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쉬고 대화하는 일상 대부분에 밀접한 가구를 한 점 고르라면 단연 티 테이블이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미니멀라이프를 반영한 현대인의 삶은 테이블을 보다 작고 심플하게, 줄이고 비워냈다. 식기를 받치는 작은 규모의 상床. 그렇게 ‘소반小盤’은 전통공예의 맥을 잇는, 오늘날 도시인의 보금자리 가장 내밀한 곳에 반반하고 빈번한 공예품이 되었다. 소반을 주제로 한 전시가 계속되고 '지금' 트렌드의 바로비터인 인스타그램에는 소반 해시태그가 11k(약 11,000개)에 이른다. 의외의 소재와 화려한 컬러, 모던한 꼴을 앞세워 현대적인 쓰임과 전통미를 아우른 소반에 모두가 푹 빠졌다. 반盤에 반할 만하다.
<ARTMINE> ART CLIP #2-THE PLAYFUL SOBAN with Artists
왼쪽부터 하지훈 작가의 '나주소반', 허명훈 작가의 '원형칠소반', 안문수 작가의 호두나무 '원형소반', 양병용 작가의 미니 소반 '화형반'
하지훈
한국적 아름다움과 현대적 쓰임을 갖춘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다. 의자, 책상 등 다양한 품목을 아우르지만 최근 소반 열풍으로 누구보다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주 소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Ban’, 다각 형태의 소반을 변주한 ‘궁Gung’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특히 2005년 광주 비엔날레에 소개된 나주소반은 매끈한 원목 다리에 꽃 모양으로 레이저 커팅한 알루미늄 상판으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스테디셀러. 강원반 고유의 미감을 나타낸 ‘라운드 반’은 영국 V&A 뮤지엄에 영구 소장되기도 했다. 둥근 목재 상판에 컬러풀한 알루미늄 원통을 덧붙인 크고 작은 원형반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만날 수 있다. www.jihoonha.com
허명욱
회화 사진, 설치, 영상 등 장르에 구분없이 다양한 예술분야를 아우르는 작가의 작업 근간은 '옻칠'이다. 매일매일 옻칠을 지속하며 가구와 소품에 시간의 겹을 입힌다. 밝고 화사한 머스터드, 민트 등의 색감으로 원형 옻칠 테이블을 완성하는데 원형 소반의 다리를 높여 현대적인 기능성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조은숙 갤러리에서 구입 가능하다. www.choeunsookgallery.com
안문수
“우연히 원형트레이를 만들다 그 느낌이 좋아 하부를 붙인 소반을 제작하게 됐다”는 작가는 심플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하는 작업방식을 자신의 원형소반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전통 소반의 현대적 기능을 고민한 끝에 좌식용인 낮은형 소반(높이 32cm)와 함께 협탁으로 사용가능한 높은형 소반(40cm이상)을 함께 작업한다. 호두나무 특유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원형 소반은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기도 하다.
양병용
여러 작업물 가운데 소반을 만드는 다른 공예가와 달리 양병용 작가는 소반에 오롯이 집중한다. 양병용 작가의 작업실 파주 ‘반김’은 케이크 트레이로 사용하기 좋은 미니 소반부터 말의 다리를 닮은 마족반, 강원도에서 사용했던 강원반 등 다양한 소반을 둘러볼 수 있어 마치 소반 박물관과 같다. 나무의 결을 최대한 살린 작은 사이즈의 화형반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활짝 핀 꽃처럼 단아한 멋이 있다. 벚나무, 물푸레나무, 은행나무 등 소재에 따라 옻칠을 달리해 소반의 색감을 저마다 다르게 표현한다. 이렇게 만든 소반 100여 점은 은평구 한옥마을 ‘일인일상’에서 식사와 차 한 잔 하며 오롯히 만지고 누릴 수 있다. www.bangim.com
왼쪽부터 박선영&양웅걸 작가가 협업한 '청화소반', 양병용 작가가 은행나무로 제작한 누드 베이지 톤의 '흰칠통원반', 이정훈 작가의 ‘Yang ban’
박선영 x 양웅걸
전통 장인과 디자이너의 콜라보레이션이 하나의 트렌드로 인식될 때, 도예가 박선영과 나무를 다루는 양웅걸은 작가 대 작가로 의기투합해 근사한 ‘청화소반’을 완성했다. 조선 청화백자의 문양과 전통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해온 박선영 작가가 청화백자로 소반의 상판을, 전통 소반을 꾸준히 제작해온 양웅걸 작가가 소반 하부의 원목 다리를 디자인했다. 새하얀 원형 도자 상판에 마블링처럼 그려넣은 블루 모란 패턴이 청아하다. www.woonggul.com
이정훈
우리네 옛 선비들이 착용하는 양반들의 멋스런 ‘갓’을 모티브로 만든 ‘Yang ban’ 시리즈로 큰 화재를 모았다. 작가는 작품의 외형이 만들어내는 선과 리듬감에 주목하며 호두나무로 제작한 원형 상판, 양반들의 불룩하고 굴곡진 몸체를 의인화한 소반 하부를 붙여 하나의 사물을 보는 듯하다. 살짝 늘어진 금 장식이 특징이다. 이도 아틀리에에서는 흰색 외에도 원목 등 다양한 ‘Yang ban’ 시리즈 소반을 전시한다.
왼쪽부터 류종대 작가의 ‘D-Soban’ 시리즈 중 핑크색과 흰색 소반, 하지훈 작가의 미니 원형반', 류종대 작가의 남색 단청반
류종대
목조형을 전공하고 보트디자인을 하는 이색 필모그라피 때문일까. 모던한 컬러감으로 전통 소반의 소장욕구를 젊은층에 지핀 대표적인 작가다.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깨는 예술과 디자인, 목공예를 접목한 ‘아트퍼니처’를 추구한다. 화려한 컬러의 원통을 호두나무 상판에 덧붙인 ‘D-Soban’ 시리즈는 호두나무 상판이 주는 묵직함,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원통 다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기와장을 겹겹이 늘어뜨린 듯한 구불구불한 질감의 원통 다리는 화이트, 핫핑크, 옐로우 등 색감이 다양하다.
조병주
고등학교 때까지 검도를 하며 누구보다 유년시절부터 ‘나무’를 만져온 작가는 성인이 된 뒤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됐다. 가구의 조형미를 중시하는 작가는 원목벤치를 축약한 듯한 나무 테이블 굽이gube 시리즈를 만들며 테이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2017년 선보인 ‘단청반 Danchung Ban’ 시리즈는 물푸레나무 원형 상탄에 팔각 형태의 알루미늄 하부를 붙여 만든 모던 소반. 한옥의 단청은 비비람과 해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며, 나무에 칠해 알루미늄과 함께 한복의 색감을 내어 소반의 고매한 맛을 더했다. http://chobyungju.com
왼쪽부터 박보미 작가의 2단 철제 소반, 조병주 작가의 흰색 단청소반, 플레인오디티의 ‘ㅗ ㅏ 팔각소반’, 캄캄스튜디오 김재경 작가의 아크릴 소반 'SANG'
박보미
바르샤바 민속박물관 한국실에 경상을 설치하는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의 젊은 공예가다. 수납장, 테이블 등 우리나라 전통가구의 조형미를 차용한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검정 철골을 활용한 철재 미니 소반은 근대의 산물인 철골구조를 모티프로 한 소반. 쓰임보다는 전통가구의 조형미에 집중해 일종의 미적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2층 탁자는 두 개의 소반이 붙은 하나의 오브제로 철선의 반복과 겹침을 통해 윤곽을 강조한 작품이다. 이런 효과를 통해 가구가 하나의 희미한 ‘잔상’처럼 보여질 수 있도록 표현했다. 해브빈서울에서 박보미 작가의 다양한 철제 소반을 만날 수 있다. www.havebeenseoul.com
플레인오디티
디자인스튜디오 플레인오디티Plainoddity의 김지혜 디자이너의 팔각소반은 팬톤컬러의 색상표를 연상시키는 세이지 그린, 피치 컬러가 인상적이다. 생활 속에서 쉽게 쓰이도록 전통 소반의 불필요한 구조를 줄이고 현대적인 형태로 변형하는데 집중했다. ‘ㅗ ㅏ 팔각소반’이라는 독특한 소반 이름은 이런 의미로 자음만 빼고 남은 이름이다. 구조는 최소화하면서 모서리 난간이라 할 수 있는 둥근턱은 남겨 소반 특유의 형태를 완성했다. www.plainoddity.kr
김재경
전통소반은 흔히 나무로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독특한 소반을 만든다. ‘SANG’은 한국 전통 소반의 기본 형태에 충실한 개다리 소반, 해주소반 형태를 띄면서 소재 자체가 파격적이다. 겉이 훤히 비추는 투명 아크릴 소재로 제작해 하나의 아트 퍼니처를 완성했다. 상판 부분이 분리되어 트레이처럼 그릇을 올린 뒤 자유롭게 운반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아크릴 소반 색상은 레드, 그린, 블랙, 화이트 등 다양하며 영상에서는 사각 해주소반이 사용됐다. 2010 레드닷 디자인 컨셉 어워드 수상으로 유명해진 스튜디오 캄캄Studio KAMKAM에서 판매한다.
컨테이너 5-1
금속을 전공한 최은지 작가가 운영하는 디자인 가구 스튜디오 컨테이너 5-1의 모던한 소반이다. 팔각 소반의 상부를 애쉬 나무로 작업해 전통 소반의 특성을 가져오면서 얇은 직선 형태의 스틸 다리를 덧붙여 모던함을 강조했다. 밝은 민트색 컬러 작업은 옻칠 작가 유남권의 솜씨다. www.container5-1.com
박수이
작업실 겸 카페 ‘Sui57Atelier’를 운영하는 작가는 ‘빨주노초파남보’로 통용되는 맑고 청아한 컬러로 다양한 옻칠 작업을 선보인다. 자연광 아래 빨래처럼 널린 주황빛 옻칠 트레이, 나무 쟁반은 색감이 탁월해 마치 하나의 팔레트가 연상된다. 작은 수납장 등 목선반 디자인도 겸하는 자신의 옷칠 식기류를 정갈하게 올릴 만한 목재 소반 디자인에도 집중하는데, 삼베에 옷칠을 입인 12각 나무소반은 그녀의 옻칠그릇들이 가장 잘 놓일 만한 1인 상이다.
아리지안
한국의 대표적인 공예 기법인 나전 칠공예로 만든 옻칠공예브랜드 아리지안의 나전칠기 괴목 원형상이다. 수십 번 옻칠한 뒤, 천판에 자개를 끓어가며 세세하게 붙여 문양을 완성하는 '타발기법'으로 장식한 소반 상부가 감탄을 자아낸다. 자개의 은은함과 보석같은 화려함, 옻칠의 풍부한 색감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http://arijianshop.com
ARTICLE CREDIT
진행_박나리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nari@art-mining.com
영상_최해명, 황승헌 (VEAVER)
사진_박우진
스타일링_문지윤, 황남주 (뷰로 드 끌로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