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예술 작품과의 만남처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얽히기 마련이다. 증권투자 전문가에서 아트 컬렉터, 갤러리 오너가 되었다가 다시 소설가로 전환을 꿈꾸는 사람. 홍콩과 일본에 지점을 갤러리 아트 스테이트먼트 대표이자 스위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아트 파운데이션을 만들고 있는 아트 컬렉터 도미니크 페레가우스(Dominique Perregaux)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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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컬렉터 도미니스 페레가우스(Dominique Perregaux)를 화이트 벽으로 둘러싸인 그의 갤러리에서 만났다. 2003년 오픈한 아트 스테이트먼트는 2011년 센트럴을 떠나 공장 지구인 웡척항(Wong Chuk Hang)으로 이전했다. 16년 전 증권 비즈니스맨에서 갤러리스트로, 스위스에서 홍콩으로 변화를 준 데 이어 요즘은 아트 파운데이션을 계획하는 아트 컬렉터로, 신간을 준비하는 소설가로 살며 다시 스위스를 오가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도시, 홍콩

홍콩이란 도시가 ‘아트 도시’란 수식어를 단 것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2013년 아트 바젤이 입성하기까지 홍콩은 ‘쇼핑 도시’였고, 2003년에는 ‘비즈니스 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아트 바젤 디렉터 마크 슈피글러는 2013년 아트 바젤 오픈 당시 홍콩에 많은 슈퍼 아트 컬렉터를 불러 모으기 위해 애썼다고 고백했다. 초창기 매년 5월 개최된 아트 바젤 홍콩은 뉴욕에서 열리는 대형 옥션 행사와 프리즈 아트 페어, 유럽의 갤러리 위크에 밀렸다. 결국 세 번째 해에 개최 시기를 3월로 변경하고, 미술품 거래에 관련된 거래세와 양도세를 부과하지 않는 정부 정책을 강조한 끝에 ‘아트 도시’라는 수식어를 달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아트 바젤이 성공을 거둔 후 홍콩에는 차례로 세계적인 갤러리가 닻을 내렸다. 홍콩은 잠깐 머물고 떠나는 ‘항구’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안식처’로 변모했다. 올해는 M+ 미술관은 물론 항구를 중심으로 호텔, 아파트 개발과 함께 다양한 아트 지구가 오픈한다. 지금 홍콩은 아트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뜨겁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으로 스위스와 아시아 전역에서 증권 비즈니스를 하며 아트 컬렉팅을 이어 나가던 스위스인 도미니크 페레가우스가 기억하는 홍콩은 그저 ‘비즈니스 도시’다. 홍콩으로 향한 2003년, 홍콩은 돈이 모이는 장소였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갤러리나 매해 최고가 갱신 뉴스를 전하고 있는 소더비, 크리스티 옥션 홍콩도 없던 시절. 갤러리가 밀접한 센트럴에 위치한 갤러리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트는 관심 밖이자 수준 또한 낮았다. 그러나 도미니크 페레가우스는 홍콩을 택했다. 2003년 10월, 여름의 강한 햇살이 여전히 홍콩을 뜨겁게 달구던 때, 그는 센트럴에 아트 컨설팅 비즈니스를 위한 아트 스테이트먼트를 열었다. 그가 아트 컬렉터에서 갤러리스트로, 스위스에서 홍콩으로 이동한 것은 ‘열정’이나 ‘욕망’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닌 ‘기회’와 ‘비즈니스’라는 명확한 단어 때문이다. 인생 대전환이 왜 홍콩에서 이루어졌느냐는 질문에 그는 “홍콩은 지역적으로 유리한 곳이고, 돈과 사람이 드나드는 기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라는 간결한 답을 냈다. 세계적인 갤러리의 외국 디렉터들이 홍콩이란 토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술적 기운을 찬미하는, 과할 만큼 나긋한 답변을 하는 것과는 달라 순간 멈칫했다. 이어진 답은 더 놀라웠다. 명성 있는 아트 컬렉터들이 자신의 컬렉션에 흠이 될까 투자와 상업이란 단어를 꺼내길 두려워하는 것과는 달리, 솔직하고 선명한 답이었다. “고로 나의 갤러리는 아시아 작가를 위하거나 아시아 작가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홍콩으로 모여드는(짧은 비즈니스 출장 때문이더라도) 외국인들에게 오랜 컬렉팅 경험으로 쌓은 나의 큐레이션을 소개하고자 했다. 모두 서양 컨템퍼러리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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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웡척항에 위치한 아트 스테이트먼트는 도미니크 페레가우스가 소장하고 있는 외국 작가 작품을 주로 소개한다. 웡척항 지역에는 이외에도 20여 개의 갤러리가 모여있다. 센트럴에 집중된 갤러리와 달리 큰 규모라 대형 작품 전시가 가능하다. (아래) 덴마크 페인팅 작가 트로엘스 뵈르셀(Troels Wörsel)의 작품. 주로 초상화를 그리던 1970년대 이후 팝아트와 개념 미술 세계에 빠져 시공간을 이야기한다.
(위) 웡척항에 위치한 아트 스테이트먼트는 도미니크 페레가우스가 소장하고 있는 외국 작가 작품을 주로 소개한다. 웡척항 지역에는 이외에도 20여 개의 갤러리가 모여있다. 센트럴에 집중된 갤러리와 달리 큰 규모라 대형 작품 전시가 가능하다. (아래) 덴마크 페인팅 작가 트로엘스 뵈르셀(Troels Wörsel)의 작품. 주로 초상화를 그리던 1970년대 이후 팝아트와 개념 미술 세계에 빠져 시공간을 이야기한다.

아트 컬렉터이던 부모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컬렉팅을 시작해 컨템퍼러리 아트 작품의 가능성에 일찍 눈을 떴고,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룬 후에는 한 단계 도약이 필요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호주 시드니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지에서 증권 관련 일을 한, 뼛속까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그에게 아트 컨설팅을 위한 아트 스테이트먼트 갤러리는 어쩌면 일과 삶의 자연스러운 화학작용이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한 아트 비즈니스는 순탄하게 이어지다 2011년 다시 전환을 맞았다. 센트럴을 떠나 공장 지대인 웡척항으로 이전한 것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는 미술 애호가로서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이기도 했다. 공장 창고 형태의 건물이 많은 웡척항에서는 설치 작품 같은 규모 큰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다른 갤러리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로 외국인 오너의 갤러리,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갤러리 등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갤러리들이 웡척항으로 옮겨 왔다.
그가 홍콩은 그저 기회의 땅이었고, 홍콩 아티스트와는 전혀 연관 없는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다며 홍콩이란 두 글자 앞에 선을 긋는 냉정한 답을 수시로 내놓긴 했으나, 그가 오로지 이방인으로 16년 간 홍콩에 머문 것은 아니다. 그는 2012년 사우스 아일랜드 문화지구협회(South Island Cultural District, http://sicd.com.hk)를 설립하고, 주변 갤러리와 힘을 모아 아트 지구로서 이곳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웡척항 지역에 터를 둔 최초의 갤러리스트이자 홍콩이란 도시가 지닌 장점을 설파할 수 있는 외국인인 까닭이다. 그는 또한 홍콩이 상업적인 아트 도시로만 인식되지 않고 문화적으로 성숙하는 데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날카로운 비평을 서슴지 않는 안내자이기도 하다.


 

처음 홍콩에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홍콩 아트계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세요.
갤러리 수도 적었지만, 주로 중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죠. 제가 유일하게 인터내셔널 작가의 작품을 쇼윈도에 내걸었을 거예요. 컨템퍼러리 미술을 소화하는 곳은 거의 없었어요. 중국 앤티크 명화가 대부분이었죠. 변화가 감지된 것은 2004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본토 중국 작가의 컨템퍼러리 작품이 주목받을 때였어요. 대부분  투자를 위해 중국 작가의 작품을 거래했죠. 저 또한 홍콩 현지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중국 작가의 작품을 살피기도 했어요.홍콩 미술계가 급속도로 발전한 데는 아트 바젤이 성공을 거둔 이후 차례대로 문을 연 세계적인 갤러리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트 마켓이나 경매에 관련된 성적표가 홍콩에 대한 부질없는 낭만과 환상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해요. 아직 컨템퍼러리 작품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홍콩인들의 소화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죠. 미술 관련 교육, 전시 공간 등은 턱없이 부족하고, 이런 공간을 즐겨 찾는 미술 애호가도 찾기 힘들어요. 홍콩이 ‘아트 도시’가 되려면 타인을 위한 공간이 아닌 본질적인 공간이 필요하고, 내밀한 기쁨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시각적으로 천장을 높이기 위해 벽과 천장 모두 화이트 컬러로 칠했다. 아트 바젤 기간에는 주변 웡척항 갤러리와 연계해 전시를 개최할 예정. 오는 9월에도 특별한 축제를 연다.
시각적으로 천장을 높이기 위해 벽과 천장 모두 화이트 컬러로 칠했다. 아트 바젤 기간에는 주변 웡척항 갤러리와 연계해 전시를 개최할 예정. 오는 9월에도 특별한 축제를 연다.

부족한 공간에 비해 당신의 갤러리는 긴 호흡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요. 홍콩 내 다른 갤러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요.
16년간 아트 스테이트먼트 운영이나 제 개인 컬렉션에 크게 변화한 것은 없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시각적 방식으로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서양 아티스트의 작품’을 주제로 삼는다고 할까. 장르에 한계도 없어요. 컬렉팅을 오래 한 사람에게 “어떤 작품이 좋으냐”라고 묻는 것은 우문(愚問)입니다. 컬렉터는 개인의 기호에 충실한 사람이고, 욕구에 충실했기에 수집까지 이를 수 있겠죠. 아트 컨설턴트나 딜러에게 “투자 가능성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이 현문(賢問)입니다. 좋은 작품을 보면 눈보다 몸으로 느껴집니다.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요.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뛰고, 동공이 열리죠. 저의 갤러리에는 ‘투자’보다 ‘감각’이 우선하는, 홍콩에서 보기 드문 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작가를 만날 수 있죠. 홍콩에서 작업하는 작가는 패트릭 리(Patrick Lee)가 유일합니다. 많은 홍콩 갤러리가 자국 작가나 아시아 작가를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면, 제 공간에서는 보다 인터내셔널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수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규모의 전시도 가능하고요(홍콩 갤러리 규모는 대부분 매우 작다). 매년 9월마다 열리는 사우스 아일랜드 아트 데이 페스티벌의 경우 주변 18개(해에 따라 다르다)의 갤러리가 연계한 쇼를 선보입니다. 밤새 샴페인과 퍼포먼스가 함께하는 파티가 열리고,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와 갤러리 오너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으며, 홍콩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작가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죠. 짜릿하고 신선하다고 할까요.

미국 뉴욕 출신 작가 존원(JonOne)의 작품. 156 올 스타즈(156 All Starz)라는 그래피티 그룹을 만들었고, 유명 낙서 예술가와의 만남 이후 프랑스로 이주했다. 도미니크 페레가우스의 취향은 팝아트, 스트리트 아트, 회화와 사진까지 다양하다.
미국 뉴욕 출신 작가 존원(JonOne)의 작품. 156 올 스타즈(156 All Starz)라는 그래피티 그룹을 만들었고, 유명 낙서 예술가와의 만남 이후 프랑스로 이주했다. 도미니크 페레가우스의 취향은 팝아트, 스트리트 아트, 회화와 사진까지 다양하다.

웡척항 주변의 갤러리는 규모도 크고 외국인 갤러리스트의 큐레이팅 덕분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시가 눈에 띄어요.
더 많은 갤러리가 센트럴에서 이곳으로 이동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5분 정도 거리에 있지만, 부동산 시세도 저렴하고 공간도 큰 데다 항구도 마주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갤러리뿐이지만, 문화 공간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이를 위한 주거지, 빌딩 개발이 이루어질 것 같아요(개발과 함께 시세도 오르겠지만). 아트 바젤 기간에 웡척항에서도 매년 9월 마다 열리는 아트 데이 축제처럼 VIP 프로그램과 연계해 3월 29일에 열릴 아트 오프닝 데이를 기획하고 있어요.

일본 도쿄에도 갤러리를 오픈했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홍콩은 컨템퍼러리 작품에 대한 이해가 낮았어요. 아쉬움이 매우 컸죠. 찾아오는 이들 중 일본인이 많았는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어요. 일본 작가에 대한 관심도 개인적으로(아트 컬렉터로서) 생겼고요.

지금 홍콩 아트 신의 분위기를 세 글자로 표현한다면요?
‘Slowly Getting There(천천히 정점에 도달하는 중)’. 겉으로 보기에는 아트 플랫폼이 되고자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내부는 매우 더딘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요. 중국 상하이, 싱가포르, 타이베이, 자카르타, 서울 등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도 함께 경쟁하고 있죠.

실속 있는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요.
올해 M+ 미술관이 오픈하지만, 이런 공간이 문을 여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미 지난해 굉장한 규모의 미술관이 중국 광둥(Guangdong), 선전(Shenzhen) 등에 생겼으니까요. 홍콩이 더욱 성숙하려면 진주강 삼각주 지역(Pearl River Delta Cities)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오늘’의 흐름을 ‘우리’의 기회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진주강 삼각주 지역은 광둥-홍콩-마카오 지역을 일컫는 것으로, 경제, 정치, 문화적 유사성이 있어 한 덩어리로 모여 힘을 낼 수 있지요. 광둥어라는 같은 언어를 쓰는 지역인 만큼 아티스트나 미술 전문가 간의 의사소통도 수월하고요.

한국 미술계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네요. 한국을 자주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갤러리스트로KIAF에 참여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한국 친구가 많아 자주 갑니다. 광주 비엔날레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들었어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거나 갤러리스트로서 접촉한 예는 없지만, 한국 역시 홍콩처럼 빠른 흐름을 타고 세계 아트 마켓에 편입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많은 세계적인 갤러리가 서울에 분점을 내는 것을 고려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도모하려면 뜻하지 않은 사건이 많이 일어나야겠죠. 이는 아트와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정부, 사업가, 국민이 함께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5 Best Selected Collection by Dominique Perregaux

Lucio Fontana, Concetto Spaziale, 1964
Lucio Fontana, Concetto Spaziale, 1964

Lucio Fontana(B. 1899~1968, Italy)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생을 마감한 조각가이자 회화 작가. 평면 그림의 2차원 형태를 돌파한다는 의미의 공간주의(spatialism) 개념을 만든 작가다. 그는 “그림을 만들고 싶지 않다. 공간을 열고 새로운 차원을 접하고 평면을 넘어 끝없는 우주를 그리고 싶다”라고 했다. 공간 개념(Concetti Spaziale) 시리즈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은 단색으로 칠한 캔버스를 구멍 내거나 칼로 절개한 것이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현실에서 우주로 넘어가고자 하는 그의 입장을 설명한 작품이다. 그의 설치 작업 ‘검은 빛의 공간 환경(Ambiente Spaziale a Luce Nera)’은 검은 암실이 된 갤러리에서 펼쳐졌다. 천장에는 인광성 안료를 바른 모형을 매달았고, 전시를 보는 관객들의 옷도 빛을 냈다. 시각을 넘어 몸으로 인지하는 예술을 시도한 혁신적인 아티스트다.

Robert Longo, Men in the Cities: Frank, 1983
Robert Longo, Men in the Cities: Frank, 1983

Robert Longo(B. 1953~, New York, USA)
조각을 전공했지만 드로잉 작품에 집중했다. 그의 드로잉 작품은 조각적인 테크닉에서 비롯된 여러 기교를 보여주었는데, 상어, 호랑이, 총 등을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Men in the Cities’. 인물이 움직이는 순간을 정지 화면으로 포착한 후 애니메이션 느낌으로 변화시킨 다음 이를 다시 흑연과 숯을 이용해 캔버스에 그린 것이다. 그 스스로도 “그림은 조각의 과정이며 지우개와 연필로 조각을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1983년과 2004년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 47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AES+F(collective team, Russia)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설치,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의 회화 작품이나 조각 작품을 만드는 팀이다. 타티아나 아르잔마소바(Tatiana Arzamasova B. 1955), 레프 에브조비치(Lev Evzovich, B. 1958), 에브게니 스비야츠키(Evgeny Svyatsky, B. 1957), 블라디미르 프리드케스(Vladimir Fridkes, B. 1956)가 활동하고 있다. 2007년 52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러시아 대표 작가로 꼽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베니스, 리옹, 시드니, 광주, 모스크바, 예테보리, 아바나, 티라나, 이스탄불, 브라티슬라바, 서울 등의 비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다. 러시아 주요 박물관뿐 아니라 파리의 퐁피두,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로잔의 뮤제 델리제 등 전 세계 곳곳에 그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AES+F, The Last Riot 2, The Carrousel, 2007
AES+F, The Last Riot 2, The Carrousel, 2007
Yoshitaka Amano, Deva Loka Nightmare II, 2010
Yoshitaka Amano, Deva Loka Nightmare II, 2010

Yoshitaka Amano(B. 1952~, Shizuoka, Japan)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컨템퍼러리 아트 작가다. 영화, 연극, TV 관련 일도 한다. <스피드 레이서>를 각색한 애니메이션과 ‘파이널 판타지’ 비디오게임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일러스트레이터 작품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1990년대에는 데이비드 보위 같은 상징적인 레트로 팝 아이콘이 등장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독특하고 우아한 작품 분위기는 서양 코믹스, 일본 목판화, 아르누보 아티스트 구스타프 클림프 등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2010년 스튜디오 데바로카(Studio Devaloka)를 냈다.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Erwin Olaf: Hope 5, 2005
Erwin Olaf: Hope 5, 2005

Erwin Olaf(B. 1959~, Netherlands)
그의 사진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그림 같다. 또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영화 같은 내러티브도 느껴진다. 단순히 고전 명화 같은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데서 벗어나 인종, 신분, 동성애, 종교, 관습 등의 문제를 아주 날카로운 미적 직관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한다. 여러 시리즈 중 ‘최신 유행’(2006)은 성형수술로 일그러진 사회를 풍자하고, 베를린 시리즈는 어른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을 등장시켜 욕망에 지배당한 사회를 표현했다. 아름답고, 기괴하고, 기발한 그의 사진은 영상으로 담겨 설치 작품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개인 컬렉팅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볼게요. 컬렉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부모님이 아트 컬렉터였어요. 어린 시절 스위스 베른 쿤스트무제움(Kunstmuseum)에서 피카소 전시를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컬러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열 살 정도 된 꼬마의 눈에는 충격이었어요. 제목도 잊히지 않아요. ‘La Dame au Coq’. 부모님께서 닭이 그려진, 미소를 멈출 수 없었던 그 그림의 포스터를 사주셨는데, 방문에 붙여두었죠. 지금도 보관하고 있어요. 그 그림이 제 첫 컬렉션이라 할 수도 있겠군요.

부모님의 영향이 매우 컸겠군요.
부모님을 따라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미술관, 박물관, 아트 재단, 심지어 그들의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만든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어요. 부모님 덕분에 저는 남들보다 빨리 아트에 눈떴죠. 논리적인 컬렉팅을 따라가며 깨달은 점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에요. 그 경험으로 저는 일찍 컬렉션을 시작했죠. 많은 이들이 첫 컬렉션을 고르는 데 신중을 기하지만, 사실 첫 작품은 급작스럽게 마음이 스며들 듯 다가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가지게 되면 그 작품과 나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기며 전시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과 감흥이 밀려오죠. 매일 작품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고요.

컬렉팅 기준이 있다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했을 때나 감정적으로 큰 변화가 있을 때 그 당시의 감정이나 상태와 일치하는 작품을 사는 편입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그때 느낀 감정이 되살아나죠.

좋은 작품을 선별하려면 치열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공부라는 단어가 무섭게 들리네요.(웃음) ‘공부’보다 ‘탐색’이라 하는 편이 좋겠어요. 미술사에 대해 거창하게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신 저는 작가의 바이오그래피를 살피는 편입니다. 방금 프렌치 러시안 화가 니콜라스 드 스타엘(Nicolas de Staël)의 과거에 대한 탐색을 마쳤죠. 현존하는 컨템퍼러리 아티스트의 경우 그들의 미래는 이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매년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했는지, 스스로 어떤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지. 흔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죠. 얼마 전에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에서 열린 발튀스(Balthus) 전시에 다녀왔고, 그를 다룬 잡지 기사를 읽었어요. 어느 곳에 가든 그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찾는 것은 ‘공부’나 ‘탐색’이란 단어보다 ‘습관’이란 단어에 가까운 일이죠. 제 컬렉션에 어떤 작품을 추가할지, 습관처럼 전시를 다니며 발견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

현재 개인 아트 파운데이션을 만드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아직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스위스에 있는 모던 앤드 컨템퍼러리 아트 파운데이션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어요. 홍콩에서 지위와 명성을 좀 더 쌓은 후 공개할 예정입니다. 컬렉션은 스위스에 있는 가족 소유 공간에 보관되어 있고, 일부는 홍콩과 타국의 개라지에 있습니다. 제가 아트 스테이트먼트를 통해 소개한 작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갤러리를 운영하기 전부터 꾸준히 작품을 모아왔기에 규모가 꽤 됩니다. 존경하는 작가지만 한번도 전시장에 소개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도 많습니다.

 

소설가로 데뷔하게 해준 책 'A Taste for Intensity'. 2020년 출간을 목표로 또 한 권의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
소설가로 데뷔하게 해준 책 'A Taste for Intensity'. 2020년 출간을 목표로 또 한 권의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다.

2013년 소설 <A Taste for Intensity>를 출간했어요. 갤러리스트가 아닌 소설가로 또 한번의 전환을 꿈꾸는 것인가요?
말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글쓰기는 아트 컬렉팅보다 능동적인 행태의 자아 표현 행위죠. 작품이 잘 팔린다면 또 하나의 비즈니스 결과물이 될 수도 있고요.(웃음) 이 책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습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출간을 목표로 새로운 작업을 진척 중이에요. 제 목소리에 집중하는 일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니체가 말했죠.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글 계안나 | 사진 Woo Chan | 참고 아트스테이트먼트(www.artstatemen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