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hell with your money. I refuse this prize.”
1964년 지금은 구겐하임 펠로우십이라 불리는 미술계의 권위 있는 상, 구겐하임 어워드를 거절한 아스거 욘이 주최 측에 보낸 메시지다. “이 상금을 가지고 넌 지옥에나 가라. 난 상을 받지 않겠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어떤 미술관도 어떤 제도도 나의 예술의 가치에 대해 평가할 수 없다. 나의 예술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관객뿐이다.” 이 사건은 단번에 아스거 욘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누구인가?

WRITE 이보현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에디터)  ALL RESOURCE 국립현대미술관

아스거 욘의 초상, 1938
아스거 욘의 초상, 1938

덴마크 출신의 아스거 욘(Asger Jorn, 1914-1973) 은 국내 대중에겐 생소하지만 덴마크를 넘어 북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는 1950~70년대 ‘코브라(CoBra)그룹’ , ‘상황주의 인터네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등의 사회 참여적 예술운동을 주도하며 혁명적 행보를 걸었다. 60년대 유럽과 미국 미술계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작가는 그래픽 작품, 회화, 도예, 조각, 출판, 직조물 등의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늘 새로운 것을 찾고자 노력했다. 아스거 욘에게 예술이란 ‘한정된 엘리트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닌 모든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고정된 해석을 거부하고 보는 이에 따라 규정되는 예술을 추구했다.

이번 전시에선 아스거 욘의 작품세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서술한다.
'존재 그 자체로 북유럽 미술'이라 평을 받는 아스거 욘 만의 정체성이 무언지 느낄 수 있는 자리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병모)은 아시아 최초로 아스거 욘 개인전을 개최한다.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전은 오는 4월 12일부터 9월 8일까지 약 5개월간 MMCA서울 5전시실과 서울 박스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약 4시간 떨어진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에 소장된 아스거 욘의 회화, 조각, 드로잉 등 총 90여점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전시를 기획한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추구하는 바를 몸소 실천한 작가가 아스거욘”이라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동안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2018 아시아 기획전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전 등을 통해 기존에 쓰인 주요 서술 역사에서 벗어난 다른 부류의 역사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시각의 미술 읽기를 제안해왔다. 이번 전시 역시 같은 맥락 안에서 기존 주류의 정통 서양미술사 중심에서 벗어나 동시대 존재했던 다른 형식의 비주류 미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관람객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보길 촉구한다.
덴마크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 야콥테이 관장은 “아스거욘을 읽는 방법은 여러가지지만 나는 북유럽 미술가로서의 아스거욘을 해석하길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기존에 이뤄졌던 회화 중심의 전시와 달리 여러 작품을 다양하게 다룸으로써 시간에 흐름에 따라 아스거 욘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서술한다. 자신만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서양 정통 미술과 대비되는 맥락의 북유럽 예술을 해석한 아스거 욘을 실험정신, 정치적 행보, 북유럽 전통 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이번 전시의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전의 관전 포인트 5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전 첫 번째 섹션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욘이 협업한 타피스트리 작업이 걸려있다.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전 첫 번째 섹션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욘이 협업한 타피스트리 작업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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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정신
“변형의 본질은 옛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에서 옛것을 찾는 데 있다. 결국엔 창조성이란 천재 작가 한 명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교류와 대응을 통해 진화하는 것이다”. 아스거 욘의 초기작으로 구성된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은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라는 타이틀 아래 마련됐다. 작가의 예술에 대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초기 작업은 주로 매체의 한계를 넘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탄생했다. 페인팅, 시멘트, 스티로폼, 직조물, 세라믹, 판화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자신만의 개념을 넣은 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미술계에서 이목을 끌었던 호안미로나 칸단스키, 피카소 등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의도적으로 제작함으로써 ‘전환’이란 자신만의 키워드를 회화적 터치를 통해 녹여낸다. 특히 욘은 협업을 통해서 여러 창작 과정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타피스트리가 그 결과이다. 얼핏 보기에 삐뚤빼뚤한 기술적 마감에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작가는 완성도보다 예술적 행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으며 협업을 통해 얼마만큼의 결과물을 끌어낼 수 있는가를 더 중요시했다.

두 번째 섹션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욘의 사회적 행보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들로 채워져있다.
두 번째 섹션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욘의 사회적 행보를 감상할 수 있는 자료들로 채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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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협업 작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욘은 공동체 활동과 연대, 창의성에 바탕을 둔 대안적 문화를 실험하고자 했다. 두번째 섹션에선 <지옥의 날>이란 예술 잡지를 편찬했던 그가 이후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앞 글자에서 따온 그룹 ‘코브라 (CoBrA), 이미지주의 ‘바우하우스’를 거쳐 ‘상황주의 인터네셔널 (Situationist International, SI)’에서 지속적인 그룹활동을 통해 펼쳤던 사회적, 정치적 행보를 살필 수 있다. 특히 아스거 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 <무제(수정)>이 위치해 있다. 이는 고전주의 풍의 회화 작품에 자신만의 터치를 가미함으로써 어느 순간 의미를 잃어 퇴색한 작품이 다시금 주목을 받길 의도한 것이다. 욘의 이러한 시도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했다고 보여진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 마련된 아스거 욘이 촬영한 필름 원본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가져온 아스거 욘의 작품이 담긴 화물박스를 전시 공간 디자인에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전시장 가장 안쪽에 마련된 아스거 욘이 촬영한 필름 원본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가져온 아스거 욘의 작품이 담긴 화물박스를 전시 공간 디자인에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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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유럽 미술을 정의하다
아스거 욘은 북유럽 미술의 전통을 찾아다녔다. 그는 남부 유럽의 미술사가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북유럽 미술이 민속 예술로 가치 절하 된 현상을 바로잡고자 했다. 욘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북유럽 전통을 ‘이미지’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정의했다. “이미지란 문자에 반대되는 것으로 문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이성을 기반으로 활용하지만, 이미지란 교육 없이도 대중이 직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대안적 언어”라 주장한 아스거 욘은 이미지를 가지고 쓰인 새로운 역사에 대해 제안을 하고자 북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건축의 패턴, 조각상 등의 이미지 약 25000여점을 수집했다. 그는 이미지들을 엮어 북유럽 미술에 대한 총 32권의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생전에 단 한 권의 책만을 완성했고, 이후 그가 남긴 이미지를 기반으로 6권의 책이 더 출판되었다. 전시장에선 그가 직접 촬영했던 오리지널 필름과 함께 책의 원본도 감상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대안적 언어-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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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스거 욘을 담은 전시 디자인
국립현대미술관이 8년 연속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전시 디자인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은 만큼 이번 전시 역시 차별화된 전시 디자인이 관람객의 이목을 끈다. 바로 ‘벽’이 없다는 점이다. 디자인을 맡은 담당자는 임시 벽 대신 얇고 투명한 소재의 회색 천으로 구획을 나눈 이유를 두고 “작업적으로 매체의 한계가 없던 아스거 욘의 정체성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의도” 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중간 중간에 위치한 책을 연상시키는 삼각형의 기둥도 놓쳐서는 안 될 디자인 요소다. 마치 책을 한 장 두 장 펼쳐보듯 아스거 욘의 작품을 관람객에게 서술한 세심한 디스플레이다. 전시장은 거대한 홀 하나로 보이지만 1시간 짜리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오픈된 형태의 영상실을 지나 가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아스거 욘이 개발한 스포츠 '삼면축구'. 덴마크 욘 미술관에 설치된 사이즈와 거의 흡사하게 제작하였다.
아스거 욘이 개발한 스포츠 '삼면축구'. 덴마크 욘 미술관에 설치된 사이즈와 거의 흡사하게 제작하였다.

#5 삼면 축구장
전시실 밖 서울박스에 삼면축구장이 자리잡았다. 기존 축구장과는 다른 삼면 축구장은 아스거 욘이 말하는 삼차 논리에 기반한 스포츠다. 이 게임에선 공격을 가장 잘하는 팀이 아닌 방어를 가장 잘하는 팀이 승리하는데, 득점으로 승패를 가르는 것이 아닌 실점으로 순위를 나누기 때문이다. 욘은 무엇이든 두 가지 힘이 존재한다면 이들이 상충하며 계속 대립구조를 띈다고 지적했다. 세 가지가 공존할 때만이 두 개의 공격성을 상쇄시켜 보완적 체계가 갖춰진다고 주장하며 철학과 과학기술의 발달 사이에 위치한 예술의 역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전시 큐레이터는 실제로 덴마크 욘 미술관에 있는 실제 축구장의 사이즈와 흡사하게 서울박스에 축구장을 설치한 이유를 두고 “미술관이 관객들에게 쉼터로써 또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랬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이 직접 체험함으로써 아스거 욘이 제시한 예술적 세계에 대해 보다 자유롭게 이해할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과 덴마크 수교 60주년을 맞아 전시 개막식엔 덴마크 왕세자와 왕세자비가 참여할 것으로 더욱 주목 받고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다. 다가오는 5월 24일엔 덴마크 욘 미술관 야콥테이 관장이 다시 한국을 방문해 큐레이터와 관람객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갖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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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문의 : 국립현대미술관 (https://www.mm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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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국립현대미술관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MM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