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집을 직접 개조해 자신의 컬렉션 작품으로 채운 디자이너 스테파노 델 베키오(Stefano Del Vecchio)와의 인터뷰 내용은 아트, 인테리어, 디자인, 패션 분야를 넘나들었다. 작품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가도 그 아래에 놓인 가구는 어떻게 만든 것인지, 옆의 빈티지 조명은 어디서 구한 것인지 묻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탤리언 포스트 워 아트와 에로티시즘 카테고리를 오가는 역설적 화법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녹아 든 집은 그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INTERVIEW ANNA GYE PHOTOGRAPH WOO CHAN
홍콩 중심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사방은 고요했고, 초록빛이 넘쳤다. 빅토리아 피크를 오르는 관광 트램이 지나가는 길 중간쯤 위치한 막다른 골목. 일방통행 길 끝에 위치한 스테파노의 집은 번잡한 세상을 피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도피처가 필요한 예술가가 머물거나 예술가의 미학적 성찰을 고찰하는 미술관 역할을 하기에 적절한 장소로 보였다. 대형 유리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초록빛은 홍콩의 밤을 밝히는 화려한 조명보다 비범해 보였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이 집 소개부터 시작했다. 베키오는 1980년대에 인테리어 브랜드 회사 델비스(Delvis)를 설립했다. 그는 여러 명의 디자이너와 가구 장인과 함께 이탤리언 스타일 소품, 가구를 만들고, 인테리어 컨설팅도 한다. 2002년, 유로화 위기로 이탈리아에서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그는 삶의 터전을 베니스에서 홍콩으로 옮겼다. 2006년, 처음 홍콩에 도착했을 때 그는 만다린 호텔에 머물며 적절한 거처를 탐색한 끝에 소호 중심가에 있는 집을 찾았고, 대대적으로 레노베이션했다. 그러나 파티를 열기에 적당한 테라스를 갖춘 1층 집은 그가 소유한 아트 작품을 보관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좀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레이더를 펼친 끝에 찾은 이곳. 홍콩 미드 레벨 지역에 위치한 스리 베드 룸은 그가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한껏 발휘한 끝에 오픈 주방과 거실, 2개의 욕실과 침실을 갖춘 곳으로 변신했다. 그는 오래된 것을 재활용하면서도 새롭게 창조하는 것(recycling but recreating)을 좋아한다. 재료의 민낯을 과감히 드러내면서도, 간결하고 우아하게 동시대적인 미감을 담는 것 말이다. 이는 그가 수집하는 아트 작품 성향에서도 엿볼 수 있다.
베키오는 우리를 창밖의 녹음과 이어지는 짙은 그린 컬러 소파로 이끌었다. 소파 뒤 다듬지 않은 모양새가 매력적인 철제 선반에는 그가 탐닉했던 컬렉션의 흔적이 놓여 있었다. 피카소가 원시미술품에서 고귀한 야만, 순진함, 생명력을 보고, 전통과 관습을 해체하려 했던 것처럼, 그 또한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아프리카 원시미술품에 한동안 빠져들었다. 그의 본격적 수집 테마는 1960년대 아방가르드 시대의 주역 다다마이노(Dadamaino), 제로 무브먼트를 이끈 회화 작가 엔리코 카스텔라니(Enrico Castellani), 공간주의 스타일을 만든 아티스트 루초 폰타나(Lucio Fontana) 등 이탤리언 포스트 워 아트(Italian Post-war Art)와 이탤리언 아티스트 알베르토 비아시(Alberto Biasi), 헝가리 출신의 프랑스 아티스트 빅터 바자르니(Victor Vasarely) 등의 옵티컬 아트(optical art)다.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면서 홍콩에 머물기 시작하고부터는 또 하나의 갈래가 생겼다. 바로 에로티시즘이다. 고향 이탈리아 베니스에 살던 때 이탈리아 여성 작가 카롤 라마(Carol Rama)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에로티시즘은 그의 컬렉팅 소주제로 존재했지만, 홍콩에 오고 난 후부터는 더욱 견고해졌다. 집에는 최근 그가 중국, 홍콩, 일본 등을 다니며 구입한 작품이 꽤 많이 있었다. 결박한 여성의 알몸을 사진으로 담아낸 일본 아티스트 아라키 노부요시(Nobuyoshi Araki)나 인간의 외로움과 허약함을 나체 사진으로 보여주는 중국 아티스트 렌항(Ren Hang) 등의 아트집도 소파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에로티시즘은 성행위의 직접적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포르노그래피와 전혀 다르다. 성적인 행위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통로, 즉 생명의 근원적 힘으로 확장해 해석해야 한다. 사진 매체에서 에로티시즘은 하나의 분야로 구분해도 좋을 만큼 풍성한 작가층을 형성하고 있다. 작가들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현대인의 정신적 억압과 그에 다른 성적 욕망의 변화를 사진 작품에 담아낸다. 그가 에로티시즘의 카테고리이자 위트 있는 표현 때문에 구입했다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한 점 들고 왔다.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이영일 작가의 ‘Power Up’ 작품. 팔뚝이 굵은 뽀빠이의 그곳 또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재미있죠? 에로티시즘은 포르노그래피와 구분해야 해요. 에로티시즘 작품은 마음과 정신의 상태를 드러내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단어, 소리, 이미지를 모두 소재로 삼을 수 있어요.” 그와 한참 여성과 남성의 알몸이 뒤섞인 작품 사진을 보다 대화는 최근 구입한 한국 작가의 이야기로 전환되었다. “일본에서 이우환 작품을 발견했는데, 잘 알려진 시리즈가 아니라서 더욱 끌리더군요.”
가장 최근 이우환의 작품을 구입하셨어요.
구입한 이우환의 작품은 두 점인데, 하나는 거울 바닥 위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은 번호를 새긴 판화 작품이 놓여 있는 설치물과 ‘From the Soil’이란 제목의 세라믹 소재 작업입니다. 전자는 입체적인 느낌이 들어서 좋고, 후자는 이우환의 작품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시리즈라 마음에 들었어요. 이 작품은 제가 기존에 수집했던 일본 구타이(Gutai) 작가의 미술품을 거래하던 갤러리에서 제안받은 것인데, 오래전부터 이우환에 대해 알았고, 뜻밖에 발견이라 흡족하게 받아들였죠. 이우환이 그가 한국인 작가라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작업은 그의 말처럼 자신 내부에 있는 근대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을 이겨내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고, 현대미술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죠. 이우환의 작품은 시각적 명상이자 시의 언어예요. 보면 볼수록 깨닫게 되는 무언가가 있죠. 그는 일본에서 모노하(Mono-ha) 운동을 이끈 주인공이에요. 모노는 일본어로 ‘물(物)’, 즉 물건, 물체라는 뜻입니다. 물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모노하는 돌, 철판, 고무, 유리, 흙, 로프 등 인위적이지 않은 소재를 이용해 사물에 근본적인 존재성을 부여하고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강조한 작품을 선보였죠. 이우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두고 여백의 미학이라 부른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나에게 여백이란 그리지 않고 남겨둔 부분이 아니다.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이 부딪혀서 거기서 어떤 울림이 나오고, 거기서 더 커다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여백이라 부른다. 공간과 함께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을 구입하면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하겠지요.
기존에 수집한 이탈리아 작가층과도 시대적 연결 고리가 있지 않나요? 모노하 운동을 시작했던 시기, 이탈리아에서도 기존 방식을 뒤엎고 아르테 포베라(초라한 미술) 운동이 시작되었으니까요.
당시엔 이탈리아,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런 바람이 불었죠. 다시 출발하자는 의미로 형태가 미니멀해지고 모노크롬 경향이 나타났어요. 이어 아방가르드 운동도 한창이었죠. 한국 단색화 또한 그 줄기라 생각합니다. 물론 시작점은 비슷하지만, 모든 스타일이 작가의 개인적인 영향에서 가지를 뻗어나갔기에 이탈리아는 이탈리아대로, 작가 개인의 의도와 철학에 맞춰 발전했어요. 루초 폰타나가 대표적인데, 그의 경우는 예리한 칼로 그림을 찢는 방식으로 회화와 조각을 넘어선 4차원 작품, 그만의 독자적인 공간 개념(concetto spaziali)을 제시했죠. 제가 주로 수집하고 있는 이탤리언 포스트 워 작가나 일본 구타이 운동 작가의 작품은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란 파울 클레의 말처럼 보이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매력적입니다. 절대 지루하지 않죠.
보이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공간도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죠. 작품을 배치할 때 매우 신중하실 것 같은데, 작품의 의미에 따라 배열하시나요?
작품은 공간과 함께 감상하는 것입니다. 공간과의 어울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과 작품 사이, 작품과 가구 사이 유동적인 흐름이 느껴지도록 배치하는 편입니다. 거실에는 그 그룹만의 이야기가 있고, 침실에는 또 다른 그룹의 이야기가 있는 식이죠. 스토리 내러티브는 작가가 이미 결론 내린 해석보다는 저만의 해석에 중점을 둬요. 홍콩에 있는 두 집의 경우, 규모가 매우 작기에 밀도 높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작품 간 연결 고리에 신경 쓰죠.
예를 든다면요?
재료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디자인한 철제 선반에는 원시적이고 생동감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아프리카 지역의 토테미즘 미술품을 배열하고, 그 옆에 토테미즘 골동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프로그 킹(Frog King)의 컨템퍼러리 조각품을 두는 식이죠. 복도를 감싸고 있는 딥 그레이 컬러의 벽이나 침실의 딥 블루 컬러 벽은 그 장소에 어떤 작품을 둘 것인지 미리 생각하고, 그 비주얼에 맞는 페인트를 골라 배치한 것이에요. 컬러는 작품과 비슷한 것을 고르기도 하고, 대조 효과를 내기 위해 전혀 다른 것을 고르기도 합니다. 질감도 중요합니다. 자세히 본다고 해도 저만큼 알아차릴 수 없겠지만, 미묘하게 느껴지는 질감의 차이를 두었어요. 이로써 미니멀하지만 심심하거나 지루해 보이지 않죠. 문고리, 스위치, 조명 등 작은 소품 하나까지 나름의 운율에 맞춰 배치한 것입니다. 작가의 스토리, 시대, 스타일, 외적으로 드러나는 색채와 질감. 모든 요소가 짝을 이루어 공간마다 배치되어 있어요. 스위스 출신 조각 설치 예술가 윌리 웨버(Willy Weber)와 패턴이 흥미로운 비안치니-페리에(Bianchini-Férier) 작품을 나란히 놓은 서재에는 나무 선반을 만들어 그 안팎에 작품을 배치했는데, 스타일에 맞춘 유럽 작가의 작품을 모아둔 것이죠. 나무 선반은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작품 프레임으로 보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정확한 법칙은 없지만 굳이 하나를 이야기한다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혼합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욕실로 들어가는 문은 중국 전통 문을 활용하고, 내부는 대리석, 테라코타 등 이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 소재를 활용해 매우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 집은 소장품에 맞춰 내부 구조와 바닥, 벽 등을 모두 새롭게 만들었다고 보시면 돼요.
아트 작품만큼 직접 만든 가구와 인테리어 작업 등에 대해서도 묻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스테인리스로 마감한 오픈 키친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10명이 앉을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과 마주한 벽을 스테인리스 서랍장과 이어지는 은빛 코르크 벽지로 채운 점도 흥미로워요.
여러 가지 장점과 스타일을 모아 명백하고 세련되게 정돈한 집이라고 할까요(eclectic, palpable, chic)? 레노베이션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어요. 수많은 곳을 다녔지만 이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당신에게 아트 작품은 인테리어 요소인가요?
예를 들어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러브’ 카펫 같은 경우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아트 상품 말이에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트 작품은 곁에 두고 오래 함께하고 싶은 존재로서 큰 의미가 있을 뿐 인테리어적 요소는 미약합니다. 보완해줄 수 있지만, 인테리어 요소로 해석할 수는 없어요.
9명의 중국 작가가 모여 미디어 작업을 하는 더블 플라이 아트 센터(Double Fly Art Center)의 비디오 작품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두 작가 롱롱 & 인리(RongRong&Inri)의 컬래버레이션사진 작품까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 많네요. 작가 정보는 어떻게 얻고, 구입 경로는 어떻게 되나요?
욕실에 걸린 엑스레이 작품 보셨나요? 1509년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Raphael)이 그린 작품 ‘La Muta’의 오리지널 우드 작품을 엑스레이로 찍은 것인데, 이탈리아 피렌체의 복원 센터에서 어렵게 구한 것이죠. 500년 이상의 시간이 만든 균열과 조직, 라파엘의 섬세한 붓질이 그대로 보입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생활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작품을 보고, 감상하고, 수집했어요. 이탈리아는 컬렉터의 천국이니까요. 아트 컬렉팅은 일상 습관이 되었죠. 제가 하는 일과도 깊은 연관성이 있고요. 1년 중 여름에는 이탈리아 베니스로 향하는데, 그 시기 많은 예술적 충전을 합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베니스 비엔날레는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흥미로운 작가를 발굴하기 좋은 행사죠. 뉴욕 구겐하임에서 열린 <ZERO: Countdown to Tomorrow, 1950s–60s>도 마음에 깊이 와 닿았어요. 저의 메인 컬렉션 테마이기도 한, 어릴 때부터 꾸준히 보아온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등장했죠. 하인츠 마크(Heinz Mack)와 오토 피에네(Otto Piene)를 필두로 한 독일의 제로 그룹은 색채, 감정 및 개인적 표현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영향받은 10개국의 유명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어요. 루초 폰타나, 이브 클라인(Yves Klein), 구사마 야요이(Yayoi Kusama),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 등이 함께했죠. 프랑스 파리에 가면 피카소 뮤지엄에 꼭 들러요. 홍콩에 와서는 주로 아트 경매와 갤러리 전시를 다니면서 살펴보는데, 그들의 흥미로운 큐레이션을 탐험할 뿐, 작품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일은 전적으로 저의 판단 아래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언어를 찾듯 작가를 오래 살피다가 작품을 놓을 공간과 배치가 떠오르면 그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경로를 찾는 식이죠. 그래서 작품 구입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구입 경로는 옥션일 때도 있고 갤러리일 때도 있고, 작품에 따라 다릅니다.
5 Great Collections by Stefano Del Vecchio
Tsuyoshi Maekawa(B. 1936~, Japan)
마치 갈빗대처럼 드러난 삼베(burlap)의 형태감이 인상적이다. 마에카와 쓰요시를 떠올리면 삼베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물론 그 전에도 호안 미로(Joan Miró)와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등이 삼베를 사용한 예는 있지만, 마에카와 쓰요시처럼 삼베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평생 작업을 이어온 이는 없다. 그는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삼베를 부착하기도 하고 바느질하기도 한다. 항상 표면에 오일을 이용해 색을 입히는데, 그 색감과 질감이 주는 효과 때문에 작품이 더욱 대담해 보인다. 그는 일본 구타이 그룹의 제2 세대 작가다. 아티스트 요시하라 지로, 시라가 가즈오, 무라카미 사부로 등이 창립한 구타이 미술협회는 미국과 유럽의 전위예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특히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재해석한 개념 예술을 시도했다.
Lee Ufan(B. 1936~, South Korea)
한국 작가 중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작품 가격도 가장 높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조각가다. 작가로 책도 여러 권 냈다. 서울대 미대 중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철학을 전공했고, 전위미술 운동인 모노하를 이끌며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동향을 주도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아시아 현대 작가로는 처음으로 파리 국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구겐하임, 베르사유 궁전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와 일본, 독일의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일본 나오시마에는 이우환미술관도 있다. 일본, 프랑스, 한국을 오가며 작업한다.
Frog King(B. 1947~, China)
홍콩에 거점을 두고 멀티미디어, 콘셉추얼, 비주얼, 퍼포먼스 작업을 하는 작가로 본명은 궈망호(Kwok Mang Ho)다. 스승 루이쇼관(Lui Shou Kwan)에게 전통적인 잉크 페인팅을 배웠는데, 이후 독립하면서 잉크 페인팅을 개념 도구로 활용해 컨템퍼러리 스타일 작업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고, 1995년 홍콩으로 돌아왔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작업을 하면서 홍콩, 마카오, 파리, 서울, 싱가포르 등 3000여 개 이상의 미술 행사에서 자신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베키오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Love Life Fun #3’ 또한 전통적인 캘리그래피 기법과 함께 다국적의 토테미즘 아트의 기법과 방식을 찾아볼 수 있다.
Tony Oursler(B. 1957~, United States)
베키오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이다. 커다란 쿠션처럼 생긴 오브제가 스크린이 되어 프로젝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클로즈업된 여자의 눈, 코, 입이 움직이면서 마법을 거는 듯 섹시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토니 아워슬러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다. 그는 애니메이션, 몽타주, 실사 이미지를 이용해 환각을 유발하는 듯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급진적인 실험 방식을 시도한다. 작가 스스로도 신비하고 컬트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작가의 취향과 아이디어가 맞물리며 탄생한 그의 작업은 정말 기괴하고 수상하고 신기하다. 어떤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염없이 몰입하게 만든다고 할까. 야외 건물을 스크린으로 펼쳐지는 대형 비디오아트 작품은 더욱 임팩트 있다.
Sadamasa Motonaga(B. 1922~2011, Japan)
베키오는 모토나가 사다마사의 작품을 보고 매우 엘레강스하다고 극찬했다. 선과 아크릴물감의 색채가 마음을 건드린다고. 모토나가 사다마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상화가로 전위적인 작업을 시도한 구타이 그룹의 창립 멤버다. 그림 대신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작품에는 만화적인 유머와 애니메이션적인 기법이 보인다. 단순한 선과 차분한 색상으로 조합한 부드러운 팔레트가 특징. 고베의 효고현 미술관, 히로시마 현대미술관, 미에현 미술관 등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을 했고, 해외에서는 2014년 댈러스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렸다.
최근 한국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고요.
해외에서 한국 단색화 전시가 이슈를 모으고 있고, 제가 좋아하는 미니멀리스트 작가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여러 작가를 눈여겨보고 있죠. 특히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작품이 좋아요.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반복. 그런 패턴에서 저는 그들이 미적, 영적인 부분에 있어 전통 유교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 부분이 다른 아시아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점이죠. 한국에는 개인적으로 자주 갔어요. 서울, 부산, 제주도 등. 특히 제주도가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트 작가를 만나거나 관련 행사를 둘러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딱히 그런 인연이 닿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해외에서는 이미 알려진 유명 한국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경우가 많죠. 앞으로 젊은 한국 작가들이 홍콩이나 중국 아티스트와 교류하면서 해외 시장 진출을 엿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이탈리아 베니스에도 집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곳에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주로 어릴 때부터 모아온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이 많아요. 홍콩에 있는 두 집에는 최근에 구입한 아시아 작가의 작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베니스는 매우 축복받은 곳입니다. 베니스의 집은 그랜드 카날을 마주하고 있는 14세기 고딕 양식 건물인데, 시간의 힘이 느껴지죠. 그곳에 작품을 놓으면 또 다른 느낌이 전해져요. 공간 속을 부유하는 공기와 부딪히면서 생성된 감정의 덩어리로 다가온다고 할까요? 감흥의 온도가 높아지죠. 베니스는 절대 익숙할 수 없는 도시예요. 골목마다 새로운 것이 넘쳐나고, 익숙하다가도 불현듯 낯선 느낌이 침투하죠.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릴 때는 작가들의 커미션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집 앞 골목에서 그런 광경을 마주한다는 것은 행운이죠.
2006년 홍콩에 왔을 때 미술 시장의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지금처럼 아트 바젤 같은 국제적인 행사가 없었을 때라 좋은 전시와 작가를 찾기가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지금과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죠. 정부가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상업 갤러리 모두 콘텐츠의 질과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어요. 파라/사이트 아트 스페이스 정도가 유일하게 홍콩에서 거주하는 젊은 작가를 소개했죠. 홍콩 작가는 중국 작가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달라요. 방식도 다르고요. 과거 영국 식민지였지만 지금은 중국이지만 본토 중국과는 다르고, 국제적인 도시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곳인 만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스타일을 지니고 있죠. 아프리카 토테미즘 원시미술품과 비슷한 형태의 설치 작업을 하는 프로그 킹의 작품이 좋은 예입니다. 최근 젊은 홍콩 작가들은 점점 내면의 스토리에서 작품 소재를 찾는 것 같아요. 전 그런 작품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들만의 에너지를 알아보죠.
본인은 어떤 컬렉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1년 내내 아트 페어를 찾아다니는 컬렉터도 아니고, 갤러리 오프닝 때마다 화려하게 등장하는 컬렉터도 아닙니다. 매우 개인적인 관점으로 작가를 선별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애쓰는 미술 애호가에 가깝죠. 드레스 룸에 토니 아워슬러(Tony Oursler)의 조그만 비디오 설치 작품이 있는데, 밀실에서 혼자 감상하기에 매우 적당한 작품이에요. 어떤 이들은 신기해하면서도 ‘이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작품인가?’ 의문스러워해요. 게다가 이것을 좁은 드레스 룸에 두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저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죠. 그만큼 제 컬렉션은 시대성, 대중성, 작품 투자가치보다 개인 취향을 우선으로 합니다. 작품 투자를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고, 작품을 빌리거나 빌려주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개인적이고 순수한 욕망이 뭉쳐 있는 컬렉션이라 하겠죠. 아트 작품은 저도 모르는 사이 제 감정과 마음을 파고들고, 제 생각을 흔듭니다. 이는 곧 제 디자인 작업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올해 밀라노 디자인 박람회에서 브랜드 전시를 여는데, 델비스가 추구하는 가치 있는 물건, 아트와 크래프트맨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