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 인간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도형이다.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최초의 조형 언어가 ‘선’이라면 원은 그 선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쉽고 완벽한 형태라 하겠다. 작가 윤솔은 원을 도예 작업에 옮겨와 다양한 ‘구’를 빚는 작업으로 20년 간 자신 만의 시리즈를 일관되게 선보여왔다. 여러 크기의 구를 캐스팅 기법으로 만든 뒤 직선과 곡선으로 잘라 단면들을 연결하는데, 반원 형태의 구들이 쌓이고 확장된 입체적 산물은 줄기세포의 ‘자가 번식’처럼 엄청난 생명력과 에너지를 내포한다. 자유자재로 품에 두고 자르고 빚기 위해서 지름은 최대 40cm를 넘지 않는다. 구의 단면을 정제된 티타늄 칼로 긋고 잘라, 잇고 연마하며 십 수개의 유닛을 연결하는 모습이 언뜻 매스를 든 의사와 닮았다. 컴퓨터 작업으로 사전 드로잉을 완벽하게 맞춘, 그리하여 일체의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 ‘고도의 수술’인 셈이다.

WRITE 박나리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 PHOTOHRAGH 박우진(키메라앤스튜디오) VIDEO 김햇살 (매거진 <아트마인> 영상 매니저)

도예 작업 전 컴퓨터로 정교하게 3D 도면을 만드는 작가 윤솔의 작업은 마치 정교한 수술을 앞둔 의사의 그것과 닮았다.
도예 작업 전 컴퓨터로 정교하게 3D 도면을 만드는 작가 윤솔의 작업은 마치 정교한 수술을 앞둔 의사의 그것과 닮았다.

올록볼록 드라마틱한 유기적 곡선을 드러낸 순백의 오브제는 무수한 구의 탄생·소멸의 반복을 통해 빚은 작가 윤솔의 새로운 유기체다. “조형 오브제든 식기류든 작업의 모든 시작과 끝은 구와 연결된다”는 그의 말처럼, 도자라는 이름 아래 놓인 다양한 시리즈는 반드시 ‘원’의 형태 안에서 확장되고 그 맥을 이어간다. 201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공예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작가에게 지난 1년은 여러모로 되돌아 볼 만한 해다. 공예 분야에 남다른 관심과 후원을 지속하는 아모레퍼시픽과의 협업은 그의 대표작 ‘변화(Variation)’ 시리즈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기회였다.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의 <Contemporary Korean Ceramics>(2017)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미래를 위해 품어야 할 할 동시대 작업으로 인정받으며 V&A 의 소장품이 됐다. 한국과 영국을 잇는 미디어 채널 <London Korean Links>의 에디터 필립 고먼(Philip Gowman)은 “도무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수개의 구가 확장하고 분리하는 작품이다”고 평하기도 했다. 동양의 색조로 꼽히는 순백의 백자를 빚지만, 작업방식과 메시지가 지닌 동시대성 덕분에 윤솔의 작품은 해외에서 더욱 인기가 높다. 특히 도자에 조예 깊은 유럽권에서는 ‘생명과 완성’의 상징물을 해체해 입체적으로 확장한 그의 작품을 하나의 건축적 오브제로 평가한다.
작가로, 교수로, 한 집안의 가장인 마흔 셋 윤솔의 삶에서 가장 여유롭다는 월요일 낙성대 근처 작업실을 찾았다. 최근 찻잔을 제작 중이라며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한 몇 개의 잔을 내어 놓는다. 손잡이 부분을 탁구공처럼 둥근 원으로 처리한 커피 잔을 손바닥에 감싸쥐고 어루만지며 ‘동글동글’ 그 형태가 주는 맛을 느껴본다. 모든 것이 ‘원’에서 출발하는 작가의 작업과 연결되면서 쓰임 또한 완벽한 컵이라는 생각에 유쾌해진다. 이토록 사소한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백을 채우는 조형물이 바로 공예라고 작가가 말하는 듯 하다.


 

A Meaningful Sphere series, 27X27X30cm, 백자토, 백매트유, 슬립캐스팅, 표면연마,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11
A Meaningful Sphere series, 27X27X30cm, 백자토, 백매트유, 슬립캐스팅, 표면연마,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11
Variation 200702, 25X25X26cm, 백자토, 백매트유, 슬립캐스팅,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07
Variation 200702, 25X25X26cm, 백자토, 백매트유, 슬립캐스팅,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07

둥근 , ‘ 모티프로 작업해오고 있어요. ‘구의 작가라는 수사가 붙는 것도 때문이겠죠. 언제부터 원을 주제로 작업을 했나요?
2000년도 학부 시절 지금 작업의 단초를 얻게 됐어요. 식물의 형태를 갖고 작업하는 과정에서 ‘씨앗’을 선택했는데, 잎이 겹겹이 싸여있는 모습이 자연물이라 하기에는 굉장히 수학적이며 입체적이었어요. 그 에너지가 움직이기 위해 물이 필요했고, 그 형상을 지금의 ‘변화(Variation)’, ‘원형(Archetype)’ 에서 볼 수 있듯 원 형상 안에 파란 색을 칠해 표현했어요. 처음에는 흙의 물성적 부분을 이용해 작은 공을 도구로 외부 표면의 형태를 잡아갔어요. 그 시절에는 입체형상이 아닌 판의 형태였죠. 내부가 보이지 않는 닫힌 형태의 외형적인 모습은 볼록볼록한 느낌이 가득했어요. 어느 순간 닫힌 형태를 한번 열어보자는 생각을 했고,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엄청난 라인들이 나오더라고요. 어떤 각도로 단면을 자르더라도 느낌이 달랐죠. 그렇게 개폐된 구의 곡면과 곡면이 만나니 날카로운 모서리와 꼭지가 생기고, 단면과 단면끼리는 가시 같은 형상을 연출하고요. 마치 생명이 지닌 이중성을 보는 듯 했죠. 생명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영역을 만들어 담고, 가시 같은 자의적 도구를 통해 생명의 강인함을 대변하는 모습 같은 걸요.

원을 모티프로 작업하는지?’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도 해요.
보편적으로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이죠. 미시적으로 들어가면 어미의 ‘자궁(womb)’과 ‘세포(cell)’를 이야기할 수 있겠고,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행성, 지구와 같은 세상의 모든 개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괄하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자들은 중력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작가로서 그렇게 풀고 싶지는 않고요. 어렵게 자각할 필요 없이 그냥 공유되는 ‘느낌적인 느낌’을 도예라는 예술로 풀어내고 싶은 것 같아요. 혹자는 구를 보면 과일이나 껍질, 눈알이 떠오를 수 있는 것처럼 사람마다 제 작품을 보고 느끼는 ‘구’의 이미지는 다르지만 ‘무엇이든 추측 가능하다’는 거에요. 각자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형상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데, 그 대상이 무엇이든 태초에는 단순한 구 형태에서 시작이 됐다는 게 굉장히 역설적이지 않나요? 가장 단순한 형태로부터 뭔가를 만들고, 그것이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 되는 과정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 또한 '구'와 연결되어 있다고요.
둥근 형태는 제게 탐구와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의 이야기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근처에도 가지 않을 만큼 풍선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릴 적 어느 날 폭신하고 예쁜 색의 풍선이 제 얼굴 앞에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는데, 너무 놀라기도 했고,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어린 아이의 작은 행복, 그때의 상실감과 충격이 둥근 형태에 이입되면서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 저에게 구는 다양한 자신의 내면을 대변하는 대상이기도 한거죠. 저는 작업을 통해 깨지는 것은 곧 소멸하는 것이 아닌(어릴 적 기억처럼) 새로운 탄생임을 보여주고 싶어요. 일종의 극복과 수양의 가정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죠. 어릴 적 느낌 상실감에 대한 보상, 제가 원을 모티프로 작업 하는 내면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죠.

색채적인 부분에서백자 선택한 이유는요?
<어린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의 말 중에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게 아닌,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에게는 ‘백(白)’이 그런 상태의 색상이에요. 사진을 찍어보면 흰색이 조명을 비췄을 때 볼륨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색 같고요. 중요한 것은 제 작품이 단순히 미니멀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데 있어요. 질감에 시선을 뺏기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사람들이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잖아요. ‘구(球)’를 통해 작품의 온전한 메시지를 담고 싶기 때문에 감상을 저해하지 않는 색상, 덜어내고 덜어낸 형태의 가장 미니멀한 색감이 백자였어요. 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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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도 고도의 기술과 도예가로서의 정제된 호흡이 느껴져요.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우선은 슬립 캐스팅으로 여러 형태의 구를 제작합니다. 처음부터 두께가 얇으면 가마에서 견디지를 못하기 때문에 마르지 않은 상태의 구의 단면을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을 해요. 이 건조 상태에서 거의 90%의 작업을 끝냅니다. 이후 900 ℃ 정도에서 초벌 가마 뒤, 작품을 물에 넣고 사포질을 해요. 이 과정에서 미세한 스크래치를 90% 이상 없애는 거죠. 1260 ℃에서 재벌굽기를 하면 비로소 세라믹이 되는데, 돌처럼 강성이 높아 쉽게 연마하기 힘들어요.

프로세스 가운데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요?
작업의 30 %정도를 연마에 사용해요. 제 작품에 곡선이 많은 관계로 기계의 힘을 빌릴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요. 일일이 장시간 사포를 문지르며 연마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레이어의 단면을 얇게 연마하고, 여러 유닛을 붙이는 작업에서 고도의 기술이 느껴져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요. 정제미가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이다 보니 어느 곳에 놓일지 공간까지 그려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작품을 어느 곳에 놓을지 미리 결정하고 구매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단순히 작품이 아름다워서, 마음을 움직여서라기 보다는 확실히 놓을 공간이 있을 때 적극적인 구매가 이뤄지는 편이에요. 아키타입 시리즈를 구매한 외국 컬렉터분은 작품을 본인의 그랜드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싶어 하더라고요. 유광 피아노 표면에 작품이 반사됐을 때 연출되는 이미지를 염두 하면서요. 프랑스 컬렉터 분은 ‘드디어 본인의 컬렉션이 완성됐다’며 메일을 보내왔어요. ‘닫힌 형태’의 구를 중첩한 덴마크 작가 스텐 입센(Steen Ipsen)의 도자 오브제 옆에 ‘열린 형태’의 구를 놓고 싶었는데 제 작품이 이상적이었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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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이 6개의 시리즈 안에 소개되고 있어요. 각각의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모든 작업이 구에서 파생하는데 시리즈마다 주제가 조금씩 달라 현재는 6개 정도 되요. ‘변화(Variation)’ 작업은 슬립캐스팅을 통해 제작한 단위체들을 재단하고 접합해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닫힌 형태를 최초로 열며 시작된 작품인데, 초기에는 종양이나 암세포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아름다움 보다는 형태적인 부분에서 실험을 많이 했죠. 치열하게 생명이 번식하는 느낌을 주고 싶어 작은 구를 다닥다닥 붙이다 보니 그런 얘기들이 나왔던 것 같아요. ‘인피니티(Infinity)’ 시리즈는 ‘확장과 응집’의 키워드로 작업했어요. 마치 장미 봉오리를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죠. ‘원형으로부터(From the Archetype)’ 라는 시리즈는 ‘원’이라는 모체에서 출발한, 그러니까 구의 파편들이 하나의 도자로 기능하는 작품들이에요. 이 시리즈는 다시’From the Archetype_B’와 ‘From the Archetype_C’로 라인을 세분화했어요. B는 ‘Boarder’의 약자로, 무언가 경계에 있는 작품들을 소개해요. 접시 같지만 오브제 같기도 한, 주체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제품들이 여기 속하죠. C라인은 ‘Curve’에서 모티프를 얻어 좀 더 작은 피스들을 아우릅니다. 브로치나 그릇처럼 작은 조각들을 일컫는데, 이들은 향후 부조작업을 하는 단초가 될 거에요. ‘리프 콘테이너(Leaf Container)’는 식기류를 시리즈를 모았고요. 훨씬 다양한 시리즈를 만들고자 계속 노력 중이에요.

From the Archetype_B line_edge set, 55X19X14cm, 백자토, 백매트유, 탄산동유, 슬립캐스팅, 표면연마,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14. 시카고 SOFA에서 미국 컬렉터가 구매한 작품이다.
From the Archetype_B line_edge set, 55X19X14cm, 백자토, 백매트유, 탄산동유, 슬립캐스팅, 표면연마,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14. 시카고 SOFA에서 미국 컬렉터가 구매한 작품이다.
Variation 200901, 26X27X21cm, 백자토, 백매트유, 탄산동유, 슬립캐스팅,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09
Variation 200901, 26X27X21cm, 백자토, 백매트유, 탄산동유, 슬립캐스팅, 1260℃ 산화소성, 제작년도 2009
Variation of Space series 201601, 47X50X38cm, 제작년도 2016. 2018년 런던 V&A 뮤지엄에 소장된 작품.
Variation of Space series 201601, 47X50X38cm, 제작년도 2016. 2018년 런던 V&A 뮤지엄에 소장된 작품.

지난 15 번의 개인전과 수십 차례 국내외 그룹전을 열며 도예가윤솔 알려왔어요. 가운데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는다면요?
2016년 프랑스 베르나르도에서 연 <Ceramique Contemporaine Coreenne> 전시는 기존 화이트큐브 형태의 정제된 공간이 아닌, 가마공장에서 진행해 이색적이었어요. 완성된 작품들이 그것을 낳은 가마 위에 툭툭 놓인 풍경이 굉장히 이질적이면서 파워풀 했죠. 작품을 소개하는 데 있어 인스톨레이션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였고요.

지난해 펜실베니아에서 필라델피아 크래프트쇼(Philadelphia Craft Shopw2017)’에서는 현지의 평가가 굉장히 높았다고 들었어요.
임팩트가 높은 조형 오브제 위주로 선별해 인피니티와 아키타입 시리즈, ‘루나 시리즈’로 만든 그릇 9점을 출품했습니다. 제 작업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목적을 두었죠. 유럽 쪽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편인데, 미국 쪽은 두 번째 참가하는 거라 아직 잘 모르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판매가 목적이 아니다 보니 수량이 많이 부족했던 건 경험을 통해 배운 부분이죠. 출품 작 가운데 인피티니 시리즈와 루나 작업의 판매가 좋았어요. 공예페어에서 제작하는 자체 브로슈어에 작품 이미지가 사용되기도 했고요.

작품은 현재 어느 곳에서 판매되고 있나요?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식기의 경우 무엇이 담기길 바라나요.
‘솔루나 리빙’(www.solunaliving.com)과 ‘정소영의 식기장’(sikijang.com)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조형 오브제 작업물보다는 일상 생활에 사용 가능한 식기류의 반응이 좋은 편이에요. 놓인 공간은 물론, 담기는 음식과도 잘 맞았으면 해요. 부피는 작지만 그릇 류 또한 조형 작업을 하는 만큼 공을 들여요. 하나의 하이엔드(high-end), 고도의 정제된 기술로 끝까지 다듬어가는 거에요. 어떤 작품을 보더라도 ‘윤솔’의 온기를 느낄 수 있도록 평 접시든 볼이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 제 마음이 궁극적으로 식기에 담겼으면 해요.

가마공장에서 열린 프랑스 베르나르도 재단의 전시
가마공장에서 열린 프랑스 베르나르도 재단의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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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 공예전 공예 열풍을 타고 공예작가들과 협업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어요. 윤솔 작가도 지난해설화문화전으로 유명한 아모레 퍼시픽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는데요.
작업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개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어요. 단, 작품이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놓이길 바라죠. 기회가 된다면 ‘사운드’에 관련된 음향 쪽으로 협업을 하고 싶어요. 제 작품의 모티프인 구라는 게 뭔가를 담는 이미지를 내포하고, 그런 측면에서 사운드가 분출되는 스피커 작품과 잘 맞을 것 같아요. 음향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어 큰 볼 안에 소리를 담으려고 시도 중이에요. 인피니티 시리즈에서 가운데 핵이 되는 부분을 비우고 스피커를 내장해 보이지 않게 만든다면 어떨까 생각해봐요.

작업이 풀리지 않을 때는 무엇으로부터 단서를 찾고 영감을 얻나요?
행성과 우주에 관심이 많아 책과 다큐멘터리를 즐겨 봐요. ‘구란 결국 우주를 통틀어 공통된 언어’라는 생각을 해요. ‘구를 가지고 저 멀리 다른 생명체에게 보여주면 그들도 알아볼 것’이라고요.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는 제 3법칙에서 ‘모든 행성의 공전주기 제곱은 공전궤도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고 해요. 수학적 공식일 뿐이지만 ‘모든 행성’이라는 전제를 하죠. 구와 지름으로 이야기되는 세상의 이치들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놀랍죠. 학설 가운데, 우리 포유류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6500만년 전에 떨어진 거대 소행성 때문이라는 내용이 있어요. 그때 공룡이 모두 멸종됐지만, 작은 포유류들은 땅 속에 숨어 진화해 인간이 됐다고 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부셔졌다’는 거에요. 파괴가 이루어져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것이고, 그것이 구를 통해 생명의 이중성을 이야기하는 저의 작업과 닿아있어요. 제 작업의 뼈대를 붙일 수 있을 만한 단서들을 그런 곳에서 찾아요. 아름답게만 빚는데 머물지 않고 이면에 담기는 스토리 또한 풍성하게 쌓는 것도 제게는 중요해요. 작품이 어머니의 자궁이고 생명을 품은 알이라고 늘 이야기해봤자, 사람들은 좀 더 논리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작가에게 요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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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 홍보 채널이 다양해진 만큼 작가들에게 작업 외적인 부분을 요구하는 시대에요. 작품 촬영, 홈페이지 관리, 작품 소개 영문번역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스스로 하고 있어요.
작품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결국 작가라는 생각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스스로 하려고 해요. 스튜디오 한 쪽에 촬영 장비를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해외에서 작품 관련 메일을 받으면 그쪽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바로 촬영해 전달할 수 있고요. 부족하지만 과정 속에 배우는 것이 많아요.

한국 작품이 해외에서 평가 받고, 체계적인 맥락 안에서 소개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어요. ‘한국적인 공예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의도적으로 한국성을 담으려고 하지 않아요. 어제 국립국악원 연극 <꼭두>를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다는 뉴스가 나오더라고요. 맥락은 같아요. ‘국악과 영화감독과의 만남’으로 이슈가 됐는데, 음악 감독이 “국악은 우리 속에 있는 이야기다. 늘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요. 선과 어떤 라인을 긋던, 우리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적인 라인이 자연스레 나오는 거지 메시지나 소재를 의도적으로 찾지는 않아요. 한국적인 부분을 안고 작업하는 작가나 저나 맥락은 같다는 거죠. 결국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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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Sol | CERAMIC ARTIST
구와 구의 결합과 해체 속에 독창적인 ‘구’를 창조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있다. 1995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입학, 2012년 동 대학원에서 공예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0년 간 대학에서 도자를 배우며 작가는 ‘구’와 처음 만났고, 작가로서 활동하는 지금도 구에 관한 6가지 시리즈를 선보이며 활동 중이다.  2015년 KCDF 갤러리에서 연 <REFINE>을 포함해 그간 3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독창적인 스타일로 다수의 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7년 필라델피아 크래프트 쇼(Philadelphia Craft Show, 2017), 2017년 V&A 뮤지엄의 <Contemporary Korean Ceramics>, 2016년 프랑스 베르나르도 재단의 <Ceramique Contemporaine Coreenne> 전, 2014년 SOFA Chicago 등 50회 가까운 국내외 그룹전을 경험했다. 특히 2017년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제품 광고 아트 콜라보레이션으로 ‘구의 작가’로서 대중적인지도를 넓혔다. 2005년 스와로브스키 작은 소품 공모전 금상 수상을 발판으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대학민국 현대도예공모전 등 도예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을 다수 수여했다. 주요 소장처로 V&A 뮤지엄, 아모레퍼시픽, 홍콩 콰이펑힌 갤러리(Kwai Fung Hin Art Gallery), 스와로브스키, 뮌헨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관 피나코테크(Pinakothek der Moderne) 등이 있다. 직접 사진 촬영과 영문 번역을 맡아 제작한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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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윤솔 – ARTMINING, SEOUL, 2018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