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필라멘트 전구를 쓴 정체불명의 캐릭터가 먼 허공을 응시한다. 유전자가 변형되어 본디 동물성을 상실한 캐릭터들은 두려움에 떨거나 슬픈 표정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머리 위 빈 전구에 ‘빛’을 켤 수 있을까? 디자인 브랜드 '소구씨'를 운영하는 도예가 소혜정은 감정을 이입한 다양한 캐릭터와 식기를 통해 사회에서 느끼는 회의감과 사건들을 다룬다.
WRITE 박나리(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Y 소혜정
A JOURNEY TO FIND
PERSONALITY
작가 ‘소혜정’과 직접 운영하는 도자 브랜드 ‘소구씨(sogoossi)’ 두 개의 이름으로 각각 활동 중입니다. 각각 어떤 작품들을 제작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우선 작가 소혜정은 오브제 작업을 위주로 다양한 대형 도자작업들을 이루고 있어요. 작가의 머릿속에 든 상상이나 감정들을 이미지로 나타내 자아세계를 표현하는 캐릭터로 인물에 가까운 형태에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에서 느끼는 회의감, 문제, 사건 등을 ‘나’의 시각으로 표현하고 다양한 실루엣을 만들어 내고 있죠. ‘소구씨’는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는 도자 아트토이 브랜드에요. 재미있는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그 캐릭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아트 소품을 제작해 사람들의 문화생활에 자리 잡는 것을 추구합니다. 주 타깃인 20~30대가 실제 생활에서 친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캐릭터와 연결시켜,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지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있죠.
다양한 공예 분야 가운데 ‘도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흙이라는 물성이 가진 유동적인 매력이 지금까지 저를 작업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처음엔 무르고 약하지만 뭐든 형상화 될 수 있고, 만드는 과정에 선택할 수 있는 갈래가 다양해 흥미로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솔직한 재료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그 형태와 이미지가 나타나거든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안되기 때문에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긴장감을 주죠.
‘매개체’를 내세운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에디슨전구’는 도예가 소혜정의 작업에 등장하는 시그니처 중 하나인데, 전구를 선택한 이유와 그것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요.
저는 에디슨 전구가 가장 좋아요. 다른 전구들을 너무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거든요. 에디슨 전구 특유의 아날로그 적인 느낌도 마음에 들고, 특히나 필라멘트의 꼬인 선 모양이 마치 머릿속에 그려지는 생각의 구조 같아 캐릭터에 생동감을 살려주는 장치로 풀어내고 있죠. 통상적으로 캐릭터의 자아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생명을 부여하는 거에요. 저는 전구의 빛을 ‘그린다’라고 표현하는데, 그 이유는 전구 안의 필라멘트 모양의 따라 캐릭터의 감정이 표현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캐릭터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관객에게 자신이 머릿속에 내용을 빛을 통해 그려 보여준다는 맥락도 가지고 있어 ‘그린다’는 말을 좋아해요.
팔과 다리가 없는 아이(조각 시리즈), 공포에 질리거나 화가 난 사람들(자아 시리즈)와 같은 강렬하고 다소 그로테스크한 작업들이 눈에 띄어요. 작가 소혜정의 자아, 현대사회 속에서 느끼는 심리라고 봐도 될까요.
그렇게 화가 난건 아닌데··· (웃음). 작업을 하다 보면 자극적인 감정에 도취되거나 빠져들기 마련이잖아요. 저는 그런 작업을 할 때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골똘히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제 모습을 끄집어내 캐릭터화 하다 보니 저런 얼굴 표정이 작품으로 나온 듯 하네요.
그처럼 어둡고 암울한 사회,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는 작업들을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직관적으로 밝고 행복한 작업들을 보여주기 보다는 어둡고 암울하지만 그 속에서 밝은 이야기가 있는 편이 조금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처음에 접했을 때에는 어둡다고 생각하지만 계속 관찰하다 보면 그 내면에 밝은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 스스로 인간의 내면은 아름답고 밝다고 믿는 것 같아요. 저에게 작업은 하나의 일기에요. 일기에는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죠. 그런 제 내면의 생각을 작품으로 하나씩 표현하는 거죠.
“에디슨 전구 특유의 아날로그 적인 느낌이 좋아요. 특히나 필라멘트의 꼬인 선 모양이 마치 머릿속에 그려지는 생각의 구조 같아 캐릭터에 생동감을 살려주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죠. 통상적으로 캐릭터의 자아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생명을 부여하는 거에요.” _도예가 소혜정
슬립 캐스팅 작업은 어느 부분까지 이루어지나요? 사람 형상의 피겨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전부 성형틀을 만드는지, 코와 눈, 손, 귀 같은 특정 부위는 손으로 빚는지 작업 과정이 슬립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오브제 작품은 대부분 코일링으로 작업해요. 귀나 손, 발 같은 부분은 따로 원형을 만들고 그 틀을 떠서 눌러 찍기로 작업한 뒤 몸체에 붙이죠. 아무래도 큰 오브제 작업들은 무게 균형을 맞춰야 하기에 좀 더 섬세하게 손으로 코일을 쌓아 형태를 만들어 나가요. 슬립캐스팅은 <블랙애니멀즈> 시리즈나 <소별찌> 시리즈와 같은 아트상품에서 사용하는 기법이에요. 일정한 형태를 대량 생산 하기에는 슬립캐스팅이 적절하기 때문이에요.
피겨 도자에 필라멘트 전구는 어떻게 부착하나요?
도자기로 작업을 하면서 흙의 수축률을 계산해 대략적인 구멍을 뚫어놔요. 전구소켓과 전선이 들어갈 위치를 염두에 두면서요. 정확히 맞출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사이즈를 계산하고 살짝 넉넉한 사이즈 를 만들어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마에서 나온 기물에 전선을 먼저 넣고 양쪽에 소켓과 콘센트를 연결해 에폭시로 고정하죠.
러스터, 시멘트, 실크소지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믹스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어요. 도예가로서 다양한 재료에 대한 접목에 관해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얻나요?
일단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그에 필요한 작업이면 다양한 물성을 찾아봐요. 원하는 효과를 최대치로 표현하기 위해 뭐든 수용하는 거죠. 도자기는 웬만해서는 어떤 재료와든 융합이 가능한 재료거든요. 그래서 도자기를 기본으로 다양한 재료들을 끌고 와 작업하죠. 도자기에도 단점이 있긴 한데, 부피가 커질수록 강성이 약해진다는 거에요. 나무, 유리, 콘크리트 등 다양한 재료를 함께 사용하면 재료의 융합해서 생기는 신선한 이미지와 함께 도자기의 단점도 줄일 수 있어 좋은 대안이죠.
직접 운영하는 아트토이 브랜드 ‘소구씨(sogoossi)’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해요. 브랜드를 운영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대학교 졸업 직후인 2015년 3월, 처음에는 동기와 함께 ‘파라파라팜(parpaparparm)’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처음 시작했었어요. 각자의 캐릭터를 가진 상태에서 하나의 브랜드를 운영했는데 2년쯤 함께 운영하다가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분산되었죠. 그 뒤2017년부터 ‘소구씨(sogoossi)’라는 브랜드로 도자와 캐릭터 작품 등으로 이야기가 묻어난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30대를 타킷으로 일상 생활에서 친근하게 사용한 테이블 웨어(술잔, 커피잔, 캔들램프 등)를 제작하고 있어요. 어떤 제품들이 인기인지,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술잔 인기가 높아요.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구입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나를 위한 선물이나 ‘소확행’에 대한 문화소비가 주를 이루면서 ‘소별찌(sobeoyljji)’ 상품들도 반응이 좋아요. 제품을 제작하는 방식 특성상 똑같은 모양이 없는데, 그 때문에 특별한 선물의 의미로 많이들 찾더라고요.
다섯 명의 ‘블랙애니멀’을 캐릭터화한 작업들을 소구씨에서 판매 중이에요. 듀곰(?-1), 늘보 늘(?-2), 토선생(?-3), 콩닥(?-4), 콩(?-5). 각각의 캐릭터는 어떤 매세지를 담고 있나요? 캐릭터 이름에 ‘물음표(?)’가 들어간 점도 궁금하고요.
‘블랙애니멀’ 시리즈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만들어진 귀여운 돌연변이 동물들을 표현한 캐릭터에요. 무분별하게 변형되어 복제되고 있는 애니멀 공장에서 탈출한 이들은 자신의 본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펼치는데, 머리 위의 전구는 이들의 본성을 보여주는 매개체죠.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결국 머리에 불을 밝힐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기본 시놉시스로 하고 있어요. 대표 캐릭터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면 생각이 많아 머리가 무거운 듀곰(?-1), 두 손 꼭 모으고 예의 바른 늘보 늘(?-2), 까칠하지만 속 깊은 토선생(?-3), 언젠간 하늘을 나는 꿈을 가진 콩닥(?-4). 그런 콩닥과 함께 꿈을 꾸는 콩(?-5)들이 있어요. 각각의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가치관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 괄호 안의 ‘물음표(?)’는 애니멀 공장에서 부여 받은 이름을 뜻해요. 산업화 된 이름 외에 변화를 위해 자신들끼리 새 이름을 지어주고 변화를 만들어가죠.
이 다섯 가지 블랙애니멀 중 작가 ‘소혜정’과 가장 닮은 것을 꼽는다면요?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건 ‘듀곰(?-1)’이에요. 통통한 볼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제가 제일 애정을 가지고 만든 작업이라 많은 걸 쏟아 부은 캐릭터라 더 닮은 듯 해요. 아트토이 시리즈 중 가장 먼저 만든 작업이라 그런지 애착이 많아가고 맏형의 듬직한 캐릭터의 성격이 제 성향과 비슷한 것 같아요.
도자를 통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사회적 현상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앞으로 좀 더 작업을 통해 펼쳐내고 싶은 이야기는요?
항상 가지고 있는 생각이 사회에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사회의 일원으로 하나의 톱니바퀴의 모습을 가지고 싶었어요. 그럼 내가 가진 능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다 보니 나의 생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작을 울림을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저는 작가니 작업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식기류인 ‘소별찌(Sobyeoljji)’의 시그니처인 그릇 아래 높은 굽 부분의 색감이 독특해요. 색화장토 기법, 어떻게 제작하는지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고화도 안료를 이용해 색색의 흙을 조색한 뒤, 겹겹이 중첩시켜 긁는 과정을 거쳐요. 형태와 재질이 다른 도구들을 이용해 독특한 느낌이 연출되도록 긁어내죠. 찰나에 가하는 힘으로 인해 생기는 패턴은 그 우연성으로 인해 저마다 달라요. ‘세상 하나뿐인 내 것’이라는 특별함이 더해져 오브제로서도 의미가 있죠.
마치 회화의 액션페인팅 기법을 보는 듯한 거칠고 자유로운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고화도 안료, 실크소지, 러스터 같은 재료를 통한 효과일까요? 각각 흙, 도자와 만났을 때 지금의 결과물을 만드는 데 어떤 매력이 있는 재료들인가요?
흙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한 색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특히나 고화도 안료는 높은 온도를 거치며 높은 채도의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내죠. 소별찌(Sobyeoljji)의 특별한 색들은 고화도 안료의 조색과정을 통해 만들어져요. 실크소지라는 흙 종류에 넣어 사용하는데, 입자가 곱기 때문에 캐스팅작업에 용이하고 색도 깨끗하게 만들어 낼 수 있죠. 많은 분들이 공감하겠지만 도예작업의 화룡점정은 ‘러스터’인 것 같아요. 금을 뿌리면 축축 쳐지는 느낌도 살려내요. 마치 눈 화장에서 글리터를 뿌리면 얼굴이 화려해지는 효과를 가지는 것처럼요. 특히나 소별찌(Sobyeoljji)의 모티브가 되는 별똥별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좋은 재료 입니다.
지금껏 해왔던 전시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전시는 무엇인가요?
최근에 마무리했던 ‘2019 공예트렌드페어’요. 오롯이 저만의 공간이 주어진 상태에서 처음으로 꾸려본 전시라 그런지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 <우주에서 온 택배>라는 전시명으로 작게나마 저만의 작업으로 공간을 채워 봤는데, 좋은 리뷰도 얻고 스스로도 자극이 되어서인지 나중에는 좀 더 큰 공간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내년에는 개인전을 준비하려 해요.
지난 1년 간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활동하며 가장 좋았던 점, 작업에 있어 큰 동력이 되었다면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까요?
신당창작아케이드는 수도권에서는 드문 공예 레시던시에요. 공예인에게 필요한 다양한 인프라와 커리큘럼이 잘 만들어져 있죠. 특히 도예를 포함해 목공, 금속, 섬유 등 다양한 분야에 작가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작업적으로 의견을 구할 수 있어요. 특히나 다양한 재료를 쓰는 저에게는 실무적인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파티와 모임이 많은 연말과 연초가 이어지고 있어요. 소혜정 작가의 작품으로 테이블 세팅을 한다면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까요?
파티 하면 역시 조명과 술이죠. 마침 그 두 가지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 있어요. 테이블 주변에 제 ‘자아 시리즈’를 배치해서 분위기를 연출한 뒤, 테이블에는 ‘헤롱헤롱 술잔’을 비롯한 다양한 ‘소별찌 잔’으로 구성하면 하나의 우주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음료를 다 마신 후 식기를 흔들면 소별찌 안에 들어 있는 도자기 구슬이 부딪치며 소리가 나는데 마치 연말에 울리는 종소리 같은 느낌으로 흥을 돋울 수 있겠죠.
소혜정 | HYEJUNG SO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한 작가는 다양한 도자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자아를 표현하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에서 느끼는 분노, 상실감,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들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표정들로 변주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큰 오브제 작업을 하는 작가 소혜정 본명, 그리고 술잔이나 식기류 등 일상에서 쉽게 사용 가능한 도자 소품들을 판매하는 디자인 브랜드 ‘소구씨’를 운영 중이다. 신당창작아케이드 10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며, 2019 공예트렌드페어 등에 참여하며 꾸준히 작업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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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소혜정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HEYJUNG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