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무엇보다도 빛, 특히 빛 알갱이들의 운동에 대한 연구자로서의 광학적 실험과학자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것도 그의 재료 선택과 심플한 제제 방식의 선택의 결과로 나온 것이라면, 이 또한 작가 자신도 예기치 못한 우연과 필연이 묘하게 만나서 나타나게 된 예술가로서의 운명적인 그 무엇일 것이다. 그의 작업과정은 무척 단순하다. 평면 캔버스에 레진을 부어 평평하게 하여 굳힌다. 그 위에 송곳으로 가는 선들을 빼곡히 긋는다. 그렇게 그어진 가는 선들로 이루어진 골에 원하는 색을 입히고 닦아내면 무수한 선들이 색으로 나타난다. 그 선과 선 사이는 미세하지만, 사이가 생긴다. 그렇게 사이 공간들이 선과 선 사이에 생겨난다. 그러나 이렇게 생겨난 사이 공간은 아직 의미 있는 사이 공간이 아니다. 의미 있는 사이 공간은 이렇게 생겨난다." _ Kai Hong, Ph.D. <사이 공간의 적막 속에 만들어 지는 빛의 울림> 中
WRITE 장남미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 최민석 (펜스튜디오) VIDEO 황승헌(매거진 아트마인 영상 매니저)

평면 속에 공간성을 구축해온 작가 김현식은 국내외 유수 갤러리스트와 세계미술시장의 빅 컬렉터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한국 작가이다.
회화라는 예술 영역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요소인 색과 선을 사용하는 작업을 해온 작가 김현식이, 회화의 평면 ‘너머’, 보이는 것 ‘이상’을 구현하는 방법으로 선택해온 주재료는 레진(Epoxy-resin)이다. ‘투명성’이 특징인 재료이다. 레진과 색과 선을 중첩해 한 점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최소 열 번에서 최대 열 여덟 번 ‘레이어 쌓기’를 반복한다. 레진 층 사이의 ‘간(間)’에 선을 긋고 색을 상감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직선이지만 “힘차게 그렸던 선도 있고, 아주 간단한 힘으로 버텼던 선도 있다.” 이 선을 1만번 이상 그어야 작품 하나가 된다. 팔에 무리가 큰 고된 육체적 작업이라 했다. 허나 무엇보다 우리는 가청 주파수의 한계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놀랐다. 작가가 거두어 키우고 있는 길고양이 산이와 시월이는 익숙한지 유유하다. 작가의 표정 역시 담담하다. 이상한 고요다.
같은 색을 레이어드 하는 작업은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이다. 작은 차이로 차이를 만들며 최종적으로 선명하게 선들을 드러내야 한다. “한 가지 색을 아주 미묘하게 여러 톤으로 선택하는 민감한 작업이에요. 이 일은 도저히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어요. 저만이 느끼는 세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요. 관객들은 못 느껴도 상관 없지만, 제 맘에 안 들면 안 되는 거에요.” 관람객의 눈에 작가의 작품은 압도적으로 명료한 ‘색’으로 보인다. 작품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는 형태를 완전히 버리고 오로지 색과 선으로만 ‘평면 내부에 공간’을 구축해오는 동안 그의 작업은 점점 더 단순해지는 쪽으로 확장되어 왔다. 인터뷰 내내 더 많은 질문을 내놓은 작가처럼, 역설적이게도.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를 지양해온 그가 오래 품어온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세계적인 미술평론가 존 라이크만과 홍가이 예술철학 박사같은 미술이론가들과, 세계미술시장에 슈퍼 컬렉터들과 큐레이터들을 단번에 매료시킨, 그의 세계가.

<Who likes any colors?>, 2016. Epoxy resin, acrylic color, wooden frame. 40.5 x 21.5 x 7cm x 50panels "그림 자체가 자연스럽게 자신을 보는 그림"을 통해 하나의 '사건'처럼 '거울 효과'가 일어난다. 작가가 수없이 던져온 질문이 그 안팎에 있다. "우리가 본다고 했을 때 과연 얼마나 볼 수 있을까?"
들어서자 마자 <미스티(Misty)> 시리즈가 눈에 들었어요. 컬러가 강렬한 <후 라이크스 컬러스(Who likes colors?)> 시리즈에서 좀 더 ‘시공간성’에 의미를 확장시킨 작업으로 보여요.
정확하게 형태는 안 보이는 분위기의 풍경인 셈인데, 여러 갈래로 이야기가 풀어질만한 요소들이 더 많아요. 작년 파리 <아시아 나우(ASIA NOW)>와 올해 서울 학고재 개인전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컬렉터들로부터 호응도가 높았어요.
좋은 인연이 된 컬렉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만남은요?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등 해외 전시에서 만난 여러 빅 컬렉터가 있어요. 영국에는 살레라는 고급 주택이 있는데, 샬레를 가진 영국 컬렉터 한 분이 런던 페어에서 작품 두 점을 샀어요. 이 갤러리에서는 처음 만나는 슈퍼 컬렉터로, 제 작품이 매개가 되었다며 엄청나게 흥분했죠. 여전히 살레에 컬렉션을 들일 때 전통은 작품을 받는 날 여는 파티에요. 거기엔 이미 피카소 같은 엄청난 컬렉션들이 있더라고요. 작년 프랑스 <아시아 나우>에서는 한 분이 제 출품작 모두를 샀어요. 노르망디의 성주인 제레미 드르쿠(Jérémie Delecourt)인데, 벨기에 갤러리가 저에게 설명하기를, “당신의 컬렉터 목록에서 이 분을 1번으로 써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분은, 아픔으로 남게 됐죠. 작년 아트마이애미 오픈 날 100x100사이즈 네 작품을 모두 구매한 멕시코 컬렉터에요. 아트마이애미 넘버1 컬렉터가 한국 작가 작품을 선택했다고 뉴스거리가 됐어요. 해킹 사건이 생겨서 결과적으로 완전한 인연이 되지 못했지만, 더 좋은 분들과 만나게 되겠지요.
인간의 본성을 컬러 작업으로 표현하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순간은요?
누구든 근본적으로 좋아하는 색이 있다는 데서 선택한 장치에요. 제 작업에 1차적인 목표는 다양한 컬러의 작품들 가운데 선호하는 색에 이끌린 관객이 작품 앞에 도달하게 만드는 ‘안내자’가 되는 거에요. 또 다른 장치는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드로잉인 ‘선’이죠.
개인적으로는 어떤 색에 이끌리나요?
역설적으로 저는 ‘따뜻한 블루’를 좋아해요. 본능적으로 블루에 대한 제 감정과 감흥은 그래요. 제가 따뜻한 블루라고 느끼는 컬러는 로열 블루 정도의 색이에요. 표면적으로는 차갑고 냉정해 보이지만 근간에서 베어 나오는 감각들은 여유롭고 풍만하거든요. 색으로 표현하기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상징화할 수 있는 색을 첫 번째 조건으로 결정했던 것 같아요.

<Who likes Blue?>, 2017. Epoxy resin, acrylic color, aluminum frame. 122 x 82 x 6cm
삶과 작업에 근거를 둔 곳들이 바다 가까이 있어왔다는 점도 ‘블루의 감성’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당연이요. 특히 살아있는 생물들을 통해 주로 색을 관찰하게 되는데, 처음엔 파랑이면 파란색, 빨강은 빨간색 하나인줄 알았어요. 하지만 볼수록 다른 베이스가 기저에 있더군요. 자연물에는 거의 기본적으로 노란색이 근간에 있고, 꽃이 될 때에는 빨간색을 머금고 잎사귀가 될 때는 녹색을 머금듯 근간에는 분명히 다른 색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어디까지나 자연물에서 가능하지만, 그래서 저는 ‘절대색’에 대해 말하지 않아요. 색은 정서에 따라서도 아주 다르게 보여요. 각도에 따라서도 색은 무수히 달라 보인다는 사실을, 같은 컬러를 레진 레이어 층에 단계적으로 쌓아 올려가는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은 거에요.
색은 문화에 따라서도 다른 상징성을 가져요. 출발어와 도착어가 다르게 읽히기도 하는 번역의 문제와 같이 작용하기도 해요.
가장 기본적인 코드인 색과 선을 작업에 사용하는 이유는, 그 조건들이 여러 가지 환경이나 문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리 해석될 여지를 충분히 두려는 거에요. 작품 제목도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해석 가능하도록 붙여요. 평면의 회화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보는 방법들에 고민을 가졌거든요. 이제까지의 평면과 다른 시각으로 볼 수는 없을까?
기울기가 있는 새로운 형식의 프레임이 흥미로워요.
거듭 실험하면서 의도적으로 23.5° 기울기로 정했어요. 그렇게 하니 마음에 드는 각도가 나오더군요. 웬만큼 옆에서도 프레임은 감춰지고 화면만 전체적으로 드러나죠. 23.5°는 지구의 기울기와 같아요.
지구 자전축 기울기와 같은 23.5°의 프레임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우리는 수평선을 보면서 입체의 지구를 대단히 평면적으로 느끼는데, 그 평면 너머를 보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품어온 꿈과 욕망, 한계를 뛰어 넘은 도전에 대한 이야기들이 겹쳐져요.
맞아요. 우리가 본다고 했을 때 과연 얼마나 볼 수 있을까요? 바다 위 일직선으로 그어진 수평성을 보면 저 바다 너머에 존재가 궁금해지죠. 평면이라는 기본 조건이 갖는 오리지널리티를 지키면서도 ‘공간’을 품는 레이어 작업도 같아요. 컬러에 이끌려 다가오니 선들이 있고, 더 가까이 보니 깊이감을 가진 공간이 나타나고. 투명한 평면의 레진 막 사이사이 선을 헤집고 쭉 밀고 들어가면 또 다른 평면이 드러나는데, 그 너머 너머 너머에 우리가 보는 건 무엇일까요?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요? 콜럼버스가 대양을 헤치고 나아가 신대륙을 찾아갔듯,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들은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데에 있어요. 해외 전시에 나가면 공통적인 질문을 받아요. 동양 작가 작업이다 보니 흔한 말로 ‘보이드(Void)’나 ‘무(無)’와 같은 개념들을 끌어와 논해요. 저는 그런 실체 없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화면을 아무리 파고 들어가도 사실은 ‘텅 빈’ 공간이거든요. 저는 비어있는 미지의 세계에서 시작된 지구의 탄생같은, 원시같은, 하나의 씨앗 같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가져온 질문들이잖아요. 과연 보는 것들을 진짜 보았을까요?
그 맥락에서 홍가이 박사는 “여러 층으로 구성된 작품 속의 여기 저기 생성된 틈새 공간들에 갇히게 된 빛 알갱이들(光子 Light Particles)이 함께 발광(發光)하여 마치 작품의 깊숙한 내면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했는데요.
인간의 시각은 제한적이죠. 제 작품도 시각적으로 어느 선까지만 보여요. 하지만 빛은 그보다 훨씬 더 멀고 깊이 침투해 들어가죠. 빛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로까지 안내하는 장치로 존재하는 거에요.

<Zero-1>, 2017. Epoxy resin, acrylic color, aluminum frame, 102 x 102 x 6cm
작가의 근간에는 어둠이라고 할만한 어떠한 무언가가 있었는지요.
레진의 레이어 사이 모호한 경계 속에 구축해온 ‘사이 공간’은, 어쩌면 추상화된 제 기억들인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대학 때 여자친구를 바래다 주는 길에 불 켜진 창들을 보며 안의 일을 궁금해하던 방이거나, 요즘 뜨거운 이슈인 난민들의 삶 공간일수도 있어요. 결국 ‘자기만의 공간’에 닿는 이야기에요. 초등학교 6학년 즈음 아버지 일이 어려워져서 갑자기 쫓겨 간 곳이 여덟 식구가 살게 된 방 한 칸이었어요. 나는 왜 공간을 그리는가 과거를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나만의 공간’이 절박했던 시절이 없어요. 혼자 쉬고 상상하고 꿈을 키울 공간을 열망했죠. 제가 구축한 비물질적이고 비형태화 된 텅 빈 공간을, 관객 각자가 생각을 펼치고 상상하는 내면의 공간으로서 마음껏 사용하기를 바라는지도 몰라요.
“깊은 밤이라는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라는 말은 없는 걸까” 질문한 한 시인의 화두처럼, 작가의 ‘따뜻한 블루’를 해석할 수 있는 단서네요.
제가 상징적으로 찾고 싶은 것들이 있음을 ‘따뜻한 블루’에 빗대어 말하는 거에요. 머리 시리즈인 <사이 공간(Beyond the visible(Hair series))>에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뒷모습을 유심히 보면 모티프가 된 인물에 성장이나 어쩌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생각을 담담하게 던지고 싶어서 작업했듯. 근래엔 이 작업에 어떤 끝은 어디일까? 이 작업으로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을까? 자문해요. 갈수록 오래된 것들에 애착이 깊어지는데, 지금 제가 앉아있는 ‘국민학교 나무 의자’, 그림 그리며 사용했던 나무 깔판의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 물체가 머물렀던 공간과 시간에 경험이 함축되어 있잖아요. 저는 작업에서 표현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생각하는 모티프로서 내놓을 뿐이죠.

<Who likes Yellow?>, 2017. Epoxy resin, acrylic color, aluminum frame. 102 x 167 x 6cm.
‘궁극의 미지의 세계에 다다르기 전까지의 공간’인 ‘사이 공간’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가져온 또 하나의 기본 요소인 ‘선’을 반듯한 직선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단순히<사이 공간(Beyond the visible)> <일루션(Illusion)> 시리즈에서 주로 사용한 곡선 이후에 형태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보여요.
웬만큼 선과 레이어를 중첩해도 그 밑에 것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요소가 ‘선’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사용하려니 처음 선택된 이미지가 머리카락이었고, 자연스레 곡선을 많이 사용했죠. <하프 오브 잇(Half of It)> <퍼시 더 컬러(Pursy the Color)> <후 라이크스 컬러스(Who Likes Color?)>의 추상 작업으로 넘어오며 그야말로 직선을 다루게 됐는데, 반듯한 자의 힘을 빌려 긋는 직선으로 공간을 구축하는 일은 자연발생적인 행위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느냐에 따라 기록되는 역사처럼, 인간으로서 기록하고 구축해왔던 행위에 대하여 가장 간단한 인공적인 행위의 형태인 직선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하나하나의 의지로 만든 것들을 통째로 열 겹 스무 겹 압축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가 되기도 하겠다고. 세월을 품고 있는 오브제를 통해서 그 역사성과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처럼, 저는 이 공간에 오로지 나의 의지로서 새겨온 ‘시간성’을 드러내는 거에요. 힘차게 그렸던 선도 있고, 아주 간단한 힘으로 버텼던 선도 있고, 저마다 다른 감정으로요.
이러한 작가의 의도 역시 관람객이 단번에 보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여행의 문턱에 데려다 놓을 뿐, 이후에 여행은 관객 몫이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선’에 대하여 저보다 뛰어난 해석을 내놓기도 할거에요. 홍가이 박사는 그 과정들을 철학적으로 해석해서 ‘빛’으로 찾아 들어 갔고요. 감상자들이 여러 생각들을 품을 수 있는 정도면 만족해요. 저는 상상이 많은 작업들이 좋은 거 같아요. 상상을 다른 말로 쉽게 얘기하면 ‘울림’이 있는 작업이겠지요. 물론 제가 작업적으로 구축하고 싶은 무언가는 다른데 있어요. 분명히 존재해요.

<하프 오브 잇(Half of It)> 시리즈는 조화와 균형에 대한 시각을, <퍼시 더 컬러(Pursy the Color)>는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관한 이야기를 상징한다.
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된 예술·과학철학가 홍가이(Kai Hong) 박사와 세계적인 미술평론가 존 라이크만(John Rajchman) 교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1980년대 미대생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이 백남준과 홍가이인데, 한 분은 아티스트로서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고 한 분은 혜성처럼 나타나 엄청난 충격을 준 이론가로서 활동했죠. 당시 홍가이 선생님이 한국에 잠시 머물다 다시 미국으로 떠나 10년 후 돌아와 처음 만난 작가가 저였어요. 뒤에 알았지만 어느 갤러리에서 제 작품을 보고 “이 작가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대요.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을 보고 글을 쓴 들뢰즈처럼, 박사님은 <Beyond the visible>에서 여인의 뒷모습에서 무언가 이야기들이 솟았던 것 같아요. 그 인연으로 써주신 긴 글이 참 좋아요. 추상으로 넘어온 작업을 한국에서 8년만에 전시하면서 가장 제 작업에 근본을 잘 읽어줄 분을 고민하다 부탁 드렸는데 흔쾌히 글을 주셨어요. 여전히 저는 박사님 글을 보면서 공부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가늠해 봐요. 앞으로 선생님과 함께 책을 낼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존 라이크만 교수는 <코리아 투모로우 2010> 때 인연이 됐어요. 전시 참관인으로서 제 작품을 보고 부산 작업실로 직접 찾아오셨어요. 제 작품의 ‘사이공간’에 대한 해석을 간단 명료하게 풀어주셔서 깜짝 놀랐죠. 몇 년 뒤 <부산 비엔날레>에서 만나게 되어, 차에 갖고 있던 추상작업을 처음 보여드렸는데 운명처럼 작품 제목을 주셨죠. 가볍게 질문을 던지는 식의 “Who likes the color?”요. 이전까지 제가 염두한 제목은 ‘In between space’로 좀 무거웠거든요.
<후 라이크스 컬러스>와 <퍼시 더 컬러>는 궤를 같이 하는 맥락에 있어요.
아웃트 라인이 어두운 시리즈인 <퍼시 더 컬러(Purcy the color)>는, 보는 것에 대한 질문이에요. 영국 작가 콜린 웨스트(Colin West)가 쓴 우화인 <퍼시 더 핑크(Percy the Pink)>에 주인공인 퍼시 대왕은 세상에 모든 사물과 사람까지도 핑크로 바꾸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하늘빛만큼은 바꿀 수 없음을 깨닫고 방법을 찾으라 명하는데, 한 신하가 핑크색 선글라스를 만들어 퍼시의 눈에 끼워요. 마침내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자유를 찾았고요. ‘프레임’, ‘안경’, ‘아웃트 라인’에 대한 얘기를 제목으로 차용한 거에요. 보는 것에 대한 주제를 더 깊숙이 밀어간 작업이 <후 라이크스 컬러스> 시리즈로 상징적인 정체성에 대한 얘기이고요.

<Who likes Gray?>, 2017. Epoxy resin, acrylic color, aluminum frame. 102x 167x 6cm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좀 지나면 수묵에 가까운 작업을 하려고요. 어려울 거에요. 컬러 작업은 베이스에 색이 짙고 올라올수록 밝아지는데, 블랙톤 작업은 밝은 색 베이스로부터 갈수록 짙어져야 하니까. 흑백 작업은 <후 라이크스 컬러스> <퍼시 더 컬러> <미스티> 시리즈보다 더 단순해진 색의 힘이 발휘될 거에요. 지금 사용하는 컬러는 가장 기본적인 삼원색, 오방색과 같은 상징적인 색들이에요. 원형에 가까운 색을 핵심으로 작업하는데, 결국 몰입하게 되는 것들은 그와 반대로 근본에 대한 질문이다 보니 자연스레 ‘색이 없는 작업’을 생각하게 됐어요.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색은 깊이감을 지닌 먹과 같은 색이에요. 그야말로 사유만 담을 수 있는 색 작업을 얼른 하고 싶어요. 색이 없을 때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역설적으로 느끼는 거죠. 거추장스러운 장치들을 하나씩 벗어가는 과정이에요.
‘21세기 단색화’라고 수식되는데, 작가로서 경계하는 바는 없나요?
드러난 모양이 하나의 단순한 컬러로 되어있으니까 감상자가 단색화라고 하면 그냥 놔둬요. 그러나 미술 형식에 맥락에서라면, 단색화 선생님들 작품에 배경이 된 토대와 제 작업은 근본적으로 베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같이 묶일 수 없어요. 작업을 하면서 저 이전에 어떤 작가가 어떤 스타일이나 형식을 갖고 무슨 작업을 했는지 관심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지금 이 시대, 이 시간에서 제가 고민하는 것들, 저만의 표현으로 제 것으로 구축 가능한 작업에 대해 오래 생각한 부분들이죠. 평면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형태를 유지하는 작업들을 생각했던 방향성에 대해서요.

프레임 두께가 보통 6~7센티미터, 100x100 사이즈 작품 한 점의 무게는 보통 10~15킬로그램에 달한다. 평면에 공간감을 부여하는 10~18개 층의 에폭시 레진 레이어 사이사이 가는 선을 긋고 색을 칠해 닦아내는 상감기법을 이용해 컬러를 중첩한다.
국내 학고재 개인전 이전에 해외에서 활동들이 광폭적으로 이루어졌는데요.
제 작품을 본 외국 갤러리스트의 제안으로부터 시작해, 독일, 프랑스, 영국 갤러리와 일로 이어졌어요. 근데 한국에서 제 입지를 탄탄하게 구축해놓고 작품이 나간 게 아니다 보니까 한국 관람객들에게 여전히 저는 낯선 작가이더군요. 영국 런던, 벨기에, 뉴욕, 상해를 돌며 8년 사이에 개인전 네 번의 개인전을 열다 보니 한국 전시를 준비할 시간도 없었어요. 올해 초 서울 학고재에서 드디어 한국 전시를 열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이미 에폭시 레진을 재료로 한 작업을 본 경험들이 많았고요. 헌데 에폭시 레진을 캔버스 전면에 쓰겠다고 작업한 작가는 한국에서 제가 처음이었어요. 다른 작가나 학생들에게 사용 방법들 알려주기도 했는데, 저는 레진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재료에 성격을 강조하는 작업이 아니니까요. 단지 제가 시각적으로 보이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데에서 필요했으니까요. 그래서 재료로서 비슷하게 보이는 작업들에도 저는 충분히 알려줘요.
세계 미술에 중심이 되는 영국 런던에서 모거모던아트 갤러리(Mauger Modern Art) 전속작가로 해외 활동을 시작했고, 세계미술시장에서도 회화가 중심이 되는 곳에서 글로벌 작가로서 발을 내디뎠어요.
영국에서 발표됐던 작품이 컬러 추상작업인데, 갤러리스트가 말하기를 “보면 볼수록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낸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가장 궁금해한 부분은 작업 과정이에요. 자기들에게 너무나 쉽고 가깝게 느껴졌는데, 작품에 내용들은 그들 정서에서는 또 해석이 안 되는 다른 정서가 베어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느꼈나 봐요. 이후 뉴욕 전시 등에 작품을 내보였을 때도 똑같이 접근해오더라고요. 저에게 용기를 줬어요. 지금부터가 진짜 ‘실전’이라고 봐요.

작업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열건조실, 한 눈에 컬러를 찾기 쉽게 정리한 작업대와 색 작업 단계에서 물감을 닦아낸 걸레를 모아 놓은 장면들에서 질서와 혼돈이 교차한다. 작업 단계에 따라 개별화된 공간이 필요한 김현식 작가 작업실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형색색 걸레는 작업 과정에서 파생된 또 하나의 재료로서 설치작업에 사용할 계획이다. 색 실과 에폭시 고드름으로 연출해볼 설치작업에 첫 컬러로 작가는 '녹색(Green)'을 꼽았다. 이미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풍경'이 있다는 소리다.
내년까지 예정된 국내외 전시 일정만 봐도 숨이 가쁘네요.
올해 국내에서는 키아프, 노블레스 컬렉션, 그림손 갤러리, 아트마이닝 전시 등이 예정되어 있어요. 현재 작업은 내년 홍콩 아트바젤에서 보일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고, 다음 주에는 홍콩 화이트 스톤 갤러리와도 미팅이 있네요. 내년 파리 <아시아 나우>와 맨하탄 <프리즈 뉴욕> 등도 있는데, 지금부터는 더더욱 제 준비가 탄탄하게 되어야 해요. 온전하게 작업으로서 쇼가 되고 그 작업에 좀 더 깊이 있는 평가를 얻어내는 활동들이요.

곳곳에 작업에 단서가 되는 글귀가 적혀 있는 작업실에는 작가의 철학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서재가 있다. 작가는 일상에서 순간순간 무언가 떠오를 때면 놓치지 않고 노트에 스케치를 한다.

김현식
HYUN-SIK KIM
1965년생으로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99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이후 회화의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온 그는 투명성이 특징인 에폭시 레진(Epoxy-rejin)을 주재료로 선과 색을 이용한 작업을 해왔다. 해외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 작가인 김현식은, 런던 모거모던아트 갤러리, 뮌헨 본 브라운베렌스 갤러리, 뉴욕 ACNY, 브뤼셀 아트 로프트 등 세계의 유수 갤러리와 활발히 활동하며, 세계 유명 아트페어에 참가할 때마다 모든 출품작이 솔드아웃 되며 큰 관심을 받아 왔다. 2018년 2월 서울 학고재 갤러리에서 8년만에 가진 한국 개인전 <빛이 메아리치다>를 포함해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독일, 영국, 미국, 스위스, 홍콩, 한국 등지에서 150여 회의 단체전과 세계적인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는 국립현대미술관, 쉼박물관, 민속박물관, 울산법원, 세브란스병원, 부용주식회사 등과 싱가포르 UIU빌딩, 벨기에 피에르 컬렉터그룹, 뉴욕 MDN 로펌, 런던 샬레스 등을 비롯해 다수의 개인 소장가들이 있다. 심도 깊은 철학적 사고가 근간을 이루는 작품 세계는 저명 미술계의 이론가들에게 해석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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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김현식 – ARTMINING, SEOUL, 2018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최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