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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유럽 추상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로서 파리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갤러리 바지우’. 이곳을 이끄는 수장, 사빈 바지우는 전부터 아시아 추상 예술에 깊이 매료된다. ‘1950년부터 오늘날까지 아시아 추상 미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갤러리스트이자,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인 연구를 마다하지 않는 컬렉터로서, 사빈은 작가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한다.

내년 6월 오픈 예정인 피노 컬렉션 미술관, 2024년 이전해 오게 될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등 유명 미술 재단과 갤러리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루브르길에 첫 번째로 자리를 잡은 갤러리 바지우. 현재 파리 미술계에서 새로운 예술 허브로 주목받고 있는 이 지역으로, 갤러리 바지우는 올해 2월 전략적으로 이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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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국 추상미술 선구자 촹체 작품 앞에 선 사빈 바지우는, 몇 년 전부터 아시아 추상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증국 추상미술 선구자 촹체 작품 앞에 선 사빈 바지우는, 몇 년 전부터 아시아 추상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사빈은, 단순히 사진으로 보고 전시할 작가를 고르지 않는다. 작가들의 아틀리에에 직접 방문해 대화를 나눈 뒤 협업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결정한 작가들은 단순히 갤러리 바지우를 통한 작품 판매를 넘어서는 지원을 받는다. 사빈이 이끄는 큐레이터 팀이 해당 작가에 대한 전폭적인 홍보에 힘쓰기 때문이다. 유럽의 세계적 미술관 전시와, 주요 기관 컬렉션 홍보에 주력을 다한다. 미술관 전시가 작가들을 유럽의 미술 애호가들과 영향력 있는 컬렉터들에게 이름을 알리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자, 그들의 예술을 가치 있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접근이라 생각하는 사빈은 오래전부터 미술관들과 협업 전시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 예술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파리4 소르본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1997년에 전후 유럽 추상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를 열었습니다. 전후 추상미술 시기는 사실 프랑스 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프랑스로 몰려왔고, 그 중에는 당연히 중국, 한국의 아시아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유럽 미술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작가들로는 자우키(Zao Wou-Ki), 추테춘(Chu Teh-Chun), 남관, 김환기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아시아 작가들에 대한 저의 관심은 바로 이 시대, 즉 2차 세계대전 후 파리에 정착하기 시작한 극동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부터였어요. 그들이 추상미술을 대하는 방식은 서양의 그것과는 엄연히 달랐습니다.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미학이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추상미술에 저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를 개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범위는 파리에 와서 추상미술을 배운 작가들을 넘어서서, 자국에서 서양의 예술을 받아들인 전후 아시아 작가들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여행하기 시작했죠.

갤러리 바지우만의 특별한 작가 선정 기준과 작품 선택 지점은 무언가요?
서양 추상미술 전문가로서 저의 지식은 아시아 추상미술을 말 그대로 ‘서양인의 시선’에서 볼 수 있게 해줬어요. 예를 들어, 동양 추상미술의 어떤 점이 서양의 추상미술과 다르고, 또 어떤 점이 비슷한지, 더 나아가 어떤 새로운 것을 서양 미술에 가져다 줬는지 등을 서양인의 시선에서, 즉 서양 미술사적 관점에서 접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특히, 추상미술을 통해 아시아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작가들을 소개해 왔습니다. 이 정체성은 단순히 국가적 정체성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가진 동양의 철학적 혹은 정신적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양 현대 미술에서 동양의 철학과 사상은 이미 꽤 친숙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동양의 예술가들이 현대예술을 접근하는 방식은 서양인의 관점에서 늘 다른, 어떤 새로운 태도들이 존재합니다. 아시아 예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양 갤러리스트로서, 저의 특별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 동양 예술의 차이점, 그 새로움을 유럽에 소개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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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디렉터이자 비평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일본 아티스트 켄지로 오카자키와 일본 여류 추상화가 요코 마츠모토의 작품.

갤러리 바지우를 통해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초대 개인전을 가진 중국 추상미술 선구자 퐁청레이(Fong Chung-Ray)의 작품들. 왼쪽부터 1989년 작 'The Great Rule', 1999년 작 'Composition', 1966년 작 'Composition'.

갤러리 바지우를 통해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초대 개인전을 가진 중국 추상미술 선구자 퐁청레이(Fong Chung-Ray)의 작품들. 왼쪽부터 1989년 작 'The Great Rule', 1999년 작 'Composition', 1966년 작 'Composition'.

아시아 작가들을 선정하는 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보통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시나 아트 페어를 통해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인 연구를 통해 발굴하기도 합니다. 또한 주위 전문가들에게 추천도 받고요. 제 흥미를 끄는 작가가 있다면, 저는 무조건 작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합니다. 파리와 아시아와의 거리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과정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작가를 직접 만나서 그들의 예술 세계와 인생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오랜 호흡을 가지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적 신뢰 관계가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절대 사진을 보고 전시할 작가를 결정하지 않아요.

아시아 작가들을 유럽에 프로모션 하는 방법적인 전략은요?
우선은 제 갤러리에서 전시를 진행합니다. 또한 유럽의 아트 페어들에 참여해 홍보도 하고요. 그렇지만 저희 갤러리만의 주된 프로모션은 유럽 뮤지엄과의 전시 협업입니다. 예를 들어 2017년, 벨기에 브뤼셀 이셀 뮤지엄(Musée d’Ixelles)에서 <From China to Taiwan> 이라는 테마전을 기획했는데, 전시를 통해 자우키같이 이미 알려진 작가들뿐만 아니라, 촹체(Chuang Che) 퐁청레이(Fong Chung-Ray) 같은 중국 본토의 추상미술 선구자들을 소개 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에는 프랑스 니스 아시아 미술관(Musée des Arts Asiatiques de Nice)에서 현대중국 작가를 중심으로 한 테마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이 전시를 통해 중국 전통 산수화를 현재의 아시아 작가들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이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사실 이렇게 유럽의 뮤지엄에서 전시를 진행하고 나면, 어떤 아트 페어나 갤러리 전시보다 파급 효과가 뛰어납니다. 아시다시피 공신력 있는 미술관들을 통한 전시는 단순한 홍보를 넘어서 작가 작품세계에 역사적 가치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전시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 미술 기관들의 컬렉션에 작품을 판매하는 것도 주요 갤러리 일 중 하나입니다. 주요 기관 소장품이 되는 것은 유럽 미술시장에서 공신력을 가지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오랜 컬렉팅 역사가 존재하는 프랑스에서 컬렉터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유럽에서 아시아 작가들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큰가요?
20세기 초 프랑스는 유럽과 아시아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작가들로 넘쳐났어요. 즉 아주 오래 전부터 프랑스 컬렉터들은 자우키 같은 유명 작가들을 통해 아시아 예술을 접해 왔습니다. 현대 아시아 예술에 대한 컬렉팅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어요. ‘아시아 나우 파리(Asia Now Paris)’와 같이 아시아 예술만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트 페어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아시아 예술에 대한 유럽 컬렉터들의 수요를 반증해 주고 있죠. 또한 중국, 일본미술에 그치던 관심도 몇 년 전부터 한국미술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유럽 주요 갤러리들에서는 이미 한국 미술을 프로모션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와서 차이점이 있다면, 현대의 프랑스 컬렉터들은 자국에 있지 않고, 아시아로 여행을 간다는 점이에요. 접근성이 매우 좋아졌죠. 바캉스뿐만 아니라 일적으로 아시아는 프랑스 인들에게 빈번히 드나드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어요. 즉 예전에는 유럽에서 아시아 작가를 소개받는 방식이었지만, 현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를 직접 가기도 하고, 주요 아시아 뮤지엄에 열리는 전시를 체크하기도 합니다. 현대 유럽 미술 애호가들은 매우 적극적입니다. 이렇게 유럽과 아시아의 거리적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에, 아시아 작가들은 세계 무대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한국예술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요.
한국예술은 꾸준히 공부해 왔었습니다. 남관, 김환기와 같이 프랑스에 거주한 한국 모던 작가들 작품을 소장하기도 했었고, 개인적 연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여류 추상 미술가 이수재 작가의 작품을 유럽 컬렉터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11월에는 고암 이응노 화백의 아들이자 재불화가인 이융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2020년 봄에는 오세열 작가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어요. 또한 한국 아르브뤼 작가들과 수묵을 새롭게 해석한 한국 컨템포러리 작가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어요. 하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특별한 장르나 표현법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유럽 시장과의 가능성을 고려하며, 유연하게 접근하고 싶어요. 2020년 1월에 다양한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이수재 'Composition'. oil on canvas. 56.5 x 129.5 cm
이수재 'Composition'. oil on canvas. 56.5 x 129.5 cm
남관 'Rythme oriental(동양적 리듬)',1966. oil on canvas. 50 x 73 cm
남관 'Rythme oriental(동양적 리듬)',1966. oil on canvas. 50 x 73 cm
남관 'Très ancien(아주오래된)', 1967. oil on canvas. 49.5 x 61 cm
남관 'Très ancien(아주오래된)', 1967. oil on canvas. 49.5 x 61 cm
남관 'Jardin Blanc(하얀정원)',1965. oil on canvas. 49.5 x 65 cm
남관 'Jardin Blanc(하얀정원)',1965. oil on canvas. 49.5 x 65 cm

갤러리 바지우가 추구하는 예술적인 지향점이 궁금합니다.
현재의 갤러리는 전후 아시아 추상미술에 전문화되어 있어, 작가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올해 진행된 갤러리 이전을 계기로 좀 더 컨템포러리 작가들로 확장할 생각입니다. 즉, 특정 시대나 장르를 넘어서서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기존의 갤러리가 쌓아온 예술적 방향은 지키면서 새로운 작가군을 준비 중인데, 아시아 아르브뤼(Art Brut)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또한 수묵을 새롭게 해석한 현대 아시아 작가들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올해 갤러리 위치 이전을 통해 지리적인 이점도 커졌다고요.
원래 갤러리는 파리 드루오 경매회사(Drouot) 본사가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어요. 그러다 올해 2월에, 파리 1구 루브르길 5번지(5bis rue du Louvre, 75003,Paris) 로 이전을 했습니다. 총 150m²크기로 지상1층과 지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1층 공간은 높이만 약 4미터로 대형 작품을 전시하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길에서 작품이 잘 보이기도 하구요. 갤러리 이전은 매우 전략적 접근이었어요. 사실 저희 갤러리 바로 옆에는, 내년 6월에 오픈 예정인 피노 컬렉션 미술관(Pinault Collection)이 위치하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미술 애호가들이 연중무휴로 몰려들 예정일 만큼, 저희 갤러리뿐만 아니라, 여러 갤러리들이 차츰 루브르길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어요. 사실 피노 컬렉션 미술관뿐만 아니라, 2024년에는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Fondation Cartier)도 이 지역으로 이전을 준비 중이에요. 루브르길은 현재 파리 미술계에서 새로운 예술 허브로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이 지역은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뿐 아니라 전문가, 컬렉터들로 넘쳐 날 거에요. 이 장소가 작가들에게 최고의 노출도를 보장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이전을 결심했습니다. 저희는 첫 번째로 루브르길에 자리 잡은 갤러리 중 하나이지만, 앞으로 많은 갤러리들이 생겨날수록 집적 효과로 작품의 노출도는 훨씬 높아질 거에요.

WRITE 윤해정(매거진 아트마인 프랑스 통신원)  PHOTOGRAPHY 갤러리 바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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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갤러리 바지우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갤러리 바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