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에른스트-로이터-플라츠(Ernst-Reuter-Platz)는 다섯 개의 넓은 시내 도로가 만나는 회전교차로이다. 에프레미디스 갤러리(Efremidis Gallery)는 과거 IBM의 건물로 사용되었던 이 교차로의 한 켠에 2018년 9월 문을 열었다. 이미 올해 4월 안진균 작가의 개인전 <Hanged Man>을 선보였던 에프레미디스 갤러리에서 지난 11월 15일부터 한국인 사진작가 천경우의 개인전 <서울사진(Seoul Sazin)>이 열리고 있다.

Face to Face #1 and #5 (2016). Archival pigment print. 88 x 113 cm / 119 x 144 cm (framed)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Face to Face #1 and #5 (2016). Archival pigment print. 88 x 113 cm / 119 x 144 cm (framed)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갤러리에 들어서자 초상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의 얼굴들은 긴 노출시간 때문에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익숙한 느낌을 전했다. 갤러리는 작가 자신이 속한 문화-사회적 정체성을 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두 작가, 안진균 작가와 천경우 작가를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이들이 사용하는 시적인 감각과 사진 이미지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천경우 작가의 2014년 작업 'Nine Editors' 연작에서 그는 한국의 패션 에디터들에게 각자 가장 좋아하는 의상을 스튜디오로 가지고 오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그 의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몸에 걸쳐 입어 만든 새로운 이미지를 촬영했다. 퇴근 후 도시의 피곤함을 담아낸 회사원들을 찍은 초상 시리즈 'A Day in Seoul (2003)', 10여분간 카메라 앞에서 어떤 연기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배우들의 초상 사진 'Face to Face (2016)'. 천경우 작가만의 예술적 독창성은 새로운 사진기법의 사용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로 다룰 수 있는 어법과 이미지를 적절하게 선택하는 데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이번 전시의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서구적인 의미의 Photography가 아니라, ‘실제의 복사본’ 또는 ‘전환’을 뜻하는 단어 ‘사진’의 로마자 표기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사진이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의미와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Installation View/ Seoul Sazin, Efremidis Gallery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Installation View/ Seoul Sazin, Efremidis Gallery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Installation View/ Seoul Sazin, Efremidis Gallery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Installation View/ Seoul Sazin, Efremidis Gallery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Installation shot 3
Interpreters (Antonio 2) (2013). c-print. 40 x 50 cm / 41,8 x 51,8 x 4 cm (framed)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Interpreters (Antonio 2) (2013). c-print. 40 x 50 cm / 41,8 x 51,8 x 4 cm (framed) © Artist and Efremidis Gallery

우리 나라에서 ‘사진’은 13세기 고려시대 세밀 초상화를 지칭하는 단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다양한 문맥에 놓인 개개인의 초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세밀함이나 명료함이 아닌 ‘흐릿함’을 선택했다. 이것이 현대인의 초상을 더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불명료한 이미지 속에서 현대 도시인의 세밀한 초상을 만나볼 수 있는 천경우 작가의 개인전 <서울사진>은 2020년 1월 25일까지 이어진다. 

WRITE 장용성(매거진 아트마인 독일 통신원)  COOPERATION Efremidis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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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천경우, Efremidis Gallery – magazine ARTMINE / ARTMINING, SEOUL,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