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뉴턴이 사과를 통해 중력을 발견한 것과 같이, 행복함을 느낄 때 생성되는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발견했을 때 행복했다” 얘기한 작가는, “그 발견이 아주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도파민을 작가명으로 삼는다. 화학기호나 텍스트로는 존재하지만 ‘형상’은 없는 도파민에 작가적 상상력으로 형태와 컬러를 부여해 존재화한 작가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도파민의 형상이 내가 만든 것이기를 바란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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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과 생업의 딜레마에 대하여 다룬 OCI미술관 기획전 <족쇄와 코뚜레>에 참여한 도파민최는
일찍부터 ‘덕업일치’를 위한 삶을 이뤄가는 길을 찾아왔다. 작가는, 전시 공간을 ‘뇌’라고 가정하고
도파민들의 활약과 여러 생각 고리들이 연결, 응집, 분해되는 광경을 펼쳐놓았다.
2019 키아프(Korea International Art Fair)에서 젊은 컬렉터들로부터 크게 호응받은 도파민씨는 요즘 슈퍼마켓에 빠져있다. “가장 건강한 쇼핑이 이루어지는 공간, 오감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가득한 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중독’되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하고부터이다. 일상의 무엇이든 그에게 재미를 일으켜 행복감을 샘솟게 만드는 도파민 활동이 감지된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작업이 된다. 인류의 신비, ‘러브’ 또한. 사랑했고 이별하며 겪은 상실감에 대처하려고 영화나 게임 같은 ‘도피처’를 찾다가 중독 상태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면서 ‘이중성’을 가진 도파민이라는 신비한 존재를 알아차리게 된 우연한 계기처럼 말이다.
“원래 작업은 행복과 중독의 아이러니였어요. 행복이라는 감정을 찾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했을 뿐인데 그것에 중독되는 현상을 겪고 말았죠. 그러면서 행복과 중독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몇 년간 리서치를 통해 정신력과 의지력 또한 뇌 속 도파민 호르몬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도파민이 결핍되면 의욕과 흥미를 잃게 되고 우울증과 파킨슨병의 원인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과다 분비 시 중독 현상이 일어나 극단적인 각성 효과를 불러오고 강박증, 정신착란, 과대망상 등을 야기하죠. 양극단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가진, 대단히 ‘이중적인 호르몬'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때부터 도파민을 캐릭터로 형상화시켜 제 뇌 속에 있는 무수한 ‘판타지’에 대하여 그려보기로 했어요.”
이 특별한 주인공은 2014년 세상에 등장했다. 영국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펴낸 그래픽 노블 <찬란한 태양(The Brilliant Sun)>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드로잉, 페인팅, 영상, 아트 토이, 기업 및 브랜드 협업 프로젝트 등의 다양한 작업에 출현시켜왔다.
블랙홀처럼 무한한 암흑, 텅 비어 보이는 ‘눈’을 가진 도파민 캐릭터는 인체의 형상을 띠나, 표정이 없다. “눈썹과 입이 없기 때문에 표정을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여러 가지 행동이나 개체 수를 통해 뇌 속의 감정선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머릿속에 존재하는 호르몬이니까 털을 부착시켰고, 마치 뇌의 주름처럼 형상을 만들었죠. 물론 모두 제 상상이지만요.” 귀엽기도 하지만 괴기스럽기도 한 도파민의 창조주, 도파민최는 자신을 잃지 않고 삶을 향유하는 ‘중독’의 이용가치에 대하여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가운데 최근작들 중 눈에 띄는 제목인 ‘결혼(marriage)’은 중요한 단서이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쾌감은 도파민이, 은근하고 소소한 행복감은 세로토닌이 준다. 도파민이 강한 동기가 되어 주는 계기로서 ‘문’을 열어 준다면, 그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만들며 ‘길’을 닦아주는 역할은 세로토닌이 한다. 행복과 중독의 경계에서 파도 타기를 즐기는 도파민최의 ‘판타지계’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은 어떤 가치를 찾기 위해 질문하고 사고하는 예술의 궁극적 목적과 호환시킬 수 있는 소재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며 끝없이 충돌하는 ‘나’라는 자아를 탐구하는 요소가 된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해 작가가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온 도파민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달되는 판타지라는 뜻이다. 우리 앞에 나타난 도파민씨와 접속하는 주요한 키워드는 #도파민 #뇌 #행복 #중독 #이중성 #핑크이다.
“마약, 알코올, 일, 성, 게임, 음식, 도박, SNS 등 다양한 중독이 도처에 대기 중이다. 당연히 중독은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과 행복을 주지 않는다. 나는 이 부정성과 위험성을 상상력이라는 스위치로 전환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그 가치를 존속시키려 한다. 나아가 다양한 뇌 속의 현상들을 어려운 도표 혹은 화학기호가 아닌 상상력의 세계로 전달함으로써 새로운 풍경을 통해 감명을 주는 풍경화가와 같은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_DOPAMINE.C
도파민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해 만든 캐릭터도 흥미롭지만, 이토록 강렬한 핑크 컬러라니요!
작품에서 도파민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캐릭터는, 식욕, 색욕, 안전추구, 자존감이라는 원시 뇌의 4대 요소에 대한 이야기를 함축해 전달하는 대상이니까요. 핑크도 ‘뇌’를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에요. 아주 맛있어 보이고 섹슈얼한 색이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굉장히 여성스러운 핑크색을 사용하는 작가들과 비교하면 제 핑크는 굉장히 폭력적이기도 해요. 영국으로 유학 가기 이전인 스물여덟까지는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색이 주는 강렬함과 사회적인 금기들이 함의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핑크와 검정색을 같이 사용하는 작업은 저만의 요소를 만드는 방법이에요.
검정색은 주로 외곽 ‘선’의 요소로 적용하는데, 처음 선을 그릴 때 두려움을 가졌다고요.
회화 베이스에서 시작하지 않아서 회화적 재료에 대한 기초가 없었기 때문에요. 제가 필요로 하는 ‘얇은 선’을 어떤 미디엄을 섞어야 하는지 2년간 찾았어요. 이제는 자유로워고요. 블랙의 선은 결과물에 있어서 제 드로잉과 회화를 일치시키는 요소로서 중요해요. 도파민 캐릭터를 만화톤으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한국에서 판화를, 영국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했어요. 드로잉에서 시작된 그래픽 노블로부터, 회화, 설치, 아트 토이, 영상 등 다매체로 작업을 확장해 왔어요.
자연스럽게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와 일을 하다 보니 이르게 된 ‘작가’라는 지점처럼요. 작가가 된다는 일에 두려움이 컸지만, 그 때문에 더 도전해왔어요. 그래서일까 저는 정통적인 작업 방법보다는,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책이나 아트 토이를 만들었죠. 런던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한 이유도 같아요. 그림은 그리고 싶지만, 폭넓게 활용 가능한 실용적인 작업을 추구했어요.
자신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답을 찾는 시간이었다고 했어요.
지나치게 내적인 곳에서만 답을 찾았던 제가 ‘나만의 방식’을 배우게 된 계기는 런던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하면서예요. 어떤 키워드를 어떻게 확산시켜 소통하는 그림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배웠어요. 당시 제 관심 작가였던 데미안 허스트 같은 이들의 작업 방식을 살펴보니, 자기 키워드를 찾는 과정에서 ‘위트’를 발휘했더라고요. 세상 흔한 것들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포인트를 찾아 표출하는 능력이 위트잖아요. 저도 그렇게 따라가 보는 중이에요.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지만 현재는 전업작가로서 살아요.
한국에 돌아와 취직을 준비하며 포토샵 일러스트와 상위 개념의3D 툴인 지브러시를 배우면서 도파민 3D를 제작하게 됐어요. 키치스 팀을 만나게 된 계기에요. 그들과 함께한 <아트 토이 컬처> 전시의 성공, 연이은 사치갤러리 스타트페어 참가까지, 모두 우연하게 일이 벌어졌어요. 시간이 흐르며 키치스 팀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고, 홀로 작업실을 쓰다 신당창작아케이드를 알게 됐어요. 9기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2018년에 2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10기 입주작가로 활동한 올해 신당창작아케이드를 지나던 세줄갤러리 큐레이터 눈에 띄어 기획전에 참여하고 키아프에도 나가게 되었어요. 신기해요. 그저 재미있게 제 작업을 했을 뿐인데, 길이 이어져 왔어요.
“큰 시련 없이 잘 지내왔다”고 한 시간들에도 어려움이 있었겠지요. 대단한 작가들 사이에서 주눅들기도 했다는 2019 키아프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고, 현장에서 직접 컬렉터들도 만났어요.
젊은 컬렉터들의 작품 구매력에 놀랐어요.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해온 저를 알아봐주는 분들이 많았는데, 회화만큼 드로잉 작품에 대한 호응도도 컸어요. 제 회화의 첫 컬렉터는 2년전에 만난 유명 쇼호스트인데, 가능성 있는 작업이라고 말씀하시며 30호 페인팅을 사주셨어요. 직접 작품을 전달하며 의사인 남편 분과도 이야기를 오래 나눴는데,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겠다는 마음이 크더라고요.
도파민은 뇌 속에서 이뤄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로 그려지는 지는 모른다고 했어요. 작가 주변을 관찰하면서 재해석한 이미지들도 화면서 드러낼텐데, 어떤 것들에 관심을 갖나요?
그 부분은 색을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미세한 부분이기는 해요. 뇌 속을 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분명히 어느 부분엔가 제가 중독되어 있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당신들의 뇌는 어떤가요?” 질문을 던지니까요. 현재의 저는 재미있게도 슈퍼마켓에 중독되어 있어요. 결혼을 하고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가장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쇼핑이 슈퍼마켓이더라고요. 그 속에 다량의 도파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요즘 더 느껴요. 향기와 색과 맛과 시각적으로도 대단히 풍부한 패키지들까지, 모든 것이 도파민이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을 그림에 담아 옮기지만 거기에 슈퍼마켓은 보이지 않아요. 올해부터 한 작업들 대부분이 슈퍼마켓과 결혼을 키워드로 하는데, 저는 단지 그것을 제목으로만 단서를 남길 뿐이에요. 보는 이에 따라 “나는 무엇 때문에 행복한데, 이 상태구나” 또는 “내가 중독되어 있는 것이 이 상태구나!”를 느끼기를 바라요. 팝아트적인 요소를 가진 제 작품을 괴상한 생명체가 등장하는 ‘상태’로만 보여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뇌에 대한 요소들을 하나씩 넣고 있어요. 기법적인 표현이 중요한데,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들이 화면에서 일어날 것 같아요.
뇌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은 무언가요?
너무 많지만 하나를 꼽자면,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있으면서 더 흥미롭게 받아들인 내용이에요. 정재승 교수님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 3미터 이상 정도로 천장이 높은 곳에서 창의력이 커진다고 하더군요. 반대로 천장이 낮은 곳에서 사람은 반복된 작업에 몰두할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 신당은 창의력보다는 굉장히 장인적인 요소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저는 자주 나가요. 밖에서 창의력을 가져와서 안에서 몰두하는 시간을 가져요. 한꺼번에 드로잉 40장을 그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웃음)
A4에 드로잉 하기를 좋아하고, 그 드로잉을 스캔해 패드로 옮겨놓고 보면서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해요.
스캔이 가능한 A4를 포함한 이하 사이즈의 드로잉을 기본으로 해요. 저는 드로잉 하나로 모든 것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이것을 스캔해서 ai 파일로 변환할 수 있고, 스캔해서 빔을 쏘면 벽화도 그릴 수 있고, 시트지로 출력해 그림에 붙여 작업도 가능하고, 그냥 그 화면을 보고 그릴 수도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해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작업들을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컴퓨터로 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컴퓨터와 손으로 그리는 결과물에 차이가 큰가요?
많이요. 창의력부터가 달라요. 컴퓨터로 그리면 전혀 창의력이 생기지 않아요. 그것도 뇌의 문제일텐데, 저는 컴퓨터 안의 공간을 아주 좁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비록 A4지만 그게 훨씬 넓다는 거죠. 수작업 할 때에 자유도도 크고요. 아니면 제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이 더 수작업에 맞을 수도 있어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신당창작아케이드(Seoul Art Space Shindang)'는 공예 및 디자인 특화 레지던시 공간으로 입주작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시장 연계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중앙시장 상인들이 직접 자본을 투자해 만든 국내 최초의 민자형 지하상가인 신당지하쇼핑센터 내에 위치한다. 도파민최 작가는 이곳에서 2018년부터 입주해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신당창작아케이드 9-10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인 도파민최의 작업실. 공간 곳곳에서 발견되는 '드로잉'들은 회화를 포함해 다양한 매체로 발현되는 작업의 밑바탕이 되는 '시작점'이다.
1일 1드로잉을 모토로 삼지만 도파민이 폭발하는 날에는 여러 장의 드로잉을 그려낸다. 틀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쳐내는 놀이터이다.
화폭을 구성하는 내부적인 요소인 구도, 배치, 반복, 전환 등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요?
네 가지 요소를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넣는데, 일단 저는 추상적이지만 그림은 맛있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맛있어 보이는 요리에도 다양함이 있듯, 제 그림에는 아직 하나의 특징이나 기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그때에 맞게 그리게 되는데, 일단 그럼 맛있어 보이는 것, 섹슈얼한 것, 안전추구 같은 경우는 제 그림은 굉장히 불안해 보이면서 안정적인 이중적인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부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그것을 어떻게 딱 결정해서 말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조형적인 부분에서 나올텐데, 조형을 정의하기는 어렵잖아요. 저만의 조형은 화폭 안에서 굉장히 불안하면서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그림에 깊이와 흥미가 주어진다고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제 자존감. 그것은 곧 도파민을 그리는 것이겠지요. 네 요소를 숨기는 동시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림이나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맛있어 보이는 그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제게 맛은 습관적인 대상이에요. 제가 가진 통계로 선택하거든요. 습관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죠. 미지의 맛, 신기하고 새로운 맛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반복하다 보면 습관으로 각인되듯, 작업도 결과적으로 뇌의 작용을 통해 ‘습관’을 유지하려 하죠. (안정감이네요) 하지만 요리에 기초와 습관이 없는 저는 새로운 도전을 잘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요리를 할 때 물감 섞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껴요. 그림을 그릴 때 어느 정도 습관에서 멀어지는 행동을 하거든요. 아직 저만의 기법이나 화풍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계속 조금씩 바뀌어 가겠지요. 그래서 저는 갓 만들어 따끈따끈한 ‘지금’ 작업을 가장 아끼고 좋아해요. 과거의 것은 맛이 없게 느껴지고요.
‘뇌의 증폭’, 즉 뇌에 높은 창의력을 일으키려면 서로 먼 곳의 신경을 연결할수록 좋다고 해요. 작업하면서 그런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크래프트 브루어리 브랜드 ‘더 부스’와의 협업은 먼저 연락해 전시를 제안한 경우에요. 흔쾌히 진행되었고 재미있게 끝났죠. 뇌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정신과 진료도 받아보고 뇌 검사, 의사와 상담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2년 후에 그 분이 공동 저자로 책 작업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저와 멀리 있는 곳을 연결하는 시도죠. 현재 제 작업은 너무 도파민이 넘쳐요. 과잉 상태의 도파민을 조절하면서, 어떻게 하면 창의력을 더 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좀 더 복잡하고 시고 다양한 맛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거든요. 언젠가는 도파민이 없는 그림도 그리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도파민이 중점적인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이 말이 제게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예전부터 해온 생각이에요.
오늘 촬영한 완성 직전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내용은 미세먼지인데, 제목은 슈퍼마켓이에요. 제 뇌 속에 미세먼지처럼 침투해 있는 중독들의 원천인 슈퍼마켓, 도파민들이 쓴 방독면은 ‘안전추구’를 표현하는 함축적인 상징물이죠. 안전추구라는 말이 어려운데, 재미있게 표현하면 세 가지로 나뉘어요. 하나는 성과추구라는 강아지의 뇌, 안전추구라는 파충류의 뇌, 그리고 자존감을 가진 인간의 뇌. 파충류적인 뇌 상태를 표현하고 싶어서 미세먼지라는 개념을 넣어본 작업이에요.
강렬한 핑크색과 대비되는 블랙의 외곽선은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상징물들을 분명하게 구분시킨다. 작가는 외곽선을 통해 자신의 드로잉과 회화가 일치되는 그림을 만든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 작가들 간의 연합 전시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진행 중이에요. 올해 주제는 <스타트 러브(Start Love)>네요.
도자 작업을 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인데, 드로잉을 베이스로 자기 결과물을 만들어보자고 기획했어요. ‘사랑’을 주제로 함께 리서치 하고 드로잉도 해서 외부 평론가의 평가도 받았어요. 작가들 간에 결과물에 대한 기법 공유를 하면서 같이 작업한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있는 36명의 작가들은 서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정도만 알기 때문에 그 작가의 기초가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알 수 없어요. 셋이 모여서 그런 것들을 논의하는 건강한 시간을 가졌고, 습관적인 것이 아닌 좀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드로잉에 접근하는 방식도 더 배웠고요. 더 본능적으로 한 장의 종이를 자기 놀이터로 만들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요.
OCI미술관 기획 전시 <족쇄와 코뚜레>를 구성하며 공간 안에서 작가가 펼쳐내려 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전시 기획 의도 자체가 작업과 생업인데, 저는 항상 시소를 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이 앞서 가다가 갑자기 생업이 뛰어들어서 작업을 먹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작업이 이기기도 하는 시소게임이요. 그러나 갈수록 협업이나 외주 활동 같은 생업이 제 작업 쪽으로 점점점 따라오고 느껴요. 위태롭게 시소를 타고 있는 제 상황들을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거대한 뇌의 산은 폭발하고, 그 뒤에는 갈망과 욕망이 있고, 그 멀리에서 위태로운 동아줄을 잡고 난간에 앉아 있는 도파민이 있는 풍경을 그렸죠. 하지만 그곳에는 다행히도 이정표가 있어서 잘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함께 있어요.
출구도 있고요.
네, 그 출구가 무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정표가 있으니 희망도 있겠지요. 그래서 앞으로는 다른 활동보다 작업에 집중하는 시기를 가지려고 해요. 특별하게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아닌 한, 작은 전시를 많이 갖는 일은 지양하려고요.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새로 얻게될지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에도 뇌의 도파민 회로는 순식간에 타오른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풍족한지는 안중에도 없다. 도파민의 인생관은 그저 '무조건 더!'이다. _Daniel H. Pink
도파민최 | DOPAMINE.C
추계예술대에서 판화를, 영국 킹스턴대에서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2014년 펴낸 그래픽노블 <찬란한 태양(The Brilliant Sun)>을 기반으로 탄생한 도파민 시리즈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고 있다.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 영국의 그라피티 작가 뱅크시, YbA의 선두주자 데미안 허스트,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작가들의 세계관에 관심을 가져왔다. 2017년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 아트 페어에 참가했다. 서울문화재단 신당창작아케이트 9, 10기(2018-2019)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이며, 매년 입주작가 학습공동체(CoP)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오매갤러리 <도파민랩>, 퍼블릭갤러리 <핑크 브레인> 개인전을, 2017년 영국 사치 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2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나이키 코리아, 브루잉 컴퍼니 더 부스, 노비타, 텐자, 한두이서 등과의 아트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통해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https://cargocollective.com/jong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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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도파민최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이주연, DOPAMINE.C
COOPERATION_ OCI MUSEUM (oci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