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반 한 귀퉁이, 전시장 흰 좌대 위에 봉인되어 있던 공예품들이 '벽'에 걸렸다. 회화로서의 도자, 한 폭의 그림 같은 장신구로서 변화를 모색 중이다. “공예적 쓰임을 넘어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대형 오브제, 벽에 손쉽게 걸 수 있는 회화 같은 공예품의 요구가 높아졌다”는 김용주 작가의 말은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앞세워 집 안에 걸어두고 감상할 수 있는 현대 공예 여섯 점을 아트마인 에디터들이 선별했다.

WRITE 박나리(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IMAGE DESIGN 정회훈(매거진 아트마인 아트 디렉터)

도자 편자를 평면에 붙여 넘버링과 함께 기록한 작품은 블랙 앤 화이트의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원형부터 반원, 직선 등 도자 형태의 단면을 다룬 배세진 작가의 미니멀한 평면작업은 침실과 거실 등 현대 생활공간 어느 곳과도 조화를 이룬다. 
WFGF041 92987-93023, 2013, 70x52cm | WFGF031_93024-93087, 2013, 73x93cm
도자 편자를 평면에 붙여 넘버링과 함께 기록한 작품은 블랙 앤 화이트의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원형부터 반원, 직선 등 도자 형태의 단면을 다룬 배세진 작가의 미니멀한 평면작업은 침실과 거실 등 현대 생활공간 어느 곳과도 조화를 이룬다. WFGF041 92987-93023, 2013, 70x52cm | WFGF031_93024-93087, 2013, 73x93cm

#1 편자에 세긴 도자의 다양한 단면들

SE-JIN BAE | CERAMIC ARTIST
“흙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의 맥락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도자기 작업 자체의 본성을 희곡 주제에 연결해 풀어보자는 생각에 작품을 만들었는데, 굉장한 성취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작은 도자 편자를 일일이 붙여가며 새로운 도자의 조형성을 이야기하는 도예가 배세진은 ‘시간’이라는 자신의 오랜 주제를 다양한 도자 회화 작품으로도 적극적으로 표현해왔다.
두께 0.7~1cm 이내의 흙 판에 일련번호를 찍은 뒤 작은 도자 편자를 붙여 평면 도자를 완성한다. 평면 작업의 기본 형태는 입체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입체를 위에서 바라본 평면도는 ‘원형’으로, 입체를 옆에서 바라본 측면도는 ‘반원’ 형태로 치환된다. 가로 직선이나 세로 직선 작업은 입체 작품을 부분적으로 발췌한 것이다. 평면 작업은 조각에 직접 숫자를 찍지 않고 종이 하단에 해당 숫자를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을 취한다. “요새 미술 시장 갤러리들과 일하다 보니 평면 작품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더라고요.”라고 작가는 말한다. 도자 편자를 평면에 붙여 넘버링과 함께 기록한 작품은 블랙 앤 화이트의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는 원형부터 반원, 직선 등 도자 형태의 단면을 다룬 미니멀한 라인들은 어느 공간에 놓여도 조화를 이룬다.

전통 귀얄 기법을 활용해 도자 표면에 '돌기'를 만드는 '첨장 기법'은 도예가 윤주철의 작품을 관통한다. 둥근 원형 돌기로 제작한 '첨장타일'은 따로 또 같이 공간 벽면에 포인트를 주는 아트 월피스로 사용 가능하다.
전통 귀얄 기법을 활용해 도자 표면에 '돌기'를 만드는 '첨장 기법'은 도예가 윤주철의 작품을 관통한다. 둥근 원형 돌기로 제작한 '첨장타일'은 따로 또 같이 공간 벽면에 포인트를 주는 아트 월피스로 사용 가능하다.

#2 컬러풀한 인테리어 효과, ‘첨장 타일’

JU-CHEOL YUN | CERAMIC ARTIST
뾰족한 장식을 꾸미는 기술이라는 뜻의 ‘첨장기법(尖裝技法)’으로 자신 만의 조형 언어를 선 보이는 도예가 윤주철. 오색 찬란한 산호초, 동굴 속 종류석, 선인장과 고슴도치 등 얇고 성근 돌기로 뒤덮인 다양한 형태의 도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다채로운 해석을 유도한다. “개인전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아우르다 보니 벽에 걸고 감상할 수 있는 ‘첨장 타일’에 생각이 미쳤다”는 작가는, 가운데 원형 돌기가 난 정사각형 형태의 도자 타일을 패치워크 하듯 이어 붙여 자신 만의 도자회화를 완성한다. 바다 산호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텔 계열의 컬러풀한 색상부터 근래 몰두하는 ‘화이트 첨장’에 옐로우 톤을 입힌 담백한 첨장 타일까지 다양하다. 개별 판매도 가능하며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 꾸준히 사랑 받는 작품이다. 집 안의 포인트 벽지로, 마당 벽면에 거는 설치 작품으로, 공간의 안팎 두루 어울린다.

바람, 하늘, 물결, 산능성이. 자연의 풍경을 도자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이강효 작가의 분청산수 작품은 휴식과 쉼을 위한 공간들과 조화를 이룬다. Large ceramic wall panels by Lee Kang-hyo
바람, 하늘, 물결, 산능성이. 자연의 풍경을 도자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내는 이강효 작가의 분청산수 작품은 휴식과 쉼을 위한 공간들과 조화를 이룬다. Large ceramic wall panels by Lee Kang-hyo

#3 휴식을 테마로 한 공간과 어우러진 ‘분청 산수’

KANG-HYO LEE | CERAMIC ARTIST
마치 한 편의 춤사위가 연상되는, 손 끝의 즉발적인 터치로 한 폭의 산수화를 완성하는 도예가 이강효의 도자는 그 자체로 흰 캔버스다. 직접 혼용한 적토로 레이터를 쌓아 옹기를 만들고 유약을 바른 뒤, 즉발적인 ‘손의 감각’으로 완성한 작품은 흙으로 빚은 산수(山水)는 한 폭의 ‘자연’이다.
아트 마이애미(Art Miami), 소파 시카고(SOFA Chicago), 미국 보스턴 파커 갤러리(Parker Gallery),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 등에 참여하며, 거의 공예로 참가할 수 있는 모든 대회를 섭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작가는 “그저 그리고 싶은 세상의 풍경을 흙으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동시대 도예가 가운데 오랜 시간 도자기로 회화를 구현하는 작업을 선보여온 작가는 생활 곳곳에서 자유롭게 벽에 걸 수 있는 다양한 분청 산수 시리즈로 유명하다. 폭이 좁은 직사각형 분청 도자를 일렬로 배치해 한 폭의 병풍이 연상되는 전시 인스톨레이션을 선보이거나, 그의 대표작 '분청산수'를 평면으로 옮겨온 능선 형태의 도자 오브제 등이 대표적이다. “흙에 마그네슘 함량을 높여 가마에서 구우면 마치 녹슨 철의 단면처럼 부식된 금속 질감이 드라마틱한 도자 회화를 완성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유서 깊은 한옥 고택부터 모던한 인테리어 돋보이는 호텔 로비, 휴식을 위해 취적화한 리조트 룸 공간 등 현대 주거 공간과 잘 어울리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이강효 작가의 분청 스툴, 대형 옹기 같은 대형 오브제 피스를 함께 비치하면 그야 말로 도자로 빚은 한 폭의 공감각적 산수가 완성된다.

기존에는 평평한 형태의 옻칠 회화를 만들었지만 정해조 작가의 작품 핵심인 ‘빛’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던 끝에 바탕이 되는 판을 불로 구부려 지금의 형태를 잡았다. 적광률, 청광률, 흑광률 등으로 이름 붙인 작품은 빨간색과 청색, 검정색을 기본 골조로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한 색감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RHYTHM OF THE RED LUSTER 2018, Ottchil(Korean lacquer), hemp cloth, 2400 X 1560 X 90hmm
기존에는 평평한 형태의 옻칠 회화를 만들었지만 정해조 작가의 작품 핵심인 ‘빛’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던 끝에 바탕이 되는 판을 불로 구부려 지금의 형태를 잡았다. 적광률, 청광률, 흑광률 등으로 이름 붙인 작품은 빨간색과 청색, 검정색을 기본 골조로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한 색감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RHYTHM OF THE RED LUSTER 2018, Ottchil(Korean lacquer), hemp cloth, 2400 X 1560 X 90hmm

#4 심미안과 철학을 강조한 미술 작품

HAE-CHO CHUNG | OTTCHIL ARTIST
“평면 작업은 제 작업의 연장선입니다. 옻칠 작품을 회화처럼 벽에 걸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한 것이죠. 공예와 미술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활동 무대는 다르다고 느꼈죠. 50여 년간 옻칠에 매달려 발전시킨 제 작품 세계를 공예 영역이 아닌 좀 더 포괄적인 무대에서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평면 작업을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평면 작업은 심미안과 철학을 강조한 미술 작업에 좀 더 가깝고요.” 매거진 아트마인과의 지난해 인터뷰에서 자세히 말했든 옻칠 공예가 정해조는 최근 3~4년 사이 평면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유연한 몸짓과 자체 빛을 발하는 같은 정해조 작가의 작품. 원시조형의 타제석기와 마제석기에서 발전한 형태로, 큰 덩어리의 석고나 스치로폼을 톱이나 칼로 잘라내고 형태를 제작한 후 그 위에 모시와 삼베를 여러 겹 중복하여 붙여 태를 만들고, 오방색 옻칠을 칠한다. 굴곡을 넣어 옻칠 본질의 광택이 보는 사람의 보는 각도에 따라 춤추듯 강렬한 리듬감을 느끼도록 작업한다. 기존에는 평평한 형태의 옻칠 회화를 만들었지만 정해조 작가의 작품 핵심인 ‘빛’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던 끝에 바탕이 되는 판을 불로 구부려 지금의 형태를 잡았다. 삼베를 층층이 겹쳐 말린 후 추후 삼베만 떼어낸 뒤, 그 위에 여러 번 옻칠을 하고 빛을 살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다. 굴곡으로 인해 빛이 투영되는 각도가 달라지고, 난반사가 일어나면서 다양한 질감이 불어오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다. 적광률, 청광률, 흑광률 등으로 이름 붙인 작품은 빨간색과 청색, 검정색을 기본 골조로 빛의 각도에 따라 오묘한 색감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달항아리를 부조와 납작한 오브제로 새롭게 만든 최근 신작들은 걸작으로 꼽힌다. 2010년 설화문화전에서도 선보인 이 작품에 대안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생활하는 지금 환경에서는 벽에 거는 항아리가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늘 시대에 어울리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untitled, 54×62×15cm, slip casting, 2019
달항아리를 부조와 납작한 오브제로 새롭게 만든 최근 신작들은 걸작으로 꼽힌다. 2010년 설화문화전에서도 선보인 이 작품에 대안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생활하는 지금 환경에서는 벽에 거는 항아리가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늘 시대에 어울리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untitled, 54×62×15cm, slip casting, 2019

#5 모던 스튜디오에 걸린 조선 달항아리

SUK-YOUNG KANG | CERAMIC ARTIST 
전통 공예로 여기던 도자에 형태와 재료를 위시한 다양한 실험이 결합되면서 지난 10년 사이 회화 도자는 하나의 장르로 견고히 자리매김 중이다. ‘슬립 캐스팅’ 기법 선구자로서 작가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써온 도예가 강석영은 입체에서 부조, 액자 작업과 같은 판 형태의 작업으로 최근 작업의 형태를 옮겨가는 중이다. 매거진 아트마인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판 작업을 많이 한다”고 밝힐 만큼 백자의 미감을 한 폭의 회화처럼 구현한 작품들은 입체 작품에서 느끼지 못한 미감을 보여준다. 백자라는 순백의 색감이 주는 담백함, 형태를 비틀어 발생하는 의도치 않은 율동감이 도드라진 사각형태의 평면 백자 작업이 있는가 하면, 조선 달항아리를 부조와 납작한 오브제로 새롭게 만든 최근 신작들은 걸작으로 꼽힌다. 2010년 설화문화전에서도 선보인 이 작품에 대안 작가의 설명은 이렇다.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생활하는 지금 환경에서는 벽에 거는 항아리가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늘 시대에 어울리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새의 깃털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가벼운 브로치와 귀걸이, 목걸이 류를 소개해온 작가는 최근 벽면에 걸 수 있는 오브제 피스로 작업을 확장 중이다. 벨크로를 얇게 재단한 뒤 이어 붙이는 작업은 한달 이상의 강도 높은 시간을 요한다. 지층의 단면, 새의 날개 등 역동적인 에너지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오브제 작품은 유니크한 공간을 연출할 때 추천하는 작품이다.
새의 깃털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가벼운 브로치와 귀걸이, 목걸이 류를 소개해온 작가는 최근 벽면에 걸 수 있는 오브제 피스로 작업을 확장 중이다. 벨크로를 얇게 재단한 뒤 이어 붙이는 작업은 한달 이상의 강도 높은 시간을 요한다. 지층의 단면, 새의 날개 등 역동적인 에너지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오브제 작품은 유니크한 공간을 연출할 때 추천하는 작품이다.

#6 장신구 작가로서 꿈꾸는 또 다른 가능성

YONG-JOO KIM | DECORATIVE ARTIST
지난 10년간 ‘벨크로(Velcro)’라는 일상의 재료로 아름다운 장신구를 디자인 해온 김용주 작가. 새의 깃털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가벼운 브로치와 귀걸이, 목걸이 류를 소개해온 작가는 최근 벽면에 걸 수 있는 오브제 피스로 작업을 확장 중이다. 지난해 호아드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존중의 문턱>을 통해 본격적으로 선보인 대형 오브제 피스는 얇게 자른 벨크로를 일일이 연결해 하나의 긴 열을 만들어 이것들을 한 줄씩 겹쳐 형태를 완성하는 노동의 강도가 집약된 작품이다. 유기적인 선들이 겹겹이 모여 이루는 벨크로 오브제 피스에서는 지층의 단면이 떠오른다. “용암의 흐름, 지구 단층이 어떻게 압력을 받아 움직이는 지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미는 방향에 따라 중력을 받아 큰 오브제 작업들의 형태가 만들어 지는 것 같아요.” 기존까지 저를 ‘장신구 작가’로 저를 생각한 분들이 호아드 갤러리에서 선보인 큰 오브제 작업들을 보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흥미롭더라고요. 제게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본 것 같았죠. “이 큰 벽 전체를 채우는 작업은 어떨까요?” 이런 질문들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고요. 지난 10년간 장신구나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부조 형태가 작업의 최대치였다면, 이제는 좀 더 과감하게 작업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의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부담도 되지만 저로서도 기대가 되죠.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그림보다는 그저 바람이 있다면 큰 벽면을 가득 채우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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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정해조, 강석영, 이강효, 윤주철, 배세진, 김용주 – ARTMINING, SEOUL, 2019
IMAGES OF THE ARTWORKS © ARTMINING – magazine ART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