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우에게 안개는 자연의 이미지를 넘어선 정신세계이다. 사람의 관계에서 부딪치는 소통의 부재, 정신적 교감, 기억 등과 연결된 저장소이다. 그는 저장된 시간과 공간을 현실로 이동시켜 소반과 테이블, 벤치의 형상으로 드러낸다."
Think inside the fog & square
2019년 개인전 <fog & square>를 통해 작가 손상우는,
티 테이블이 단순한 가구의 역할이 아닌 정신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를 이어주는
새로운 의미의 매개체로 조화되는 아트 퍼니처를 형상화해 선보였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뚜렷이 존재하는, 안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표현주제가 되었던 안개. 시인 기형도는 현대시 '안개'를 통해 산업화된 문명을 비판하는 장막으로서 안개를, 소설가 김승옥은 <무진기행>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안개에 빌어다 쓴바 있다. 그렇다면, 손상우의 '안개'는 어떠한 의미로서 놓아진 포석일까? 대학에서 목조형 가구를 전공하며 자신만의 표현 방식에 적합한 새로운 소재를 찾던 작가에게 대주제로 삼은 '안개'는 자기 세계로 통하게 만드는 핵심이었다. 세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불투명성'을 아트 퍼니처로 구현해낸다는 전제 하에서 합성수지 레진과 전통 한지라는 재료를 새롭게 발견해낼 수 있었던 것도 '안개' 덕분이었다.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종종 영감을 얻는 작가는 "구로사와 아키라(Kurosawa Akira) 감독의 영화 <라쇼몽>에서 보았던 안개와 꿈, 비의 이미지와 함께 먹구름 사이로 나온 한줄기 햇빛의 강렬함"을 기억한다. 단순한 이미지의 모티프를 넘어, 손상우는 자신이 지향하는 아트 퍼니처에 담아내는 '근본 철학'으로서 안개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빠트린 장치인 굴(hall)로 떨어진 일처럼.
홍대 대학원 재학 시절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만대루의 대들보와 주춧돌을 본 후 한옥의 미니멀리즘에 몰입하게 된 작가는, 이후 한옥의 구조를 가구 콘셉트에 적용해 왔다.
트레이로도 활용 가능한 작은 사이즈의 소반은 일본어로 안개를 뜻하는 '키리(kiri)'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안개'는 작가에게 자신만의 주제, 표현, 철학, 형태를 '조형 언어'로 이끌어내는 길잡이이다.
합성수지 레진은 오늘날 현대회화와 현대공예 분야에서 다양한 범주로 사용되는 산업 소재에요. 작가도 참여한바 있는 기획전 <머스트 레진>처럼 전시 주제로 아우를 만큼 많은 작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소재인데, 이것을 작가만의 표현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영감을 받은 안개라는 자연물을 보다가 문득, ‘가려진 공간’이라는 개념적인 요소를 동양적 이미지로 연결해 시각화한 가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안개라는 큰 주제 안에서 불확실성에 대한 의미와 보이지 않는 공간을 저만의 가구로 표현해보고자 합성수지와 닥나무 텍스처가 있는 한지를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냥 한지를 쓰자고 생각한게 아니라, 안개의 이미지를 만들어보려고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보며 실험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성과 제 정체성을 대변해줄 수 있는 재료로 한지가 잘 맞아 떨어졌고, 안개의 이미지 효과를 내는 재료로도 가장 적합했어요.
개념을 먼저 세우고 재료를 찾았네요. 또한 레진을 사용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고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만든 재료에요. 크게 예민하지는 않지만 온도와 습도에 그래도 영향이 발생하고, 특히 계절적 요인이 컸어요. 겨울에는 경화 속도도 더디고, 겉은 마르지만 안은 덜 굳기도 해서 망치기도 했어요. 레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황변도 일어나고 배합 비율에 따라 기포 문제도 생겨요.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레진을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안에 무언가 다른 재료를 넣는 것도요. 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나요. 안이 어떻게 보이는가에서 저는 많이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주위에서는 아무래도 가구이다 보니 ‘강도’, 즉 견고함에 대해 많이 질문해요. 레진으로만 만들었을 때 100% 튼튼하다고 말은 못하니까 소반 시리즈처럼 사이즈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에 시도한 티 테이블 시리즈는 나무라는 물성이 가진 단단함과 형태감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감각이 있으니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튼튼하다"고 받아들이더라고요.
키리 소반과 커피테이블, 그리고 신작 티 테이블과 스툴 역시 한국 건축에서 모티프를 받았다고 했어요.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전통 한옥에서 미니멀리즘을 발견했고, 대들보와 주춧돌의 기능과 구조와 가구가 가진 공통점을 발견하고 작업해 왔는데, 건축에 관심이 원래 많았나요?
가구와 연관되는 부분이 많더군요. 가구도 사람이 앉는 구조적인 개념이 있고 건축도 구조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보니, 제가 전문적으로 건축에 대해 알지는 못해도 구조적인 모티프의 지점에서 작업이 가능했어요. 예를 들어 한옥의 대들보나 주춧돌을 저만의 미니멀한 형태로 재해석해서 안개의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한지와 레진으로 덩어리의 느낌을 실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tea table, 2019. resin, korean paper, zelkova, ottchil. 500 x 300 x 200 mm / 300 x 300 x 200 mm.
안개를 형상화한다면 이미지적으로는 비정형이거나 둥그스름한 느낌이 그려지는데, 작가는 <FOG & SQUARE>를 통해 '사각형'을 제시했어요.
2018년 일본 마루누마 레지던시에서 가진 개인전 제목은 <SHAPE & FOG>예요. 안개의 형상을 눈에 보이는 효과로 계획하고 소반 형태의 트레이 테이블을 만들었는데, 이번에 티 테이블은 용도적인 측면에서 차를 마시며 대담을 하거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바둑을 두거나 하는 ‘만남’과 연관을 두고 접근했어요. 제목은 티 테이블이지만, 사각형의 공간을 가진 테이블이 어떠한 건축 공간에 들어가 사람과 만나 ‘관계’ 하면서도 그 위에 놓인 작은 안개의 공간을 공유하게 되지요. 안개라는 것이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상징하는 효과인데, 우리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서로 모르는 상태라는 점을 배제하고 만난다는 의미에서 안개의 공간을 저만의 사각형으로 가둬보고자 했어요.
중요한 개념이네요.
역시나 개념적인 접근인데, 저는 그 공간을 좀 가두고 싶었어요. 아직 미완성의 공간이고 보이지 않는 공간이니까요.
작가 스스로에 대한 대입이기도 하네요. 한옥에서 주춧돌이 갖는 기능과 같이 작가로서 길을 걸어가는 본인의 주춧돌을 놓아두는 포석으로서, 미래의 작업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고민으로서, 앞으로의 지향점에 대한 단초들이 한데 결합된 개념이 ‘안개’에 중첩되어 있네요. 그런 점에서 갤러리 밈에서 가진 개인전은 중요한 징검돌이었고요.
맞아요. 가구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제 습작으로 했던 페인팅 드로잉도 보여줄 수 있었고, 실제적으로 영상을 통해서 안개 효과와 제 작품이 중첩시키는 영상작업까지, 다양한 매체로 보여줄 수 있었어요. 재료적인 부분, 표현방법 등을요.
어느 공간에 놓인 티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 위에 얹어진 자그마한 안개의 공간, 그 위에서 차를 마시면서 행해지는 행위들은 자연과 안개의 무질서 안에서 인간이 만든 질서가 더해져 정신과 물질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심미적인 예술로 승화된다. _손상우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 대학원 시절부터 사용해온 주재료는 나무에요. 신작 티 테이블 가운데 스테인리스 스틸, 물푸레나무 작업 외에 느티나무와 오동나무를 사용한 작품은 협업 제작했어요. 옻칠은 꼭 필요한 협업이었다고 해도, 나무 작업은 작가가 직접 해도 됐는데요.
저는 주로 단풍나무나 참나무로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좀 더 단순한 형태에서 발현되는 묵직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일반 수입 나무가 아닌, 한국적인 정체성과 안개라는 동양적인 이미지의 균형을 잡아줄 무언가를 찾다가 ‘한국 나무 수종’을 찾게 되었고요. 그래서 오랫동안 옻칠 작업을 해온 친구 작가에게 부탁을 했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묵직함 속에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도록 스텐인리스 스틸 작업을 더해서 한결 미니멀하고 정갈한 가구를 만들었죠. 세 가지 큰 재료로 균형을 맞춘 셈이에요.
변화 과정을 보며 작가 스스로 느낀 부족함은 무엇이었나요?
처음한 작업들도 물론 계산 하에 만든 사이즈이지만,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단순한 사각형이지만 블루 프린트를 그리고 도면 안에서 그리드 작업을 통해 완벽한 사각형이 올려질 공간을 찾았는데, 처음에는 제가 의도한 표현이 잘 보여지도록 '크기'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형태의 크기에도 욕심을 냈는데, 지금은 오히려 작게 보여져도 무게감과 가벼움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그 결에 따라 개인전에서 함께 보여준 페인팅 작업도 모두 6:1 스케일 사이즈로 작업했고요.
티 테이블은 '스툴'이라는 이름으로 붙은 작품을 포함해, 좌식형과 입식형으로 구현했어요. 사각형 안개 공간을 제외하면 컵 두 개를 올릴 정도의 오브제화된 작은 사이즈의 티 테이블은 입식과 좌식 사이에서 지점화된 스케일이라고 보이는데, 그러한 계산도 하나하나 염두했나요?
맞아요. 입식 테이블이라 해도 그 위에 어떤 것이 올려지면 좋을까 고민하다 제 작품을 오브제로 올려둘 수 있도록 하고 싶어서 작게 디자인하고, 메인 작품들은 전시대 위에 정갈하게 올려두자고 계산한 작업들이었어요.
훌륭한 계산이었어요.
(웃음)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기분 좋아요. 그러한 계산을 사람들이 알아봐주기를 바랐어요. 계획 없이 만들지 않았으니까요. 형태의 단순함이 묻히지 않게끔 힘을 더 쏟은 과정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도 싶었어요.
오동나무와 느티나무 작업은 부러 통나무가 아닌 집성 방식으로 제작했다고요. 측면은 완전히 매끈하지 않고 우툴두툴한 나무의 텍스처가 남아 있어요. 그것 또한 의도인가요?
네. 자연적인 무늬지만 회화적인 효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요. 일반 실용 가구들은 보통 옹이나 텍스처를 다 쳐내고 만들지만, 저는 그대로 다 쓰는 성격이에요. 작품에 표현을 풍부하게 해주거든요.
나무의 옹이 부분도 가능한 그대로 쓴다는 지점은, 그것을 남겨두어도 기능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형태를 고려해 만든다는 뜻이에요. 기능과 형태가 맞물려 순환되는 구조를 ‘작가의 것’으로 잘 만들었다고 보여요. 작가가 만들고 싶은 것을 구현해내는 철학, 형태, 기능, 모두가요.
옹이가 있다 해도 나무들이 하나씩 모여서 집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점이 없어요. 자연스러운 맛을 버리지 않고 쓰고 싶어서 여러 가지 '계산'을 하죠.
나무를 마감하는 오일에 선택이 다양한데, 왜 일곱 번이나 건조하고 덧칠하는 과정을 거친 옻칠 작업을 했나요?
묵직한 하나가 꼭 필요했어요. 협업한 친구가 이런 사각형 덩어리에 옻칠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어요. 주위 사람들도 대체 이게 뭐냐고 많이들 물었다고 해요. 저는 오히려 이 형태감에서 옻칠을 함으로 뭔가 저만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잡았던 것 같아서 더 만족스러웠어요. 만약에 그냥 나무에 오일 칠을 했다면 부족했을 텐데, 입면체 안에서 옻칠을 했으니까 그 형태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그런 묵직함을 좀 보여줬던 것 같아요. 다만 앞으로 이 작업을 제가 하고 싶을 때 못하니 문제인데, 다른 식의 작업도 실험 중이에요. 뒤에 작은 블랙 티 테이블은 애쉬목에 스테인블랙 칠을 했어요. 옻칠은 고가의 프리미엄 작업이 된다면, 좀 더 대중적인 가격대로 접근 가능한 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됐거든요. 언제든 자유롭게 제가 할 수 있는 방법대로 작업해나가면서도.
tea table, 2019. resin, korean paper, paulownia, ottchil. 300 x 300 x 200 mm.
스테인리스 스틸은 어떤 과정에서 꺼내 사용해본 재료인가요?
언젠가는 한번 써보자 마음 한 켠에 둬온 차가운 물성의 재료에요. 단순한 사각 형태를 금속으로 표현하면 미니멀한 감각이 극대화되겠다고 보였죠. 완전히 매끈하고 미끄러지는 질감보다, 저는 살짝 매트하면서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샌딩 작업을 더했는데, 처음 경험하는 작업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어요. 따뜻한 물성의 나무와 차가운 물성의 스테인리스 스틸과 같이 다양한 성격의 재료들이 한 공간에서 이루는 ‘균형감'도 재미있고요.
개인전 동안 매일 전시장에 있었어요. 사람들은 어느 쪽을 더 선호하던가요?
참 신기하게도, 딱 50 : 50이었어요. 저는 옻칠과 나무가 풍기는 따뜻한 첫인상이 좋은 나무 쪽에 호응도가 집중되리라고 예측했는데, 스테인리스 스틸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결이 없으니까 미니멀해 보이고, 군더더기가 없다고요. 재미있는 반응이었어요. 아, 사람마다 역시 보는 시선은 다르고 취향이 가지각색이구나 싶더라고요.
핵심적인 ‘한 장면’이었네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처럼요. 계획이 다 있지만 언제나 비틀릴 수 있다는 것.
맞아요. 솔직히 말하면 스테인리스 스틸은 처음 작업하는 옻칠 티 테이블을 돋보이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로서 사용하고, 제가 쓰지 않았던 물성의 재료를 새롭게 한번 써보자는 두 가지에 중점을 뒀거든요. 전시장에 디스플레이를 하고서도 나무 작품들이 잘 보여서 너무 좋았고요. 헌데 오히려 스테인리스 스틸 사진을 집중해 찍는 분들이 있고 오동나무의 옻칠 텍스처를 찍는 사람도 있는, 가지각색 풍경이었죠. 꼭 가실 때마다 어떤 것이 마음에 든다는 한 마디를 남기니까 명확하게 알게 됐어요. 딱 반반이었어요.
stool, 2019. resin, washi, stainless steel. 600 x 250 x 450 mm.
첫 눈에도 “갖고 싶다” “잘 만들었다” 단번에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은 오래, 자세히 보게 되지요. 볼수록 디테일한 부분들에서 놀랐어요. 작가는 어떤 사물에 소유욕을 느끼나요?
제 성격처럼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해요. 처음에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나무 작업도 유기적인 형태나 깎는 작업을 많이 했는데, 이게 또 개념적으로 접근하다 보니까 점점 그런 쪽에 매료되어서 더 미니멀하게, 더 덜어내는 방향으로 빠져들었어요. 마치 단색화의 개념처럼, 더 몰두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가구로 표현해야 하니까 고민도 깊어지고요.
공예, 디자인, 예술의 전 분야에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아트 퍼니처 작가로서 가진 고민이 있다면요?
다음 작업이요. 레진, 한지라는 작업으로만 계속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늘 새로운 '다음'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을 마음 속에 갖고 있어요.
책이나 영화에서 얻는 영감들이 있다고 했는데, 새로움을 찾는 방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세요.
주로 제가 좋아하는 것에서 추출하려고 해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 그 한 장면이 계속 뇌리에 남으면 그런 이미지들을 가져와서 제 형태로 풀어보면서 영감을 받죠. 단순한 이미지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 올해의 흥행작 <조커>에 제가 좋아하는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해요. 할아버지 역할로 나오는데 그 배우가 젊었을 때의 영화인 <택시 드라이버> 같은 작품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러한 사람이 <조커>에서는 모히칸 컷을 하고 변해가죠. 아까도 말했듯이 제가 사람과의 모호한 관계 같은 쪽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들이 다 문학과 영화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그런 변화를 통해서 진짜 사람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내면을 가졌다는 부분에서 영감을 받기도 해요. 아니면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몬>에서 안개 효과들이 팍팍 나와요. 거기서도 이미지를 얻죠. 그런 두 가지 종류에서 얻고 있어요.
예술을 다루는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왜 아트 퍼니처 작가를 선택했어요?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영화나 만화영화, 만화책에서 본 것을 꼭 따라 만들려고 했어요. 다행히 제 생각이 손으로 잘 구현되었고요. 그래서 “나는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해 공예과에 진학했죠. 그러한 과정을 거부감 없이 했던 것 같아요.
라인의 다양화도 필요하지요. 어떤 시장을 지향하나요?
아트 퍼니처니까 프리미엄이지만 아직은 그쪽으로 갈 경험이나 연륜이 부족하기에, 그곳을 향해가는 작업을 하면서 저를 계속 발전시켜야죠. 아직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거기가 지향점이라고 해두고 싶네요.
미스트 시리즈 티 테이블, 벤치, 스툴, 사이드 테이블 등의 미니어처들과 레진의 혼합 비율과
여러 질감과 컬러의 한지 사용에 따라 최종적인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대한 실험을 거친 작업물들이 작업실에 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작가의 인생에 있는 ‘극적인 경험’은 무언가요?
제일 큰 터닝포인트인 대학원 진학과, 가구 공예를 선택한 것. 올해 서른인데, 대학원 졸업 때까지 입시든 군대든 뭐든 다 스트레이트였어요. 흔히 가는 어학연수 한번 안 가보고, 휴학도 안 해보고, 스스로의 동기부여로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대라면, 아무래도 제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서였을 거에요. 누구는 지쳐서 한번 쉬었다 가자 하는데, 저는 그것마저 아까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막 말처럼 달렸어요. 석사 졸업하니까 스물 여덟이더라고요. 제가 제일 어렸어요. 졸업하고 뭐하지? 하는 찰나에 신당창작아케이드에 입주작가로 들어왔는데, 처음 와서는 멘탈이 흔들렸어요. 선반 2개, 책상 하나, 노트북 한대로 시작했거든요. 여기서 조금씩 작업하다가 공예트렌드페어에 나가게 되고, 운 좋게 일본 마루누마 단기 레지던스에 가면서도 많이 새로운걸 보고 여러 나라의 작가들과 얘기하며 계속 성장하는 시간을 얻었어요.
신당창작아케이드 9-10기 입주작가로 2년간 있으면서 받는 영감들이 많다고요. 의자들도 짝퉁이기는 하지만 로컬리티가 느껴져 흥미롭다고 했어요.
진짜 말도 안 되게 생긴 의자들이 저를 즐겁게도 만드는 곳이에요. 감옥처럼 쇠창살로 만든 의자같이요.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조형미를 가진, 요즘 말로 힙한 디자인들의 중고 가구들도 있고요. 중고 가구들에 수량을 붙여 내놓는 방식도 재미있고, 이렇게 의자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워요. 또한 용접하시는 분들이 간단히 다리를 만들어 판재를 올린 테이블을 제작해 납품도 하는데, 도대체 디자인을 배우지 않고도 어떻게 뚝딱 만드는지도 궁금한 풍경들을 매일같이 지나가면서 보죠. 나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끼면서 자극도 받고 영감도 얻어요. 오히려 이쪽이 진짜 필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웃음) 가끔은 근처 황학동 골목에도 가요. 오늘은 뭐가 나왔나 카세트 박스도 뒤지고요. 제가 느끼는 신당의 매력은 시장보다는 이 주위에 있는 공업, 주방이나 가구, 공구 상가들에 재미에요. 저는 이 서울 중심가 한복판에 공공 레지던스 시설이 있고 작업 할 공간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좋아요.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아요. 타지에서 올라와 홍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학교는 좋았는데 그 주위가 너무 산만해서 싫었고, 마음은 너무 추웠어요. 배고팠고요. (웃음) 그러다 졸업 후 바로 오게 된 신당창작아케이드가 약간 저에게는 ‘빛’과 같았어요. 어느 순간 여기를 떠나서 다시 와보면 느낌이 이상할 것 같다는 얘기를 친구와 나눴어요. 가구 거리들 북적북적하고, 여기서 짧지만 일본도 다녀오고 전시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 짧은 시간 내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준 레지던시 공간이거든요. 작가로서 첫 시작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애정이 커요. 제가 충분히 성장해서 제 발로 나가고 싶어요.
아트 퍼니처 작가들은 크게 건축적 조형을 만드는 방향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도 해요. 예술적인 작업이지만 가구라는 점에서 ‘사람’에게로 더 향하는 쓰임을 더하는 길도 있지만요.
저는 더 사람 쪽으로 가고 싶어요. 그래도 제가 만든 가구가 누군가에게 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거든요. 그리고 작품 크기도 그렇게 크지도 않고, 개념적이기 때문에 그냥 작은 오브제로 누군가가 소유한다면 제가 느끼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해요. 물론 언젠가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한다면 예술지향적인 건축적 조형 작품도 할 수 있겠지만요.
좋아하는 아트 퍼니처 작가는 누구인가요?
실로 큰 충격을 안겨준 시로 쿠라마타(Kuramata Shiro)!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 1970년대에 일본의 스타일을 정립해서 세계에 내놓은 대가요. 그를 보며, 저만의 색을 가진 가구와 시그니처를 만들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시로 쿠라마타는 직선과 투명함으로 1970~80년대에 세계를 평정했는데,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과연 나는 한국적인 정체성을 무엇에서 찾아 나만의 작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다도 할 때 작은 티 테이블을 쓰는데, 놀랍게도 일본에는 그게 없더라고요. 그냥 다다미 방 위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이 행해지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죠. 제 작업의 형태가 장기판이 되든 바둑판이 되든 사람과 연계될 수 있는 매개체로 남겨져, 이름은 티 테이블이지만 거기에 무엇을 하든 가능한 ‘오브제’로 남기면 되겠구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 <라쇼몬>에도 나오죠. “우리의 삶에 필요한 사상은 삼천 년 전에 다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오래된 장작에 새 불을 댕기고 있을 뿐.”
그런 측면에 고민이 자꾸 늘어요. 단순하지만 뭔가 한국작가로는 최병훈 교수님이 아트 퍼니처작가로서 행했던 길들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워낙 제 윗세대에서 잘하고 계신 이광호 작가, 서정화 작가와 같은 분들을 보면서도 제 작업을 해나갈 힘을 얻고요. 그런데 일단은 강한 영감의 대상은 대부분 일본 작가였던 것 같아요. 도쿠진 요시오카, 시로 쿠라마타, 이사무 노구치와 같은 이들이요.
희대의 천재들이죠. 무엇을 표현할지 어떻게 담아야 할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는 미니멀리스트들이요. 단순히 스타일이나 형태를 넘어서는 지점에 서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철학적으로 저를 다져야겠다고 느껴요. 중요해요.
여행을 통해 얻는 영감도 있나요? 자주 떠나는 편인가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막상 가면 즐겨요. 머무르는 쪽을 좋아해요. 대부분은 제 작업을 하거나 집에서 영화를 보는 편이죠. 아, 야구 좋아해요. 그 외에는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만화도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저는 판타지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영화적인 판타지요.
2020년을 앞둔 지금, 특별한 소망이 있나요?
크게 없어요. 다만 지금 있는 것을 더 키워나가고 싶어요. 제 작업, 작업실. 생각보다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다들 제게 야망이 있다고들 말해요. (웃음) 소망이라면 앞에 얘기했듯, 제가 세운 철학적 지향점에 가까이 다가가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겠네요.
손상우 | SANG-WOO SON
전통과 현대, 투명성과 불투명성, 개념과 도형, 전통 한지와 합성수지 레진이라는 이질적 물성의 조합이라는 이분법적 대립항들이 나열되어 있는 작업을 관통하는 작업을 통해 '아트 퍼니처'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손상우는 2015년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가구디자인을 졸업하고 2017년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했다. 2018년 일본 사이타마 마루누마 갤러리에서 개인전 <Shape of fog>, 2019년 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갤러리 밈에서 개인전 <fog & square>를 가졌다. 그룹전 <항유공예>, <신당창작아케이드 기획전시 23.1제곱미터>, <머스트 레진>, <예술 속 일상, 오브제를 즐기다>, <TAG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고, 2016년부터 매년 KCDF 주최 공예트렌드페어에 참여 중이다. 2018년 일본 마루누마 예술의 숲 국제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2018-2019 신당창작아케이드 9, 10기 입주작가이다. http://www.sonsangw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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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손상우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최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