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이해하기 쉽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예술 작품은 삶에 영감을 준다”라고 한 프랑스 컬렉터 '파트리시아 레뇨(Patricia Laigneau)'. 어제와 오늘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그녀는, 오늘날 프랑스를 있게 한 영웅 잔 다르크(Jeanne d'Ark)의 유물이 보관된 프랑스 문화재 리보성(Château de Rivau)을 1992년부터 운영해온 성주이기도 하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와 유물을 지켜가는 동시에 50여 년간 프랑스 내외의 현대 예술 작가들의 작품을 컬렉션하고 다양한 협업을 하며 성 곳곳을 개성 있는 예술 공간으로 큐레이션해온 그녀는 담대한 컬렉터인 동시에 탁월한 스토리텔러였다.
1918년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등재되었으며, 2000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루아르(Loire) 강 주변 르메레(Lémeré)시에 위치한 리보성(Château du Rivau) 성주 파트리시아 레뇨는 세계적인 작가들을 '신인' 시절에 알아봐온 컬렉터이다.
올해 리보성에서는 한국 장식 예술 작가를 초대해 특별한 전시를 열었다. 이 전시를 앞두고 한국을 찾은 성주 부부는 한국 현대 예술을 찾아보기에 앞서 한국 역사를 공부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전시를 위해 프랑스로 간 작가들이 리보성에 머무는 동안 서로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그렇게 서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영감을 발견한 순간’을 공유했다. 역사와 전통을 알리는 일을 계속하되 동시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미감을 찾아가는 일에 ‘뜻’이 통했기 때문이다.
파트리시아의 예술적 ‘안목’을 지지해온 동반자인 남편 에리크(Henri-Eric Laigneau)는 한국 장식 예술 아티스트 초청전 <한국의 담백한 서재(Le Cabinet Coréen, Sobriété et Minimalisme)> 오프닝을 마치고 저녁에 가진 만찬에서 지난 며칠을 멋지게 함축해 표현했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든가, 우정을 쌓든가.” 잔을 들고 축배를 나누며 어머니 파트리시아와 함께 성을 운영해온 딸 카롤린(Caroline)이 만든 와인의 맛을 음미해보았다. “첫 만남에서 강한 인상을 주기보다는, 오래 기억에 남는 와인이기를 바란다”라고 했는데, 15세기의 성에서 100년 된 식기를 사용하며 21세기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살아가는 성주 가족은 한결같이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에 큰 의미를 느껴요”라고 강조했다.
연간 5만 5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고성, 리보. 인근 앙부아즈성에 살고 있던 프랑수아 1세와 왕실의 말을 담당하던 이곳은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에 벌어진 백년전쟁 동안 주요 군사 거점으로 사용된 역사가 있다. 15세기 중세에 지은 이후 그대로 보존되어온 본채와 16세기 르네상스 스타일로 만든 장식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성에는,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를 이끈 잔 다르크가 실제로 사용한 갑옷과 화살이 전시되어 있으며, 잔 다르크의 말이 전쟁터로 출정 직전 물을 먹었던 분수와 500년이 넘은 중세 성문과 해치, 창문 등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의 넓은 창이 안마당 방향으로 나 있는 성 내부는 널찍한 응접실과 연회장,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프랑스 왕실과 가까웠던 명문가 집안의 성답게 섬세한 조각과 예술품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리보성이 주변 고성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단지 과거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왕실의 말을 기르던 장소를 미디어관으로 만들어 흥미로운 기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영상을 상영하고, 현대 예술 작가들과 협업해 잔 다르크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시대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치 작품을 선보여온 파트리시아는, 매년 대주제를 정해 콘셉트가 다른 작품을 선정해 보여주는 기획전도 열어왔다. 대부분 ‘동화’에서 큐레이션 모티브를 가져오는데, 올해의 주제는 ‘미녀와 야수’다.
15세기에 지어진 그대로 보존돼 오고 있는 리보성 본채를 품고 있는 정원 곳곳에서 현대예술 작가들의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매년 리보성에서 상상 속 세계를 주제로 컬렉션 전시를 열고 있어요. 계절마다 다른 빛깔로 물들고 봄이면 수선화 꽃 향기로 가득한 정원과 함께 리보성을 동화 속 성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올해 주제로 ‘미녀와 야수’를 선정한 이유는요?
18세기 중반 잔-마리 르프랭스 드 보몽(Jeanne-Marie Leprince de Beaumont)이 발표한 <미녀와 야수>는 다양한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장 콕토(Jean Cocteau)가 새롭게 연출해 화제가 된 작품이에요. 리보성은 유럽 동화에 등장하는 성의 모습을 하고 있죠. 순백의 돌로 장식한 높은 탑과 성문의 도개교, 성벽의 외호에 보호받고 있는 모습이요. 우리의 컬렉션은 ‘상상 속의 성’이라는 주제를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올해 전시에서는 작가 31명의 작품을 선보여요. 동화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저주에서 풀려나는 환상적인 서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날의 작가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을 담은 이 동화의 정신을 어떻게 재해석했을까요? 형제간의 질투조차 초월하는 효심, 이기심을 꺾은 헌신적인 사랑, 동물적인 잔인함을 이겨내는 인간애, 추한 외면을 이기는 아름답고 숭고한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미녀와 야수>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신비한 세계이며, 모든 것이 가능한 마법적인 공간이죠. 이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 작가들은 가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어떤 아이러니를 발견해내기도 해요. 어두운 아름다움, 마녀, 괴짜, 신비로운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요.
매년 프랑스 현대 작가 4인을 선정해 최종 수상자에게 대상을 주는 권위있는 마르셸 뒤샹 상을 받은 피에르 아르두뱅은, 최소한의 것으로 표현의 극대화를 꾀한다. Pierre ARDOUVIN <Again and Always>, 2009, Collection Château du Rivau
올해 리보성 컬렉션 전시 주제인 '미녀와 야수'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카티아 부르다렐(Katia Bourdarel), 루시 글렌디닝(Lucy Glendinning), 사무엘 루소(Samuel Rousseau), 카를로스 아이레스(Carlos Aires) 등 각각의 작가 작품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큐레이션 해 보여준다 .
자연에 대한 윤리적 접근 태도와 야생에서 발견한 나무들에 정교하게 형태를 부여한 심미적인 오브제 작업들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 데이비드 내쉬(David Nash)는 "재료로부터 예술이 시작된다"고 얘기한다.
올해 전시를 위해 새롭게 컬렉션한 작품이 있나요?
올해는 젊은 작가를 응원하기 위해 작품 한 점을 구입했어요. 베트남 출신 작가 킴 코토타마 룽(Kim Kototama Lune)의 작품 ‘약속(La Promesse)’이에요.
“작가의 인지도에 상관없이 모든 작가를 존경하며, 특히 여성 작가를 지지한다”라고 했는데요.
우리는 1976년부터 컬렉션을 시작해 오늘날까지 동시대 작가를 계속해서 지원하고 있어요. 작가들의 삶은 녹록지 않죠. 그 가운데서도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하는 여성 작가들의 활동에는 더더욱 관심과 애정을 갖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작품으로 소장해온 여성 작가들은, 프랑스 작가 델핀 발레(Delphine Balley), 카린 보네발(Karine Bonneval), 세실 피투아(Cécile Pitois), 셀린 클레롱(Céline Cléron), 도미니크 바일리(Dominique Bailly), 레슬리 메라(Leslie 0’ Méara), 미리암 메치타(Myriam Mechita), 미국 작가 마르니 웨버(Marnie Weber), 독일 작가 카렌 노르(Karen Knorr), 벨기에 작가 엘디 앙투안(Élodie Antoine), 한국에서 레지던스 경험이 있는 파스칼 바렛(Pascale Barret), 베트남의 니콜 트랑 바 방(Nicole Tran Ba Vang), 중국의 쑨쉬에(Sun Xue) 등이에요. 제 컬렉션이 정확히 몇 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연속성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다양한 매개체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선호해요.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등 몇 곳에서 한국 작가들 작품을 만났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작가가 있나요?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작가였는데... 임흥순 작가요!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첫 번째 컬렉션은 어떤 작품인지도요.
제가 처음 구입한 작품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샤이사크(Gaston Chaissac)의 회화였는데, 지금은 유럽 현대 회화의 거장이라 불리지만 1976년만 해도 그는 무명이었어요. 그가 그린 ‘미소’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죠.
“아무도 슈퍼스타가 될 거라고 생각 못한 작가들 작품을 컬렉션해왔다”고 했어요. ‘먼저’ 알아본 작가들과 작품에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 궁금해요. 화제로 소실되었다가 복원한 성 본채 3층 서재에서 본 자하 하디드의 오리지널 가구 컬렉션과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도요.
키스 해링(Keith Haring), 제프 쿤스(Jeff Koons), 얀 파브르(Jan Fabre)와 빔 델보예(Wim Delvoye) 등의 작품도 유명하지 않을 때 구입했어요. 그들의 아이디어와 결과물에 깊은 감동을 받았는데,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에 이끌려 구매까지 이어졌죠. 하지만 제게 컬렉션의 의미는, 작품을 소유하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작가를 서포트하고자 하는 데 있어요. 퐁피두 센터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제프 쿤스는 우리가 선택한 작품이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는지 얘기해줬죠. 일상 속 오브제를 재해석했다는 점이 마음에 끌렸어요. 자하 하디드의 의자도 그녀가 유명하지 않았을 때 운 좋게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소장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 외에 제가 컬렉션하고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은 없어요. 저는 대부분 유명하지 않을 때 작품을 구입하고, 늘 미술 시장에서 최고치가를 기록하기 전에 작품을 사는 편인데, 제가 갖고 있는 컬렉션을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예술을 사랑하는 건 작품이 저에게 선사하는 감정 때문이에요. 제 안목과 제 직감이 절 안내해준다고 믿어요.
서재에서 본 작품 중 한국 잉크로 수채화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었어요.
한국에서 전시 경력도 있는 파비앙 베르셰어(Fabien Verschaere)는 신인 작가 시절부터 알고 지냈어요. 프랑스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 상상의 세계에 관한 작품을 그리는 작가예요. (* 1975년생인 파비앙 베르셰어는 현대 예술가들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신화, 동화, 만화, 게임 등에서 영감을 받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이미지 작업을 하는데, 그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다. 현실적인 인간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어둡고 비관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그만의 유머스럽고 순수한 아이와 같은 손놀림에서 나오는 이미지로 표현한다. 리보성 곳곳에서 작가의 회화, 설치,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현대 예술가들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예술가 중 한 명인 파비앙 베르쉐어의 설치 작품. Fabien Verschaere <A novel for Life>, 2003, Collection Château du Rivau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들을 오버사이즈로 제작해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선사하는 작가는, 단순한 스케일의 변화로서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Lilian BOURGEAT <Unsold Boots>, 2006, Collection Château du Rivau
단순한 형태여서 한눈에 이해하기 쉽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 좋아하는 예술 작품 가운데 ‘상징적인 작품’을 꼽는다면요.
릴리안 보르제(Lillian Bourgeat)의 ‘팔리지 않은 장화(Unsold Boots)’를 가장 상징적인 예로 볼 수 있어요. 이 작품의 특징은 왼쪽 발이 두 짝이라는 점이에요. 거인의 상점에 남아 있는 재고였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죠. 이런 전형적으로 쓸모없는 물건은 보는 이들에게 비현실적인 질문과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작가는 오브제의 비현실적인 크기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유의 ‘지나침, 과분함’은 현대사회 특유의 모습이죠. 지나친 쇼핑도 오늘날의 소비 지향 사회에서 매우 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만약 아이의 눈으로 이 부츠를 본다면, 전래 동화 <엄지동자(Le Petit Poucet)> 속 요술 장화*를 상상하게 될 거예요. 혹은 어른의 물건을 바라보는 아이 입장에서는 비율이나 스케일감에 혼동이 오기 때문에 사물이 사실과 다른 새로운 크기로 보이기도 하잖아요. <엄지동자>는 요술 장화를 신고 한 발로 일곱 곳의 장소에 가는 이야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팔리지 않은 장화’는 유럽에서 전해오는 동화에 등장하는 마술 오브제를 대표할 수도 있겠죠. 한편으로는 장식적인 기능이 있기도 해요. 리보성 정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장화를 감싸 안고 옆에서 사진 찍기를 즐겨 하니까요.
결국 물질보다는 자연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 장 피에르 레이노, 릴리안 보르제를 비롯해 파비앙 베르셰어, 니콜 트랑 바 방, 피에르 아르두뱅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리보성 정원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저에게 정원이란 창작의 공간이며 시간의 공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실험실이에요. 정원을 가꾸며 얻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과감한 식물과 꽃으로 표현해보기도 하고, 프랑스식 정운에 영국식 스타일을 더해보기도 하죠. 산책하면서 꽃밭에서 뿜어져 나오는 다양한 컬러감을 만나고 독특한 꽃과 식물을 마주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라벤더 향에 이끌려 걸어 나가면 ‘가르강튀아(Gargantua)의 채소밭’에 도착합니다. ‘엄지동자’의 지그재그 꽃밭에 매료되어 여름꽃이 반짝이는 잔디 정원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히아신스, 시베리아무릇, 늦여름의 시클라멘 등 파란색 꽃들의 환상적인 컬러에 매료되는 ‘마법의 숲’을 지나 ’앨리스의 미로’, ‘달리는 숲’,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한 하얀 꽃 정원인 ‘향의 오솔길’, 루비색으로 가득 찬 ‘요정의 길’ 등의 정원이야말로 우리를 꿈꾸게 하고 힐링을 선물하고 즐거움을 일으키는 미장센이죠.
리보성 정원의 스타는 누가 뭐라 해도 CCVS (Conservatoire des Collections Végétales Spécialisées de France, 프랑스 전문 식물 수집소. 장미 향으로 총 462 종류의 장미를 선별함) 라벨이 있는 장미입니다. 나무나 벽에 잘 기어올라가는 습성이 있어 수려한 흰 꽃이 활짝 피면 새들이 아주 행복해하죠. 정원에 설치된 여러 설치작품은 마법의 묘약처럼 방문객을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는데, 왼쪽 발만 2개인 대형 장화는 관람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바람이 불 때마다 희미하게 움직이는 다섯 쌍의 거대한 다리 설치작품을 보며 ‘움직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정원에서 보내는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 관람객들은 장 피에르 레이노의 빨간색 ‘빅 팟(Big Pot)’을 만나게 됩니다. 보통 사이즈의 화분을 엄청난 크기로 확장시킨 위대한 작품이죠. 이러한 예술 작품들이 리보성 정원의‘환상 세계’를 상징하죠. 리보성 정원은 방문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매 시즌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전시를 가진 적이 있는 니콜 트라 바 방의 리보성 컬렉션은 그녀의 첫 조형 작업으로, 잔에 술이 꽉 차 있을 때만 보이도록 그림을 숨겨둔 작업으로 “마실 것인가, 볼 것인가” 라는 숨은 의미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Nicole Tran Ba Vang <After the Rain…>, 2004, Collection Château du Rivau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주목할만한 정원(Jardin remarquable)’ 칭호를 부여받은 리보성 정원. 붉은 튤립 너머로 보이는 작품은 장 피에르 레이노의 '빅 팟(Big Pot)'.
딸의 매년 생일마다 사진, 회화, 도자 등의 작품을 선물한다고요.
패션 아이템보다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컬렉션을 갖게 되길 바랬어요. 각각의 작품으로 매해를 기념하고 추억을 쌓을 수 있으니까요. (까롤린은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첫 작품을 집 안 어디에서도 항상 볼 수 있는 장소에 놓아둔다고 전해왔다. 16세에 선물받은 첫 작품은, 독일 작가 닐스 우도(Nils Udo)의 사진이다.)
컬렉터로서 안목을 키우기 위해 교류해온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저는 저만의 자유로운 기준을 갖기 원해요. 많은 컬렉터들이 리보성을 방문하기 때문에 알고 지내는 이들이 많지만, 딱히 그들의 모임에 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컬렉션한 작품을 만든 작가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데, 컬렉션을 결정하기 전 반드시 따져보는 기준이 있나요?
존경하는 작가들과 교류를 가지며, 특히 그들이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때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요. 우리는 예술에 대해 얘기하고 요즘 그들의 관심사, 영감을 주는 질문들에 대해 얘기를 나눠요. 컬렉션을 결정하기 전에 기준은, 첫 번째 작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들을 내가 이해하고 있는가, 두 번째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역사와 세계의 예술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인가에요.
리보성 컬렉션과 파리 집에 컬렉션 구성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
파리에 있는 컬렉션은 매우 클래식해요. 대부분 회화작품이죠. 리보성에 있는 작품들은 과거와 대화하는 작품들이고요. 리보성에는 회화, 비디오, 사진, 설치 등 여러 가지 매체가 다양하게 어우러져, 호기심의 방처럼 전시되어있어요. 15세기 유럽에서는 성 안에서는 전설 속 동물인 일각수의 뿔이나 먼 곳에서 온 희귀한 도자 작품 등 알려지지 않은 오브제들을 보여주는 게 유행이었어요.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백년전쟁 동안 주요 군사거점으로 사용된 리보성에는 잔다르크가 실제로 사용했던 갑옷과 화살이 전시되어 있다. 잔다르크의 말이 전쟁터로 출정 직전 물을 먹었던 분수와 중세시대의 500년이 넘은 성문과 해치, 중세시대 창문 등을 성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프랑스의 민간 숙박 네트워크인 '지트 드 프랑스' 중 유일한 문화재로, 고급스러운 고성체험이 가능한 장소 곳곳에서도 다양한 컬렉션들을 만날 수 있다. 왼쪽의 사진 작품은 마리 세실 티스(Marie Cécile Thijs)의 <Black unicorn>.
리보성에서 여는 첫 전시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선택한 이유는요? 전시를 열기 전, 한국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었고, 어떤 관심과 흥미로움을 느꼈는지요?
저는 세계 미술사에서 한국 예술의 위상을 높이 평가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도자기도 한국에서 탄생한 고려청자고요. 또 빛을 발하는 한국의 먹을 무척 좋아해요.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예술과 15세기에 지은 리보성의 역사가 매우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역사적으로 15세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예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서서히 유럽으로 퍼져나가던 시기이고, 스페인은 이 시대의 끝 무렵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죠. 프랑스에서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변화의 시기였고, 종교를 넘어 예술과 건축을 조명하기 시작한 때죠.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 태종 재위기부터 연산군 재위 중기에 해당한다고 들었는데, 조선의 국력이 최전성기이던 세기로 평가받으며 특히 세종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에서 소개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이곳에서 많은 공감을 얻길 바라요.
프랑스의 역사적 전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고성에서 ‘동서양 전통의 만남과 충돌’을 코드로 선보인 전시 <한국의 담백한 서재>에서는, 총 15명의 장인과 디자이너가 협업해 한국의 전통미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90여 점의 가구, 조명, 도자기, 회화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올해 4월 15일부터 5월 8일까지 개최된 한국 장식예술 아티스트 초청전 <한국의 담백한 서재>는 한국 아티스트의 글로벌 프로모션과 매니지먼트를 모토로 설립된 기업, 아트마이닝㈜가 주관한 첫 번째 해외 프로모션 프로젝트이다.
<담백한 서재> 전시 오프닝에서 강신재 작가의 조명이 컬렉션 됐어요.
시농의 도지사인 장-제라르 포미에(Jean-Gerard Paumier)는 저희 지역을 위해 여러 가지로 힘쓰고 있는 분으로 특히 예술에 조예가 깊은 컬렉터지요. 올해 그는 투렌(Touraine) 쪽에 ‘현대미술의 여정’이라는 ‘악트(Act(e)s)’ 프로젝트를 만들었지요(‘현대미술 페스티벌’과 같은 성격을 지닌 성 프로젝트로, 몇 주간 이 지역의 45개 장소에서 현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이 이루어진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리보성에서는 <한국의 담백한 서재> 전시가 열렸다.). 그는 리보성의 <한국의 담백한 서재> 전시가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행사라고 생각한다고 했어요. 저를 이 프로젝트의 대모(marraine)로 선택해주어 매우 기쁘게 생각해요. 아무쪼록 그가 프랑스에 아직 덜 알려진 한국 미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힘써주었으면 좋겠어요. 강신재 작가의 작품 컬렉션은, 제가 전혀 개입하지 않은 그의 온전한 선택이었어요! 그래서 더 기뻐요.
파트리시아가 생각하는 훌륭한 컬렉터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의 귀가 아닌, 안목, 정신, 마음으로 선택할 것! 작품을 볼 때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작가의 모든 발자취와 과정에 대해 알고 탐구할 것!
글 장남미(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사진 정창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