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영 작가는 살아 숨쉬는 '조형'을 만들기 위해 기물에 미세한 돌기를 붙여 생명을 부여한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만지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컬러풀한 도자들은 이 젊은 공예가가 인간의 '촉각'에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공예주간에서 단연 주목할 만한 작가군 중 하나였던 공예가 한수영을 만났다.

WRITE 이보현(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에디터)  ALL RESOURCES 한수영

한수영 작가는 도자기에 ‘털’을 심는다. 시선에 따라 돌기 혹은 장식이라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작가는 정확히 ‘털’이라 말한다. 한수영 작가의 화려한 색감과 특유의 질감이 돋보이는 도자 작품은 관객의 시각을 사로잡고 촉각을 자극한다. 미술품과 물리적 거리를 둔 채 관람하는 전시문화가 익숙한 관객들조차 연신 “만져봐도 돼요?”라는 물음을 던질 정도다. “만지고 싶고 가까이서 보고 싶은 작품을 추구한다”는 작가는 “제발 만져주세요”라고 답한다. 직접적인 감각을 통해 관객과 사물이 교감하길 바라는 작업 의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한수영 작가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는 10살에 아기 코끼리를 탄 특별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움직이는 코끼리의 맨 등에 앉아 털을 만지는데 감각한다는 것이 무언지 알게 됐다.” 작가는 강렬한 감각적 경험을 코끼리에 투영했고 오랜 시간 코끼리를 그리고 만들었다. 예술 중학교, 예술 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예술전공 학사를 거쳐 동대학원 도자예술전공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기까지, 언제나 코끼리와 함께했다.

많은 이들이 어느 순간 익숙함이란 매너리즘에 빠지듯 작가 역시 “과연 이제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하는 의문을 품는 순간도 있었다. 코끼리로 상징되는 자신의 원초적 기억을 다시금 돌아보면서 ‘생명력’이란 키워드를 재발견했다. 문득 그간 자신이 만든 도자 기물들이 먼지가 쌓인 채로 선반에 놓여있는 모습에서 ‘죽어있다’는 인상을 받은 작가는 ‘사물을 제대로 감각하자’는 작업 목표를 세웠다. 코끼리의 형상은 생명의 순간이 은유된 코끼리의 ‘털’로 발전했고, 작가는 색소지로 털을 만들어 사물에 심기 시작했다.

독창적인 조형적 표현 기법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는 원형의 모티프를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오래된 전통 공예품에 뒀다. 아름답지만 쇼윈도 안에 갇힌 도자기들이 마치 집에서 마주했던 먼지 쌓인 도자기들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손길이 닿지 않는 사물을 제대로 감각하고 싶다” 는 생각은 옛 기물들의 형태 구현으로 이어졌고, 다채로운 색의 털을 심음으로써 전통의 것을 현대적 미감을 살린 작품으로 발전했다.

딱딱하고 자극적인 도자 조각이 붙은 기물이지만 그림자는 섬유 공예품같이 부드럽고 몽글한 물성을 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태피스트리처럼 세련되고 회화스러운 색 조합 역시 눈길을 끈다. 작가는 작업 과정 중 일련의 구상적 장면을 단순화한 자연스럽고 추상적인 패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색 배합에 가장 공을 들인다. 도자기 위에 색연필로 도안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어울리는 색 피스들을 조합하며 신중히 선택한다. 한번 시작하면 다시 떼어내기 어려운 털을 심는 과정이 한 작품당 적게는 10시간에서 크게는 100시간이 넘기 때문이다. 상당한 품과 노고가 드는 작업임에도 작가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며 “촉각적 효과가 배가 될 수 있는 큰 규모의 작품도 도전하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강렬했던 옛 경험에 머무는 것이 아닌 감각을 감각하며, 새로운 형식으로 또 다른 감각을 깨우기 위함이다.

"감각되지 않는 기물의 공간에 ‘털’을 심습니다.
사물들은 우리의 눈길과 손길이 닿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물들의 구석구석을 다시금 바라보고 만져보기를 바랍니다"

쓰임 있는 사물을 만드는 공예가로서 실용성과 심미성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도 늘 염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먼지가 쌓이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작가는 미술품으로 평가받는 자신의 작품이 보다 유용성을 갖춘 공예품이 되기 위해 양 끝단을 자유롭게 거닐며 적절한 자리를 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아직은 ‘영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는 작가는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한다. 일찍이 작가로서 개성을 갖춘 것이 양날의 검이 될 거라 경계하며 더 나은 것을 위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아직은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한다. 내게 부모님이 주셨던 믿음과 스스로의 확신을 위해서, 지금껏 들였던 모든 시간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끝까지 꾸준하고 성실하게 작업할 것이다.”라는 뭉클한 작가의 말은 훗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누군가 자신을 떠올렸을 때 시각을 넘어선 ‘촉감’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작가는 “어디선가 제 작업을 만나게 되신다면, 그게 어디에 놓여있든 꼭 만져 보시고 작품과 교감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2019 공예주간, 한남동 위치한 위클리캐비닛에서 열린 <자연물 : natural object>전에서 만난 한수영 작가의 기물들
2019 공예주간, 한남동 위치한 위클리캐비닛에서 열린 <자연물 : natural object>전에서 만난 한수영 작가의 기물들
한수영, 시월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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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영, 네모와 세모와 동그라미가 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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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영, 둥근코끼리를 품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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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영 | Ceramic Artist

이화여자대학교 도자예술전공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예술전공 재학중인 작가는 촉각을 자극하는 사물을 만든다.  유년시절 코끼리에게서 느꼈던 생동감 넘치는 감각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만지고 싶고 가까이서 보고 싶은 작품'을 추구하며 사물에 '털'을 심는다. 개성있는 조형적 표현기법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가 쌓여가는 기물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전통 도자의 형태에 가미된 작가의 현대적 미감은 미술품과 공예품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관객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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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한수영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한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