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였다. 아스팔트는 축축해지고, 땅은 촉촉해졌다. 도예가 이헌정의 양평 작업실로 이어지는 고불고불한 산길에도 푸른 잎들이 한가로이 누워 비를 맞고 있었다. 금세 질퍽질퍽해진 흙은, 사람이 지나는 대로 흔적을 만들었다. 수년간 손으로 흙을 만지고, 물을 적셔 모양을 내고, 불로 형태를 만드는 남자. 도예가 이헌정은 양평 작업실 마당에 서서 비에 젖어드는 흙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흙과 함께 자연 속에 있을 때 평화로워 보였다. 그는 마치 메마른 땅에 내리는 봄비 같았다.
WRITE 계안나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 박우진 (키메라앤스튜디오) VIDEO 황승헌(매거진 아트마인 영상 매니저)
야외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도예가 이헌정.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방공호 같은 그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양평 작업실은 도예가 이헌정이 손수 마련한 공간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하듯 작업하는 도예가 이헌정의 삶의 흔적이 새겨진 곳. 탐험가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치듯 그 역시 자신만의 견고한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캠프 A’라 이름 붙였다. 비옷을 입고 베이스캠프 주변에 놓인 달항아리 작품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인물 도자 작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최근 그의 작업은 사람을 더욱 닮아가고 있다. 지난 5월 4일까지 역삼동 소피스갤러리에서 열린 <세 개의 방> 전시에서는 커다란 인물 도자 작품뿐 아니라 인물을 등장시킨 드로잉도 등장했다. 인물 조각과 그림 속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본격적으로 소개한 드로잉 작품은 도자 작품처럼 자유분방하고, 재미있고, 몽환적이었다. 그는 신작 20점을 전시 제목 <세 개의 방>에 맞춰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풀어냈는데, 그중 하나의 방에는 성인 4~5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방, 즉 내부 2.4x2.4x2.4m, 외부 2.8x2.8x2.8m의 도자 설치물을 들여놓았다. ‘공예가의 방 혹은 건축가의 그릇’이라는 작품이었다. 흙으로 빚은 방에 의자와 조명, 창문을 설치해 관람객이 공간에서 명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작품은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설치미술, 조형, 생활 도자, 아트 퍼니처, 디자인,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시도한 그의 작품 여정을 보여주는 예술의 집합체였다.
도예가 이헌정은 흙으로 새로움을 빚어내고, 새로운 화두를 세상에 던지는 작가다. 10년 전 개인전에서 일그러진 달항아리를 전시하며 조선의 달항아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건 이 시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쏟아냈던 그다. 늦은 나이에 건축까지 다시 공부할 정도로 그의 사고는 남들보다 늘 한발 앞서 있다. 도예가인지, 건축가인지, 만드는 것이 그릇인지 집인지, 모호함을 추구하는 그는 늘 경계선에 있길 원한다. 그는 흙을 바라보며 내년에 열릴 새로운 전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매년 개인전을 열 정도로 가장 부지런한 작가이면서 늘 새로운 도전에 자신을 던지는 가장 무모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 시야에는 고단한 생각이 뭉쳐져 있는 듯 보이는 그의 흔적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캔버스와 물감이 뒹구는 드로잉 작업실. 요즘 그는 드로잉 작업에 빠져 있다.
드로잉 작업은 무의식 속에 있던 잠재 의식을 깨우는 일과 같다. 그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연필을 붙잡았다.
암호 같은 기호가 가득한 그의 드로잉 그림. 이번 개인전에는 드로잉 작업을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신작 20여 점을 선보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중에도, 또 다른 새로운 작업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매일 새로운 생각을 시도하지 않으면 작가라고 할 수 있나요? 한번에 새로운 작업을 탄생시킬 수는 없어요. 이것저것 다양한 ‘낯섦’을 건드리면서 점점 변하는 것이죠. 늘 새로운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새로운 작업을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납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요. 지난해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한 달 정도 그곳에서 살면서 혼자 작업을 할 생각이에요. 재료, 공구 하나 없이 자전거 딱 하나만 챙겨 가는 거라, 두렵고 외롭고 막막하지만, 그래서 진짜 작가 이헌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이번 개인전 이야기부터 할게요. 드로잉 작품과 바닥부터 천장까지 세라믹 도자기로 만든 방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최근 드로잉 작업에 빠져 있으신가요?
맞아요. 도자에 그림을 그린 적은 있지만, 이렇게 종이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적은 없죠. 요즘은 1층 가마보다 2층 사무실 쪽 창가에 놓인 책상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때가 많아요. 손으로 하는 모든 작업을 좋아하다 보니 예전부터 흙을 빚는 일 말고도 목공, 용접 등 모든 잔일을 제가 했어요. 노동자로 산 셈이죠. 그러다 보니 작업 외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뺏기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손으로 하는 일을 덜어내려 하다 보니 찾은 것이 드로잉입니다. 앞으로는 주변에 있는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등 기획자로서도 일해보려 해요.
시도하려고 하는 컬래버레이션 작업은 어떤 것인가요?
제 작업이 타인에 의해 달라진다는 듯은 아니에요. 오히려 여러 분야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과 제가 어떤 면이 다른지 알게 돼요. 내가 파란색인데, 빨간색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보라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진한 빨간색이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제가 해보지 못했던, 진한 빨강을 발현하는 다른 작업을 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지금 그리고 있는 드로잉에도 사람이 등장하네요. 작가님의 작품은 심각한 고민 대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 것 같아요.
미술 하는 사람들은 시 쓰는 사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늘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느낀 점을 자신만의 함축적인 비유와 문장으로 작품에 담아내죠. 이 드로잉을 보세요. 기호인지 영문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전체 형태가 사람 얼굴이죠? 이는 무궁무진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을 그린, 진짜 초상화라 할 수 있어요. 저는 제 작품이 시처럼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유쾌한 작품으로 보이길 바라요. 제 작품에는 늘 암호가 등장하죠. 도자기도 마찬가지고요. 도자기 속은 비어 있는데, 제가 그 안에 그림이나 글을 써놓았어요. 언젠가 도자기가 깨지면 그때서야 제가 숨겨둔 비밀을 발견하게 되겠죠. 하하.
흙을 만지는 것보다 드로잉을 하면서 더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입니다.
도자 작업을 할 때는 흙이란 재료가 주는 즐거움이 크다 보니 거기에 하염없이 빠져서 오히려 생각을 못하게 되는데, 드로잉 작업은 생각을 정리해주고, 내재된 기억을 끄집어내게 해요. 다른 형태와 방식의 자유로움을 느끼는 거죠. 드로잉은 잠재의식을 손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오랜 생각과 경험이 고인 마음속 물잔을 살살 흔들어 의식하지 못했던 일을 침전시키고, 이를 다시 꺼내는 행위 같아요. 예술은 디자인이 아니에요. 디자인은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면서 새로움을 찾지만, 예술은 작가의 무의식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이를 형태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 가서도 이런 드로잉 작업을 많이 할 생각인가요?
어떤 것을 하겠다는 생각도 계획도 전혀 없어요. 그저 생각하러 갑니다. 이곳에 있으면 눈에 보이는 일이 많아 자꾸 몸을 움직여요. 여행을 가는 것은 새로운 작업을 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예술계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위함이기도 해요. 이곳에 있으면 다양한 요구에 응해야 하거든요. 작가로서의 균형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기 위해 가는 거예요. 여기서 멈추지 않으려고. 지난 성공만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저 스스로를 등 떠밀 듯 가는 것이죠. 여행을 가는 것이 즐거운 것도 아니에요. 너무 외롭죠. 고독이 바닥을 칠 때 내 안에서 뭔가 솟아 나는 것을 느낍니다.
최근 그의 작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건조실에는 그의 손을 기다리는 작품들이 널려 있다.
지하 작업실에서 숨을 쉬고 있는 도자 작품들.
개인전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세라믹 도자기를 입힌 방을 만들었다. 작품명 '공예가의 방 혹은 건축가의 그릇’
도자 작품과 드로잉 작품 속 인물이 서로를 마주보도록 한 개인전 작품.
최근 작품을 보면 도예 작업이 이렇게 커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전시에서 방 하나를 만든 것도 그렇고요. 작업 규모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건축적인 작업이 늘고 있다고 할까요?
규모 큰 작품을 하려면 흙 자체가 달라야 해요. 적당한 흙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흙은 찾기가 어렵죠. 저는 미국, 중국 등에서 흙을 수입해 우리나라 흙과 섞어 직접 만들어요. 안료로 마찬가지고요. 최근 이렇게 점점 큰 작업을 하다 보니 가마를 바꿔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만 멈춰야겠더라고요. 이제는 큰 작업에 벗어나고 싶어요. 작가가 너무 한 가지 작업에만 몰두하면 사고방식도 고착된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면 무엇과 무엇 사이, 경계에 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새로운 가치는 깊은 사고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경계, 가변적인 형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작품과 비교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가 포인트인 겁니다. 그래서 세라믹 작업을 하다 미국으로 날아가 조각을 배웠고, 가구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건축도 마찬가지고요. 하나의 분야에 귀속되지 않고 경계를 오가며 짜릿한 일탈을 즐기는 것이 제 단점이자 장점이고, 아이덴티티입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나는 한쪽 발을 세상의 거친 물결에 담가놓고, 또 하나의 발은 마음속 조용한 물에 담가놓는다. 그리고 그 발을 번갈아 디뎌가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발을 번갈아가며 객관적인 자아로 균형을 잡는 것이 힘들지 않으세요?
무척 힘들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내’가 ‘나’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여행을 가는 것도 저 멀리에 나를 던져두고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에요. 드로잉 작업실 천장에 그림이 한 점 있어요. 폴리네시아인의 카누인데, 그들은 어릴 때부터 바다에 카누를 띄워놓고 놀면서 몸으로 파도를 느끼고 주변 지형을 익히죠. 마치 물고기처럼. 저도 그렇게 머리로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려고 해요. 마음이 향하는 곳이 망망대해라 할지라도 그저 몸이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데로 나아가려 해요. 작업도 그래요. 제 작업은 완벽성이 아니라 자유를 추구하고, 자연의 일부가 되기 위한 여정입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 군도에 당도하겠죠. 새롭고 낯선, 호기심 어린 예술이라는 세상에 말이죠.
경계 사이, 언제나 가변적인 몸짓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도예가 이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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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이헌정 – ARTMINING, SEOUL, 2018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