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견딜 수 있는 강도, 그라인더로 밀수 있는 최대치가 2mm 정도인데 거기까지 한번 가보는 겁니다.
그 이상 얇아지면 사라지고 말아요. 더 이상 조각이 아닌거죠.
WRITE 박나리(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 박우진 (키메라앤스튜디오)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마련한 파주 작업실. 10년 째 세상과의 주파수를 끄고 출근하듯 작업에 집중한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신의 버림을 받고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한다. 파주 작업실, 6~7kg의 육중한 그라인더를 움켜쥐고 석조의 무수한 단면을 들고 나는 조각가 황승우의 작업을 본 순간 시지프스가 떠올랐다. 물성이 소멸되기 직전인 ‘2mm’의 두께를 위해 고도의 집중과 기술을 쏟아내는 작가의 두툼하고 투박한 손을 보자 고단함과 함께 다양한 존경의 수사가 공존한다. 왜 조각가가 되었냐는 질문에 작가가 고향 부산의 억양으로 답한다. “글쎄요. 이제와 돌이켜보니 어떤 운명인 거죠.”
작가는 머리를 식힐겸 종종 이렇게 앉아 한 두시간 책을 벗한다. 요새 즐겨 읽는 도서는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Liquid Modernity>. 뒤편으로 그의 이탈리아 유학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다양한 기념물들이 빼곡하다.
전세계 최고의 조각가를 양성하는 이탈리아 까라라 국립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Carrara)에서 조각을 전공한 황승우는 해외에서 더욱 유명하다. 특유의 스케일감과 무수한 레이어 작업이 만든, ‘지식의 금자탑’ 같은 대작들은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갔다. 중국, 아부다비, 이집트, 조지아 공화국, 호주,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다. 인터뷰 전날에도 인천 송도 트리플시티에 ‘하트’ 시리즈 신작 3점을 설치하고 온 터였다.
가족과 서울에서 살아가는 작가는 매주 월요일 5일치 식량을 들고 파주 작업실을 찾아 금요일 퇴근한다. 오전에는 그림을 그리고, 체력을 다진 오후에는 한바탕 석조 작업에 집중한다. 카키색 작업용 점퍼를 착용하고 2mm의 두께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작업장은 온통 뿌연 석가루로 가득하다. 인간이 깎아 낼 수 있는 석상의 가장 얇은 두께를 만드는 과정에 한치의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다. 용접이 가능한 철제와 달리 복구하고 수정할 수 없는 석조 특유의 물성 때문이다. 극강의 체력을 요하는 일은 작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50~60kg에 육박한 대부분의 조각 작품을 직접 포장하고 운반한다.
벌써 10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황승우 작가의 파주 작업실을 찾았다. 때마침 한 주 작업을 끝내고 서울로의 '퇴근'을 앞두고 있던 터였다. 초록이 넘실대는 작은 마당을 지나자 주택을 개조한 2층 규모의 작업실이 반긴다. 석조 작업은 1층 실내외 공간을 연결해 사용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자 한 면 전체를 유리로 마감해 파란슬레이트 지붕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넓직한 드로잉 작업실이 펼쳐진다. 한쪽으로 1인용 캠핑 침대가 아늑하게 놓여있다. 오롯이 세상의 주파수를 끄고 자신 만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 작가 황승우가, 거기 있었다.
스스로도 '작가노트'에서 이야기했듯, 그라인더로 밀 수 있는 '최대치'의 레이어를 만드는 작업들로 유명해요.
이탈리아 유학 뒤 잠시 아부다비에서 작품 활동했던 적이 있어요. 디즈니랜드와 비슷한 ‘페라리월드’ 진입 도로 옆에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서였죠. 그 때 정교하게 자르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라인더로 돌을 다루는 데에도 방향에 따라 직선, 곡선 조금씩 기술이 달라요. 난이도는 곡선(커빙)이 더 크죠. 평면과 원형이 만나는 지점, 딱 들어맞는 그 순간 멈추고 다시 그라인더를 돌려야해요. 이 기술을 스스로 '그라인더 스트로크(grinder stroke)'라 부르죠. 규모가 5m이르는 텐트 안에서 작업하면서 실질적인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소멸되기 직전까지 자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조각은 결국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 끝이 뭐겠어요? 그저 자르는거죠. 먼지가 되기 전까지, 형태를 잃어버리기 직전까지 자르고 또 자르는 거에요. 우리가 ‘미니멀’을 얘기하다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얘기 할 것이 없어요. 그러다보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형태죠. 초기에는 유기적인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전 세계 조각가가 군집한 이탈리아에 가보니 다 비슷해보이는 거에요.'나는 뭔가 새로운 세상을 가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 고민하다 결국 ‘자르자’는 생각을 했어요. 완전 먼지가 되기 직전까지, 두께를 2mm 이하로 만드는 거에요. 개념을 파악하고 실재로 작업 해보니 결국 과정만 남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과물을 향해 가는게 아니라, 과정을 좆다보면 그 자체로 작품이 되더라는 거죠. 끝까지 밀어붙이는 거에요. 톱을 그대로 돌에 넣어 흔들림없이 빼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과 육체적 고통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해요. 모든 것이 같은 선상에 있는거죠. 개념만 생각해서 '만든다', 이것이 아니라 내 자신과 물질 모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것은 결극 실존과 관계가 있고요.
대표작 '헤드(Head)' 시리즈는 그라인더 스트로크 작업을 통해 완성한 결과물이라고 봐도 될까요?
인간의 근원적 고독은 제 작품의 주제이니 자연스럽게 확장하고 발전하게 되더라고요. 대리석으로 얼굴 윤곽을 만든 다음 본격적인 슬라이스 작업에 들어갑니다. 보통 작품당 한 달 정도 걸려요. 돌은 쇠나 철과 달리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한계가 있어요. 작업을 하다 단면에 거미 같은 벌레가 나오면 그 부분을 잘라야 하는데 서로 간에 '딜'을 잘 해야 해요. 돌의 손실을 막으면서 생명을 살리기도 해야하니까요.
(좌) 헤드Head 시리즈. 무수히 얇은 레이어의 반복을 통해 조각의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황승우 작가의 작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우) 오닉스를 가지고 작업한 헤드 시리즈. 수십 개의 단층이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left) 작가의 야외 작업실 풍경. 가운데 한창 오닉스로 작업 중인 '헤드Head' 시리즈가 놓여있다. 주변으로 풀내음이 가득해 집중해서 작업하기 좋다 (Right) 머리가 어지럽거나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종종 작업실 주변을 산책한다.산수유가 만개하는 5월 중하순이면 주변이 온통 아름답게 변신한다.
주로 광장이나 해변, 대학 캠퍼스 같은 공공장소에 작품이 설치된 경우가 많은데. 건축물처럼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 또한 고민의 지점이지 않을까요?
사실 그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아요. 여타 조각가들의 경우 공간의 상태, 그곳에서 어떻게 어우러지고 보여질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어왔고 굳이 제가 반복하고 싶지는 않아요. 단순하게 오로지 작품만 생각하는 편이죠. 야외 조각의 경우는 평균 3M가 넘는 대작들이다보니 장소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구조감이 어떻고 밸런스가 어떻다' 하는 얘기는 굳이 필요 없는 거죠.
다양한 석재 가운데서도 화강암을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영원'에 대한 욕심 때문이겠죠. (웃음) 다른 재료들은 영원하지 않지만 화강암은 그 생명력이 길어요. 아무 것도 아닌 '과정'을 담기 위해 가장 단단한 재료를 사용하는 거죠. '헤드'나 '러브' 시리즈를 만들 때는 대리석을 사용해요. 매끄러운 마감 처리가 가능한데다 핑크나 블랙 같은 다양한 색상을 쓸 수 있어 재미있는 소재에요.
Left: 둘둘 말아 쌓아올린 신문과 책더미 위에 올라 앉은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에 자리한다. 'Observer' (Brescia, Italy 2011, Marble 800×800×2500mm) Middle : 노르웨이 항구에 설치된 작품 Right : 호주 골드코스트 아트 센터 중정에 자리한 성인 남성 키 높이의 작품. 모서리의 눈코입 모양과 전체적인 레이어가 마치 인간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 Unknown quantity' (Gold Coast Art Centre, Australia 2014, Granite 900×900×1800mm)
국내보다 해외 아트씬에서 더욱 활발하게 에서 스스로 어필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아부다비에 제 작품을 프로모션 하는 살와 제이단 갤러리Salwa Zeidan Gallery가 있어요. 중동 쪽 아트 마켓은 그쪽 화랑에서 전담해주고 있는데 결과가 꽤 만족스러운 편이에요. 그 갤러리에서 아트시artsy 같은 글로벌 온라인 아트 플랫폼에 홍보도 많이 해주고요. 훼손이 염려되다보니 되도록이면 해외에 잘 안보내려 하는데 전달하는 작품들은 100% 다 판매가 됩니다. 아부다비 쪽 클라이언트들은 중동인이 아니라 그쪽에 거주하는 주재원 등 외국 콜렉터가 대부분이에요. 작품을 콜렉션하는 안목이나 스케일도 확실히 다르고요. 한국 작가들도 해외에서 활로를 찾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해외로 눈을 돌려야해요.
잠깐 언급했듯 '어떻게 하면 글로벌 프로모션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한국 작가들의 고민이 큰데요. 한국적인 재료나 표현 방식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도 하고요. 외국에서 두루 가치를 인정 받기 위해 젊은 작가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일까요?
덴마크에서 제 작품을 전시할 때 누군가 태극기를 꽂아 놨더라고요. 전시를 찾는 이들 중 외형은 한국인인데 알고봤더니 입양되었거나 아주 어린시절부터 덴마크에서 살았던 이들이 많았어요. 겉모습만 동양인이지 내면은 서양인인 거죠. 제가 만약 외국에서 태어나 살았으면 한국적이라 할만한 어떤 색채가 없었을거에요. 한국적인 것을 고집하는 이가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DNA화 된, 한국 작가로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방식과 문화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배어나올 테니까요. 한국적이냐, 글로벌한 작가이냐 이런 고민보다는 그저 내면에 충실하다보면 좋은 작품이 나오고, 그것이 전 세계 콜렉터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보편적인 요소가 된다고 봐요. 애니시카푸어 작품만 봐도 그 사람이 인도 작가인지, 유럽 작가인지 알 수 있나요? 저 같은 경우도 프로세스만 남는, 자르고 자르는 작업들을 해나가다보니 어느 순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생각, 동양 사상과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자가 한 말도 결국 그 말이었잖아요? 삶이 어떤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과정 자체라고. 자연에 모양이 있던가요? 사실 나무가 형태가 있나요? 저마다 개념이 다른거죠.이런저런 구애받음 없이 흘러가는 것, 제 작업은 무언가의 재연이 아닌거죠.
세계 여러 공공기관에 작품이 놓여있는데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는 작품을 꼽는다면요?
아부다비에서 했던 조각 작업이 의미 있었어요. 전 세계 여러 작가들과 오랜 시간 동거동락하며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참 많은 것을 배웠죠. 중국 청화대학교 서쪽 게이트에 제 작품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기우네요. 중국인들에게 그 작품이 랜드마크가 됐거든요. 조각상 앞에서 모이자 하면 만나기도 쉽다 하더라고요.
인간의 심연, 절대 고독을 이야기하다 보니 작품이 묵직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에요.
혹자는 제 작업이 너무 무겁고 칙칙하고 고독해 보인다고 해요. 밝고 명랑하면 안되냐고 묻죠. 그러고 싶은데 해결이 안되는 이유를 보면 내 자신이 그런 존재인 듯 싶어요. 다 쓰러져가는 옛날 집을 가지고 겉에서 벽화만 그리면 멀리서는 아름다워 보이겠죠. 그러나 가까이 가보면 안에서부터 곪아 근본적인 해결이 안되는 게 보여요. 저는 감추고 외면하고 싶은 내적인 부분을 드러내고,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작품의 주제가 무거운 이유이기도 하고요. 근본적으로 우리는 고독한 존재고 외롭지 않은 이가 어디 있나요. 코미디를 두 번만 보세요.더 이상 우습지 않거든요. 고통은 한번 당하나 백번 당하나 계속 아픈 거에요. 그런 인간 밑바탕에 있는 근본적인 고독과 허무를 담은 것이 제 조각 작품들이에요. 무겁고 가벼운 것들끼리 서로 공존하고 잘 살자. 뭐 답이 있나요? (웃음)
최근 작업물인 하트 조각상 ‘러브Love’ 시리즈는 대리석 색감도 밝고 이미지도 친근해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하트를 좋아하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상당히 기호화되어있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아쉬움도 들죠. '헤드' 시리즈의 경우 국내에서는 어둡다는 인식이 강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컬렉터들이 많이 찾는 아부다비 아트페어에서는 5분도 되지 않아 모두 판매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검은석 대리석으로 오브제를 만드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도 상당해요. 검은 형체에게서 받는 불편한 이미지 때문인 거 같아요. 그런 갈증들을 해갈하고자 하트를 주제로 몇가지 작업들을 했는데, 최근 송도 트리플시티에 설치까지 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높더라고요. 연핑크, 블랙, 그레이 등 대리석 색감도 다양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사랑'을 주제로 하니까요.
지난 7월 말까지 평창동 JJ 중정갤러리에서 연 그룹전에서는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어요. 특히 기존에 해오던 '헤드' 시리즈를 벽에 부착해 부조처럼 작업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롭게 시도하는 신작의 일환입니다. 인간의 실존에 관한 고민을 '헤드' 시리즈로 표현해 왔는데, 조각도 하나의 회화가 되고 오브제로서 기능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조형언어의 하나로서 공중에 작품을 배치한 것은 새로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섭니다. '헤드' 시리즈는 보는 각도, 이를테면 조각을 두고 보면서 지나갈 때 레이어 단면을 통해 얼굴 형태가 사라졌나 나타났다를 반복해요. 이를 통해 존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죠. 인간은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땅에 붙어 있어야 하는 운명을 갖고 있는데 이것들을 해체한 거에요. 공항이나 터미널처럼 '소통' 위주의 공간이 아닌 '제 3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장소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현대인을 담았습니다.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프랑스어로 ‘농 뢰(Non Lieux)’, 비 장소(Not Place)라는 단어가 있어요. 장소가 현대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 대표적인 예로 공항과 같은 공공장소.이동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데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요.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거죠. 그 비장소에서 출발하지만 사실은 그곳에서 일어난 인간과 인간 간의 소통의 부재를 말하는 거죠.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고독이에요.고독한 것에 대해서 좀 다른 개념으로 이야기하면 소외된다는 말을 해요. 사회학에서 보면 가장 심각한 소외 상태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에요. 내가 나를 버리는 거죠. 그렇게되면 결국 죽음으로 가죠.현대 사회에는 더 심각할 것 같아요. 작업에는 그런 것들이 조금씩 들어있어요. 드로잉 작업을 하며 개념이나 형태를 구체화하면 그걸 가지고 조각 작업을 해요. 레이어를 만들어서 입체적으로 구현하는거죠. 레이어 사이에 빛이 들어가면 느낌이 또 달라지고. 전체적으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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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황승우 – ARTMINING, SEOUL, 2018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