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크로(Velcro)'라는 일상의 재료로 아름다운 장신구를 디자인 한 김용주 작가의 남양주 작업실을 방문했다. 새의 깃털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가벼운 브로치와 귀걸이, 목걸이 류를 주로 선보여온 작가는 최근 벽면에 걸 수 있는 오브제 피스로 작품 스케일을 확장 중이다. 작가로서 활동한지 올해로 10년. 상반기에만 뮌헨과 밀라노, 파리에서 전시를 앞둔 분주한 작업실을 찾았다.
WRITE 박나리(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 이주연 VIDEO 황승헌(매거진 <아트마인> 영상 매니저)
작가라면 누구나 지속 가능한 작업을 통해 생명력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갖기 마련이다. 김용주의 지난 십 년은 존재를 증명하는 '절박한' 시간이었다.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Velcro)’를 소재로 관객의 선입견과 컬러의 한계, 형태의 변주라는 현실의 장벽에서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저렴한 일상 소재가 값비싼 아트 주얼리가 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우려했지만, 어느 장소와 옷차림에도 어울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쓰임이 다양한 브로치와 목걸이를 선보였다. 레드와 블랙, 회색 벨크로 외에는 달리 사용할 재료가 전무한 상황에서도 염색을 통해 색상을 뽑아내고, 장신구 디자인을 대형 오브제 작품으로 확장하며 끊임없이 작가로서의 생명력을 연장해왔다. “현실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든 작업을 이어가고자 한계를 극복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작가의 말에는 생존의 시간을 건너온 이의 연륜이 담겨 있다. 선처럼 얇은 벨크로 조각을 이어 붙여 완성한 장신구에서 느껴지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이유는 그 때문일 테다.
한국에서 섬유 및 금속공예,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한 김용주는 세계적인 아트 장신구를 이야기할 늘 거론되는 이름이다. 학업을 마친 2009년 미국 ‘Society for Contemporary Craft’ 파이널리스트, LYDON 신인예술가상을 수상하며 글로벌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특히 팽이가 연상되는 세 점의 팔찌 시리즈 ‘In Light of Space II’는 2016년 세계 최고의 장신구 박물관 V&A 에 영구 소장되었으며, 매년 SOFA 시카고, 메종 오브제, 베이징 국제 주얼리 아트 비엔날레 등 최고의 장신구 아트페어에 출전해오고 있다. 지난 1월 4일까지 열린 이유진갤러리의 <사가보월> 전에서는 신작 대부분이 판매되며 대중적인 인기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직접 제작한 장신구를 다양하게 착용한 사진들이 인상적이에요. 작품을 소화하는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요.
제 작품의 큰 장점이 가볍다는 거에요. 한 여름에 면 티셔츠 위에 브로치를 붙여도 옷이 늘어지지 않을 만큼요. 떨어트리더라도 깨지지 않고 운반도 편하죠. 먼지가 앉는 부분만 신경 쓰면 되는데 상자나 비닐에 보관하면 문제되지 않아요. 10년 전 만든 작품을 지금도 착용 중인데 괜찮더라고요.
여러 공예 장르 가운데 ‘장신구’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직접 하고 다닐 수 있는 ‘기동성이 있는 예술품’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금속, 섬유, 도자, 옻칠 네 가지를 모두 공부한 뒤 전공을 선택 해야 했었죠. 그러다가 금속과 섬유를 선택했고, 금속 공예와 장신구의 교차점, ‘착용’이라는 부분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왔어요.
‘벨크로(Velcro)’는 상당히 의외의 낯선 재료인데요.
한국에서 공부 할 당시에는 남들이 봐도 값비싸고 아름다워 보이는 고가 귀금속 재료를 썼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가치 없는 재료로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때부터 생활 속에서 재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빨대, 콩, PVC, 고무, 플라스틱처럼 주로 철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만을 사용했죠. 어떻게 하면 ‘나 스스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을까’, ‘몰랐던 재료의 특성은 무엇인지’ 관심을 쏟았어요. 그 때 다뤘던 재료 가운데 하나가 벨크로였어요.
재료를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재료적, 재정적인 측면에 대한 이유가 컸어요. 벨크로 하나로 재료를 국한 지을 때 따라오는 많은 우려들을 기꺼이극복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작가로 어떻게 생계유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측면에서,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작가로 살아남을 확률도 높을 거라고 생각했죠. ‘생존’의 조건들을 찾아 끊임없이 연구 하던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새로운 형태는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끊임없이 창작이 지속될 수 있는지 계속 실험하는 과정의 연속 같아요.
미국 유학 시절 벨크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활동하던 경험들이 장신구를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막연하게 해외에서 공부하고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관점의 확대, 새로운 견문의 확장에 집중하던 시절이었죠. 유학 시절에는 지금처럼 작가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어요.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떤 옷과 가방, 액세서리를 들었는지에 집중하다 미국으로 건너 갔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없는 거에요. 서서히 사소한 것에 시선을 두기 시작했죠. 돌이나 풀, 꽃이나 나무 같은 일상의 오브제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법을 배웠어요. 환경이 바뀌다 보니 자연스레 문화도 바뀐 듯해요. 그런 것들이 작품에 은연 중 담기는 것 같고요.
미국 유학 뒤 2010년 첫 개인전을 열었어요.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의 작업을 인정 받는 순간은 결국 작품이 판매됐을 때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작업의 원동력이 됐던 전시나 인상 깊은 컬렉터가 있을까요.
미국에서는 좀 더 과감하고 큰 장신구를 찾는 이들이 많다 보니 목걸이 크기도 크고, 주로 큰 오브제 피스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귀금속류가 아니지만 자신감 있게 다양한 소재의 아트 장신구를 착용하는 걸 보며 컬렉터들이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로 돌아와 예술의 전당에서 작은 부스 형태의 개인전을 열게 됐는데, 한 여성 분이 찾아 온 거에요. 미국에서 막 활동하고 온 터라 장신구 컬러도 대부분 회색톤에 부피도 크고 디자인도 과감했어요. 그런데 그 분이 작품 주문을 많이 하시는 거죠. 5~6년 이때의 인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어요. 지금은 장신구 디자인 쪽에서는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 푸른문화재단의 구혜원 대표님이에요.
10년 여간 작업을 이어오며 힘든 시기는 없었나요.
귀걸이나 목걸이, 팔찌, 브로치 같은 작은 사이즈의 장신구 작업을 하다 큰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설치 작품이나 벽에 거는 부조 형태의 ‘오브제 피스’를 생각하고 막연히 부피를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작품이 커지며 따라오는 무게와 중력을 염두에 두지 못했어요. 부피가 커지면서 원하던 형태로 작품이 완성되기 보다는 형태가 내려앉는 거에요. 큰 오브제 피스에는 작은 장신구처럼 형태를 고정하기 위해 바느질을 하지 않아요. 접착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런 이유에서 ‘성숙의 과정’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무게나 중력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최근 이유진 갤러리의 <사가보월> 전시에서 큰 오브제 작업을 선보이면서 다시 한번 힘든 순간을 겪었죠. 작은 장신구는 손에 익어 금방 만들지만, 큰 오브제 작품은 몇 달 정도 걸리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크고 작은 장신구 작업을 병행하면서 슬럼프를 풀어가는 것 같아요.
벽에 거는 큰 오브제 피스의 경우 유기적인 선들이 겹겹이 모여 언뜻 지층의 단면을 떠올리게 해요. 작은 장신구는 새의 깃털 같은 느낌이 들고요. 벨크로로 레이어를 만들 때는 의도적으로 형태를 고민 하나요.
뒤 돌아서서 나중에 무엇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지층에 관심이 많아서 어떻게 구부러지는지, 용암의 흐름, 지구 단층이 어떻게 압력을 받아 움직이는지 등의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미는 방향에 따라 중력을 받아 큰 오브제 작업들의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장신구의 경우에도 형태가 저마다 조금씩 달라 작품을 고르기 쉽지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정직하게 원 같은 기본 형태에서 출발한 장신구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다른 작가가 작품을 모방하는 것을 보면서 남들이 따라 할 수 없도록 좀 더 어렵고 정교하게 작업을 하자는 쪽으로 변화했죠. 날아오는 새의 날개, 둥지에 날개를 접고 앉은 새가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많이 받았어요. 자연스럽게 앵무새 같은 조류의 색상을 공부하며 색상의 변주, 벨크로 사이의 간격 까지도 염두에 두게 됐어요. 처음에는 벨크로 간격도 일일이 맞춰서 촘촘하게 붙이다, 이후 살짝 어긋나게 붙이면서 서로 다른 색상도 섞어가며 형태를 잡아갔죠. 지금은 좀 더 펼쳐진 형태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진화 중인 것 같아요.
벨크로 색상이 다양하지 않다보니 컬러에 대한 한계에 부딪히지는 않나요?
늘 어려운 부분이죠. 컬러차트를 보면서 색상을 찾고 샘플로 제작하며 고민하고 있어요. 초창기에는 회색과 블랙만 사용했어요. 철물점에서 구할 수 있는 벨크로가 다양하지 않거든요. 기본적이고 단순한 재료들을 분해하고 자르다 보니 얇은 선 형태의 벨크로를 재료로 삼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회색과 검정을 쓰다 어느 순간 빨간색 벨크로를 미국 회사에서 찾게 됐어요. 토마토 회사에서 고무 화분 대신 주문한 것이었는데, 그 컬러가 너무 마음에 들어 빨간색으로 작업으로 확장할 수 있었죠..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빨간색과 검정, 검정과 회색을 서로 섞어 쓰고, 흰색 벨크로를 염색해 원하는 색상도 만들게 됐죠. 굉장히 국한된 색상 안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존’ 자체를 고민하는 시간을 오래 보냈어요. 제품은 미국의 벨크로 본사에서 협찬 받아 작업하고 있어요.
장신구 작가들 가운데 작은 소품에서 큰 오브제 작품으로까지 작업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거든요. 그런 면에서 김용주 작가는 액세서리와 설치작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몇 안 되는 아트 주얼리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해외에서는 반응들은 어떤가요?
아트 페어 마다 파트너십을 맺는 갤러리들이 있어요. SOFA 시카고 참여를 가장 많이 했는데, 이곳에서는 ‘노엘 갤러리’를 통해 장신구만 소개해왔죠. ‘샤론 갤러리’와는 마이애미 페어를 보통 함께 하고요. 사실 해외 마켓이 없으면 작업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아요. 그래도 기회가 꾸준히 찾아와 감사하죠. 최근 3~4년 사이 많이 바빠진 것 같아요. 미국에 있을 때는 전시의뢰가 6개월, 1년 전 충분한 시간차를 두고 들어왔다면 한국에서는 좀 빡빡한 면이 있어요. 그래도 한국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다양한 제안들을 소화하다 보니 스캐줄이 촘촘해진 것 같아요. (웃음) 올 3월에는 KCDF를 통해 뮌헨을 가요. 장신구만 소개하는 아트페어 ‘슈무크(Schmuck)’라는 컨벤션 센터에서 전시를 열어요. 갤러리에서도 전시가 많이 이뤄지지만 대안 공간에서도 4일 간 150~200여 개의 전시가 열려요. 목걸이와 브로치 위주로 10점 정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간의 전시 제목을 보면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 열었던 개인전 ‘존중의 문턱’이 대표적이에요.
큰 오브제 작업에 도전하자 중력이 방해물로만 느껴지는 거에요. 처음에는 부정하고 저항하다가 스스로 이 방해물을 응용하고 활용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했죠. 그러면서 떠오른 제목이 ‘존중의 문턱’ 이었어요. 사실 철학적인 제목은 이전에도 사용했었어요. ‘초월의 고비’라는 전시 타이틀도 있었으니까요. 그때는 뭔가 상상하지 못하는 걸 만들어내야 하는 것에 고민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림을 그려놓고 똑같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뭔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창조하면서 스스로 재미를 찾아가는 편이에요.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관객들에게도 즐거움을 준다고 믿고요. 상상력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들로 꾸린 개인전이었죠.
장신구는 공간의 제약이 다른 미술 분야에 비해 적다 보니 전시 장소를 선택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선택폭이 넓을 것 같아요.
보통 개인전을 열 때 40점 정도를 소개해요. 대안공간이나 복합문화공간에서도 열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작년 연말에 북촌 호아드 갤러리에서 연 전시는 창 밖으로 고궁도 보이고 자연광도 많아 좋았어요. 일반 갤러리 공간을 벗어나 좀 더 대중들과 밀접하게 교감할 수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곳 카페와 레스토랑을 이용하기 위해 찾은 손님들이 찾다보니 초대 관객보다 일반 관객들이 훨씬 많았죠.
인상 깊은 관객들의 리뷰가 있다면요? 앞으로 10년 뒤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까요.
기존까지 저를 ‘장신구 작가’로 저를 생각한 분들이 호아드 갤러리에서 선보인 큰 오브제 작업들을 보고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흥미롭더라고요. 제게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본 것 같았죠. “이 큰 벽 전체를 채우는 작업은 어떨까요?” 이런 질문들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고요. 지난 10년간 장신구나 벽에 걸 수 있는 작은 부조 형태가 작업의 최대치였다면, 이제는 좀 더 과감하게 작업할 수 있지 않나 생각의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부담도 되지만 저로서도 기대가 되죠.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그림보다는 그저 바람이 있다면 큰 벽면을 가득 채우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PROFILE
YONG-JOO KIM | JEWERY ARTIST
“장신구로서의 가치를 담지 않는 값싼 일상 재료들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면 어떨까?” 김용주는 공예의 특징인 다양한 물성을 연구해 ‘의외의 작업’을 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0여 년간 흔히 전선을 정리하는 ‘찍찍이 테이프’로 알려진 ‘벨크로(Velcro)’를 소재로 놀라운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숙명여자대학교 공예과에서 섬유 및 금속공예를 전공한 뒤,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에서 주얼리 디자인(Jewelry & Metalsmithing) 석사 졸업했다. 10여 년의 작업 기간 동안 한가람미술관, 갤러리 아원 등에서 크고 작은 전시를 열었다. 벨크로를 얇게 재단해 형태를 잡아가며 완성한 브로치, 목걸이는 물론 회화 작품처럼 걸 수 있는 대형 오브제까지 작업을 확장해가고 있다. 시카고 SOFA, 몬트리올 아트 뮤지엄(Montreal Museum of Fine Arts), 파리 장식미술관, 프라하 디자인블록(Designblok) 등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에 참가한 글로벌 작가다. 미국 NICHE Award 조각장신구부문 대상(2012), 필라델피아 뮤지엄 아트 크래프트 쇼 ‘Adrianna Farrelli Prize’ 조각 장신구부문 대상 수상(2011) 등에 빛난다. 주요 소장처로 런던 V&A 뮤지엄, 뉴욕 아트디자인박물관 등이 있다. http://yongjoo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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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김용주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