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시대를 마감하고 북한산과 둘레길이 가까이 있는 은평구 진관동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사비나미술관은 ‘창의적, 역동성, 변화, 교류, 소통, 신성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삼각형 건물로 ‘미션(mission)’과 ‘정체성(identity)’을 이야기한다.

총 5개 층으로 이루어진 사비나미술관의 건축 설계는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가, MI 디자인은 진달래&박우혁 예술그룹이 진행했다. 융복합 전시에 적합한 2, 3층 전시장, 실내와 실외가 연결된 개방형 공간으로 미술관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신진작가의 실험적인 전시 및 다양한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될 5층 사비나플러스, 북한산 자락을 한눈에 바라보며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루프탑/명상의 방까지, “새롭게 하라, 놀라게 하라”는 슬로건에 부합하는 개성있는 공간들은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특징적이다.
자연친화적인 장소에 위치한 장점을 부각시킨 사비나미술관은 건축 그 자체가 하나의 독창적인 콘텐트하고 할만하다. 도심 속에서 사색과 명상이 가능한 기획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사유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시작을 알리는 재개관 첫 전시도 흥미를 자극한다. 2019년 1월 31일까지 진행되는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예술가의 명상법>, 레오니드 티쉬코브(Leonid Tishkov) <Private Moon> 전시와, 건축가와 시각예술가들이 참여한 상설전시 <AA프로젝트(art + architecture)-공간의 경계와 틈>의 세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이어나간다.
# 지금 여기, 몰입의 순간

숨막히게 치열한 삶을 살아가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하루하루, 공감과 위로를 원하는 사회에서 ‘마음’의 답을 명상(瞑想)에서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생각, 감정, 신체감각, 주위환경을 매 순간 자각하는 마음의 성찰은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손꼽히는 구글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저명한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CEO, 티베트 선승들을 모아 누구나 짧은 시간 내에 실행할 수 있는 감정조절 프로그램인 ‘내면검색(Search Inside Yourself)’을 진행하고 있다. 구글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골드만삭스 등 많은 기업에서도 직원들을 위해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의 재개관 첫 전시인 <그리하여 마음이 깊어짐을 느낍니다: 예술가의 명상법>은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회자되고 있는 명상의 가치와 의미를 현대미술 작가들의 명상법을 통해 살펴보는 자리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몰입하고,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고, 세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하여 뜻밖의 명상 방식을 제안하기도 하는 예술가들의 평면, 입체, 설치, 미디어 작품을 한데 아우른다.

“제가 시간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형식을 시각화한다면 직선보다는 원의 형태에 가깝습니다. 흐르는 시간을 천천히 돌이켜서 순간과 순간의 사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시공간은 무한대로 아득해지기도 하는데, 그 안을 소요하며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못하는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 잊혀져버린 것들의 경이로움에 다가서게 됩니다. 작업의 과정을 통해 순간에 머무는 시간이 저에게는 명상과 닮아 있습니다.” _김윤수


# 어둠과 고립을 묵묵히 밝히는 지표

2003년 모스크바 현대미술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북극, 뉴질랜드, 프랑스, 대만, 중국, 일본 등 세계 가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설치 프로젝트인 <Private Moon>을 진행해온 레오니드 티쉬코브는 의학도에서 예술가로 길을 바꾸고 현대인들의 고독감과 소외감을 밝혀주는 예술가로 활동해왔다. 초현실주의 대표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The Sixteenth of September 1956>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된 인공달 설치작업은, 판타지를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이상향을 실현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개인전에서는 한국의 시인 정철의 시조에서 영감을 받아 자작시 ‘The Crane of the Moon’을 쓰기도 한 티쉬코브가 작품과 연관된 자작시를 함께 소개한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위안과 따뜻한 온기와 희망을 전달하는 의미로 5층 야외 공간인 사비나플러스에 <The Stairs to the Moon>을 설치한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손실과 이익의 문제, 시간의 문제에서 완벽하게 고립되어가고 있어요. 외로움과 직면하게 됐죠. 그런 순간에 달은 어둠을, 고립을 묵묵히 밝히는 지표가 돼요. 국적과 문화가 다른 사람이 마주하는 순간에도, 달은 늘 세상을 밝히죠. 달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아요.” _레어니드 티쉬코브
# 공간과 빛, 구조와 동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협업


사비나미술관 전관에서 전개되는 <AA프로젝트: 공간의 경계와 틈>은 신사옥 시공 초창기에서부터 공간과 빛, 구조와 동선을 연구 및 탐색하는 워크샵을 통해 미술과 건축이 하나로 어우러지도록 기획한 총 8점의 공간설치작품을 선보인다. 타 장르와의 융합을 전시의 핵심적인 기획 콘셉트로 설정한 사비나미술관은 서로간의 영역을 넘나드는 ‘통섭’을 실험한다. 두 장르가 융합해 하나의 창작물이 될 수 있는 사례를 제시할 이번 프로젝트는 공공 미술관으로써 공간의 역할과 의미를 되짚은 활동이기도 하다. ‘예술가와 건축가의 실험적인 협업 프로젝트’는 13명의 참여자들이 총 16회에 이르는 워크샵을 통해 실현시킨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관람객들은 3차원의 미술과 건축으로 치밀하게 번역해 낸 공간을 체험하며 미술관 건축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는 개념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글_ 장남미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사진 및 자료제공_ 사비나미술관 02-736-4371, www.savina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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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사비나미술관 – ARTMINING, SEOUL, 2018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SAVINA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