는 전통 목기인 '팔각 과반'에 있다. 사각 형태의 과반 작업은 옥션에 자주 등장하지만 팔각 과반 작업은 없었다. 우리 고미술의 사상이 담아, 전통을 현대화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로 표현해온 화백의 '설악풍경'은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짙고 안정된 색채를 활용해 화폭 가득 담은 진달래, 개나리, 나팔꽃, 호박 꽃 등이 계절의 아름다움과 함께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Hee-Ran Jin (B. 1964~, Korea)
진희란 <강북전경>. 순지에 수묵담채. 117 x 241.5 cm. 2016 _ "한국의 산을 오르내리고 한국의 산수화를 살피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국만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는 진희란 작가는 고전의 산수화를 깊이 파고들어 현대의 시각으로 재작업하면서 자신만의 산수화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7 후소회 청년작가상, 2018 국가이미지제고전시부문 외교부장관상, 갤러리안옥 청년작가공모 최우수상 등을 수상한바 있는 작가는 이화여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간접적인 경험으로 얻기 힘든 이야기를 담기 위해 작업과 산행을 항상 병행하는 작가는 2016년 DDP에서 열린 <현대작가, 간송을 기리다>전에 초대되어 작품을 선보였고, 2016년부터 4회의 개인전, 20여회 이상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삼일건설, 진관사, 낙산사, 부림저축은행, 갤러리한옥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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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아트마이닝, 열매컴퍼니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최민석,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