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예술의 가치를 존중하고 전통을 이어가는 '아트 국가'. 중세시대 요세가 떠오르는 프랑스의 수많은 고성古城은 건축, 회화, 정원디자인 등 옛 전통미를 고스란히 품은 그 자체로 완벽한 아트라 할만하다. 수많은 고성 중 아름답기가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리보 성Rivau Castle의 성주가 우리 옛 도시, 전주를 찾았다. 내공있는 아트 컬렉터이기도 한 그녀가 바라본 한국의 고택과 전통예술.
리보 성 성주 파트리시아(우)와 그녀의 남편 에리크(좌)
한국, 전통적인 도시 전주를 방문한 까닭
한국 친구에게 전주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전주는 서울처럼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진 도시는 아니지만 숨겨진 보물, 전통이 잘 보존돼 있어서 한국문화의 수도와 같은 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해 직접 보고 싶어졌어요. 전주는 한 마디로 영감을 주는 도시에요.옛 시간을 안내하며 상상력이 차오르게 하는 곳이죠. 차 없는 거리를 걸으면서 이곳의 옛 사람들이 거니는 모습을 그리는 것은 정말 즐겁고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전주는 서울하고는 완전히 달랐어요. 균일성을 이루는 한옥들이 아주 인상적이었죠.
오래된 멋진 나무들 또한 좋아요. 왕의 초상화 주변을 지키는 멋진 곡선의 나무들과 300년이나 됐다는 키 작은 매화나무가 마음에 들어요. 곧 있으면 잎이 나는 계절이라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자꾸 상상하게 됐죠.
저희 성에도 많은 나무들이 있어요.(*리보성의 정원은 그 지역에서 꼭 들러봐야 할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알려져 있다) 여행을 다닐 때도 나무들을 유심히 보는데, 조형적으로 독특하거나 멋진 선을 그리는 나무를 보면 항상 사진을 찍어두죠.
프랑스 '옛 집' 고성의 성주가 한국의 '옛 집' 한옥에 묵다
한옥은 우선 시각적으로 남다르게 다가왔어요. 정원의 나무와 지붕, 그리고 집을 이루는 목재, 이 세 개의 존재가 서로 다른 세 가지 컬러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제가 살고 있는 고성도, 전주의 한옥도 아주 오래된 집이에요. 다른 점이라 한다면, 유럽의 고성들은 돌로 지어진 반면 한옥은 나무로 지어졌다는 거에요. 모양은 좀 다르지만 지붕이 기와라는 재료로 지어진 것은 비슷해요. 아! 지붕 바로 아래층의 구조물이 나무로 되어 있다는 점도 유사하네요.
한옥에서의 하루밤은 감동이었어요. 신발을 신지 않고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맨발로 집 안을 다니는 것은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이라 여겨졌어요. 집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선과 비교할 때 아주 다른 지점이라 생각해요. 제일 좋았던 것은 ‘온돌’이었어요. (*파트리시아는 온돌이 깔린 식당에 갔을 때부터 처음 만난 ‘따뜻한 바닥’의 원리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바닥에서 따뜻한 온기가 올라오는 것이 너무 좋았죠. 한옥 안에는 한국의 전통가구들도 있어 좋았는데 기대보다 많이 배치돼 있지 않아 아쉬웠어요.
유서깊은 고택 학인당에서 하룻밤을 묵은 파트리시아
'전통'이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과의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보성을 운영하면서 어떠한 노력들을 하는지.
대부분의 다른 고성들은 프랑스의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장소라는 점을 강조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알리고 있죠. 그런데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리보성은 외형 자체가 마치 ‘동화 속 성’과 같기 때문에 우리 성을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하루 밤의 꿈’을 꾸듯이 아름다운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죠.
그것을 위해 저는 전통 위에 상상력을 입힙니다.예를 들어, 옛날 왕의 말을 기르던 공간의 원형은 전통 그대로 보존하면서, 실제로 말을 타던 기사들이 어떻게 생활했을지 상상력으로 완성한 필름을 상영하는 식이죠. 여름이 되면 기사들의 전투를 재연하기도 해요.전설의 시간들을 불러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죠. 성에서 개최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들도 빼놓을 수 없어요. 모든 노력들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에요. 과거 공간에만 머무른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이곳에서 즐겁지 못할 테니까요.
도예가 진정욱의 공방과 전통부채, 전주전통기념품숍 등을 방문했다.
한국의 다양한 전통예술을 경험하며 어떤 것을 느꼈는지.
전주에서 한국의 여러 전통문화들을 직접 만났어요. 도자기, 부채, 한지...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좋았죠.한국 도자기는 유럽에도 잘 알려져 있고 원래 저도 관심이 있었어요. 이번에 진정욱 작가 작업장을 방문했을 때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이 전통가마였어요.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죠. 옛 사람들은 이런 가마에서 이렇게 도자기를 만들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현대적인 기술이 없어도 충분했어요. 여러개의 칸으로 이어진 가마 길이가 20m 이상이었는데, 각 칸마다 온도를 달리하며 구울 수 있지 않았을까 짐작하기도 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제 남편 에리끄도 한국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요. 남편과 함께 중국을 방문했을 때 고려청자 전시회를 본 적이 있었는데, 에리끄는 지금도 그 때 보았던, 고려청자의 푸른 빛이 주는 감동을 이야기하곤 해요. (*파트리시아는 프랑스에서 종종 미디어의 인터뷰 요청을 받는데 한 잡지기자가 기사에 ‘고려청자 빛깔의 눈동자를 지닌 파트리시아’라라고 소개했을 때 너무 기뻤다고 했다.)
또,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이 한지였어요. 유럽에서는 종이를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을 볼 수 없었거든요. 모든 작업을 독특한 전통방식으로, 수작업으로 하는 것을 보면서, 종이라는 것이 하나의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어요.
위봉산에 자리한 도예가 진정욱(좌측)의 공방에서
아트에 조예가 깊다고 들었는데. 어떤 안목으로 콜렉팅을 하고 소장
작품 가운데 가장 애착을 느끼는 콜렉션은?
저는 예술을 너무나 좋아해요. 그것이 제가 콜렉션을 하는 이유죠. 저는 꿈을 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작가가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 세계 속에서 작품의 세계 역시 잘 표현해 내고, 무엇보다 작가가 자신의 영감을 충분하게 표현해 냈는지를 중요하게 보죠.
여러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만 고르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반드시 꼽으라면, 부르자의 <안 팔린 장화>와 장 피에르 레노Jean-Pierre RAYNAUD의 <화분>이 떠오르네요. 정원에 설치돼 있어서 우리 리보성을 더 동화 속 성처럼 만들어 주는 <안 팔린 장화>는 대형 작품이에요. 두 개다 왼발인 거인의 신발이죠. 이 작품은 작가의 메시지가 잘 담겨있어요. 공장에서 끊임없이 쏟아내는 물건들이 사실, 우리에게 다 필요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필요 없는 데도너무 많이 만들어 내는 과잉의 시대, 그런 소비사회를비판하고자 하는 것이죠. 인간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연 속에 모두있다는 작가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어요.
저는 배우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인생에서 배움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언제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번에 한국을 찾은것도, 한국이란 곳을 더 배우기 위해서였죠. 배움의 끝은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몰랐던 한국의 전통가옥을 보면서 호기심은 더 커졌고, 한국의 현대미술과 한국의 많은 작가들에 대해서도 더 많이 더 깊게 알고 싶어졌어요.
한국작가의 작품을 본인이 소유하는 리보성에서 곧 소개 예정인데.
이번에 직접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만나면서, 한국의 예술을 알게 해준 친구에게 더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올 4월 열릴 전시회에 대한 기대도 더욱 커졌죠.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에서 소개할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이곳 프랑스에서 많은 공감을 얻길 바라고 있어요. 이번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앞으로도이런 만남과 교류가 계속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한국의 예술에 대해서는 정말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죠. 성으로 돌아가도 저는 바쁠 거 에요.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해야 하니까요.
글 박나리(ARTMINE 컨텐츠 에디터) | 정리 황정현(다큐멘터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