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예술도, 사람도 ‘근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근본을 알면 얼마든지 다양한 분야와 섞이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있죠.
옻칠 작업만 50년 째입니다.
지난 작업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죠. ”
WRITE 계안나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 박우진 (키메라앤스튜디오) VIDEO 황승헌(매거진 아트마인 영상 매니저)

독학하다 싶이 옻칠을 연구했다. 공예를 넘어 아트 작업으로 새로움을 보여주고 자 하는 아티스트 정해조.
요즘 공예계가 들썩거린다. 명품 패션 하우스들이 연이어 공예가와의 협업을 선포하고, 패션 브랜드 로에베는 매장 내부를 공예품으로 잔뜩 채운 것도 모자라 2016년부터는 로에베 공예상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들도 공예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각자의 작품에 섬유, 도자, 가죽 등 다양한 공예 기술을 더해 새로운 비주얼을 만들고 있는 것. 현대 공예계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공예가는 옛것을 전승하되 지속적으로 현대적 감각을 쌓아 올리며, 단단한 것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공예를 일상생활에 조금 더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세우기 위해 협업도 시도한다. 점점 세련된 모양새로 진화 중인 현대 공예를 두고 ‘공예인가, 미술인가’라는 공방이 필요할까?
2018년 로에베 공예상의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옻칠 아티스트 정해조 선생은 공예와 미술의 완벽한 교집합 위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새로운 감각을 입힌 협저태(紵夾胎) 칠기다. 협저태라는 명칭은 모시나 삼베를 지지대 삼아 옻칠 액과 함께 굳혀가는 방식을 일컫는 것으로, 다른 제작법보다 기술이 까다롭고 어려우며 공정 기간도 길다. 그의 작품은 파도가 치는 듯한 유연한 몸매를 가졌다. 게다가 ‘새’빨갛고, ‘샛’노란 (혀에 힘을 주고 발음해야 할 것 같은) 색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롱한 빛이 감돈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인상이다.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테이블에 올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현대적 미감을 갖춘 것은 물론, 아티스트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볼 때 느껴지는 울컥거리는 자극과 감정이 존재한다. 정해조 선생은 전화 통화에서 요즘 이보다 더 낯선 작업을 하고 했다. ‘담을 수 있는’ 기 형태의 작품이 아닌 ‘벽에 걸고 감상할 수 있는’ 회화 작품 같은 평면 작업이다.
정해조 선생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과 작업실이 있는 충청북도 옥천으로 내려가면서 ‘공예’와 ‘미술’에 대한 논쟁을 생각했다. 작가나 관객 모두 어떤 장르에도 종속되지 않는 공유된 가치를 지향하는 현대미술계에서 우리나라만 유독 공예와 미술사의 정통성을 중시한다. 전통 미술과 서양 미술사의 관습이 뒤섞여 명칭을 구분하기도 힘든데 말이다. 알고 보면 이 논쟁은 공예계 내부에서 발산되는 경우가 더 많다. 공예계는 기술 숙달과 재료 활용이 작가의 능력에 대한 지표가 되기에 오랜 숙련자일수록 공예계의 순수성과 독립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전은 늘 시대와 분야를 넘어서는 순간 일어난다. 전통 공예가들이 앞장서서 실용성, 심미성, 사회성, 윤리성 등 다양한 가치를 따져 묻는 현대 공예를 인정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공예든지 미술이든지 전통과 현대를 뛰어넘는 무엇, 기능과 감각을 뛰어넘는 무엇. 오직 ‘새로움’이라는 키워드가 전부가 되어야 하지 않을지. 그 생각이 멈춘 지점에 옻칠 아티스트 정해조 선생이 서 있었다.

유연한 몸짓과 자체 빛을 발하는 같은 정해조 작가의 작품. 원시조형의 타제석기와 마제석기에서 발전한 형태로, 큰 덩어리의 석고나 스치로폼을 톱이나 칼로 잘라내고 형태를 제작한 후 그 위에 모시와 삼베를 여러 겹 중복하여 붙여 태를 만들고, 오방색 옻칠을 칠한다. 굴곡을 넣어 옻칠 본질의 광택이 보는 사람의 보는 각도에 따라 춤추듯 강렬한 리듬감을 느끼도록 작업한다. 'Rhythm of the Red', 'Black luster 0826', 2008, 149X140X400h(mm) ottchil(lacquer), hemp cloth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평면 작업. 그의 창작 키워드인 '색동율'의 모든 미감이 그대로 담겨 있다. 'Rhythm of the Red luster 1803', 2018, 530X650X100h(mm) Ottchil(Korean lacquer), hemp cloth

광채는 정해조 작가의 연금술로 비롯된 것이다. 광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내는 것이다. 'Rhythm of the Black luster 1804', 2018, 460X530X95h(mm) Ottchil(Korean lacquer), hemp cloth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전통 옻칠 공예품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낯선 시도와는 또 다른 깊이도 있었고요. 50여 년간의 옻칠 내공으로 빚어내는 정해조라는 이름이 주는 미감이겠죠.
제 작품은 전통도 현대도 아닌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삼베를 천연 옻에서 채취한 생칠로 겹겹이 이어 붙여 만드는 우리의 전통 협저태 칠기 작품이지만, 형태와 색채는 전혀 전형적이지 않죠. 2018년 로에베 공예상에 출품했던 색광율 작품을 꼼꼼히 살피면 정해조 스타일의 근본을 알 수 있어요. 형태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미적 감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돌을 이용해 만든 도구인 마제 석기, 타제 석기의 형태죠. ‘색’은 오행 사상을 상징하는 오방색입니다. 파랑은 동쪽, 빨강은 남쪽, 노랑은 중앙, 하양은 서쪽, 검정은 북쪽을 뜻해요. ‘광’은 옻칠이 품은 자연스러운 광채입니다. 광채를 더하는 것이 아닌, 광채를 끌어낸 작업이죠. ‘율’은 율동감인데, 마제 석기, 타제 석기처럼 자연스럽게 깎아내 보는 이가 느낄 수 있는 리듬감을 말합니다. 이는 옻칠에 관한 50여 년간의(2019년이면 50주년이 된다) 연구와 작업에서 얻은 것입니다. 이 모든 형태와 미감이 우리나라 것이지만 새로워 보이는 이유는 특정 방식으로 구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찾아내면서 축적한 정해조 스타일이기 때문이죠.
어느 누구에게도 사사하지 않고 독학으로 옻칠을 배우고 발견해나갔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처음 옻칠을 접한 것은 홍익대학교 재학 시절이었어요. 담당 교수가 칠공예 공방을 소개해주었어요. 평생 처음 옻칠이라는 것을 알고 배웠죠. 그 이후부터는 푹 빠져버렸어요. 직접 무형문화재 장인들을 찾아 다녔는데, 모두 구두로 전해 들었을 뿐 기록물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한국 옻칠에 대한 책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직접 발품을 팔며 정보를 모아야 했죠.

재료, 형태, 안료 제작 등 모든 과정에는 우리네 전통 옻칠이 추구하는 방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정해조 선생은 옻칠 과정 연구를 스스로 하면서 터득한 나름의 방식을 더해 남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고유의 색, 빛, 리듬을 담는다.
과거에 대해 여쭤보기 전, 미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까요? 새로운 것부터 말이죠. 3년 전부터 시작해 앞으로 더욱 집중적으로 작업하고 싶으시다는 평면 작품이 궁금합니다. 평면 작업은 기존 작업과 어떤 것이 다르고, 무슨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평면 작업은 제 작업의 연장선입니다. 옻칠 작품을 회화처럼 벽에 걸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한 것이죠. 2008년부터 전시할 때마다 한두 점 소개하다 본격적으로 몰두한 것은 3년 정도 되었습니다. 2013년 영국 공예청이 주관하는 공예 아트 페어 ‘콜렉트’에 출품한 이후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되었고, 밀라노에서 열린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과 프랑스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전시> 등에 참여하면서 세계 전역의 미술 관련 전시와 페어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어요. 공예와 미술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활동 무대는 다르다고 느꼈죠. 50여 년간 옻칠에 매달려 발전시킨 제 작품 세계를 공예 영역이 아닌 좀 더 포괄적인 무대에서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평면 작업을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이런 행보가 ‘공예’에서 ‘미술’로 전환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저 스스로를 공예가라고 정의한 적이 없거든요. 저는 옻칠이란 재료를 이용해 아트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로, 제 작품은 기능, 심미안, 철학 등 모든 관점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토기 형태로 작업한 색광율 또한 공예와 아트 사이의 현대 공예로서 존재하죠. 평면 작업은 그중 심미안과 철학을 강조한 미술 작업에 좀 더 가깝고요.
한국 전통 직물인 삼베를 천연 옻에서 채취한 생칠로 겹겹이 이어 붙이는 방식, 오방색에 드러나는 깊이 있고 영롱한 빛을 끌어내는 방식, 물결이 요동치듯 굴곡진 모양새 등 방식은 같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원래는 평평한 형태였어요. 율동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굴곡을 넣은 것이 아니라, 제 작품의 핵심인 빛을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다가 찾은 형태죠. 바탕이 되는 판을 불로 구부려 형태를 잡고 그 위에 삼베를 층층이 겹쳐 말린 후 나중에 삼베만 떼어내요. 그 위에 여러 번 옻칠을 하고 빛을 살리면 보는 방향에 따라, 표면 굴곡에 따라 난반사가 일어나면서 다양한 질감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전해지죠. 형태도 색채도 규칙적이지 않아요. 작품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제 컨디션에 따라서도 다르죠.
기의 형태의 작업보다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평면 작업은 좀 더 발전시켜야 해요. 옻칠에 숨어 있는 광채를 불러내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에요. 표면을 곱게 갈아야 하는데, 굴곡이 있어 만만치 않은 작업이거든요. 칠에도 여러 여러 단계가 있고, 단계마다 마감과 건조가 필요해 기간도 매우 오래 걸리지요. 한편으로 더욱 다양한 작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의 것보다 좀 더 다양하고 과감한 시도를 해 볼 수 있겠지요.
그럼 평면 작업은 공예인가요, 아트인가요?
굳이 평면 작업을 공예와 아트로 구분해야 한다면 아트에 가까워요. 그러나 그 구분은 이 시대에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아티스트의 의도에 따라 변형할 수 있겠죠. 공예는 사전적으로 ‘물건을 만드는 기술에 관한 재주’를 뜻합니다. 여기에는 암묵적으로 ‘손으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조각보 한 장에도 공예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공예가가 되려면 한 가지 재료를 치열하게 파고들어야 하고, 그 재료에 관련된 완벽한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하지만 공예와 미술을 결합한다고 해서, 공예의 정의와 본질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은 물건을 만드는 재주에 있지요. 하지만 현대 공예는 재주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 쓰임, 형태, 미감 등 모든 것이 가치 기준이 되지요. 공예가가 반드시 공예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열린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되 좀 더 확장된 개념의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죠. 저 또한 50여 년간 옻칠 공예를 해온 작가이고, 옻칠이란 재료를 치열하게 파고든 사람이지만, 전형적인 형태의 작품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대학교 시절에도 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탐구한 재료를 가지고 얼마든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죠.
대학교 때 처음 옻칠을 배웠다고 하셨어요. 홍익대학교 학생 시절, 어떻게 옻칠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여기, 옥천읍 대천리가 제 고향인데, 그림 그린다고 서울 홍익대학교까지 갔으니 고생을 좀 했죠. 학교를 1년간 다닌 후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휴학하고 군대에 가게 되었는데, 복학하려고 보니 다니던 도안과가 공예과와 분리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그때 지도 교수님이 “당장 취직하는 데는 도안과가 좋겠지만,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고, 대신 공예과는 처음은 힘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할 수 있다”라고 하셨죠. 평생 그림을 그려야 했기에 공예과 중 목공예과를 선택했어요. 그런데 목공예과에서는 칠을 배울 수 없었어요. 나무 본연의 컬러가 좋다는 것이 이유였죠. 당시 전공 실기 과제였던 스탠드를 만들어놓고서는 칠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니, 담당 교수가 칠공예 공방을 소개해주었어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후 칠공예에 푹 빠져 직접 무형문화재 장인들을 찾아 다니고, 늦은 나이지만 일본 칠공예의 본고장인 가나자와 미술공예대학 미술공예연구소로 유학까지 갔죠. 그때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장인이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옻칠 공예가 일본에서는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우리나라 옻칠이 어느 나라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느꼈거든요. 나전칠기라는 우리의 대표적인 옻칠 공예가 있는데도 옻칠 공예와 관련된 산업이 뒤처져 있는 것 같아 유학을 마치면 옻칠 관련 산업 육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유학을 다녀온 후 배재대학교 교수가 되면서 처음으로 미술학부에 칠공예 전공을 만들고 석사과정을 개설하셨어요. 따님인 정은진 선생(옻칠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도 제자였다고 들었습니다.
‘배재대학교 해조 옻칠 데코아트센터’라는 학교 기업을 만들고 국내외 옻칠의 예술성과 실용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제가 그동안 치열하게 기록해온 옻칠 제작법을 모두 알렸죠. 무엇보다 2005년 12월 제 고향 옥천이 옻 산업 지역 특구로 지정되어 무척 기뻤어요. 일본에서 제가 느낀 것은 옻칠을 산업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옥천은 기후나 토양이 옻을 재배하기에 알맞고 고령화된 인구를 인력으로 활용하기에도 효과적입니다. 사통팔달이기 때문에 칠공예 단지화할 경우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죠. 그래서 작품 만드는 시간을 쪼개 각기 다른 전통 칠기 제작 기법에 대한 자료를 모아 데이터베이스 만드는 일도 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용어 정리가 가장 시급합니다. 옻칠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저의 제자들에게 방법을 가르쳐주려 해도 일정하지 않는 용어 때문에 혼선이 생기거든요. 국내 용어의 경우 중국과 일본어에서 변환된 것이 많아 용어의 근본을 찾고 이를 한글화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제 작업 명칭인 ‘협저태’라는 말도 그렇게 정리한 것이죠.


옻칠 제작 과정에 사용하는 용어만큼은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해조 작가. 작업하는 시간을 쪼개 한중일 옻칠 관련 용어를 정리 중인데, 곧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옻칠 관련해 많은 아티스트이 책을 통해 방법을 깨닫고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양옥집 2층은 그의 공방이다. 칠하는 곳, 건조하는 곳, 연마하는 곳, 연구하는 곳 등 각기 다른 방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난다.

옥천의 자연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작업실에서 평면 작업을 하는 정해조 작가.

칠을 하기 전에 삼베 천을 꼼꼼히 메워야 한다. 건조와 칠 과정도 수차례. 하나의 작업에는 꼬박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로에베 공예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것을 비롯 2018년 올해에도 수많은 해외 전시가 잡혀 있다. 동남 아시아권에서만 존재하는 옻칠은 유럽, 미국에서 더욱 주목하는 재료다. 그 중에서도 한국 옻칠은 기능성이 가장 뛰어나다. 더욱 더 많고 폭 넓은 해외 무대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알리고 싶다고 말하는 정해조 작가.
옻칠 공예에 대한 기본 토대를 만들어 정립하는 모든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개인 작업까지 소화하려면 하려면 24시간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저기 서재 보이시죠? 방에 가득 쌓여 있는 박스 더미가 모두 자료예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모은 옻칠에 대한 모든 자료죠. 이를 정리하는 일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서둘러 책으로 내려 해요. 24시간이 모자라지만, 요즘에만 특히 바쁜 것도 아니에요. 평생 치열하게 살았거든요.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생각해보세요. 기록이 전무한 옻칠 작업을 스스로 찾아내고 제 것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요.
정해조 선생의 서재에는 하루 일정표가 있었다. 오전 7시에 기상해 어학 공부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품 제작과 교양, 지식 쌓기, PC 공부까지, 매 시간 단위로 짜여 있었다. 그 옆에는 2018년 일정표도 있었다. 6월에 영국에서 마감한 로에베 공예상 전시 이후에도 스코틀랜드, 독일, 프랑스, 중국까지 매달 줄지어 전시가 이어졌다. 그가 1분 1초도 얼마나 알차게 쪼개 쓰는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 스케줄표, 지도, 드로잉, 문서로 빡빡하게 벽을 채운 그의 서재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일상생활에도 사용할 수 있을 법한 공예품을 만들기 위해 실용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공예가와는 다른 지점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옻칠이란 재료에 대한 전문성과 기술,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하는 태도는 공예 장인의 지점이 있으면서도, 옻칠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화법과 철학은 미술가의 지점에 있다. 그는 두 지점을 팽팽한 실로 연결한 후 서재와 작업방을 드나들 듯 두 지점을 오가고 있었다. 옻칠 아티스트 정해조는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듯 보였다. 현관 앞에서 마지막으로 그의 인물 사진을 찍었다. 벽에는 그가 프린트한 종이가 붙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지금 하지 않으면 결코 못한다’라고 쓰인.

옻칠 아티스트 정해조
모시나 삼베로 태胎를 만들고 난 뒤 그 위에 옻칠을 하는 협저태칠기(夾紵胎漆器)로 조형과 평면 작업을 하고 있다. 2013년 영국 공예청이 주관하는 공예 아트 페어 ‘콜렉트’에 출품한 이후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에 작품이 소장되었고, 밀라노에서 열린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과 프랑스 장식미술관에서 열린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전시> 등 여러 해외 전시에서 호평을 받으며 올해 2018년 로에베 공예상 최종 후보 리스트에 올랐다.
그의 조형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 근본감각에서 만들어진 원시조형의 타제석기와 마제석기에서 발전한 것이다. 큰 덩어리의 석고나 스치로폼을 톱이나 칼로 돌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타제의 원리로 마구 잘라내고, 마제의 원리로 연마하여 형태를 제작한 후 그 위에 모시와 삼베를 여러 겹 중복하여 붙여 태를 만들고, 오방색 옻칠을 칠한다. 형태에 굴곡이 있어 옻칠 본질의 광택이 보는 사람의 보는 각도에 따라 춤추듯 강렬한 리듬감과 운동감을 느끼도록 작업한다. 정해조 작가는 배재대학교 예술대학 칠예과 교수를 역임(예술대학장, 일반대학원장 역임)하였고, 일본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 미술공예연구소 외국인연구원 역임, 중국 강서사범대학 과학기술 학원 객좌교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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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강석영 – ARTMINING, SEOU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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