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육체를 가진 인간인 한, 육체에 기억된 감각을 표현하는 데 회화만한 장르가 없다.” _서상익

“한국 구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스토리텔링 재능’을 가진 작가”라 불려온 서상익은 일상과 상상을 결합한 ‘1인극’과 같은 평범한 삶을 그린다. 3분 즉석밥과 캔버스, 낡은 소파와 전자 기타, 인체 관절 모형과 레고 브릭 등이 미묘하게 혼재하는 작업실에는, 분주한 일상의 소음보다 창을 가득 메운 볕이 아우성이다. 이 볕 아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자신의 붓질을 점검하는 서상익. 작가와 현대미술의 난폭한 변화들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 즉 회화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 그리고 지난 10여년 간 다양한 붓질을 실험해온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_Q1I3384_final

컬렉터들의 손으로 흩어져 이제는 다시 모아 볼 수 없는 <화가의 성전> 연작의 흔적이 눈에 띈다. 쓰다 남은 캔버스 위에 마티스, 피카소, 게르하르트 리히터,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피터 도이그 등 세계적 거장 작가들의 초상과 대표작을 함께 그린 <화가의 성전> 연작에 대하여 프랑스 독립 큐레이터 하일리 그레넷(Haily Grenet)은 “처음 봤을 때, 한 순간에 매료되었다”고 했었다. 작가가 그린 80여 명 작가마다 사조와 화풍, 철학적 배경이 다르다. 서상익의 재해석을 통해 선택된 인물 표정과 분위기, 대표작을 배치한 구도에 따라 사용한 ‘붓질들’도 다르다. 구석구석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림 보는 맛이 있다는 뜻이다. 매끈하게 표면 처리한 포토리얼리즘부터 시작해 다양한 ‘회화적 손길’을 탐구해온 서상익은 “화가가 다루는 철학과 재료의 기법이 일치하여 적용된 스트로크(Stroke)가 있는 붓질이 진정한 실체로서 살아있는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뉴미디어의 시대에도 회화가 존속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아온 그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말과 화려하게 포장된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신념이 느껴지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신의 선언을 끈질기게 실행하는 중이다.

_Q1I3395_final
_Q1I3289_final
_Q1I3339_final

팔레트에 짜놓은 색이 몇 가지 안 되네요.
요즘은 몇 가지 색만으로 제 색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어요. 색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섞여 사용하면 색감이 늘어요. 학생들에게도 권하는 방법이에요. 외국에서 아카데미 교육받은 작가들을 보면, 색감이 아주 좋은데 팔레트에 짜놓은 물감은 몇 개 없어요. 우리나라를 미대생들도 색을 스무 개는 짜놓고 쓰는데, 그 작가들은 보통 일곱 가지 정도만 사용하거든요. 그런 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큰 유튜브가 요즘 저의 스승이에요.

유튜브요?
어떤 작가가 어떠한 작업을 하는지 궁금하면 유튜브로 찾아 봐요. 네오 라후(Neo Rauch)는 기단 위에 올라가 작업하는데, 한번씩 내려와 자기 작품을 공연 감독처럼 보면서 즉흥적으로 배치도 바꾸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라후 그림이 좀 더 이해됐어요. 호크니의 호숫가 작업 영상도 찾아 보고요. 세상이 바뀌었죠. 예전에는 미술계의 5대 권력이 미술관 학예사, 평론가, 대학교수, 갤러리스트, 컬렉터였다면 이제는 ‘SNS’를 무시하지 못해요. 일례로, 펜화로 슈퍼마켓을 주로 그려온 이미경 작가가 책 출판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 한 사례가 있어요. 대중 기부를 통해 그림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며 BBC 기자가 뉴스로 다루게 됐어요. 이미경 작가 그림을 통해 BBC 기자는 한국과 일본에 있는 슈퍼마켓과 구멍가게 문화에 주목했어요. 오늘날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은 온라인 채널로 이동됐어요. 젊은 작가의 인생을 바꾸는 ‘한 순간’이 온라인 세계에서 왕왕 벌어져요.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채널로는 일목요연하게 이미지를 보여주는 인스타그램이 유용해요. 요즘 어떤 작가가 인기 있다고 하면 그 풍의 작업들이 쏟아져요. 화풍, 물감 사용 방식도 유행하죠. 이제는 유튜브와 같은 매체를 통해 투명하게 드러나니까 노골적으로 따라 하지 못해요. 그런 점에서 좋은 장치예요.

자기 방 안에서 전 세계를 꿰뚫는 시대에 작가는 전통적인 그리기, 즉 손맛이 느껴지는 ‘붓질’에 대한 실험에 천착해 왔어요.
처음에는 붓질을 드러내지 않는 포토리얼리즘 기법으로 그렸어요. 사진의 사실적 재현성에 제 일상 이야기를 접목해 마치 ‘현실’인 것처럼 보이기를 유도했는데, 할수록 그 붓질을 선택한 목적과 결과는 부합하지만 동기는 약해지더군요. 반대로 물감을 쌓아 올려 질감을 드러내는 방식도 해봤는데, 문제는 마티에르라는 결과물만 보이지 붓질의 동기가 결여되어 있더군요. 오로지 질감적인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대부분 질감을 드러내는 작가들은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선들을 찾아 따라가며 물감을 올리다 보니 부수적으로 질감이라는 결과물을 쌓게 된 것인데 말이에요. 그 생각이 들면서 대상을 조금 더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로 가자 라고 해서 요즘은 테크닉을 줄이고 덤덤하고 베이식 하게 그리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이 방향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붓질이 사라진 그림으로 돌아가진 않으리라고 봐요. 지난 10년간 작업하면서 굳이 회화가 사진적인 사실감을 차용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앞으로도 끝없이 변화할 것이다라는 얘기네요.
계속이요. 작가는 죽는 순간까지가 커리어잖아요.

침묵의 공간. oil on canvas. 116.8 x 91cm.  2018
침묵의 공간. oil on canvas. 116.8 x 91cm. 2018

최근 작업은 아크릴 물감을 베이스로 하고 그 위에 유화를 올리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는데요.
항상 작업에서 베이스가 약하다고 느꼈어요. 나이프로 두껍게 해도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문제는 베이스 작업이더군요. 한꺼번에 굳혀 나가는 방식으로 한 방에 그려야 하는 포토리얼리즘 작업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는 데에다 질감만 올리니 물감이 올라가는 층위에 편차가 심했고요. 이번 레스케이프 호텔 아트룸에 제 작품이 창가에 설치되어 있는데, 작가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햇볕’에서 적나라하게 붓질이 드러나는 때에요. 빈 곳이 고스란히 보이니까. 탄탄한 베이스에 대한 욕구를 ‘유화’로도 시도해봤는데, 물감들이 올라가면서 엉키는 부분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찾은 것이 아크릴이에요. 빨리 마르는 아크릴은 전체적인 공간의 색감을 쉽게 바꿀 수 있어서 편하고 그 위에 유화를 올릴 때 밀도감도 좋아요. 베이스 문제에서 아크릴은 하나의 구원의 손길이 돼 주고 있어요.

또 다른 방식의 드로잉이네요. 작가는 보통 세밀하고 완결성 있게 드로잉을 하는 편인데, 면 종이에 수채로 작업한 <해운대>나 <분홍맨>과 같은 드로잉들에서 즉흥적인 붓질이 흥미로웠거든요.
훨씬 편하게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드로잉이죠. 아크릴은 물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유화보다 번거로움이 덜하고, 빨리 마르니까 게으름 피우기도 힘들어요. 마르는 시간이 필요한 유화는 붓질 몇 번 하고 뒤로 와서 보는 척 하다가 놀거든요. 아크릴은 그러면 버리는 물감이 더 많아지니 빨리 빨리 칠해야죠. 저를 더 부지런하게 채찍질해주는 재료에요. 하하하.

작가를 채찍질하는 또 다른 동력이 있다면요.
‘작가로 출발하지만 모두 화가로 귀결된다’는 말이요. 이 세상에 크게 두 갈래의 길이 있다면, 작가로 출발해 화가로 가는 길을 부정하는 사람과 인정하면서 잘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화가로 가는 방향에 관심이 큰 사람이에요. 죽을 때까지 계속 선언만 할 수는 없어요. 선언에 바탕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재구성해내고 깊이 있게 들어가는 몫은 결국 화가에게 있어요. 그 말을 바탕으로 주변 작가들을 보면 제 나름대로 좋은 화가와 아닌 작가가 걸러지더라고요.

그 체로 걸러 좋은 화가로 남은 이들이 누구인지요.
김환기 선생님, 현존 작가로는 서용선, 김종학 선생님. 그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거부하기 힘든 작가들이요. 외국 작가로는 데이비드 호크니, 리처드 프랭크가 있고,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요즘 잘 모르겠어요.

화가의 성전 2 - 이중섭. Oil on canvas. 27.3 x 22cm. 2014 (left)
Portrait - 이중섭. Oil on canvas. 25.8 x 17.9. 2011 (right)
화가의 성전 2 - 이중섭. Oil on canvas. 27.3 x 22cm. 2014 (left) Portrait - 이중섭. Oil on canvas. 25.8 x 17.9. 2011 (right)
Portrait - 이중섭. Oil on canvas. 25.8 x 17.9. 2011
Temple of the artist
Temple of the artist

초상 시리즈의 첫 성전 인물이 게르하르트 리히터였잖아요. 고정된 양식에 안착하기를 거부하고 끝없이 예술언어를 바꿔온 리히터를 예로, 작가는 2011년 한 인터뷰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특정한 하나만을 그리는 사람은 없다. 정체성은 붓질에서 나오지 내가 어떤 대상을 그린다고 나오는 건 아니다”고 얘기했는데요.
제가 좋아한 리히터 작업은 포토리얼리즘 추상이에요. 그 그림을 보려고 유럽에도 갔는데, “이미지는 유령 같은 것이다”고 한 리히터의 ‘선언’ 이상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어요.

감동은 어디로 도망갔을까요?
미국의 한 화가가 “스트로크(Stroke)가 없는 유화는 그림이 아니다”고 말했는데, 그 생각에 동의해요. 리히터가 만들어낸 유령 같은 이야기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림 구석구석을 보면서 붓질의 흔적을 감각하며 받는 감동이 없었어요.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라는 선언은 사유의 대상으로서 가치가 있지만, 저는 어떻게든 실체를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소장하고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실체 없는 대상이지만, 그래도 실체가 있기를 바라는 미련과 믿음이 담기는 대상으로서 가치가 있다고요.

회화 공간에 대한 입장정리가 된 요즈음 작업 방향이 더 선명해졌다고요.
처음에는 하나의 스냅 사진처럼 그림으로 찍어낸 초현실적인 공간을 그렸는데, 제 스스로 회화 공간에 어떠한 입장을 가졌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공간의 확장성에 대한 고민했고, 미술관 시리즈는 공간과 인물의 관계에 대한 숙제를 풀지 못해서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요. 공간과 인물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얻게 된 초상 시리즈 이후, 요즘 더 입장정리가 되면서 작업이 선명해졌어요. 제가 만들어낸 상징의 연극이 펼쳐지는 무대와 같다고 회화 공간을 가정하는 거에요. 연극이 시작할 때 장막이 걷히는 공간과 같은 느낌으로 보여지는, 서상익의 1인극이 펼쳐지는.

_Q1I3394_final
_Q1I3100_final
lost

한창 작업 중인 그림은 ‘옥션’ 현장이네요. 최근 소더비 경매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파괴한 뱅크시 사건이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옥션 현장은 극단적인 장면이죠. 엄청난 액수들이 실시간으로 화면에 찍히는 현장을 보면서, 미술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자본의 가치가 투영될 수 있는가 놀라요.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가장 솔직한 가치잖아요. 그런 상징적인 장면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관 시리즈 연장선 작업이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미술계가 대중들과 동떨어진 세계라는 시각을 가졌다면 이제는 조금 달라요. 가격이 작품의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지만, 붓질을 뭉개거나 점 하나뿐인 캔버스가 몇 십억 몇 백억을 호가하는 미술 시장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됐거든요. 소수의 지지를 통해 가치가 지켜지는 세계, 즉 종교적인 매커니즘이 작동하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의 ‘실체 없는 가치’에 믿음을 가진 소수의 자본이 지켜나가고 있는 미술계는, 적은 수이지만 깊이 있는 믿음을 가진 신도들의 종교이죠. 요즈음 미술계를 이루는 여러 구성 요소들을 생각하면서 미술관 시리즈를 그리는 중이에요.

현실인 동시에 판타지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현장이죠. 평범한 일상에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를 접목해 그린 초창기 작업부터 시작해 “스토리텔링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구상주의 작가”라는 평을 받아왔는데, 어린 시절 관심 가진 영화, 음악, 대중문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요.
고전에서 대중문화로 넘어가는 접점, 즉 전환기 없이 현대문화 이전이 ‘단절’된 상태에서 폭발적으로 꽃핀 대중문화를 접한 세대에요. 지금에야 그러한 대중문화도 고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어릴 때는 그저 눈앞의 대중문화를 하나의 고전으로 받아들인 세대이죠. 그런 상황에서 저에게 노출됐던 수많은 대중문화 콘텐츠가 갖고 있는 상징체계들을 당연하게 사용하게 되었고요. 어릴 때부터 뇌리에 각인 효과가 큰 장면들을 표현할 때 저 스스로 큰 재미를 느꼈고, 그런 작업들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죠.

2008년 첫 개인전 완판 이후 3년간은 쉼 없이 그리며 활동했어요. 하지만 2011년 모든 전시를 접은 이후 새로운 시도를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고요.
아직도 사람들은 묻죠. “네가 잘 하던 것,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왜 계속하지 않느냐?” 하고요. 누군가의 제대로 된 조언도 없이 갑자기 미술계에 선 20대의 젊은 작가였던 저는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커리어 관리, 전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때그때 소모되면서 제가 쓰여졌다는 사실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그런 인식조차 못했으니까요. 작업을 좀 해보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팔릴만한 작품이 무언지 느낌이 와요. 하지만 “망했다” 싶은 그림들까지 마구 사가니까 자괴감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반품해달라고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런 정리가 잘 안되더라고요. 지쳤죠. 제 스스로 재미있겠다 느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무언가를 찾느라 ‘관점’이 뒤바뀌니 그림을 짜내게 되더라고요. 남들이 좋다는 것을 하기 싫어졌어요. 이야기로 구성되었을 때도 지나치게 개인적인 코드가 나오다 보니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과 소통도 어려워 보였고요. 심술이 터졌죠. 그래서 미술관 시리즈도 일부러 초현실적이거나 극적인 내러티브를 멀리하고 단조롭고 덤덤하게 그림을 그렸고요.

스스로의 작업에 빠져들지 못하니 작위적이라고 느꼈겠어요.
누가 봐도 자연스럽고 타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억지스럽게 되었죠. 나중에야 제가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내러티브를 통해 시간을 담기에 적합한 매체는 영상인데, 그것을 페인팅이라는 매체에 서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고요. 회화 공간 자체를 받아들이는 제 스스로의 정의가 안 되어 있었죠. 이런 부분들을 조금 정리하고 나서야 이전보다는 편하게 제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돌아왔어요. 작업이 많이 바뀔 거에요. 문제는 시간이에요. 미메시스 개인전이 약속되어 있는데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할 작품들이 아직 많아요.

오랜만에 개인전이네요.
주로 근작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거에요.

언젠가는 <화가의 성전> 시리즈도 다시 한번 모아 봤으면 해요. 작가에게도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업이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값에 그림이 거래되는 작가들을 탐구해가며 자신이 놓치고 있던 숙제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고요.
스스로 예술에서 무엇을 얻고자 어떠한 신념을 행하는 작가들에게 예술이란 종교와 같다고 봤어요. 그 경지에 다다른 대가들은 예술이라는 종교 내의 성인들이라고 생각했고요. 그 지점을 극대화해, 성자들의 업적에 서사를 더한 성전으로 꾸려보자 했죠. 팔십여 점의 초상을 그리며 그들은 어떠한 신념으로 예술을 계속했는지 느껴보고 싶었어요. 인물 배경에 그들의 대표작들을 넣다 보니 다양한 기법도 사용하며 실험하게 됐고요. 그들이 어떤 마인드로 색채와 붓질을 다뤘는지 유추해가면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화가의 성전>은 아마도 제가 가장 많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었을 거에요. 갤러리에서 밤 늦게까지 혼자 앉아서 보고 또 볼만큼 좋았는데, 아쉽게도 그들이 세상에 흩어져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죠.

작가 자체가 탐구의 대상이었다고 한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이끌린 매력은 무언가요.
현대의 예술가들이 갖춰야 할 여러 덕목들을 고루 잘 갖추었고, 또한 그것들을 잘 컨트롤 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죠. 앤디 워홀처럼 스타적인 기질도 있지만, 너무 드러내는 촌스러움이 없어요. 영국 신사와 같은 품위로 자신을 지켜나가지만 동성애자이고, 하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퀴어한 작가가 아닌 자기 삶의 일부로 잘 녹여낸 호크니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에요. 풀어놓는 말들은 ‘명언’이라 할 만큼 깊은데, 그림을 그릴 때는 이지적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사람으로 변신해요.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 모든 색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특이한 존재죠. 대중들에게 호응 받지만 미술계의 평가는 조금 박하게 받아왔다는 사실도 흥미롭고요.

대중의 힘이 센 시대에서 호크니는 행복한 작가로 살고 있잖아요.
대중이 강력하게 이기면 그 작가는 미술관으로 결국 가죠. 대중이 미술권력을 이기는 시대에요. 2017년 런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할 때 직접 가봤어요. 가기 전에 영국에서 유학한 선배나 동기들에게 요즘 인기 작가를 물으면 호크니는 거론도 하지 않았는데, 막상 가보니 호크니는 영국의 자부심과 같은 아이콘이더라고요. 중년 이상의 수많은 영국인들이 전시를 보려고 긴 줄을 선 풍경이 그 사실을 말해줬지요.

호크니가 있는 풍경 2. Oil on canvas. 145.5 x 112cm. 2019
호크니가 있는 풍경 2. Oil on canvas. 145.5 x 112cm. 2019

초창기 작품 배경에 주로 작업실, 자취방 등 작가의 ‘일상’이 녹아있는 공간이 등장했어요. 생활 환경들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가요?
작업실이 끼치는 영향력을 절대적이죠. 정서적으로 편한 곳과 불안한 곳. 이전에 4년 정도 사용한 정릉 작업실은 크기는 큰데 걸핏하면 하수구가 터지는 등의 문제가 있었어요. 정서적으로 불안한 공간이었던 그곳에서 마음에 들게 완성한 작업이 없어요.

구기터널과 가까운 지금 작업실도 그렇고, 이 주변을 벗어나지 않아 왔네요.
사는 공간과 작업 공간 주변이 너무 번잡한 게 싫어서요. 한적하면서도 너무 외지지 않아서 덜 외로운 환경이 좋아요. 이쪽 동네를 웬만하면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써왔는데, 요즘은 규모 있는 작업실에 필요를 느껴요. 이 동네는 천장 높은 공간 자체가 없어서, 파주나 남양주로 나갈까도 싶은데 외로울 것도 같고요. 하하하.

그 숲의 비밀 3-Hunter. Oil on canvas. 162.2 x 130.3cm. 2016-2017
그 숲의 비밀 3-Hunter. Oil on canvas. 162.2 x 130.3cm. 2016-2017

“우화적인 것은, 먼 곳의 공상적인 이야기를 꾸며낸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꿈은, 우리가 보고, 만지고 먹는 것을 이야기로 꾸며낸다.”
_ Gaston Bachelard

WRITE 장남미(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Y 최민석

_Q1I3264_final

서상익 | SANG-IK SEO

1977년 생,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을 근거지로 활동해온 작가는, <녹아내리는 오후>, <써커스>, <익숙한 풍경>, <소외한 자들의 공간-드로잉전>, <모노드라마>, <화가의 성전>, <희미한 날들>을 주제로 7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올해 여덟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2005년 ‘제3회 우수청년작가 기획전-존재와 표상’을 시작으로 우수 청년 작가 전시에 초대되며 한국, 미국, 중국 등에서 40여 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다루는 재료와 기법, 철학이 일치하는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살고자 하는 서상익은 대단한 의미는 없으나 실체 있는 삶의 존재들을 증명하고 드러내는 그림을 그려왔다. 이야기의 재능이 뛰어난 구상화가로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은 작가는, 우리 인생의 색이 확 바뀌는 순간에 대한 <Another day> 연작, 시시각각 변화하는 유동적인 풍경을 다룬 <Another day-어디로> 연작, <화가의 성전> 시리즈 등을 내놓으며 회화적 공간과 대상 선택, 붓질을 실험하며 단 하나의 스타일로 단정지을 수 없는 새로운 방향성의 작업을 부단히 이끌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