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변곡점을 찾기 위해 중국을 찾은 미국인 앤드루 러프(Andrew Ruff)는 예상보다 빠른 전개를 맞았다. 중국인 아내 링링(Ling Ling)을 만나 상하이에 정착했고, 함께 비영리 공간 166 아트 스페이스를 운영하며 상하이 아트 신의 일부가 되었다. 급변하는 중국 아트 시장의 변곡점에 선 그들은 5월 부산아트페어를 찾아 컬렉터로서 아시아 아트 시장을 이야기 할 예정이다.
WRITE 계안나(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Y 김정완(Onas Kim)
2018년 11월에 열린 상하이의 주요 아트 페어 웨스트 번드 아트 & 디자인과 아트021 페어는 전 세계 아트 피플에게 매년 상하이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를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컬렉터가 된 셀러브리티와 셀러브리티가 된 아티스트까지 미술관은 매일 북적였고, 상업과 비상업을 오가는 상하이의 다양한 행사는 영화제만큼 미디어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페어가 끝난 후에도 상하이는 그 열기를 이어받아 ‘중국 최초 전시’란 수식어를 단 주요 미술 작가 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었다. 파워롱 뮤지엄(Powerlong Museum)에서 <한국의 추상미술 : 김환기와 단색화> 전시도 열렸다. 중국 본토에서 처음 대규모로 기획된 단색화 전시로, 추상미술의 대가 김환기를 필두로 박서보, 하종현, 이우환 등의 작품 100여 점이 함께한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과 작품을 보관하는 166 아트 스페이스를 소유하고 있는 앤드루 러프와 링링 부부. 그들은 예측 불가능했던 다양한 행사를 마치고 숨을 돌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마주 앉은 집 안 거실에는 부부를 중국 컨템퍼러리 아트계로 입문시킨 쩡판즈(Zeng Fanzhi)의 서로 다른 시대 작품이 사방에 걸려 있고, 길 건너에 위치한 166 아트 스페이스 또한 3월 15일부터 8월 10일까지 열릴 쩡판즈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166 아트 스페이스는 부부가 20년 넘게 모아온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펼치는 비영리 공간이다. 소장 작품을 다른 카테고리로 묶어서 보여주거나 컬렉션한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소개하고, 소장하게 될 작가의 작품을 미리 탐색해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컬렉터가 작가를 지원하는 색다른 방법처럼 보였다. “부모님은 신중한 컬렉터셨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죠. 그저 좋은 작품을 집 안에 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성장하는 중국 아트 신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태도가 달라진 것 같아요. 쩡판즈의 작품이 결정적 계기를 주었죠. 유명한 인도네시아 컬렉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집에 작품을 걸어 놓을 공간이 없음에도 계속해서 작품을 수집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컬렉터가 되는 때라고. 집의 어느 특정 부분을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닌 작품을 위한 순수한 컬렉팅이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말이죠. 어느 순간 저도 그런 입장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작품이 주인이 되는 집이 필요해졌죠.”
한낮의 빛이 거칠고 자유로운 붓질이 매력적인 쩡판즈의 ‘Countryside No. 5’ 작품 속 시골길을 비추고 있었다. 그에게 상하이 아트 신에 대한 의견을 물은 순간이었다. 앤드루는 한참 시선을 그 길 위에 두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상하이에 많은 뮤지엄이 생기고 많은 컬렉터들이 모여들며 좋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상하이 아트 신을 낙관하기는 힘들어요. 건강하고 공정한 미술 시장이 담보되어야 하죠. 미국 미술관은 작품을 기증받거나 기부금을 받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반면, 상하이에는 많은 수의 뮤지엄이 개인 소유로 이를 축으로 삼아 전시를 열고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안정을 유지하기가 힘들고 시스템 또한 발전할 수 없습니다. 또 중국 내 정치 상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직 상하이 미술 시장은 성장통이 한창이라고 봐야 해요.” 미국인이라는 출신을 떠나 누구보다 중국 컨템퍼러리 작가를 사랑하는 컬렉터로서의 우려와 걱정은 적지 않은 공감을 주었다. 그는 중국 시장을 객관적 입장으로 전하고자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눌수록 미술 시장 분석가 클레어 맥앤드루(Clare McAndrew)가 한국에서 진행했던 아시아 미술 시장 강연이 떠올랐다. “중국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아시아의 지역적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여러 아트 페어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성장세의 추진력은 주로 아시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백만장자나 억만장자가 미술품을 구입한 결과다. 중국에 필요한 것은 미국이나 영국처럼 중상위층이 중간 규모 시장을 잘 지탱하는 것이다.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미술 시장이 건강해지려면 자산, 발달된 문화 기반 시설, 미술품 수출입과 관련한 법적 환경 형성 등 여러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 시장도 마찬가지. 돈이 있다고 해도 미술품 대신 보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다수라면? 한국 미술품 대신 서양미술품을 사려는 이들이 다수라면? 재능 있는 한국 아티스트가 성장할 토양은 없다. 최고만이 아닌, 다수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아트 신이 형성되어야 한다. 앤드루와 링링은 99%의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상하이의 아트 신에 깊숙이 발을 들이게 되었다는 이들과의 대화는 달빛이 창을 넘을 때까지 이어졌다.
많은 미디어에서 웨스트 번드 아트 & 디자인과 아트021 상하이 컨템퍼러리 아트 페어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서 상하이 아트 신에 느낌표를 찍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 체감하는 상하이 아트 신은 여전히 불안한 부분이 많다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상하이에서 열리는 행사는 갤러리, 미술관, 지역 작가의 협업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해석할 수 있죠. 웨스트 번드 지역을 문화 특구로 만들고, 상하이 자유무역항 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의 도움에 힘입어 시작한 지 불과 5년 남짓한 상하이의 아트 페어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아트 신에 대한 기대는 표면적인 요소로 판단할 수 없어요. 저희는 지속성과 안정화를 우려합니다. 지금 웨스트 번드에 생겨나고 있는 미술관은 개인 소유 구조가 많아요. 기부금을 받아 공공이 운영하는 투명한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많죠. 좋은 예로 중국 블루칩 작가 작품을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컬렉터였던 울렌스 부부가 운영하는 베이징 798예술구의 울렌스 현대미술센터(UCCA)의 운영권을 갑자기 중국 기업가에게 넘긴 일이 있어요. 그들이 소장했던 많은 수의 중국 컨템퍼러리 작가들의 작품이 한꺼번에 옥션에 등장해 미술계의 핫 이슈가 되었죠. 이에 반해 유즈 미술관을 운영하는 부디 텍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공동으로 전시 및 프로그래밍을 열고 유즈 재단이 보유한 저의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을 LACMA와 함께 설립할 공동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한 결정은 박수를 받을 일입니다. 상하이에서 이사회가 운영하는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 되겠죠. 개인 컬렉터가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하고 전시를 여는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얼마나 꾸준히, 얼마나 좋은 질의 전시를 보여줄 수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해요. 상하이 미술 시장의 발전은 중국의 경제성장과 긴밀하게 연동된다는 점 역시 기대이자 걱정입니다. 중국 시장은 외국인인 저뿐 아니라 중국인조차 쉽게 단정 짓고 예측하기 힘들거든요. 생물체처럼 수시로 변화하기에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죠. 컬렉터로서 중국 시장에 대해 좀 더 긴장된 마음으로 컬렉션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트 부산과 한국 국제 아트 페어 기간에 열린 K-ART 컨버세이션에서 미술 시장 분석가 클레어 맥앤드루의 강연 기사를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현재 중국 미술 시장의 높은 구매율은 극소수 인구의 구매 활동에 기인한 결과라는 것이죠.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면 경매 회사나 미술품의 질적인 수준과도 관련이 깊다고 하더군요.
돈은 있지만 그 돈으로 미술품 외 자동차를 구매한다면요? 아트 페어는 넘쳐나는데 1년 내내 좋은 전시를 보여줄 공공 미술관이 부족하다면요? 미술관을 짓고 작품을 팔고 싶은데 법적 절차가 까다롭다면요? 중국 상하이뿐 아니라 한국 시장 또한 이 부분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 봐요. 서양의 사례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영국 등과 아시아 시장을 비교하자면 99%의 사람들이 미술품을 사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라 볼 수 있어요. 보다 폭넓은 층에서 미술 작품을 찾고 구입해야죠. 중국 미술품은 주로 국내 시장에서 집중적으로 중국 컬렉터에 의해서만 소장되는데, 이를 해외로 확장할 필요도 있어요. 한국 컬렉터가 한국 작품을 구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 시장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찾게 만들고 해외로 수출하는 것도 필요해요. 결국 여러 요소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미술 시장을 만드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166 아트 스페이스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어떻게 이 공간을 만들게 되었나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저희 거실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어요. 부부가 때론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미처 몰랐던 저희의 취향을 발견하기도 하는 장소죠. 저희 컬렉션의 핵심은 중국 컨템퍼러러리 작가입니다. 원래는 명나라와 청나라 가구 등을 좋아했지만, 쩡판즈의 작품을 보는 순간 빠르게 아트 작품으로 옮겨 갔어요. 쩡판즈의 매우 다양한 작품 세계를 살펴볼 수 있었죠. 그 이후 쩡판즈처럼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조급하지 않은 속도로 딩이(Ding Yi)와 장언리(Zhang Enli) 등의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결과물보다 과정을 더욱 자세히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66 아트 스페이스는 수장고뿐 아니라 우리가 지켜보았던 작가의 성장 과정을 타인과 공유하고자 만든 곳입니다. 최근에 진행한 프로젝트는 우리 컬렉션과 무관한 것이었는데, 전시뿐 아니라 다양한 큐레이션 이벤트도 열죠. 집에서 보여주는 컬렉션과 다른 분위기로 전시를 해보고 싶어 머리를 맞대고 살피다 보면 작품을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컬렉터로서 작품을 구입하는 방법 외에 작가를 도와주고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것인가요?
임대료, 인테리어 비용, 전시에 소요되는 소소한 비용을 저희가 부담하는 것이죠. 전시를 열지만 판매는 하지 않습니다. 신인 작가의 경우 최대한 협력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합니다. 예를 들어, 쇼를 위해 어떤 작품을 생산하는 경우 이를 지원하고, 전시를 통해 관련 기관과 컬렉터에게 소개함으로써 결국 작가에게 판매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신진 작가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말했다시피 처음부터 아트 컬렉터가 되겠다는 목적과 의도로 작품을 모으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미술 작품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중국 컨템퍼러리 시장 자체가 없었어요. 즉, 시장가격이라는 것이 없었죠. 쩡판즈의 작품 또한 갤러리가 원하는 가격에 구입했어요. 당시에는 중국 작가의 작품 가격은 실력이 비슷한 서양 작가들보다 매우 저렴했어요. 그런데 구입한 이후 중국 컨템퍼러리 작가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어요. 중국의 부호들이 급속히 작품에 투자하던 시기였죠. 미술 시장에는 고정된 가격이라는 것이 없어요. 수요와 공급에 따라 환율처럼 수시로 변동되죠. 2005년에서 2010년 사이가 절정이었어요. 이유 없이 가격이 올랐죠. 쩡판즈의 작품을 사고 싶어도 작품을 구할 수 없었고, 저희가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의 작품이 거의 없었어요. 그때 타의 반 자의 반으로 가격대가 저렴한 신진 작가에게 눈을 돌렸어요. 그때부터 우리 컬렉션이 더욱 신중해졌죠. 20년 넘게 컬렉팅을 해왔기에 신진 작가의 잠재력은 쉽게 알 수 있죠. 우리가 즐길 수 있고, 타인과 함께하고 싶은 작품은 확실히 고를 수 있다는 말이죠.
계단을 오르는 벽과 숨겨진 공간 마다 빼곡하게 작품이 놓여 있다. 계단 아래 바닥에 놓여 있는 작품은 리산(Li Shan) 위의 두 그림은 왕우핑(Wang Yu Ping)의 작품.
작품을 ‘수집’하는 것과 ‘전시’하는 것은 염연히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미술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학업적인 배경은 없어요. 대신 부모님이 아트를 좋아했기에 어릴 때부터 박물관과 갤러리를 많이 방문했고, 컬렉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도왔죠. 미국 뉴욕에 살면서 1950~1960년대 모던 아트, 팝아트, 개념미술 등을 본격적으로 접했는데,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가는 시기였죠. 경험에 의한 습득이라 할까요? 하버드에서 아트 히스토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큰 쓸모는 없었어요. 하하. 대신 책을 많이 읽었죠. 일주일에 5~6권의 책을 꾸준히 읽었어요. 특히 아트 크리틱에 관한 책들이었어요. “화가와 그들의 관계에 대해 말해주는 정황적인 증거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그림 자체가 그런 증거가 될 수는 있다. 즉, 한 그룹의 남자와 여자를 타인인 화가가 보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 증거를 검토해 당신 스스로 판단을 내려보라.” 예술 작품은 본유적인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관람자의 입장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존 버거의 책은 컬렉터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 봅니다. 컬렉터들이 아트 비평에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예민한 방식으로 자신의 선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니까요.
그런 의미로 중국 아트 컨템퍼러리 작품을 비평하고 소개하는 온라인 잡지 랜디안(http://www.randian-online.com)에 투자한 적이 있죠?
초장기에 그랬죠. 그러나 어느 순간 기사와 광고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아무래도 광고 수익으로 운영하는 구조인 경우 광고주를 비평하고 객관적으로 다루기 어렵겠죠. 뉴욕 타임스나 월스트리즈 저널 등의 경우 최고의 매체로서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고 미디어로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반면, 대부분의 매체는 독립성을 가지기 어렵죠. 특히 아트 시장은 통제하는 기관도, 규정도 없기에 매체 또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더라고요.
미디어들이 그런 기준을 잡아주고 좋은 전시를 권할 때 컨템퍼러리 아트 또한 좀 더 쉽게 이해 받지 않을까, 1%의 취미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데이미언 허스트와 제프 쿤스의 작품은 왜 그렇게 비싼지 설명해줄 수 있는 기사가 왜 없을까요? 해석과 기준을 잡아주는 여러 기관과 미디어가 필요한 듯 보여요.
아트 신은 점점 거대해지고, 그에 따라 이슈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현대미술품의 가격은 늘 유동적이기에 여러 요소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술 작품 자체를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생기죠. 읽을 것, 생각해야 할 것, 대화할 것이 많아지는 만큼 결정 장애도 생긴다는 뜻이에요.
상하이와 베이징의 아트 신은 분위기가 다르지 않나요?
컬렉터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하이나 베이징이나 유기적인 구조 아래 움직이고 있고, 요즘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현재 상하이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홍콩 다음으로 아시아 아트 시장 허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죠. 아트 페어는 물론 상하이 웨스트 번드에는 롱 뮤지엄, 유즈 미술관, 탱크 상하이, 퐁피두 센터 분관이 있고, 오르세 미술관도 상하이 분관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모든 형태가 민간 자본과 부동산 기업 위주로 운영되는 구조라 컬렉터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곧 부산에 간다고 들었어요.
올해 5월에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아트페어에 초대 받아 갑니다. 아트 컬렉터로서 아시안 아트 컬렉팅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었어요.
한국 아트 신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솔직히 고백하면 최근에야 관심을 갖고 접하고 있어요. 컬렉션에 포함시킬까 생각해보았지만, 아직까지는 한국 아티스트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컬렉션을 할 때 작가를 탐구하는 데 오랜 시간을 투자하거든요. 한국 아트 신의 인상을 말하자면 한국 작품에는 국가의 정체성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특히 해외에서 작업하는 한국 아티스트에게서 강하게 드러나는데, 그런 디아스포라 정신이 매력적입니다. 한국과 떨어져 작업하지만, 누구보다 강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죠. 이우환, 백남준 등의 작품을 보면 본인이 한국을 떠났을 때, 그 시절의 한국을 그리워하고 애틋해하며 슬퍼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져요. 이 부분이 중국 작가와 다른 지점이죠. 중국 본토를 떠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들은 현재의 중국 상황을 잘 모르거나, 이를 감정선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글로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세대에 따라 중국을 바라보는 시점 자체가 단편적이고 단절적이죠.
이번에 한국에 가면 한국 컨템퍼러리 작가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하실 것 같네요. 어떤 점이 가장 궁금하세요?
이우환, 백남준 세대 이후, 지금의 작가들이 전 세대 작가와 어떤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요. 1930~1950년대에는 미술 교육이라는 것이 없었고, 여러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해외로 갔죠. 이방인으로서 타지에서 벌인 그들의 다양한 작품 활동이 지금의 한국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어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보자마자 “오 마이 갓!”을 외쳤어요. 기술적인 완성도가 무척 뛰어나고, 아이디어가 놀라웠죠. 그런데 첫인상은 무척 강렬한 데 반해 그들이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고, 이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작품 내레이션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이는 작가 자체가 스토리를 잘 풀어내지 못했거나 스토리를 끌어내는 요소가 부족하거나, 아니면 여러 이유로 컬렉터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탓이겠죠. 이번에 부산에서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멋진 작품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는 온라인 상거래 시장이 급속히 커지면서 미술계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해외에서도 미술 경매 관련 스타트업이 이슈가 되고 있고요.
이 질문에 색다른 답변을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하하. 제가 디지털에 능숙한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작품은 실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미래에도 미술 작품은 더욱 친밀하고 인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디지털 기술로 중개 거래에서 소요되는 비용, 시간, 노력 등을 감쇄할 수는 있겠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고민하고, 다시 고르고, 구입하고, 소유하는 특정한 경험이 사라지잖아요. 컬렉팅하는 재미는 그런 과정 아닌가요? 과정을 느긋이 즐기면서 작품과 나의 관계를 천천히 쌓아가는 것 아닌가요?
5 Remarkable Collection by Andrew Ruff & Ling Ling Ruff
앤드루와 링링 부부는 최고의 컬렉션 5 작품을 골라 달라는 질문에 선뜻 응하지 못했다. 평생의 동반자 같은 작품 중 몇 개만을 고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원한다면 에디터가 골라도 좋다고 주도권을 넘겼다. 에디터 입장에서 중국 컨템퍼러리 아트의 맥을 짚을 수 있는 작품을 추렸다. 그들의 컬렉션 중 피부에 와 닿았던 작품들이다.
Zeng Fanzhi(B. 1964~, Wuhan, China)
앤드루와 링링으로 하여금 중국 컨템퍼러리 아트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한 작가다. 앤드루는 오랫동안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쩡판즈만큼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섭렵한 작가는 없었다고 한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 관장이자 미술 평론가 로랑 헤기는 쩡판즈의 그림을 보고 “역사, 정치, 추억, 그리고 환상을 모두 아우른다. 작업의 심리적인 출발점은 두려움이다.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 작품의 심지가 되었고, 시와 같은 작품으로 완성되었기에 그의 작품은 누구에게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킨다”라고 했다. 쩡판즈는 20세기의 급변하는 중국을 빗대어 '가면'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이 성공한 후에는 가면을 벗고 초상화 시리즈에 매달리거나 전혀 다른 풍경을 그리는 등 성공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떠오르는 그의 '최후의 만찬'은 2013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약 249억에 낙찰되었다. 대표적인 수퍼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 또한 그의 작품에 매료되었고, 베니스 프랑수아 피노 재단에서 전시를 열기도.
Yuan Yuan(B. 1973~, Zhejiang, China)
위안위안은 항저우 미술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중국 전통 유화를 포함해 그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접했던 다양한 서양 유화 기법을 습득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쌓았다. 그는 아티스트 리처드 롱(Richard Long)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선과 원 등 도형적인 설치 작품을 만들어 마치 자연의 중심에 선 것 같은 분위기를 표현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그는 아파트의 발코니, 홀, 입구, 복도 등 건물 내부를 집중한 독특한 그림을 보여주는데, 실제 그 장소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건축을 주제로 삼은 독특한 붓질로 완성한 그의 그림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앤드루는 붉은 벽돌 벽으로 이루어진 욕실을 그린 그의 작품을 침실 옆 작은 서재 공간의 벽 전체에 걸어두었는데, 욕실 안에 몸을 담그고 조용히 사색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
Gao Weigang(B. 1976~, Heilongjiang, China)
가오웨이강은 그림,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다룬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특정 영역의 작가로 가두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재료로나 형태를 보고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작품 스토리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스테인리스와 금으로 사다리를 만드는 식. 기존의 전형적인 틀을 철저히 부수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는 예술가의 자기반성이기도 하다. 여러 실험과 변형을 통해 자신의 작업 방식 또한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 그의 작품은 여러 장르를 넘나들지만 그런 특유의 감각이 살아 있다.
Jin Shan(B. 1977~, Huai An, China)
166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최한 전시 <The Blues>에서 공개한 작품이다. 밝은 민트 컬러의 작품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사람의 치아 모양을 한 오브제가 덩어리를 물어뜯고 있다. 진산의 작품은 이처럼 터무니없고 끔찍하고 놀라운 일이 일상에서 무덤덤하게 펼쳐지고 있는 중국의 현실, 중국인의 삶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이 가진 여러 사악한 힘을 작품에 담는다. 166 아트 스페이스에서 최근 개최된 그의 전시회에서는 두려움, 참혹함, 고통 등을 묘사한 무시무시한 형태의 설치물로 보여주었다. 그리스 문명, 기독교, 공산주의 등 문명과 종교 등이 인간의 악한 욕망으로 산산이 무너져버린 현실을 나타낸 작품.
Ding Yi(B. 1962~, Shanghai, China)
상하이 출신으로 중국 보다 해외에서 먼저 명성을 얻은 딩이. 색실로 직물을 짠 듯 무수한 기호를 반복해서 그린 그의 추상 회화를 두고 '급성장해 혼란해진 상하이 도시의 풍경'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는 x와 + 기호를 무한 반복해 캔버스를 채우는데, 너무나 정교해서 이것이 기계가 만들어낸 디자인인지, 사람이 만들어낸 그림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 그는 이런 정교한 구성과 방식을 이용해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을 통해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급변하는 중국 사회를 보여준다. 중국 전통 그림 서예에서 볼 수 있는 선적인 의미도 담는다. 서양에 비해 추상 회화가 폭넓게 발달하지 않은 중국 사회에서 딩이의 이런 작품은 추상 회화를 급속하게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중국 추상 회화 중에는 중국인으로서 겪은 경험과 중국에서의 사회적 경험을 녹여낸 작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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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Andrew Ruff & Ling Ling Ruff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김정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