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휘거나 얇으면 쉽게 깨질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부수는 백진의 도자는, 오랜 실험 끝에 종이나 천과 같이 부드럽고 가벼워 보이지만 견고한 조각들로 탄생된다. 도자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는 작가의 개인전 <파편(Fragment)>에서는 정교한 공정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흰 도자 파편들이 유기적으로 확장된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백진의 작업은 백토(白土)물을 굳혀서 만든 판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낸 후, 그 조각들을 구부리거나 동그랗게 말거나 기둥처럼 높게 쌓아 올리는 등 조형적인 변형을 가하여 고온에서 굽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작가가 생산하는 수많은 파편들은 아날로그적인 수작업으로 만들어져 각기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 비정형의 도자 조각들을 재조립하는 행위는 작가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기획 전시장인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에서 2020년 3월 8일까지 개최되는 백진 개인전 <파편(Fragment)>은 작가의 작업 의도와 방식 모두를 아우른다. 백진은 꿈 혹은 무의식 저편의 흩어진 기억들을 수집, 분류, 재구성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구현한다. 조각난 기억들의 실체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수많은 흰색 도자 파편들을 제작해 마치 퍼즐을 맞추듯 화면 위에 규칙적으로 배열시킨다.
기다란 도자 파편들을 기둥처럼 높이 쌓아 올린 '무제(Untitled)'. 현재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 Seoul)에 설치되어 있는 2012년 작품 'Whites'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한 3차원 설치 작업으로, "도자는 무겁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2012년에는 무게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도자 파편들을 천장에 매달았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들을 높이 쌓아 올렸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주요작, '공(GONG)' 시리즈는 동그랗게 만 파편 조각들을 캔버스 위에 배열시킨 작업으로, 전체 화면은 불규칙적으로 보이지만 작가만의 규칙에 따라 일정한 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공>은 도자가 평면으로도 구현 가능함을 보여주는 실험적 작품이다.
마지막 전시공간에서는 벽면을 채운 '간(GAN' 시리즈를 만나게 된다. 하나의 긴 띠가 서로 엉켜 있는 형상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도자 조각을 3개의 층으로 쌓은 것이다. 자칫하면 쉽게 깨질 수 있는 도자 조각을 계속해서 구워내는 과정을 통해 견고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흙이 가지고 있는 유연한 성질을 보여주고자 의도했다. '도자'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는 백진의 개인전을 통해 관람객은 도자 매체가 갖는 다양한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백진 | Jin BAEK
1970년 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도자디자인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인 갤러리 <관찰자(2017)>, 이유진 갤러리 <연결주의(2014)>, 갤러리 빔 <공중정원(2009)> 등 7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일본 도쿄 아트페어(2018), 중국 상하이 웨스트 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2017), 프랑스 발로리스 국제도자비엔날레(2016), 서울미술관(2014),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2013), 프랑스 파리의 라뜰리에(2013), 영국 런던에서 열린 <텐트 런던 2011>, 부산비엔날레 2006 바다미술제 등 주요 그룹전에 다수 참여했다. 2018년에 중국 상하이 스와치 피스 호텔 아티스트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선정 되었으며, 중국의 수코타이 상하이 호텔, IFC 서울국제금융센터, 전경련회관, 한국도자재단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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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백진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Jin BAEK, ARARIO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