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품 어딘가에-
2019년 베를린 미술 동향

베를린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양한 예술을 담고 있는 도시이다. 냉전시대 동과 서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기쁨을 담아낸 도시여서인가, 아니면 유럽의 중앙에서 지정학적으로 동서남북을 잇는 도시여서인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계의 예술계가 베를린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1년 간 베를린에서 열렸던 전시와 행사를 통해 베를린 미술의 요즘을 짚어본다.

Vernissage Das dritte Land © Artists and Keum Art Project
Vernissage Das dritte Land © Artists and Keum Art Project

from Work to Project : 현대 미술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예술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방식으로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내용과 메시지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 환경, 역사 등과 같은 주제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과거와는 다르게 공간의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협업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도 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시작하여 11월까지 계획된 <제3의 자연(Das dritte Land)>은 하나의 미술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까지 미술 외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중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 사례였다. 크라우딩 펀드로 프로젝트 비용을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한 <제3의 자연>은 베를린 한복판에 남과 북의 식물이 만나는 예술 정원을 조성하였다. 이와 함께 오프닝을 장식했던 소프라노 조수미의 축하공연, 퍼포먼스 시리즈, 가수 이랑의 공연, 학술 심포지움, 정관스님의 사찰음식 행사 '화합의 식탁' 등이 펼쳐졌다. 이곳은 단순히 하나의 미술작품이 놓인 공공장소가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 화해, 자연과 같은 범 지구적인 정신과 목표를 공유하는 프로젝트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모본으로 삼아 구현한 인공정원 프로젝트 <제3의 자연>을 진행한 한석현, 김승회 작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모본으로 삼아 구현한 인공정원 프로젝트 <제3의 자연>을 진행한 한석현, 김승회 작가.
Chiharu Shiota 'Beyond Memory', 2019. Installation view And Berlin Will Always Need You, Kunst, Handwerk und Konzept Made in Berlin, Gropius Bau, Berlin, 2019
© Foto: Mathias Völzke, Courtesy: Artist & VG Bild-Kunst, Bonn 2019
Chiharu Shiota 'Beyond Memory', 2019. Installation view And Berlin Will Always Need You, Kunst, Handwerk und Konzept Made in Berlin, Gropius Bau, Berlin, 2019 © Foto: Mathias Völzke, Courtesy: Artist & VG Bild-Kunst, Bonn 2019
Sonia Gomes. Installation view I Rise. I’m a Black Ocean, Leaping and Wide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ndes Wood DM, Sao Paulo, Brussels, New York.
Copyright of the Artist; Photo: Thomas Bruns
Sonia Gomes. Installation view I Rise. I’m a Black Ocean, Leaping and Wide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ndes Wood DM, Sao Paulo, Brussels, New York. Copyright of the Artist; Photo: Thomas Bruns

엮기, 풀기, 묶기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열린 전시 <그리고 베를린은 언제나 당신을 필요로 할거에요. 베를린 메이드 미술, 공예, 그리고 개념(And Berlin Will Always Need You. Kunst, Handwerk und Konzept Made in Beriln)>에서 중앙 홀의 천장은 치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의 설치작품으로 뒤덮였다. 흰 면실을 거미줄처럼 엮어 제작한 작품 ‘Beyond Memory’에는 건물의 역사에 관한 문서들이 걸려 있었다. 미하일 얀센 갤러리(Michael Jassen Gallery)에서 전시중인 작가 아이코 테주카(Aiko Tezuka)는 실을 풀고 다시 엮는 작업을 통해 “잊혀진 역사를 풀어내거나 또는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탐구한다. 프리더 부르다 미술관(Museum Frieder Burda)의 살롱 베를린(Salon Berlin)에서 전시중인 브라질 작가 소냐 고메즈(Sonia Gomes)는 헝겊, 끈, 실을 서로 엮고 묶어 비정형의 형태들을 표현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작품은 검정이다. 그것은 여성이며, 그리고 그것은 소외되었다. 나는 저항이다.”
이 세 여성 작가들이 유사한 손기술을 사용하며 다루는 주제는 거대한 역사 가운데 소외된 작은 역사 또는 개인의 역사이다. 즉 기존의 역사를 읽어왔던 방식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 방법이다. ‘엮기‘, ‘풀기‘, ‘묶기‘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인 손기술은 이전 시대의 예술가들이 역사를 다루던 방식과 달리 예민하고 섬세하며 비정형인 역사‘들′을 서술하는 몸짓이 된다. 수 많은 개인과 나라의 역사들이 얽히고 설켜 거대한 긴장관계를 이룬 유럽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인 베를린에서 다양한 역사, 문화, 정치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모여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을 새로 짜고 있다.

Jakub Kubica + Trippen Autumn/Winter 19/20 Collection.
Set design for Trippen Concept Store 
Building Site, P100
© Artist and Trippen
Jakub Kubica + Trippen Autumn/Winter 19/20 Collection. Set design for Trippen Concept Store Building Site, P100 © Artist and Trippen
Jakub Kubica 'SM003_'. video installation
© Artist and Trippen
Jakub Kubica 'SM003_'. video installation © Artist and Trippen

옷장과 식탁까지 다가온 미술 : 재작년 여름 베를린 테겔공항에는 한 의류 브랜드의 대형 광고판이 설치되었다. 청바지를 입은 모델들이 미술관과 같은 공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앤디 워홀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베를린의 한 수제 가죽 신발 브랜드인 트리픈(Trippen)은 P100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신발들은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설치 작품 안에 ‘전시‘되어 있다. ‘지속가능성’을 모토로 한 신발 브랜드가 예술가와 함께 구성한 공간 안에서 그 작가의 설치 작품과 수제 신발은 서로가 가진 고유의 가치들을 나누고 있다.
세계적인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13년 전부터 자신의 베를린 스튜디오 스태프들과 한 식탁에서 유기농 채식 요리를 먹어왔다. 이렇게 생겨난 SOE Kitchen 팀과 함께 그는 지난 8월부터 2달여간 아이슬란드의 한 항구도시에서 팝업 레스토랑 프로젝트 ‘SOE Kitchen 101 (https://olafureliasson.net/soe-kitchen-101)′을 진행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가 자신의 스튜디오의 주방, 즉 자신이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을 대중 앞에 가지고 나왔다는 것이다. 어쩌면 엘리아슨의 팬 중에는 이 프로젝트로 인해 유기농 채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또는 반대로 예술에 관심이 없던 한 채식주의자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작품을 접하고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이제 미술 애호가는 예술가의 작품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의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까지도 구입하고 있다.
모든 예술가들은 그가 유명하든 아니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저마다 삶의 화두를 매일 직면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대면하는 삶의 층위와 국면이 다양해질수록 대중이 접하게 될 작품 또한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확장되고 넓어지는 미술의 품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 현대미술이 자신 옆에 와 있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렇게 베를린의 미술은 동시대의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WRITE 장용성(매거진 아트마인 독일 통신원)
COOPERATIOM keumprojects, Gropius Bau, Museum Frieder Burda, Trippen(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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