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 앓는 ‘번아웃 증후군(burn out)’. 지난 5월 28일 세계보건기구 (WHO)가 공식 질병으로 인정하면서 적절한 휴식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뉴욕과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 요가와 다도 수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은 내면의 피로와 무기력함을 극복하려는 현대인들의 의지다. 마음의 위안을 얻는데 예술 만한 것이 있을까? '명상'과도 같은 세 가지 전시가 서울에서 열려 눈길을 끈다.
WRITE 이보현(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에디터) ALL RESOURCES 갤러리메이, 피비갤러리, 가나아트센터
'명상에 상상을 더하다'
갤러리 메이 <AXIOM> 전
2015년 서울 홍대 앞에 개관한 이래로 ‘명상(meditation)과 상상(imagination)’을 전해온 갤러리 메이가 부산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개관 이래로 갤러리와 작가가 지녀야 할 기본 가치를 선보여왔던 갤러리 메이는 “부산에서도 동시대를 대변하는 신진 작가들의 기획 전시를 이어나갈 것” 이란 포부를 전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개관전 <Axiom>은 갤러리메이와 백아트가 함께 기획했다. 풍경, 형이상학적 연대기, 삶과 쇠퇴의 주기적 현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중견작가 박영하와 LA에서 활동하는 작가 조나단의 2인전으로 두 작가의 작업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탐구하는 자리다. 얼핏 이질적이고 반대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두 작가의 신선하고도 낯선 조합은 예술적 관행을 둘러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한 시도다.
인간과 자연 상호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영하 작가의 작품은 거대한 질감 표면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수많은 미적 기준 사이에서 탄생한 이 질감을 고전적이고 착시 적인 방식으로 묘사했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대형 작품은 색채와 미니멀한 구성으로 시각을 자극하는 작가의 작품이 공간과 맺는 관계가 무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때때로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자연처럼, 탁 트인 공간에서 보이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묘사가 차분하고도 고요한 사색의 순간을 선사한다. 형식적인 페인팅에 질문을 던지고 때로 규칙을 깨뜨리며 그만의 공간을 구성하는 조나단 카셀라의 작품 역시 공간과의 조화가 돋보인다. 갤러리의 기능을 건물의 물리적인 특성과 연결하는 작가는 그래픽의 익숙함에 관한 실험을 한다. 수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기하학적 문양, 시계 이미지, 실내 전체를 메운 벽화 등으로 차용된 이미지는 기존 전시 기획의 틀을 완연히 벗어던진다.
GALLERY MEI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미로 63번길 7
070 8615 4688
전시는 7월 10일까지
'사물 너머의 사유를 비추는 빛'
피비갤러리 <요란한밤 A Loud Night>
피비갤러리에서 열리는 안경수 작가의 개인전 <요란한밤 A Loud Night>은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것들에 주목해온 작가의 세밀해진 주제와 시각이 돋보이는 자리다. 최근 을지로 상업화랑의 전시에서 도시의 번화가를 목격한 광경을 캔버스로 전했던 안경수 작가는 페인팅에 집요하게 천착하며 주변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막과 풍경’을 오가며 사람이 부재한 장소에서 무언가를 지탱하기 위해 생성된 공장과 컨테이너 등을 화폭에 담았던 작가는 근래 들어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 화면을 오래 응시하고 캔버스를 대하는 변화를 보인다. 폐허와 빛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최근 작업은 낮에서 밤으로 건너는 어느 시점의 어슴푸레하지만 분명한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둠으로 대변되는 공터나 폐허의 장소에 이질적인 빛이 존재하는 모호함은 관객에게 기이한 낯섦을 전하며 본듯하지만 보지 못한 순간에 관해 물음을 제기한다. 이번 전시에서 돋보이는 또 다른 포인트는 ‘사물’에 대한 직관적 관심이다. 난로 그림으로 유명한 비야 셀민스 (Vija Celmins)를 오마주한듯한 그림부터 확성기, 전등 등의 일상의 사물을 다루면서 작가는 질감과 표면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극사실적 페인팅을 선보인다. 역시 빛과 어둠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각각의 이미지들은 밀도 높게 쌓인 견고한 레이어가 돋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피비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두고 “사물, 그 표면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서, 보이지 않는 것, 사물의 너머, 사물과 존재의 관계에 대한 사유로 이행하기를 요청한다”고 전했다. 어둠을 비집고 내리쬔 빛이 요란하게 비춘 사물들이 마치 음소거된 듯 완벽히 짜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관객에게 부조리한 감각을 일깨운다.
피비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125 6 1 층
02 6263 2004
전시는 6월 22일까지
'추상화만큼 내면을 이끄는 것은 없다'
가나아트 <Monet before Me>
가나아트와 박영남 작가가 2012년 개인전 이후 7년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흑백 회화’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박영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다채로운 색의 표현이 담긴 신작 <Monet before Me> 연작을 공개한다.
손가락을 사용해 추상 화법을 풀어내는 박영남 작가는 판화지 위에 파스텔과 물감을 둥글리며 종이위에 다양한 색이 섞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했다. 기존의 흑백과 그리드로 상징되던 작가의 화법은 근래들어 형식적 제한을 벗어나 자유로이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계를 뭉개 서로 부유하듯 생동하는 무정형의 형태들 속에서 자연의 빛을 더한 작가는 “나는 ‘색채는 곧 형태’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굳이 자연을 묘사하지 않아도 색채라는 덩어리가 캔버스에 발려지는 순간부터 또 다른 ‘자연의 형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라며 색채에 대한 심도깊은 생각을 전했다. 이번 전시 제목 전면에 드러나는 인상주의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는 빛깔과 자연에 대해 그보다 시대적으로 앞서 풀어냈던 존경을 담아 선택한 오마주로써의 명사로 헌사의 마음을 전한다. 자연에서 작업의 주된 영감을 받는 작가는 “캔버스는 곧 대지”라 말하며 도구가 아닌 손가락으로 땅을 밟듯 흔적을 남긴다. 이번 전시는 그의 흑백회화와 드로잉, 신작을 한데 모아 화가적 삶의 발자취를 쫓을 수 있는 자리다. 전작에서 태동한 신작을 유추하며, 종이가 곤죽이 될 정도로 거칠게 뭉개진 물감들이 형성한 질감과 색채는 관람객에게 형형한 빛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림. 무언가로 보이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밝힌 박영남 작가의 자연을 닮은 캔버스들은 마주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발견하길 기대한다. 박영남 작가에 대한 이주현 미술평론가의 설명은 전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의 손 운동은 비록 제한된 화포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지만, 그것만 느끼는 게 아니라 현실 너머의 비가시적인 영역까지 섬세하게 지각하고 파악한다. 작가의 그림 앞에 선 우리는 가능한 진득하게 그 그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록 우리의 손을 갖다 댈 수는 없지만, 모든 감각을 동원해 그의 그림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가나아트센터
서울시 종로구 평창 30길 28
02-720-1020
전시는 6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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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갤러리메이, 피비갤러리, 가나아트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갤러리메이, 피비갤러리, 가나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