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곰리는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현대미술이 대중에게서 멀어져 전문화 되어가는 현상을 안타까워 하며 "조각품은 단순히 예술이 아니라,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삶을 직접 다루고, 작업이 삶 속에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것에 응답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 가운데 사람의 형상이나 움직임, 참여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이유이다.
WRITE 이윤지(매거진 아트마인 런던 통신원) COOPERATION Royal Academy of Arts
영국의 작은 도시 게이츠 헤드(Gateshead)에 설치된 20미터 높이의 대형 조각 ‘Angel of the North(1994)’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만들었다. 2005년 리버풀 크로스비(Crosby) 해변에 설치된 100여개의 조각상 ‘Another Place(2005)’는 설치 이후 관광 명소가 되었고, 여전히 작품의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런던의 중심 트라팔과 스퀘어 좌대(Fourth Plinth)에서 벌어진 One & Others(2010)는 2,400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살아있는 조각이 되었다. 공간 개념에 대해 유연하게 사고하고, 자연을 전시장 삼아 품어 버리고, 대중의 참여를 작품으로 만드는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의 일련의 작업들은 모두 사람의 삶을 다룬다.
곰리는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 대해 ‘전례 없는 경험, 집단적 경험을 위한 시험장’이라고 설명했다. 13개의 전시장은 공간의 구획과 개념, 중력이라는 자연의 힘에 도전하는 실험들로 가득했다. 마치 선 드로잉을 삼차원의 공간에 구현한 듯한 'Clearing VII(2019)'는 벽과 천정, 바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 무중력의 공간처럼 느끼게 한다. 관람객은 유연하게 확장하는 선들 사이로 움직이며 공간을 이해하고 즐긴다. 메인 전시장 천정에 매달린 'Matrix III(2019)'는 우리의 생활 속 모든 구조를 만들어내는 철골의 물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로 솟은 철골 구조를 뒤집어 시점을 전환시키고, 관람객은 그 구조를 올려다 보며 또 다른 시점을 경험한다. 왕립 미술원 중정에 설치된 'Iron Baby(1999)'는 생후 6일된 자신의 딸을 캐스팅한 작업이다. 너무나 가냘프고 약한 존재인 아기의 형상은 작품이 설치된 중정과 대비되며 황량하게 느껴진다. 역설적이게도 가냘픈 아기의 형상은 삶의 활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조각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관람객이 작품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변화 시킬 수 있는가?’, ‘그 과정 안에서 사람이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또한,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작품과 관계 맺기 전까지 작품에 어떤 주제도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로 사람을 꼽았다. 작품의 열린 구조는 관람객에 의해 더 확장될 수도 마무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마틴 카이저 스미스(Martin Caiger- Smith)는 화이트 큐브(Whitecube)와의 인터뷰에서 4년간의 전시 준비기간을 회상했다. "전시를 열기까지 새로운 작업을 계획하며 수용 가능한 공간, 무게 등 엄청난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고, 주어진 공간 안에서 작업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어마어마한 전시의 스케일, 방대한 작업의 양이 그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에서도 <안토니 곰리, 느낌으로>가 전시중이다. 삶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