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니콜라이 교회에서는 ‘한나-회히-지원상(Hannah-Höch-Förderpreis)’을 수상한 최선아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이 상은 작품활동 전체를 평가해 수여하기에 작가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후 세 달여 만에 작가 최선아가 독일 작가 마르쿠스 베버(Marcus Weber)와의 2인전 <콰데르나Quaderna>로 다시 대중을 찾아왔다.
WRITE 장용성(매거진 아트마인 독일 통신원)
ALL RESOURCES After the butcher(www.after-the-butcher.de), Artist Sun-Ah Choi(www.sunahchoi.com)



과거 정육점이었던 ㄴ자 구조의 전시장에는 컬러풀한 원색의 쇠봉이 일정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 봉은 일정 부분이 잘린 격자 철망이 함께 설치 중이다. 작가는 이 봉을 제작하기 위해 베를린 시내 지하철 손잡이 지름을 직접 재기도 했다. 공적 공간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사적이기도 한 공간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경험, 그리고 보호와 금지의 기능과 의미를 동시적으로 전달하는 철망. 특정 사물이나 대상의 기능을 살짝 비껴가며 거기에 주관적 경험과 감각을 응축시키는 작가의 작업방식이 이번 작품 ‘Quadaroba‘에서도 드러난다. 옷걸이가 떠오르는 고리와 작품 제목(정방형 Quadrat 와 옷을 걸어두는 장소인 Garderobe의 합성어)이 위트를 더한다.
대각선으로 선 철망을 통해 베버의 회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탁구공 형태의 머리를 지닌 캐릭터들이 심각하게 잡지와 신문을 읽고 있다. 큐브 형태의 가방을 멘 캐릭터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급히 달려간다.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군상들이 단순한 배경 위에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일러스트-그래픽적인 회화와 기하-추상적인 설치에서 얼핏 두 작가의 조합은 접점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이것이 아트스페이스 애프터 더 버처(after the butcher)의 방식이다. 운영자인 프란치스카 뵈머(Franziska Böhmer)와 토마스 킬퍼(Thomas Kilpper)는 연결점이 희미한 두 작가를 한 공간에 만나게 하고, 작가들이 직접 그 충돌을 다뤄가며 기획하도록 한다.
from the left : Sunah Choi, Quadaroba (verde opale), 2019, Marcus Weber, Deliveroo (1), 2017, Oil on paper, mounted on nettle, 56 x 84 cm, Marcus Weber, Untitled (6), 2016, Oil on paper, mounted on nettle, 50 x 128 cm, Sunah Choi, Quadaroba (blu), 2019 (Photo: Uwe Walter), Sunah Choi, Quadaroba (verde opale), 2019, Straßen Monochrom (Photo: Uwe Walter)
전시 타이틀 콰데르나(Quaderna) 역시 최선아 작가의 아이디어다. 이 단어는 1970년대 초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디자이너/건축가 콜렉티브 슈퍼스튜디오(Superstudio)가 만든 디자인 시리즈의 이름. 이들은 책상, 의자, 벤치, 책장 등 가구를 오직 반듯한 선과 면으로 제작한 후 표면을 하얀 바탕에 검정 격자로 도배하는 대담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흔히 공간이나 사물을 측정하거나 배율을 맞추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격자를 사물의 장식적 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개인과 군상, 보호와 금지, 사적이면서 공적인 서로 상충하는 개념들이 작가 최선아와 마르쿠스 베버의 전시 안에서 정돈된 어조로 표현되고 있다. 전시는 베를린의 비영리 아트스페이스 after the butcher에서 4월 2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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