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립 기메 미술관(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Guimet)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동양 미술 박물관으로서, 2015년 한국 작가 이배 전시를 기점으로 현대 예술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를 기획한다. 2017년 프랑스 작가 프륀 누리(Prune Nourry)부터 2019년 미스터 앤드 퍼렐 윌리엄스(Mr. and Pharrell Williams)까지 전시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에게 호평 받고 있는 카르트 블랑슈에 참여한 한국 작가는 2015년 이배, 2018년 김종학 화백이다. 그리고 2019년, 한국 작가로서는 세 번째로 민정연 작가가 카르트 블랑슈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차지했다.
WRITE 윤해정(매거진 아트마인 프랑스 통신원) PHOTOGRAPHY David Aymon, Thierry Ollivier, Thierry Estrade COOPERATION Min Jung-Yeon, Galerie Maria Lund- Paris, 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Guimet
미로와 같은 숲 공간에서 ‘일부’가 되다
1915년에 완공된 고풍스러운 귀족저택 스타일의 기메 미술관 마지막 층을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원형 돔이 둘러싸고 있는 아늑한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 공간에 아크릴, 연필, 그리고 먹으로 완성한 민정연 작가의 거대한 모노톤 숲이 펼쳐진다. 230 x 1,080cm의 거대한 스케일로 완성된 드로잉은 극도로 세밀하다. 하나하나 보면, 어느새 현실을 잊고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비현실적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9개로 분리 배치한 민정연의 ‘숲’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서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채로 미로 같은 숲을 헤매게 된다. 무작정 걷다 보면 어느새 드로잉 밖으로 삐죽 튀어 나와 있는 붉은 빛깔의 메탈 튜브가 등장한다. 끊임없이 관객을 비추는 반투명 ‘거울’이다. 거기 비친 ‘나’를 마주하게 되는 관객은 비로소 깨닫는다. 결국 미로와 같은 숲의 공간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음을. 처음 입장했을 때 상대적으로 작고 아늑하다고 느꼈던 공간을, 어느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이 거대하게 느끼고 있음을, 얼마 동안 이 공간에 머물렀는지를 인지할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 순간 관객은 ‘숲’의 ‘일부’가 된다.
이 작품의 기원은 나무 기둥들과 메탈 튜브들이 무한히 교차하는 페인팅 작품 ‘직조(tissage)’이다. “무섭지만 그 안에 들어가 살아보고 싶다”라고 말한 아들의 말에서 영감을 얻은 민정연 작가는 2차원 페인팅을 3차원의 몰입형 설치작품으로 만들기로 한다. 드로잉과 거울, 메탈튜브가 불규칙적으로 배열된 상태로 보이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 아래 소형 마케트가 먼저 만들어지고 관객과 공간이 어떻게 서로를 담아내는지 충분한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 뒤 작품이 완성되었다. ‘거울’이라는 장치는 민정연의 숲 속에서 관객을 ‘일부’의 존재로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드로잉에서 재현된 2차원의 숲과 메탈 튜브라는 현실을 잇는 대상이 바로 관객 자신이기 때문이다. 반투명 거울에 비친 관객들이, 안개 낀 숲 속에서 스스로 ‘서사를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민정연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위해 구상에서 설치까지 꼬박 2년의 시간을 들였다.
프랑스 기메 미술관 민정연 개인전
<화해(Réconciliation)>
기간 | 2019년 11월 6일 – 2020년 2월 17일
장소 | 기메 국립 동양 미술 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 Guimet)
주소 | 6 Place d’Iéna, 75116, Paris, France
기메 미술관 Tissage 설치작품에 전념 중인 민정연 작가의 프랑스 툴롱(Toulon) 작업실, 2019년 8월 © Photo : David Aymon, Courtesy : Min Jung-Yeon & Galerie Maria Lund, Paris
개인의 기억이나, 우리 모두의 숲인
작가의 숲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전쟁 이후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작가의 할아버지는 산속에 고아원을 설립한다. 유년기의 대부분을 숲에서 보내게 된 작가에게 숲은 따뜻한 친구이자, 놀이터였고 아지트였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어린 작가는 잊을 수 없는 사고를 겪게 되고, 다시는 숲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부드러운 모노톤 기억의 숲 너머로 강한 색감과 차갑고 날카로운 재질의 메탈 튜브가 어딘가 모르게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작가가 경험한 트라우마가 튜브 관을 타고 불쑥 현실로 튀어나온 것처럼, 관객들은 부드럽고, 조용하고, 몽환적인 기억의 숲에서, 어딘가 모르게 자신들을 찌르고 있는 트라우마가 공간에 동시에 존재함을 느낀다.
‘화해’라는 전시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질적인 것을 ‘공존’시키는 것이다. 행복했던 기억과 아픈 트라우마가 잠재하는 그녀의 작품 속에는 항상 대립되는 것들이 공존한다. 모노톤의 세심한 숲 드로잉이 부드러움이라면 메탈 튜브는 날카롭고 차갑다. 기억을 표현한 숲이 비현실적이라면 메탈과 거칠게 절단된 거울은 쨍한 현실 그 자체이다. 그 숲을 헤매며 관객들은 마치 뜨개질의 코처럼, 대립되는 것들을 ‘직조’ 하고, 경계를 허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직접 살아본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없다는 작가의 신념처럼,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된 작품은 공동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숲 안에서 이루어지는 ‘화해’는 관객의 이야기로서, 현실 속 우리 사회에서의 여러 대립의 공존들로 연결된다. 그것은 정치적 대립일 수도, 그리고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진 우리나라 분단의 역사일 수도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이 분리의 양립은 비단 우리나라를 넘어서서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유기체의 세상에서 확장되는 에고
동양의 노장 철학부터 현대물리학, 그리고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리좀(Rhizome)’까지 세계의 존재 원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공부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에서 나와 자연, 나와 물질, 그리고 나와 세계는 서로 대립되며 끊어진 단위가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에서, 내가 물질이 되고 물질이 내가 되는 도가의 세계관처럼, 민정연의 작품에서 희망은 반드시 고통을 동반하고, 행복한 기억은 아픈 트라우마를 내재하며, 곧게 뻗은 직선은 유기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퍼져 버린다. 상반되는 것들을 서로 동화시키기보다는, 그대로 공존시키는 것. 그렇게 다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에고’에서 벗어나 더 큰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유년 시절을 보낸 민정연 작가는 수석과 화석을 모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장난감 대신 아버지와 함께 오래된 시간의 흔적인 화석을 수집하러 다녔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작가가 파리로 유학 오게 된 이유도, 파리가 단순히 예술의 도시라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시간의 기억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는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파리 국립 고등미술학교 재학시절, 학교 친구들이 생각 없이 밟고 지나가는 학교 돌계단에 박혀 있는 화석을 발견하고, 억겁의 시간이 현대의 시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음에 감탄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애들아, 너희가 밟고 있는 이 시간을 좀 봐!>라고 외쳤던 작가. 오래된 시간을 층층이 끌어안으면서도 현재의 모던한 삶을 유지하는 파리라는 공간은 어쩌면 작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영감의 장소였을지 모른다. 작가의 작품처럼, 민정연은 파리라는 도시에 자신을 동화시키기보다, 그 시공간 위를 걷고, 숨쉬며 함께 살아간다.
첫 개인전부터 15년 동안 매년 개인전을 진행하고도 단 한 번도 긴 휴식 시간을 가져 본 적 없는 작가는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민정연이라는 작가로서 치열하게 작업에 몰두한다. 작업실에서 드로잉을 시작할 때, 밑바탕 작업을 미리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본인의 기억의 숲에 몸을 맡기는데, 작가는 그래서 특별히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늘 본인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 오래된 바위 지층에서 화석을 발견했듯, 작가에게 작업은 겹겹이 축적된 기억 속에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자 ‘나’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작가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신내림 굿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 어린 민정연이 있다. 망자의 영혼을 보이지 않는 세계로 길을 터주는 하얀 깃털 모양의 ‘지전’이 어린 작가의 영혼을 뒤흔든다. 깃털의 날갯짓이 두 세계의 경계를 공존시키고 연결시켜 줬듯, 민정연 작가는 스스로가 ‘깃털’이 되고자 한다. 사실 민정연의 숲 속에 펼쳐져 있는 직선의 나무 기둥들 사이로 우리는 유기적인 형태의 하얀 깃털들을 관찰할 수 있다. 거대한 물고기가 어느 날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장자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았는데,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우리가 민정연의 숲 속에서 볼 수 있는 새의 날개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거대한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오직 거친 태풍이 칠 때뿐이다. 희망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이 동반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민정연의 미로와 같은 숲 속에서 궁극적으로 겪게 되는 미적 경험일 것이다.
인간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기계화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가장 인간다운 것’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의 다음 프로젝트 주제는 ‘스스로 샤먼이 되다(Devenir chaman de soi-même)’이다. 주술적 의미에서의 샤먼이 아니라, ‘나’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 작가는 관객들이 각자가 가진 경직된 경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바람을 일으키고, 뒤흔들며, 결국 ‘더 확장된 세계’로 날아가게 한다.
민정연 | JUNG-YEON MIN
1979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00년 홍익대를 졸업하고 파리로 온 민정연 작가는 2006년 파리 국립 고등미술대학교(École National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를 졸업한다. 현실과 가상을, 정형과 비정형을 넘나드는 그녀의 독특한 예술 세계는 데뷔 때부터 유럽미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파리, 뉴욕, 런던, 취리히, 모스크바, 서울 등 전 세계에서 매년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메트로폴 뮤지엄(Musée d’art moderne et contemporain Saint-Étienne Métropole)에서 최고의 현대 드로잉 작품에 수상하는 제3회 ‘파트너 클럽 어워드(Prix du Club des Partenaires)’에서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며, 같은 해 생테티엔 미술관에서 개인전 <내 신발에게 길을 묻다(Demander le chemin à mes chaussures)>를 진행했다. 2015년에 파리 세르누치 미술관 <파리-서울-파리(Paris-Séoul-Paris)> 전시에 참여했고, 2017년 모스크바 동양 박물관에서 개인전 <공간의 기억(The Memory of Space)>을 진행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공고히 했다. 2019년 기메 동양 박물관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개인전을 가지게 되는데, 민정연은 비단 한국인이라는 국가적 카테고리를 넘어서서, 현재 유럽예술 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현재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툴롱(Toulon)으로 이전해서 유럽 각지에 예정된 전시를 위해 작업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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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Min Jung-Yeon & Galerie Maria Lund, Paris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David Aymon, Thierry Ollivier, Thierry Est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