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WE ARE?
섬유예술가 이준의 작업은 강렬한 '색'으로 눈에서 먼저 폭발한다.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이야기 가득한 꽃밭같아 보이지만, 뛰어난 위장술이다.
사람 형상의 8인치의 미니어처 작품 '방관자'로 잘 알려진 이준 작가는,
군중 안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는 능력이 뛰어난 '개인'들을 불러내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가?"
화려한 색 실과 패턴은 어려운 얘기라면 질색하는 사람들의 경계를 쉽게 허문다.
빗장은 열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 셈이다.

부단히 이끌어온 작업 주제는 ‘인간’이예요. 크랜브룩 아카데미 졸업전시 작품 ‘우리는 누구인가? (Who We Are?)’는 스무 벌의 남성 교복과 스무 벌의 여성 교복을 통해 같은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각자 다른 행동을 취하는 ‘책상 밑 손’을 끌어내 보였어요.
제 관심사는 ‘색(Color)’과 ‘인체’예요. 학교에서도 인체 수업을 제일 많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궁금해지더군요. 보여지는 그대로의 육체적인(Physical) 인체에 대한 관심인가, 사람의 내면에 대한 관심인가. 그러다 ‘가장 기본적인 사람은 누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았어요. 가장 잘 아는 사람인 ‘저’로부터 시작하는 작업을 석사 때부터 하고 있고, 점점 저를 포함한 그룹인 가족과 친구 같은 작은 무리로부터 더 너른 범위로 관심사를 확장해왔어요.
개별적으로만은 존재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파생되기 마련인 어두운 심리에 주목해 왔어요. 특히 문화적인 배경이 다른 사회적 환경에서 살며 작가가 겪은 경험에 근거한 작업을 보면 혼종된 정체성이 드러나기도 해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옮겨갔으니까요. 정체성이 확립되려는 시기에 대단히 반대적인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었고요. 외국인, 여성, 아시아인으로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혼자 지내며 늘 불안했어요. 학교 안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 누군가 사망할 때마다 ‘나의 존재 증명’은 누가 해줄 수 있는지 생각했고요.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중에 하나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어요.
작가에게 핵심 재료인 실은 보편적으로 관계의 끈을 상징하는데, 작가 개인으로 끌어가 본다면 상처를 치유하는 ‘외피’라는 해석도 가능하네요.
틀어진 부분을 메워주는 새로운 표피이기도 하고요.
방관자들은 컬러 외에도 특징적인 ‘문양’들이 개별성을 강조합니다.
본래 100개를 목표했던 방관자는 한 사람의 인생을 표현하는 컬러를 선택하고 실을 감아 만든 작업이에요. 최초의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해 다시 제작하면서 단 하나의 색으로만 한 사람이 보여지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됐어요. 각자의 개성을 색과 패턴으로 입혀보고자 의도했고, 제가 아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설정했죠. 한정적인 범주를 넘어 친구의 친구, 그의 사촌 등 건너건너의 사람, 뉴스로 접한 사람, 책 속의 캐릭터 등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조합해 ‘하나의 인간들’을 만들어 왔어요. 개별성이 중요한 방관자들은 캐릭터가 겹쳐지지 않도록 신경 써요. 넘버링 해 아카이브로 축적하고, 날짜 별로 작업을 기록해요. 현재까지 650개를 제작했는데, 각각의 번호에 사용한 색 실을 찾아 수리도 가능해요. 모든 실을 샘플 별로 저장해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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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작가는, 똑같아 보이는 형상들을 반복해 사용하면서도
각각에 개성을 입히는 요소들을 사물화를 통해 병치시킨다.
많은 관람객들이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이라고 직설적인 텍스트로 읽는 ‘목격자(Witness)’ 시리즈는 자신을 ‘군중’의 일부로 감추는 아이러니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고요.
‘목격자’는 ‘방관자’의 속편 작업이에요. 스스로 눈과 입과 귀를 가린 모습인데, ‘당신의 의지로 방관자가 되었나? 타의에 의한 상황인가?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 질문하죠. 입이 있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귀가 있어도 ‘사실’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선택한 침묵 역시 어떻든 ‘자기 의지’에 따른 행동이니까요.
헤드와 입상 형태로 전개해온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는 인체와 사물을 결합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이들을 조합하는 계획은 어떻게 세우나요?
직업군이나 연령대로 나누기도 하고 모두 결합하기도 해요. 이제까지는 보여지는 사물들 그 자체를 만들어 왔다면, 현재 여러 레지던시나 펠로우십을 지원하며 확장된 방향으로 제안서를 내고 있어요. 저 혼자 작업이 아닌 일반 관객과 함께 만드는 워크샵 형식으로요. 그들이 느끼는 중압감,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가장 작은 물체를 만들고 하나로 모아 완성해보고 싶어요.
2015년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 펠로우십을 받았고, 대만 Pier2 Artist in Residency, 네덜란드 European Ceramic Work Center 등 여러 나라에서 경험을 가져왔어요. 2020년에는 뉴욕주 중부 도시 우티카에 위치한 조형센터(Sculpture Center)로 떠나네요.
첫 레지던스를 한 버몬트는 뉴욕에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곳에서 겪은 문화적 충격이 도자기 작업을 시작하게 이끌었어요. 작업실, 숙소, 식당만 오가는 생활 외에는 볼 것도 할 것도 없는 ‘외딴 환경’에서 웃기게도 고려청자 미니어처를 발견했거든요. 누가 봐도 한국 인사동에서 샀다고 보이는 도자 기념품이 제 눈에는 ‘우리 역사’를 먼저 떠올리게 만들지만, 배경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에게는 장식 소품이나 예쁜 기념품에 불과한 사물이라는 점이 새로웠죠. 과거라면 해외 반출 불가한 고려청자를 지금은 물 건너 먼 곳으로도 쉽게 건너가 존재할 수 있는 시대라는 점도요. 도자기 작업 ‘그의 역사(His History)’를 시작하고 더 전문적인 배움이 필요해 도자 전문 레지던스가 있는 네덜란드 European Ceramic Work Center에 지원했어요. 기본적으로 도자기는 한 나라의 역사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인데, 각기 다른 배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한데서 작업하니 새롭더라고요. 그러한 경험을 통해 많이 배워요. 이제까지 주로 미국에서 레지던스 경험을 했는데,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고 싶어요. 특히 여러 국적을 가진 작가들이 모이는 유럽 쪽으로요. 새로운 자극과 경험 지식 사이에서 호기심이 탄생하기 마련이죠. 어떤 부분을 차용 가능한지도 알게 되고요. 그런 관점에서 가끔은 협업도 좋은 방법이에요.
국제적인 아트 시장에서 특히 주목 받아온 작가만의 특징은 무언가요.
다채로운 색. 부담스럽다, 튄다, 정신 없다는 반응도 있지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컬렉터는 누구인가요?
첫 손님이죠. 크랜브룩 아카데미는 1년에 한번씩 학교 발전기금 모금 행사를 열고 주민들을 초대해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후원자들이 많이 찾는데, 저는 학교에 들어간지 한달 정도였던 터라 작품이 팔리리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멋진 백발의 노신사가 황금노방으로 만든 흉상 가격을 묻기에 나름대로 재료비와 손바느질의 공력을 따져서 250달러로 책정했어요. 가만히 듣더니 양복 주머니에서 꺼낸 지갑 안에 수표 한 장을 떼더니 1천불을 써줬어요. 다음 행사에서도 다른 제 작업을 컬렉팅했고요. 작가로서 살아가는데 큰 용기를 불어넣어준 컬렉터에요.
최근에 만난 컬렉터 중 특별한 사람이 있다면요?
러시아 손님이요. 기업을 운영하는 CEO인데, <인간의 무게(Weight of Human)> 입상 작품을 사갔어요. 집무실 책상 위에 작품을 올려두고 가끔 말을 건넨대요. “너도 나만큼 힘들구나. 나도 너도 같이 힘내자” 하고.



인체나 군상의 형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작업을 해왔어요.
앞으로 작업을 통해서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이제까지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존재성’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면, 이제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삶’을 깊이 들여다보려고 해요. 정확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겠네요.
개념적인 집인가요? 물리적인 집인가요?
두 가지 모두 결합된 ‘집’이에요. 제게는 부모님과 같이 사는 집에 있지만, 함께 산 시간은 많지 않아요. 스무 살 이후부터는 집밖으로 돌아다니고 있고 기숙사와 집 계약도 매년 바뀌었어요. 가방 두 개를 들고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있는 레지던시를 다니며 집처럼 살고 있고요. 제 외조부의 고향이 개성이에요. 다시는 고향집에 가볼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과, 저처럼 언제든 살던 곳에 가볼 수 있는 사람이 갖는 집의 느낌은 또 다르겠지요. 그래서 더욱 저에게 ‘집’은 다른 색으로도 보게 되는 대상이에요. 요즘 한참 생각하고 있어요. ‘반드시 어딘가로 돌아갈 곳이 필요한가? 그 존재가 안정감을 주는가? 노마딕 라이프라도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는가? 나는 무엇을 추구하나?’
뿌리, 고향,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야기인 셈인데, 그 역시 결국 자의에 의한 선택인가에 관한 질문이네요. 결국 작가가 던져온 질문의 핵심은 ‘자의와 타의’에 따른 ‘선택적인 삶’이라고요.
맞아요.
가까이 예정되어 있는 전시는요?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열리는 섬유 트리엔날레가 내년까지 이어지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하는 섬유 비엔날레 전시가 예정되어 있어요.
나이키, 삼성전자, 시몬느, 루이까또즈 등의 기업과 브랜드는 물론 강준영 작가와도 협업하며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제가 안 해본 쪽과 가장 재미있게 한 협업은 루이까또즈와 진행한 가죽 작업이에요. 가죽 끝 마무리를 위해 색을 바르는 ‘엣지코트’ 작업을 차용해서 의자를 만들었어요. 기본적인 엣지코트 컬러 외에도 원하는 대로 색 조합이 가능한 신세계라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어요.
다채로운 컬러에 대한 갈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요?
갈증이라기 보다는, 유년의 놀이에서부터 체화된 기억이라고 봐요. 동양화를 전공한 어머니에게는 알록달록한 안료가 많았고, 작은 접시에 개어진 안료들을 섞으며 놀았던 제가 있었어요. 엄마는 한 마디도 뭐라 하지 않았고, 미술학원 수업이나 입시 미술도 시키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플라스틱 계란 판에 색을 섞고 놀아본 경험이 저의 색 차트를 갖게 된 팔 할이에요. 어떤 색을 섞으면 무엇이 나올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당연시되는 경험을 가졌으니까요.

WRITE 장남미(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Y 이주연

이준 | JUNE LEE
서울에서 태어나 18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시카고 예술 대학에서 학사 학위(BFA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Painting and Drawing, Chicago, IL)를 받았고, 미시건에 위치한 크랜브룩 아카데미(MFA at Cranbrook Academy of Art in Fiber)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했다. 2012년 뉴욕 킵스갤러리 개인전 <우리는 누구인가?>, 2016년 대만 카오슝 보얼 예술 특구에서 개인전 <방관자>를 가진바 있다. 미국, 스위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안국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전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현대인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해온 작가는, 개성을 가진 개인이자 사회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이기도 한 현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탐구하며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방관자 효과, 군중심리, 책임전가, 편견 등 현대인의 부정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인간의 삶을 나타내는 동양적인 요소인 실을 주재료 하여 인체 모형과 함께 현대인의 문제점들을 제3자적 관점에서 관망하는 시선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https://www.junele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