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이는 아름다움 <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展

작고 간결한 것에 대해 갖는 집념어린 애정이란 어떠한 심미안으로부터 형성되는 미적취향일까? 대체로 화려하고 거대한 외관에 높은 가치가 매겨지고, 고귀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유명세와 가격에 비례해 판단하는 오늘날에 말이다. 작아도 상대적으로는 크게 보이는, "비록 크기는 작지만 구수하게 큰 맛이 나는 모순을 가진다" 했던 우리의 미학과 더 넓게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세계·보편적 미학으로 확대되는 아름다움은 동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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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감탄할 만한 색채와 형태 감각을 제시하는 선과 면으로 가득한 19세기 바늘집과 바늘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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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함', '갑', '통'으로 분류되는 각종 상자들은 높이 10cm 남짓한 작은 규모에 조형적인 완벽함이 깃들어 있다. 거대한 '장'이나 '궤'를 축소한 듯한 소형의 기물들은 수공기술의 결정체로서 의미가 있지만, 더욱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일종의 건축 모형으로도 유추된다."

미국 유학 시절 쌓은 안목은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시작한 강사 생활과 함께 본격적인 컬렉션으로 이어지게 된다. 급격히 서구화가 진행되며 옛 물건을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하던 당대의 세태에서 영향받은 '실천'이다. 우리 전통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1970년대부터 하교 길에 골동상이 꽤나 몰려 있던 아현동 골목길을 '참새 방앗간'처럼 들러 크게 비싸지 않은 민예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민예품에서 서구 현대미술에 상응하는 미감을 발견한 선생의 남다른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展에 출품되는 컬렉션은 필갑, 인괘, 망건통, 먹통, 등잔, 비녀 및 여인의 장신구, 보자기, 바늘집 등 조선후기 선비와 아녀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19세기 민속공예품 외에도 신라시대의 부장품, 현대미술작품 30여점까지 선생이 반 생에 걸쳐 모은 수집품을 총망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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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작은 것, 과시하지 않는 것, 그 자체로도 자족적이고 완결된 형태들,
소박한 재료와 미묘한 색채들로 수렴되는 '작음 안의 많음'의 의미를 안겨주는 19세기 골무 모음.

"한동안 자신의 소장품을 탁상용 캘린더로 인쇄하여 주변에 돌린 임히주 선생의 새해 선물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손아귀에 소옥 들어오는 작은 캘린더는 매월 종류를 달리하는 소장품들이 아름답게 인쇄되어 그 내용물이 주는 애틋한 정감과 이를 해마다 전한 정성이 받는 이들을 마냥 즐겁게 해주었다"고 회상하는 미술평론가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  "미술계에서 만나 온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한 분"으로 선생을 꼽는 전 삼성미술관플라토 안소연 부관장은 첫 만남에서 미술계에 첫발을 내딛는 후배에게 "매달 수입의 일정부분을 작품 수집에 할애하라"는 매우 인상적인 조언을 잊지 못한다. 후배의 실천은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 선생을 뵈며 "현장의 젊은 전문가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최신 정보에 능통한" 폭넓은 활약에 감탄해왔다. "그런 까닭에 선생님의 수집품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민속공예품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를 고미술품의 분류대로 용도나 형태, 또는 시대로 구분해서 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예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한점 한점 수집할 때마다 현대미술과 음악, 건축의 경험으로부터 유래한 미학적 판단이 종합적으로 투영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그리고 분리된 여러 영역들은 한 사람의 비범한 감수성과 기억 속에서 융합되어 고유한 취향과 예민한 기호를 형성해 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취향의 핵심은 작고 작은 것, 과시하지 않는 것, 그 자체로서 자족적이고 완결된 형태들, 그리고 소박한 재료와 미묘한 색채들로 수렴된다"고 <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展에 '의미'를 한번 더 새겨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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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합, 19세기, 7 x 7 x 4.5cm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전시의 주인공인 임히주 선생의 이름에 담긴 남다른 '뜻'도 헤아린다. "당신 이름의 한글 표기는 ‘희주’가 아닌 ‘히주’다. “지이(地異)라 쓰고 지리라 읽는다.”는 이병주(李炳注)의 소설 <지리산> 첫 머리가 연상되는데, 겹모음 ‘희’ 대신 홑모음 ‘히’ 로 자식 이름을 지었음은 여성으로서 선구적인 삶을 살길 바랐던 아버지의 사랑이 바로 직방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임히주 선생이 미술계 현장에서 국립현대미술관내 현대미술관회 상임이사로 무려 23년간 현대미술아카데미를 총괄 운영했던 "그 시절 조형작가는 물론 나 같은 사람도 말석에 끼인 수많은 애호가들 그리고 그들 활동상을 만나는 사이에 선생의 안목은 점입가경했을 것이다. 그렇게 쌓아진 눈썰미를 높이 산 곳이 신세계갤러리로 그곳에서 고문으로 7년 일했다. 그래저래 미술업계 몸담기가 육십년에 가깝다"고 인연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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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성 베네딕트 채플이나 부르더 크라우스 채플의 소박하고 진정한 형태와 침묵의 공간에 크게 감동하면서 '망건통'이나 '먹통'과 같은 순정한 함들을 떠올리며 전율했을, 각종 자수품들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과 솔 르윗(Sol LeWitt), 그리고 리처드 터틀(Richard Tuttle)의 뉘앙스로 가득한 선과 면을 유추해 냈을지도 모르는 임히주 선생의 <나의 작고 작은 수집품>展은 가나아트센터 제 1,2,3 전시장 전관에서 8월 31일부터 9월 26일까지 총 28일간 열린다.


 

글_ 장남미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사진_ 가나아트센터 (gana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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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임히주 – ARTMINING, SEOUL, 2018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가나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