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에서 만난 아트 올 웨이즈(Art All Ways) 대표 이후정과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는LA 아트 쇼 한국관 디렉터로 한국을 자주 찾았고, 매년 KIAF 행사에서도 마주쳤다. 만약 아트 바젤, 베니스 비엔날레 등 세계적인 아트 행사에 참석했다면 그곳에 그녀가 있었으리라. 미국 LA를 무대로 아트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는 이후정 대표는 미국과 한국 아티스트의 가교 역할을 하며 주요 아트 페어에 참석하게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한다. 이는 비단 비즈니스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남편과 더불어 수준 높은 컬렉션을 보유한 아트 컬렉터다. 음악 물리치료사(특별한 악기를 이용해 잠재된 솔을 깨어나게 해 정신과 육체를 치료한다) Dr. 제임스 B. 홉킨스(이하 제임스)와 함께 타인이 아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아트 페어나 경매장을 찾는다. 그들은 LA에서 살고 있는 주요 컬렉터뿐 아니라 아티스트, 갤러리스트와도 허물없이 지낸다. 그녀와 그에게 아트는 삶과 일의 모든 것, 항상(always) 함께하는 것이다. 남편과의 인연도 아트 작품이 맺어줬다. 둘이 만났을 때 작품 취향이 너무도 비슷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작품 취향이 같다는 것은 관점과 생각이 비슷하다는 말이고, 삶과 일을 아트적으로 꾸미려는 성향 또한 같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끌렸고, 결혼 후 함께 구입한 집은 서로의 아트 작품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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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와 이후정 부부. 그들의 다이닝룸에는 그래피티 아트 그룹 M.S.K. 출신으로 예술적인 평가를 받는 제서(Zeser)의 작품이 걸려 있다.

그들의 살고 있는 2층 집은 갤러리스트컬렉터 사이의 완벽한 교집합이 느껴지는 곳이다이후정 대표가 주로 머무는 방에는 작업 데스크 주변에 미술 작품이 걸려 있고제임스가 일하는 방에는 뮤직 테라피 과정 중 사용하는 악기 주변에 작품이 걸려 있다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에 자유롭게 녹아들 듯 놓인 작품은 욕실 선반에도 자연스레 놓여 있다. 2층에 자리한 방들의 주인은 작품이다갤러리에나 있을 법한 설치 작품이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인터뷰를 한 다이닝도 여김없이 다양한 작품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전날 경매 행사에서 구입했다는 토드 그레이(Todd Gray)의 작품이 새롭게 자리를 차지했다거의 매달 작품을 새롭게 구입하다 보니 집에 보관하지 못해 일부는 수장고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이후정과 제임스는 누구보다 컬렉터가 개인의 수집 욕구를 넘어 사회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미국 아트 마켓은 아트 어드바이저딜러갤러리스트컬렉터비평가아티스트가 함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제 역할을 하며 몸을 부풀린다서로의 공생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어느 누구도 눈앞의 이익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아트 비즈니스가 가장 활성화된 만큼미술 거래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진다최근 뉴욕과 런던에 이어 주목받고 있는 LA 미술 시장(프린지 아트 페어가 내년부터 LA 개최를 알렸다)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거주 한국인이 생활하는 LA에서 한국 작가에 대한 시선과 우려는 어떠한지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라틴아메리카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티스트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지이후정 대표와 제임스는 자신의 컬렉션을 넘어 아트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Best Collection 5
by Dr. James B. Hopkins & Hooj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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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d Gray, ‘Gang Star – Red’, 2016, three archival pigment prints in artists’s frames and found frames, 39x311/4x2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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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d Gray(Los Angeles, United States, 1954~)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가나와 LA에서 활동하고 있다. 1970년,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고, 다양한 유명 팝 가수의 앨범 재킷을 찍기도 했다. 그는 이후 아트 스쿨을 졸업하면서 여러 갤러리를 통해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미디엄을 지닌 컨템퍼러리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의 작품에는 인종과 성 차별, 빈부 격차, 식민주의 등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가 또렷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녹아 있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작품 ‘Gang Star – Red’는 마이클 잭슨의 보디가드로 활동했던 갱단 멤버의 실제 모습을 응용한 작품으로, 기존 사진 작품 형식에서 벗어나 마치 조각 작품처럼 새로운 표현법을 보여주는 유니크한 작품이다. 작품을 보면서 떠오르는 다양한 상상과 현실의 이야기가 깊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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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LA 아트쇼에서 아트 올 웨이즈 부스로 참여한 판데모니아(Pandemonia)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리미티드 작품도 솔드 아웃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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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emonia

정말 우연이었다. 몇 년 전,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친구 오마 알베르토(Omar Alberto)가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퍼포먼서 판데모니아를 소개했는데, 연락처를 잊고 있다가 최근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는 패션과 돈에 열광하는 셀러브리티를 패러디하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라텍스로 온몸을 감싸고, 실제 거리를 활보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얼굴까지 모두 라텍스로 감싸 실제 그의 얼굴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비밀 유지 계약을 하기 전까지 그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이힐을 신고 라텍스로 온몸을 감싼 키 2m의 여인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올해 LA 아트 쇼 부스에 그를 초대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졌고, 그의 리미티드 작품도 솔드아웃되었다. 한국에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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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na(Los Angeles, United States, 1979~)

매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작가로, 컬렉팅은 물론 함께 일도 했다. 그래피티 아트를 모태로 한 컨템퍼러리 아트 작품을 만드는 작가다. 그가 드로잉한 문자는 마치 이집트어 같기도 하고, 아랍 어 같기도 하고, 고대 히브리어 같기도 한데,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 자유롭고 신성한 느낌의 문자 패턴이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루이 비통, 나이키 등 여러 상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하기도 했고(LA 루이 비통 매장 외부가 모두 그의 그림으로 채워졌다), 2015년 저스틴 비버의 앨범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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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ira & Toirac-Octavio Marin, ‘Pirey in the Memory’, 2015, mixed media, 57x37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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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é Toirac(Guantanamo, Cuba, April, 1966~)

오랫동안 국교가 단절된 쿠바는 매우 유니크하고 혼란한 사회현상에 대한 목소리를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넘치는 곳이다. 2015년 쿠바에서 열린 아바나 비엔날레는 그런 작가들의 아우성으로 넘쳐났고, 매일 새롭고 뛰어난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발견한 이 작품은 2명의 다른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해 완성한 작품으로, 쿠바 노동자의 고단한 현실을 표현한 초상화인데, 작품 속 주인공이 직접 사용한 도구로 만든 우드 프레임을 활용한 대단한 설치 작품이다. LA의 집으로 운반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지만, 그 노력만큼 볼 때마다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불을 켜면 초상화 속 얼굴에 빛이 비치는데, 그런 후광이 더 아이러니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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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 Carrillo, ‘Dejándolas Atrás’, Oil On Canvas, Metal Fence, 72x37x7in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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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 Carrillo(Michoacán, Mexico, 1986~)

USC 피셔 뮤지엄 오브 아트(USC Fisher Museum of Art)LA 아트 쇼 2018 페어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된, 주목받고 있는 라틴계 아티스트다. 멕시코에서 태어나 LA로 이민 온 아티스트로, 국경을 넘기 위해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초상화로 표현한다. 이 아티스트를 후원해줄 방법이 있는지 물어본 노련한 컬렉터에게 소개받았는데, 그의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에서 고통, 잔인함, 소외와 무시, 가난 등 마음을 절절히 울리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이처럼 중앙 아메리카와 남부 아메리카에서 식민주의가 남긴 잔인하고 안타까운 현실과 국경을 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나이는 어리지만, 호소력 짙은 작품을 하는 좋은 작가다.

 


 

COLLECTOR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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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emonia, ‘Big Yellow Taxi’, 2015, digital print on Hahnemühle paper, Ed. 75, 20x30inches

우선 아트 어드바이저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미국에서는 아트 어드바이저가 미술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전문가 집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들었어요.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이 유럽보다 미국 쪽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컬렉터를 위해 일하는 시장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후정: 기존 시장은 갤러리가 고객에게 작품을 파는 단순한 구조였죠. 그만큼 갤러리의 역할과 영향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세계 미술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그만큼 다양한 나라의 아티스트들이 등장했으며, 컬렉터의 취향이 다양해졌어요. 호텔, 기업 등 비즈니스상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형 구매를 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갤러리와 고객 사이, 다양한 필터링을 대신 해줄 전문가가 필요해진 것이죠. 아트 어드바이저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합니다. 컬렉터의 이익을 대변해 갤러리와 협상하거나 아티스트 입장에서 컬렉터와 거래하죠.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은 아니에요. 컬렉터에게 왜 컬렉팅이 필요하고, 왜 아티스트를 후원해야 하는지, 세련된 취향은 무엇인지, 교육과 설득을 하죠. 아트 어드바이저로 일하면서 수많은 컬렉터를 만났어요. 그중에는 작가의 이름도 작품명도 모르고 블루칩 작가만 주목하는 소위 쿠키 컬렉터(cookie collector)도 있었죠. 저는 그런 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요. 좀 더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컬렉션을 위해 아트 작품을 유심히 살펴보는 컬렉터를 위해 에너지를 쏟기를 원하죠. 잠재력 있는 신진 아티스트 작품을 제안하기도 하고, 컬렉터의 후원이 필요한 아티스트를 찾아주기도 하고요. 국제적인 영향에 민감한 한국 또한 곧 이런 아트 어드바이저가 필요해지고, 그들의 영향력이 갤러리스트만큼 커질 겁니다. 요즘은 갤러리 외에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아트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그런 모든 정보를 찾고, 전문가의 필터를 거처 핵심만 골라 제안해줄 사람이 필요하겠죠.

LA가 뉴욕, 런던 아트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이후정: LA는 미디어 수도예요. 비주얼과 관련한 모든 것, 영상, 미디어, 아트 등이 공기와 같이 자연스럽게 존재해요. 그만큼 아티스트의 존재감이 크고, 그들의 작업 또한 자유롭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인종, 성별, 국적이 다양한 아티스트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뿜어내죠. 그런 이야기를 발굴하는 갤러리스트, 컬렉터 또한 취향이 다양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만큼 다양함을 찾는다면 LA를 주목해야죠. 요즘 전 세계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출신 아티스트들이 관심을 모으면서 이들의 터전인 LA 아트계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요. LA에는 한국인 비중이 높아 이와 더불어 한국 아티스트도 많이 주목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제 아트 컬렉터 입장에서 대답해주세요. 아트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으니 누구보다 확실한 투자가 가능한 미술 작품을 구입할 수 있지 않나요?
이후정 : 오히려 반대입니다. 블루칩 작가 작품을 구입해서 되팔거나,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작가의 작품은 사지 않는 것이 투자로서 이익을 보는 최선의 방법이죠. 하지만 저의 부부의 컬렉션은 그런 시장 논리와는 정반대예요. 작품이 마음에 들고 작가의 스토리가 마음을 울리면 가격도 보지 않고 구매해요. 일부러 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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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정 대표의 방에도 그녀가 공들인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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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방에는 시리 몰데시(Shiri Mordechay)의 설치 작품이 걸려 있다. Shiri Mordechay, Mixed Media, 7’ (h) x 6’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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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방 외의 별도의 방에는 아트 작품이 주인공이다.

처음 구입한 작품을 기억하세요?
제임스 : 열세 살 때 구입한 작품이에요. 카멜(Carmel)에서 클래식한 드로잉 작품을 샀죠. 어릴 때라 어떤 아티스트인지도 모르고, 이미지를 사냥하듯이 그냥 마음이 끌려서 샀는데, 대략 75달러에 구입했던 거 같아요. 이후정 : 공부와 일을 병행하던 20대 시절이라 1000달러 수준의 작품밖에 구입하지 못했죠. 블럼 앤드 포(Blum and Poe) 갤러리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전시에서 오프셋 프린트 작품을 250달러에 구입한 것이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000달러 이하의 작품을 찾다 보니 LA 로컬 아티스트의 작품, 스트리트 아트와 그래피티 아트 작품을 주로 구입했고, 이런 작가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요즘 이쪽 아트 분야가 큰 주목을 받고 있죠.  

컬렉션하고 있는 작품 카테고리를 세 가지 단어로 설명한다면요?
제임스 : eclectic(다양한 것 중 최고의 것만 고른), comprehensive(장르와 소재가 종합적인), contemporary(세련된 방식으로 현재의 시점을 이야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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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비엔날레에서 발견한 작품들과 스트리트 아트 작품이 미술관처럼 걸려 있다. 생동하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은 에너지틱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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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는 자신이 발명한 고유의 악기로 솔(soul)을 깨우고 이로써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치료한다. 그의 치료실에도 작품으로 둘러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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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아트쇼에서 소개했던 한국 사진 작가 우종일 작가의 작품.

작품 구입의 가장 결정적인 조건은 무엇인가요?
제임스 : 오랫동안 작품을 컬렉팅했고, 아티스트와도 자주 교류했기에 좋은 작품을 보면 몸이 먼저 반응해요. 그 선택을 즉흥적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뭔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어요. 이후정 : 작가의 출신과 배경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가? 비주얼 이면에 담긴 이야기가 가장 핵심적인 결정 요소인 것 같아요. 작가의 작품은 곧 작가가 생각하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거든요. 그들의 작품에 깃든 이야기를 살펴보다 보면 이 작품을 반드시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차오르죠.

그럼 그런 기준으로 최근 구입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제임스 : 포토그래퍼 토드 그레이의 ‘Gang Star – Red’(2016)입니다. 토드 그레이는 LA와 가나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또렷하고 카리스마적인 방법으로 표현하죠. 이 작품을 보세요. 붉은 배경 위에 사진 작품이 있고, 얼굴 위에 다시 둥근 프레임을 겹쳐 사진을 배열했죠. 이중 프레임을 이용한 방식은 기존 사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에요. 토드 그레이는 마이클 잭슨이 ‘Off the Wall’‘Thriller’로 활동하던 시기에 그의 개인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어요. 이 작품은 실제 그 시기 마이클 잭슨의 보디가드였던, 블러드와 더 크립스 갱단 멤버였던 사람을 모델로 한 것인데, 실제 뮤직비디오에 등장하기도 했죠. 토드 그레이는 그의 사진과 그 인물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즉 갱단 일원이 상징하는 폭력, 인종 문제 등을 사진 아닌 사진작품으로 표현했어요. 그의 얼굴에는 우주와 고요한 평화로 향해 가는 듯한 사진이 겹쳐 있죠. 우리는 우주에서 와서 우주로 돌아가는 존재예요. 폭력도 시위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고요.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과 성 차별, 식민주의, 빈부 격차 등 실제적인 이슈를 정확히 보여주기에 이 작품이 경매에 등장하자마자 저희 부부의 눈길을 끌었죠. 작가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작품을 그린 의도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 공감이 가고 마음에 와 닿는 작품입니다.

그렇게 작품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작가들과 더욱 깊이 교류하고 싶어지겠어요.  
제임스 : 맞아요. 작품에 빠지기보다 아티스트에게 빠지죠. 보통은 아트 마켓이나 경매 등을 통해 작품을 구입하는데, 컬렉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와 만나게 되고, 그들의 아틀리에에서 작품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면서 구입을 결정하곤 합니다. 저도 컬렉션 경험이 많고 와이프는 아트 전문가이다 보니 아틀리에 가면 말이 많아져요. 하하. 작품 이야기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까지. 신진 아티스트와는 멘토 관계가 되기도 하죠. 이후정 : 컬렉터들이 아티스트와 끈끈한 관계를 맺기 어려운데, 저는 직업적인 이유 덕분에 그런 기회가 많아요. 후원을 하면서 관계를 이어나간 신진 작가가 어느새 스타 작가가 되기도 하고요.

신진 작가 시절 만나 꾸준히 교류하다 어느새 스타 작가로 떠오른 케이스가 어떤 것이 있나요?
이후정 : 젊은 시절에 컬렉션 비용이 한정적이라 거기에 맞춰 작품을 모으다가 빠져들게 된 스트리트 아트 작가가 대부분 그런 경우죠. 렛나(Retna)의 경우 요즘 너무나 한 아티스트가 되었어요. 2013년 루이 비통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해 매장 외부 벽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으로 만든 스카프, 숄 등이 출시되었죠. 8 26일까지 LA 시내에서 비욘드 스트리스 아트(www.beyondthestreets.com) 쇼가 열리고 있는데, 여기 참여한 작가 중 대부분이 렛나처럼 초장기부터 만나 작품을 구입하면서 인연을 맺은 작가들입니다.

스트리트 아트 작가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는데, LA 아트 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이런 서브컬처와 파인 아트의 접점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미술이 새로운 이미지를 갈구하다 보니 서브컬처에 머물렀던 스트리트 아트계로 눈길을 새롭게 돌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미국 내에서는 스트리트 아트는 이미 핵심 축으로 주목받았고, 자연스럽게 성장했어요. 뉴욕 출신의 아티스트 키스 해링(Keith Haring)이나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등도 모두 스트리트 아트에 뿌리를 두고 있죠. LA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욘드 스트리스 아트 쇼에 참여한 렛나, 디퍼(Defer), 세이버(Saber), 제서(Zeser) 등은 더 이상 하위 문화로 취급할 수 없는 작가들이에요. 이들의 작품은 메인 갤러리에서 전시할 만큼 수준 높은 추상화로 소개되고 있고, 이미 아트계를 넘어 패션계,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는 스타 아티스트거든요. 이 쇼를 큐레이팅한 로저 가스트먼(Roger Gastman)은 스트리트 아트 역사가이자 도시 인류학자, 컬렉터인데, 2011년 로스앤젤레스 현대 아트 뮤지엄(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MOCA)에서 스트리스 아트 쇼를 열고 대대적으로 소개했을 만큼 아트 월드로 이들을 입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LA 아트를 바로 읽기 위해서는 스트리스 아트를 알아야 하고, 이것이 생겨나게 된 인종 차별, 성 차별 등의 사회적 이슈도 이해해야 하죠. LA 아트에는 치열한 에너지가 있어요. 뭔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에너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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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콧 호브(Scott Hove)는 그 스스로 '케이크랜드'라고 부르는 조각품으로 세상 속 역설적인 이미지와 관련한 다양한 기호 등을 새겨 넣는다. Scott Hove,'Princess Paradise', 2013 Mixed Media 32" (h) x 26" (w) x 14'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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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과 미에 대한 복잡하고 상충되는 감정들을 초사실주의 패션 페인팅과 사진, 영상 작업으로 표출해 온 마릴린 민터(Marilyn Minter)의 사진 작품. 강하고 도발적인 분위기의 작품도 제임스 & 이후정 부부의 컬렉션에서는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스트리트 아트와 함께 한국 작가의 단색화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후정 : 2014LA 아트 쇼에서 단색화를 주제로 처음 전시를 했어요. 윤형근, 정상화, 박서보, 하종현, 이우환 등이 참여했고, 이후 블럼 앤드 포와 티나 킴(Tina Kim) 갤러리에서 연달아 소개하면서 단색화 열기가 붐을 탔죠. 단색화는 미니멀리즘을 좋아하고 미드-센트리 모던 디자인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작품 가격이 치솟고, 각종 페어에서 너무 자주 선보여 소모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단색화 분위기를 지닌 한국 아티스트만 주목되는 경향도 있고요. 국제사회에 좀 더 전략적으로, 체계적으로 단색화를 알리고 이 분위기에 이어 다양한 한국 작가를 소개할 필요가 있어요. 박선기, 백남준, 배준성, 김준, 이환권 등이 한국 갤러리 등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아트 올 웨이즈에서는 이재효 작가, 우종일, 김재용, 이이남의 비디오 아트 작품을 대대적으로 소개했어요.

LA 아트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작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레시던시 프로그램을 찾아 직접 LA로 오라고 말하고 싶어요. 현지 아티스트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미리 경험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컬렉터로서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한국 작가가 있나요?
이후정 : 이수경 작가입니다.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LACMA에서도 그녀의 작품을 보았는데, 깨진 도자기를 붙여 새로운 형상으로 재탄생시킨 그녀의 번역된 도자기작업은 신성한 기운까지 감도는 것 같았어요.

작품을 구입하면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제임스 : 아마 아트 컬렉터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2015년 아바나 비엔날레에 참석하기 위해 쿠바로 갔어요. 페어 중 하나인 파브리카 아바나(Fábrica Habana) 프로그램을 둘러 보던 중 우리는 둘 다 아트 학자이자 아티스트 호세 토이라크(José Toirac)가 역사학자 메이라 메레로(Meira Marrero), 조각가 옥타비오 마린(Octavio Marin)과 함께한 컬래버레이션 작품 ‘Pirey in the Memory’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죠. 쿠바 노동자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였는데, 우드 프레임은 실제 그 인물이 절망적인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동할 때 쓰던 도구죠. 이 작품뿐 아니라 여러 작품을 구입했는데, 물건을 미국으로 배송하는 것이 난제였어요. 어떤 것은 작품 정보가 잘못 기입되어 실제 무게보다 무척 무거워서 다른 방법으로 운송받아야 하는 일도 생겼고요. 컬렉터는 작품 구입뿐 아니라 자신의 집에 안전하게 놓일 수 있는지 여부까지 고려해야 하죠. 구입 가격보다 운송이나 보험 비용이 더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하하.

많은 컬렉터를 만나보았고, 스스로도 컬렉터인데, 좋은 컬렉터란 어떤 사람일까요?
이후정 : 좋은 컬렉터란 아티스트를 후원하고 그들이 작품에 쏟은 열정과 마인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작품을 소유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작품을 보살피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비용을 들이는 사람. 저와 남편 또한 그런 컬렉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_ 계안나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사진_ 브래드 쿠퍼(Brad Coo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