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시안 재단 설립자이자 세계적인 아트 컬렉터인 동시에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장 보고시안(Jean Boghossian). 그의 다양한 얼굴을 섬세하게 바라 보기 위해서는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여러 나라를 떠돌다 벨기에에 정착한 이야기를 들여야 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아르메니아 국가관을 후원한 것도, 비엔날레 위성 전시로 <한국 미술: 단색화> 전을 지원한 것도 그런 삶이 경험이 되어 예술로 국적, 인종, 종교를 넘어 인류애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WRITE Anna Gye PHOTOGRAPHY Rei Moon


Jean Boghossian
보고시안 재단 회장이자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 장 보고시안.
그의 작업실은 불과 연기로 만든 생명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글로벌 미술 전문매체 아트시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아트페어에서 아트 컬렉터에게 가장 인기 높은 작가는 일본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였다. 그 다음은 미국 팝 아티스트 카우스(KAW). 만화 심슨을 패러디한 그의 그림 ‘킴슨(Kimpson)’은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67억원에 팔렸고, 홍콩 아트 바젤 기간 동안 그의 대형 조각품은 바다 위를 둥둥 떠 다녔다. 국내에서 대형 전시를 열었던 영국 아티스트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이미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의 그림 가격을 훌쩍 뛰어 넘은 지 오래. 아트 시장에는 아트 컬렉터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들썩이는 돈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 난다.
하지만 이와는 사뭇 다른 결을 가진 이들이 있다. ‘돈’과 ‘권력’보다 ‘명분’과 ‘명예’로 작품을 구입하고, 작품을 ‘소유’하기 보다 ‘공유’하는 것에 더 큰 만족을 느끼며, 더욱 많은 사람들과 예술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공간까지 선뜻 내어주는 아트 컬렉터. 이들은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고 믿는다. 보고시안 재단 설립자이자 아티스트 장 보고시안은 예술이 국가, 인종, 종교 간의 갈등까지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세상에 대한 ‘기여’와 ‘헌신’을 위해 작품을 구입하고 모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정치적 목적과 국가적 정체성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다. 예술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해답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프라이빗 아트 재단이 개인의 아트 컬렉팅에서 출발해 공공의 의미로 외연을 확장하는 것과는 달리 벨기에 브뤼셀에 뿌리는 둔 보고시안 재단은 출발부터 세계인을 품는 인간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유는 가족사에 있다. 그의 가족은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대량학살이 벌어진 터키로부터 도망쳐 여러 나라를 떠돌다 벨기에 정착했다. 장 보고시안이 태어난 곳은 시리아의 도시 알레포. 하지만 내란을 피해 이주한 레바논에서도 내전이 일어나 벨기에로 건너 가게 된다. 보석상이였던 아버지 로베르 보고시안(Robert Boghossian)은 벨기에서도 보석 비즈니스를 이어갔고,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두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 준다. 하지만 유럽에 정착해서도 보고시안 가족은 자신들이 지나온 아르메니아, 시리아, 레바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특히 그의 태생적 고향인 아르메니아는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했지만, 경제적 환경은 열악했고, 연이어 지진까지 일어나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보고시안 가족은 이곳의 젊은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궁리했고, 타인에 대한 배척과 자국을 떠난 상실감을 절실히 경험한 사람으로써 분쟁과 갈등을 유발하는 어떤 경계도 멀리하는, 의미 있는 일을 추진한다. 이것이 1992년 설립한 보고시안 재단이다.

고아원, 예술 학교, 기술 학교 등을 만드는 등 사회, 교육, 예술, 환경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07년 빌라 엉팡(Villa Empain)을 구입한 후부터는 그 핵심을 예술 사업으로 둔다. 전 세계 젊은 예술가에게 장학금 지원과 레지던스 프로그램 및 전시를 지원하고, 동·서양 예술 문화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보고시안 재단은 아르메니아의 현실과 예술을 알리기 위해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아르메니아 국가관을 후원하고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 학살 100주년”을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동·서양 교류의 목적으로 2015년 베니스에서 국제 갤러리가 주최한 <단색화(Dansaekhwa)> 전시를 후원하고, 2016년 2월 유럽 최초로 단색화와 한국 추상 미술 전시를 빌라 엉팡에서 대대적으로 열었다.
약 15년 전부터 장 보고시안은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전 세계에서 부지런히 전시를 열고 있는데 올해 11월 29일부터 2020년 5월 31일까지 한국 경주의 우양 미술관에서 <장 보고시안 : 심연의 불꽃> 전시를 갖는다. 그는 붓대신 ‘불’과 ‘연기’를 이용한다. 불, 연기와 재, 타버린 구멍, 우연히 발생되는 색의 변화 등 실험적 ‘화염 액션(Combustive)’으로 추상 작품을 완성한다. 그의 작업실에는 회화, 설치, 조각, 영상 작품을 총 망라하는 대규모의 작업물이 가득했다. 불이 지닌 파괴와 소멸의 속성을 생명, 회생, 평화, 통일로 역전시키고자 소진시킨 까맣게 탄 자국이 걸음 걸음 새겨져 있었다.



장 보고시안은 불이 지닌 파괴와 소멸의 속성을 역전시키는 예술 작품을 통해 생명, 회생, 평화, 통일을 이야기한다.
현재 한국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으니 아티스트 장 보고시안에 대한 질문부터 할게요. ‘작가’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했는데, 아트 컬렉팅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나요?
그렇지 않아요. 그 이전부터 작가로 살고자 했죠. 보석 비즈니스를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보석 디자인을 하기 위해 6살 때부터 드로잉을 배웠고, 어릴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죠. 여러 나라를 떠돌며 느낀 세상에 대한 많은 의문을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가족 사업을 잇고자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늦은 나이에 브뤼셀에 있는 보츠포트 미술 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in Boitsfort)에서 순수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했죠.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1992년 재단을 설립하고 예술 사업을 시작하면서 확고해졌어요. 보고시안 재단 회장 장 보고시안과 작가 장 보고시안은 별개의 역할과 의무를 가지고 있어요. 빌라 엉팡을 제 개인의 홍보 공간으로 이용할 의도도 없고요. 아트 컬렉터와 작가로서의 커리어는 명백하게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는 있지만, 어떤 연결고리도 맺고 있지 않아요. 작가로서 작업은 빌라 엉팡과 다른 위치의 공간에서 해요.
과거 공장 기숙사 단지 공간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육중한 철문 너머로 펼쳐지는 2층 복층 공간에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작품이 있네요. 바닥에는 작업 중인 작품도 있고요. 작업 양이 상당한 편이에요.
규범을 깬 자유로운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여러 장르를 시도하다 결국 추상화를 시작했고,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꾸준히 실험하면서 캔버스에 불을 내는 작업까지 이르렀어요. 저는 붓 대신 블로우 토치(blowtorch)로 그림을 그립니다. 계획과 우연이 만들어낸 그을음과 재가 형태가 되고 의미가 되죠. 사람들은 불을 공격적인 수단이라 생각하는데, 불은 모든 소재와 매체를 투과할 수 있고, 더욱 시(詩)적인 흔적을 남겨요. 불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 작품의 전체 주제는 아닙니다. 불을 이용한 작품 외에도 아크릴화, 유화, 나무 조각 작품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어요. 저는 작업 결과보다 끊임 없이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 큰 즐거움을 느껴요. 조금씩 과정을 달리하거나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켜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봐요. 작업실은 이런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스토리가 쌓여 있는 곳이에요. 아무래도 불을 이용하다 보니 환기가 잘 되는 넒은 공간이 필요하고요.



붓으로 칠한 검은 컬러보다 불을 이용해 채운 어둠이 더욱 마음 깊이 와 닿아요. 연금술사가 종이를 어떤 색다른 물질로 환생시킨 것 같네요.
다른 물질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원초적 에너지가 느껴지죠. 2010년 무렵부터는 각종 화염장치를 이용해 캔버스를 그을리거나 구멍을 뚫거나 캔버스에 칠한 안료에 불꽃을 반응시켜 독특한 색채와 질감을 만들거나, 나무 또는 폴리에스터 판에 서예처럼 불로 문자를 새기는 등 여러 형태의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불꽃과 그을음을 그림에 담는 일은 쉽지 않아요. 사라지는 연기의 흔적을 작품으로 보존하기 위해 유화 작업처럼 바니시를 사중으로 바릅니다. 책 전체를 까맣게 태우는 작업 역시 그 형태를 살리려고 날아간 재를 모으고 바니시로 형태를 고정시키죠. 우연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느낀 경험, 우연, 계획, 의도를 품고 있는 완성물이에요.
불은 작품에서 어떤 의미를 갖나요?
한국 전시 <심연의 불꽃(Flamme Intérieure)>를 예를 들어 설명할게요. 이 불꽃은 작가 내면에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창작에 대한 불꽃이자 수많은 형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보통 불을 파괴, 갈등, 어둠으로 해석하는데, 사실 불은 생명과 소멸, 시작과 끝을 모두 함축하고 있죠. 제 작품 속 불의 의미는 평화, 화합, 소망에 가까워요.

아트 컬렉팅이 주는 기쁨과 작가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기쁨의 무게는 어떻게 다른가요?
아트 컬렉팅은 보고시앙 재단 후원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일로서 의무와 책임이 따르죠. 하지만 창작은 온전한 나를 느끼는 과정입니다. 창작 작업은 많은 노동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명상의 시간 같아요. 세상 일에서 잠시 벗어나는 순간이죠. 아트 컬렉팅이 일종의 임무(Mission)라면, 예술 작품 활동은 진정한 열정(Passion)인 것 같아요.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어요.
2012년 우양 미술관의 초청으로 방혜자와 같은 굵직한 7명의 작가와 함께 전시했고, 2014년에는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받았죠. 작가로서 이런 주요 전시에 참석할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스러웠어요. 최근에는 친한 동료인 한국 작가 전광영의 뮤지엄 그라운드 개관전 작가로 선정되어 한국을 방문했고요. 2014년에는 보고시안 재단 일로 약 40-45여명 정도 되는 관련 인사들과 함께 한국을 찾아 서울 내 미술관뿐 아니라 부산, 광주 등 남부 지역까지 여행했는데, 각 지역마다 다른 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어요. 원래 인도, 태국, 중국, 일본, 한국 등과 같은 극동 나라와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서예를 포함해 동아시아 종교와 문화를 공부하기도 했고요. 보석상이었을 때 한국에서 사업을 론칭하기도 했죠.
우양 미술관 <장 보고시안 : 심연의 불꽃> 전시로 다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에요. 이번 전시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대학살을 경험한 아르메니아인으로서, 17년의 내전을 겪은 리비아인으로서, 세계 1, 2차대전을 겪은 벨기에인으로서의 저의 이야기를 담은 것과 동시에 통일을 염원하는 한국인의 소망을 불꽃으로 드러낸 전시입니다. 지금 한국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중요한 시기예요. 통일과 평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화해와 결속의 마음을 담아 이번 전시를 구상했고, 전시장 벽면에는 제가 직접 지은 평화 염원의 문구를 새겼죠.

보고시안 재단은 2015년 베니스 베엔날레 위성 전시 <단색화>를 후원한 이후 유럽 최초로 빌라 엉팡에 소개함으로써 단색화 붐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여러 번 질문 받았겠지만, 어떻게 전시를 후원하게 되었나요? 한국 단색화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요.
보고시안 재단의 컬렉션은 현대 미술에 한정되지 않아요. 동서양, 시대, 장르를 막론하고, 공예품 또한 수집 대상이죠. 동양 중에서도 중앙 아시아 작가들의 오리엔탈 페인팅 컬렉션이 두텁습니다. 국제갤러리와 티나킴갤러리 주최로 열린 <단색화> 전시는 동서양을 모두 포괄한다는 의미로 잘 맞아 떨어졌고, 단색화의 고요함이 1960~70년대의 한국 근현대사 정치적 환경과 연관한 저항과 침묵이라는 점을 알고 나서 더욱 더 유럽인들에게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어요. 단색화는 억압적이고도 폐쇄적인 시기에 태어났어요. 작가들은 노동과 시간이 집약된 작품을 붙잡고 침묵으로 버티고 내면으로 침잠했죠. 온몸으로 겪어낸 경험과 시간을 제 몸뚱이에 각인하듯 그려진 그림은 큰 울림을 줍니다. <단색화>전 이후 자연스럽게 2016년 빌라 엉팡에서도 전시회를 열었는데, 단색화의 배경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 당시 여러 강의 커리큘럼도 만들었어요.
전시 이후 단색화 작품을 여러 점 구입했다고 들었어요.
전시 이전부터 한국 추상 작가들 작품에 관심을 갖고 작품도 소장하고 있었어요. 우선 한지 조각이라 불리는 전광영 작가 작품을 여럿 갖고 있어요. 천장에 매달아 놓은 약봉지 이미지를 떠올리며 한지 조각을 접었다는 그의 작품은 외형적으로도 아름답고 독특하죠. 작업실 입구에 둔 거대한 구 형태의 ‘집합(Aggregation)’ 시리즈 작품에서는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한지 조각 하나 하나가 생명이고, 인간이고, 군집이고, 지구라는 생각이 들죠. 한국 추상화의 극점을 보여주는 작가는 이우환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작품이 가진 에너지는 공간에도 침투하죠. 사색적이고, 철학적이고, 관계적인, 깊이 있는 사고가 느껴져요. <단색화>전을 통해서는 하종현 작가 작품을 인상적으로 봤어요. 물감을 마대 뒤에서 밀어 넣는 배압법 제작 과정으로 완성된 작품은 독특한 시각적 미감을 주죠. 직접 배합해 만드는 작가만의 색도 그렇고요. 도구도 직접 만든다고 들었어요. 재불작가인 방혜자의 ‘Résonance de lumière’ 도 소중하게 아끼는 작품 중 하나에요. 그녀는 우리 재단을 위해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을 제작해주었죠. 한국 젊은 작가 중에서는 최우람의 ’Nox Pennatus’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요.
보고시안 재단 컬렉션을 포함해 개인적인 컬렉션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나요?
재단 설립 초기에는 아르메니아, 리비아, 시리아의 오리엔탈의 이야기와 관련한 현대 미술품이 주를 이루다가 현재는 동서양을 함께 아우르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어떤 취향과 스타일을 정해 놓고 작품을 수집하기 보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스타일과 장르를 발굴하는 편이죠. 다양성이 목적이에요.


2016년 빌라 엉팡에서 열린 단색화 전시 풍경. 이우환, 정창섭, 하종협, 박서보 등 단색화 외에도 한국 추상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유럽 최초로 열린 단색화 전시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Courtesy of Boghossian Foundation
앞에서 소개해준 한국 작품 외 소장품 몇 가지를 더 소개해주신다면요.
컨셉추얼 아트 작가 다니엘 뷔렌(Daniel Buren), 미셸 파흐멍티에(Michel Parmentier), 윔 델보아 (Wim Delvoye), 얀 파브르(Jan Fabre), 클로드 루토(Claude Rutault), 장 팅글리 (Jean Tinguely), 아르만(Arman) 등 입니다. 아르누보와 아르 데코 스타일의 공예품 역시 수집하고 있는데, 빌라 엉팡 곳곳에서 볼 수 있죠. 예를 들면 돔(Dôme)이나 라리크(Lalique)등의 화병 같은 것. 조각은 이탈리아 작가 아르날도 포모도로(Arnaldo Pomodoro), 프랑스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Jean Michel othoniel) 작품을 좋아해요.
보고시안 재단 컬렉션은 아무래도 아르 데코 건축물 빌라 엉팡이 주는 분위기와 어울려 더욱 멋지게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빌라 엉팡 구입 후 2년 간 레노베이션 했다고 들었어요.
이 저택은 건축주 베런 루이 앙팡(Baron Louis Empain)의 커미션 의뢰로 스위스 건축가 마이클 폴락(Michel Polak)이 지은 건물이에요. 완벽한 아르 데코 스타일의 건물이죠. 처음에는 개인 저택용으로 지었지만 이후 미술관을 만들 목적으로 벨기에에 귀속되었죠. 하지만 전쟁으로 독일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무산됐어요. 이후 다시 사유지로 변경되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는데, 1990년 초반부터는 관리하는 사람 없이 폐허인 상태로 버려져 있었어요. 2007년 이곳을 구입한 후 2년 간 레노베이션을 했죠. 건축가, 연구가, 학자와 함께 건물이 가진 과거의 기억을 찾아내는데 집중했어요. 현대적인 시설로 변화시키는 것보다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하자는 목표를 갖고, 외관 디자인, 건축 방법을 연구하고, 이를 현실화 시켜줄 장인을 찾아 나섰어요. 구리 지붕으로 교체하고, 대리적으로 내부 외부를 정리하고, 창문은 23,75캐럿 금으로 덮었죠. 호두나무, 장미나무 등을 심은 정원뿐 아니라 대형 수영장도 완벽하게 복원했어요.


빌라 엉팡과 사무실이 이어지는 넓은 정원에는 조각 컬렉션을 볼 수 있다.


빌라 엉팡의 계단, 창문, 지붕 곳곳에서 아르 데코 양식을 볼 수 있다. 내외 부는 대리석으로 마감했다. 아르 데코와 관련한 다양한 공예 전시도 열고 있다. Courtesy of Boghossian Foundation
빌라 엉팡 바로 옆에 레시던지 건물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 아티스트 김지아나가 머물다 갔다고요.
빌라 엉팡 레시던지 프로그램은2010년부터 시작했어요. 브뤼셀에 도착하고 떠나는 모든 경비를 제공하고, 프로젝트 경비도 상황에 따라 지원합니다. 작가는 거실, 부엌, 욕실 등을 무료로 사용하면서 작업할 수 있어요. 전시나 레시던시 운영은 보고시안 재단의 사업부 팀들이 자세한 일을 총괄하고 있어요. 국적, 스타일, 장르를 불문한 여러 작가들이 이곳에서 작업을 하죠.
사회적, 인도적 목적 아래 이뤄지는 아트 작품 컬렉팅은 선택에서 까다로운 과정을 겪어야 할 것 같아요. 작품을 구매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은데, 어떤가요?
명분과 의미를 찾아 작품을 구입하는 일은 오히려 간단해요. 시장 논리를 따르지 않고 작가의 재능만 믿고 따르면 되거든요. 아트페어에서 컬렉터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움직이는 작가군은 저희의 관심 대상이 아니에요. 뉴스 기사에서 보이는 유명 작가는 극히 일부일 뿐, 시장 밖에는 더욱 더 많은 작가가 존재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요. 저는 현재의 시간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가들을 살펴보고, 들어봐야 할 이야기를 컬렉팅이란 행위를 통해 이끌어내요.
좋은 컬렉터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의 삶과 뗄 수 없는 작품을 볼 줄 아는 사람.
복잡하고 혼란한 이 시대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요?
예술은 표현하기 힘든 어떤 것을 표현하는 매체죠. 정치, 종교 등의 매체가 보통 ‘이성’에 호소한다면 예술은 ‘상상력’에 호소하죠. 예술은 ‘대화의 장’을 열고, ‘보이지 않는 문’을 엽니다. 보고시안 재단의 모토는 “Art is the answer(예술이 답)” 입니다. 정치, 종교, 국가, 인종 등의 문제는 인류를 편으로 나누는데 반해 예술을 이들을 한 곳으로 결집시키죠. 그래서 사회가 더 각박해지고 갈등이 심화 될수록 예술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아티스트는 삶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갈등을 드러내고 고민을 보여줘야 합니다. 요즘 같은 때, 트렌드에 따라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는 전시가 아니라 그런 상처와 회복을 눈 앞에 보여주는 인류애적인 메시지를 전파하는 전시들이 필요해요.
아트 컬렉팅이 주는 기쁨은 무엇인가요?
자유입니다. 현대 예술품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고,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자유를 느끼게 하죠. 현대 미술이 가진 무한한 자유를 알게 되면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 수 있어요. 또 현대미술은 ‘유사성’이 아닌 ‘다양성’의 방식으로 삶을 살게 해주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살게 만듭니다.
당신이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작업실에 있을 때나 부인 카티와 함께 있을 때입니다. 즉, 예술 또는 사랑이 함께 머무는 시간에요.
5 Remarkable Collection by Jean Boghossian
장 보고시앙이 자신의 아트 컬렉션에 의미있는 작품 5점을 꼽았다

작업실 입구에 놓인 전광영 작가의 'Aggregation' 시리즈 작품.
전광영, Kwang-Young Chun (B. 1944, South Korea)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한 아티스트 전광영. 그는 한지로 싼 약재 꾸러미가 매달려 있었던 기억을 삽입해 한지를 섬세하게 싸고 묶어 조각과 회화를 넘나드는 작품을 만든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소개한 ‘집합’ 시리즈는 한약 봉지의 재현을 완전히 뛰어넘어 풍경을 담은 입체 추상화 같다는 평을 들었다. 얼마 전 그는 경기도 용인시에 미술관 뮤지엄 그라운드를 열었고, 개관 전시로 장 보고시안의 <심연의 불꽃> 전시를 주최했다.

장 보고시안 개인 서재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는 방혜자의 작품 'Résonance de lumière'.
방혜자, Hai-Ja Bang (B. 1937, South Korea)
2018년, 프랑스 고딕 예술을 대표하는 샤르트르 대성당에 그녀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작품이 설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나 파리에서 작업해온 그녀는 프랑스 중남부 아죽스의 아뜰리에서 태고에서부터 생명의 원천이 된 빛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빛의 화가라 불리는 그녀. 그녀의 작품은 해뜨기 전의 아침 같고, 지구 너머의 우주 같고, 시공간을 초월한 어느 미지의 장소 같다.

U-Ram Choe 'Nox Pennatus'. Stainless steel, brushed acrylic, circuits, motor, CPU board, custom software. 61 × 99.1 × 55.9 cm
최우람, U-ram Choe (B. 1970 , South Korea)
한국에 키네틱 아트 장르를 소개한 작가다. 대학 시절부터 정적인 조각보다 운동성 있는 기계, 즉 기계 조각에 미적 가치를 느낀 그는 국내에서 독보적으로 예술과 기술을 접목한 키네틱 아트 장르를 펼치고 있다. 파충류, 물고기, 꽃 등 자연물과 닮은 기계생명체들은 실제 살아서 호흡하듯 움직인다. 박물관에서 보는 고대 화석 같기도 하고 외계 생명체 같기도 하다. 그는 기계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에게 의문을 던지고, 나아가서는 예술과 기술, 현재와 미래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질문을 던진다.

Jean Tinguely 'Paravent, '1990. mixed media on cardboard. 77 x 120 cm
Jean Tinguely
(B. 1925~1991, Switzerland)
폐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스위스 출신 조각가이자 설치 작가. 그는 “기계는 나를 시적으로 만드는 도구다. 나는 즐거움을 주는 기계를 만들기 원하고, 그 즐거움은 자유를 의미한다.”고 말하며 거대한 규모와 복합한 시스템을 가진 기계 작품을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기계 ‘메타 매틱’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추상 미술이 가지고 있는 허위 의식과 기계 문명의 종말을 풍자한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움직임과 소음을 동반한 기계장치 작품을 제작해 예술에 부여된 지나친 진지함을 비웃었다. 스위스 바젤에는 팅겔리 미술관이 있다.

Arnaldo Pomodoro 'Romboide', 1977. bronze sculpture. 31.5 x 28 x 17.5 cm
Arnaldo Pomodoro
(B. 1926, Italy)
기하학적 청동 작품으로 유명한 현대 이탈리아 조각가. 그의 조각품은 눈물이나 종유석 같은 구 형태에서 시작해서 점점 다른 물체로 변모화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원래 무대 디자인과 금 세공학을 공부했고, 밀라노로 건너가 루치오 폰타나, 엔리코 바즈 같은 전위 예술가를 만나면서 조각 예술가로 살게 된다. 워싱턴 D.C.의 허쉬혼 박물관, 샌프란시스코의 드영 박물관, 뉴욕의 구겐하임 박물관, 시카고 미술 연구소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작업 중이다.

장 보고시안 | Jean Boghossian
1949년 생.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시리아 알레포(Alepp)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레바논에서 보냈고, 이후 전쟁을 피해 벨기에에 정착했다. 레바논 베이루트 세인트 조셉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보석상인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았다. 1992년, 동생과 함께 보고시안 재단을 설립했다. 예술로 지리적 거리를 줄이고, 다소 예민한 정치적 이슈로 자주 언급되는 동과 서의 불편한 관계를 화합과 평화의 시각으로 바라보겠다는 원칙 아래 만들어진 보고시안 재단은 젊은 작가를 후원하고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한 장학 기금을 조성하는 등 인류애적인 활동에 적극적이다. 2007년, 빌라 엉팡을 구입하면서 재단 활동은 예술로 더욱 무게 중심을 옮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발견한 예술가적 자질을 살려 장 보고시안은 작가의 길을 걷는다. 불과 연기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는 소수의 작가 중 하나인 그에게, 불은 생명, 환생, 평화, 에너지다. 최근 유엔 사무국에서도 전시를 가진 장 보고시안은 아트 컬렉터이자 작가로서 예술로서 가능한 일들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예술은 정치적 목적과 국가적 정체성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로, 질문으로 가득 차 있지만 예술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www.jeanboghossian.com / www.villaemp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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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Jean Boghossian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Boghossian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