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오래되고 잊혀진 것들을 찾아내 크리스탈 빛의 에너지를 더하여
전생보다 더욱 아름답고 반짝이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음에
진심으로 행복합니다. _홍현주 작가

WRITE 이보현(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에디터)  PHOTOGRAPHY 박우진(키메라앤 스튜디오) VIDEO 매거진 아트마인 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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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의 급류를 타고 헤아릴 수 조차 없을 만큼의 물건이 끊임없이 쏟아진다오늘의 새로운 것이 금세 어제의 헌 것이 되는 이유다갈수록 신선하고 독특한 것을 쫓는 사회 풍속에 물건들은 금새 쓰임을 잃고 외면받기 일쑤다.
홍현주는 남다른 심미안으로 옛 것에 몰두한다. 미술과 무관한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40세로 접어들면서 운명처럼 작업세계에 발을 내딛었다처음부터 작가가 되겠다는 의도를 갖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오로지 ‘쓰임을 잃은 물건이 다시 일상의 도구로 존재하길 바란다.’는 순수한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곧 작업이 되었고 공예가는 그녀의 천직이 되었다우리 전통 목기가 지닌 특유의 소박하고 투박한 조형미에 매료된 작가는 작업의 주재료로 오래된 목기를 사용한다닳고 훼손된 결을 정돈한 뒤 의외의 재료인 ‘크리스탈’을 붙여넣어 전혀 다른 모양과 쓰임새를 지닌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목기가 지닌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부재료로 크리스탈을 선택했다는 작가는남다른 작업방식과 기법으로 특허까지 취득했다‘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돌아갈지라도 결국엔 이룰 수 있다’는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열정은 곧 작품의 우수성으로 가시화된다. 소반,숟가락,십자가,거울,조명등에 녹아있는 정답고도 포근한 일상의 모티프들은 꼭 그녀를 닮았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홍현주 작가의 브랜드 '라쉐즈' 쇼룸 겸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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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홍현주 작가의 브랜드 '라쉐즈'. 1층엔 쇼룸이 2층엔 작업실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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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것을 소재로 한 홍현주 작가의 신작 2점이다.
왼쪽 작품 '눈물'은 촛불에서 촛농이 소반끝에 흘러 내리는 작품으로 절제된 한국여인의 감정을 크리스털의 투명함으로 표현했고, 오른쪽 작품 '저녁 밥상'은 나무그릇위의 쌀을 크리스털로 표현하고 숟가락 젓가락을 더해준 유머러스한 오브제 작품이다.

우리나라 오래된 ‘목기(木器)를 작업의 주 재료로 삼고 있어요. ‘목기’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과거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지역에서 약 9년간 거주했어요. 당시 앤티크 마켓을 자주 접할 수 있었는데 옛날 것을 버리지 않고 다시 집안으로 가져와 사용하는 선진 문화가 신선하고 부럽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나의 것’이라는 자부심이 없었거든요. 귀국 후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마켓이 있나 싶어 찾아다녔지만 없었어요. 대신 고미술상가가 있더라고요. 그곳에서 만난 우리나라 오래된 목기들에 금새 매료되었어요. 화려하고 세련된 외국의 것과 달리 우리 목기는 특유의 순박하고 투박한 미를 지녔어요.  거칠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것이 한국적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제 눈에 들어오는 오래된 목기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목적으로 하나 둘씩 사들인 것이 작업의 시작이었죠.

단지 옛 물건을 사고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래된 물건을 가공하고 새로운 재료를 결합하여 작품으로 탄생시켰어요.
그때는 작업을 해야지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의도를 갖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첫 시작은 옛날 물건을 사다가 파는 것이었어요. 고미술상가에서 사온 목기나 함지, 놋수저 등을 대중들도 저 처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쓰다 버린 것 같아 보이는 외관에 거부감을 보이더라고요. 어떻게든 사람들이 다시 이 물건을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표면을 연마하고 마모된 부분을 보강하여 외관을 정돈한 뒤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죠. 이전과 다른 쓰임과 모양을 갖추게끔 말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에게 다시 사랑받을 수 있는 물건이 될거라 생각했어요.


작업 프로세스가 독특해요. 특정한 주제나 스케치 없이 가장 먼저 주재료인 목기부터 고르신다고요.
시간이 날 때마다 고미술 상가를 찾아요. 특별히 어떤것을 사야겠다고 염두에 두지 않고 가도 한참 바라보다 보면 특별한 이야기가 느껴지는 목기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과거에는 이 물건이 누구에게 어떻게 쓰였을지, 무엇이 놓였을지 연상되는 거죠. 낡고 깨져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도록 애정을 갖고 누군가 사용했다는거죠. 그런 사연이 자연스레 연상되는 목기 위주로 사들였죠. 표면 연마를 위해 목기를 만지다 보면 표현하고 싶은 테마가 자연스레 떠올라요. 그 뒤 스케치를 통해 방향성을 잡으며 작업을 전개해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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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주 작가는 10년째 목공예, 크리스탈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작업의 효율성과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목기에 크리스탈을 붙여 장식하는 것은 홍현주 작가만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어요. 전혀 의외의 조합이라 신선하고 새로워요.
목기의 아름다움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택한 부재료가 ‘크리스탈’이에요. 유럽에서 살 때 패션디자이너인 언니의 일을 도우면서 의류 부자재들을 다뤄봤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죠. 스팽글이나 비즈, 깃털 등을 붙여가면서 장식을 해봤는데 우연히 크리스탈을 목기에 덧대는 순간 목기에서 생동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턴 크리스탈만을 주로 사용했죠.

인증받은 정품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만 사용하는 이유는요?
크리스탈의 종류도 꽤 여러 가지에요. 터키산도 있고 중국제도 있어 가격 면에서도 천차만별이죠. 스와로브스키는 비싸긴 하지만 가장 화사하고 효과적으로 우리 목기를 밝혀주더라고요. 제겐 무엇보다 ‘목기’를 빛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크리스탈을 붙여넣는 방식으로 특허까지 얻으셨다고요.
눈으로 감상하는 미술품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쓰여야 하는 공예품이다 보니, 사용자가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것은 A/S 를 최소화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크리스탈과 목기가 견고하게 결합해야 했죠.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니 방법이 생기더라고요. 특허를 2개나 받았어요. 단지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크리스탈을 목기에 이식하는 저만의 기술을 터득했어요.

숟가락,소반,거울,스탠드 조명등 생활 속에서 사용 가능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여왔는데요, 그중에서도 ‘십자가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담긴 오브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텐데, 대중의 반응은 어떤가요?
십자가 작업은 어떤 고객의 의뢰로 시작되었어요. 크리스탈의 키워드가 빛이잖아요. 종교적이어서 부담을 가질 수도 있지만, 십자가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기보다 십자가의 상징성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데 집중했죠. 큰 호응을 얻어 그때부턴 십자가만 모아서 전시하기도 했어요.

오랜시간 함께 작업해온 동료들이 있으시다고요.
혼자서 하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자칫 디테일을 놓칠 수도 있어요. 효율적으로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법은 협업이더라고요. 목공 전문가 송원종 디자이너와는 11년째, 크리스탈 전문가 김수연 디자이너와는 10년째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제 작업 철학을 이해하고 동참해주는 든든한 동료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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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주 작가의 '라쉐즈' 1층 쇼룸에서는 벽걸이 시계와, 스탠드 조명, 액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재탄생한 목기 작품이 있다.

작가님의 브랜드 ‘라쉐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어요. ‘라쉐즈 재팬’이란 이름으로 일본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매체를 통해 제 작품을 접한 일본인 클라이언트들이 찾아오셨어요. 그 구매자분들의 영향이 컸죠. 적극적으로 더 다양한 대중들을 만나기 위해 일본시장에 진출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일본에 제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무작정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당시 긴자에 있던 마츠야 백화점을 찾았죠. 백화점 내에 있는 갤러리 관계자가 일본어도 못 하는 외국인인 저를 배려해며 포트폴리오를 검토해주더라고요. 반응이 좋았어요. 현지 에이전트를 섭외해 첫 전시의 기회를 얻었죠. 그때를 시작으로 1년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서 전시하고 있어요.

구매하기 전 그 안에 깃든 ‘스토리’를 세세히 묻는다고요.
일본 분들은 작품에 담긴 스토리에 대해 소상히 알고 싶어 해요. 왜 크리스탈로 고양이를 표현했는지, 이 장식은 무엇인지 등 디테일을 궁금해하죠. 작가로서 작품을 매개로 소통한다는 건 큰 기쁨이에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매자나 컬렉터가 있다면요.
인터넷에서 제 작품을 접하고 한국에 비즈니스 차 방문했다가 제 작업실에 들른 분이 있었어요. 뉴욕에서 온 50대 유태인 남성이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그분의 카드에 문제가 있어 결제가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직접 카드회사에 전화해서 자신이 지금 한국에서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자 하니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 하시더라고요. 보통 안되면 포기할 텐데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안되는 상황이라면 포기할 법도 한데 제 작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때 꽤 큰 작품을 사가셨는데 참 감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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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마이닝 밀라노에서 선보이는 신작 '꽃세송이'. 1900년도 초반 한국의 일반가정에서 사용했던 1~2인용 이동식 밥상을 활용해 만개한 빛의 꽃을 표현했다.

오는 4월 해외 전시를 앞두고 있어요. 새롭게 도전하고자 했던 부분이 있다면요?
아트마이닝 밀라노 전시에서 벽장식, 거울, 조명 등 신작 8점을 선보여요. 크리스탈과 나무의 조합은 여전하되 다른 방향도 열어둔 채로 시도하고 있어요. 제 작업의 메인은 크리스탈이 아니라 목기인 만큼, 색다른 부소재로 표현한 작품들도 있죠. 앞으로는 인테리어에 관련된 아트월도 제작해보고 싶어요.

어떤 작가로 기억 되고 싶은가요?
저는 제자들에게 ‘돌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하고자 한다면 다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한 가지에 천착하는 작가로 남아 앞으로도 목기를 통해 한국적인 것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목기를 아끼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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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JU HONG | CRAFTS / WOOD
'전생의 삶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착'으로 목기와 크리스탈의 조합의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홍현주. 미술과 무관한 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지만  '공예가'라는 천직을 찾아 누구보다 활발한 작업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가 운영하는 개인 브랜드 '라쉐즈'는 '라쉐즈 재팬'이란 이름으로 일본에도 진출했다. 화장품 브랜드 SK-Ⅱ와 콜라보한 패키지 디자인부터 프랑스 가구박람회와 도쿄 마쓰야 백화점과 이세탄 백화점까지 다방면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온 작가 홍현주는 4월 아트마이닝 밀라노 전시에서 신작 8점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