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건 '고정호 스튜디오'를 운영한지 이제 1년 남짓. 그 사이 고정호 작가는 밀라노 디자인위크 등의 굵직한 페어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가하며 가구와 디자인 소품들을 선보여왔다. 한국 전통 가옥에서 착안한 '회랑시리즈' 목가구부터 금속 의자, 모빌, 화병 등 소재와 장르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가는 개인전을 통해 자신의 가구이야기를 펼칠 꿈을 꾼다.
WRITE 박나리(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Y 고정호
2018년 설립한 고정호 스튜디오를 운영 중입니다. 고정호 작가가 운영하는 이 스튜디오는 어떤 작업을 지향하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꾸준히 작업하며 방향성을 찾아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폭넓은 분야에서 작업하는 스튜디오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작업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소설가는 글을 통해 소설을 만드는 직업이라면 디자이너는 형태적 언어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작업이 부족해 하나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아도 점차 이러한 작업 세계관이 확충, 확립되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작품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나무, 금속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가구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소재에 대한 접근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성격상 같은 작업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새로운 소재를 이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강제로 다른 소재를 이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각 주제에 맞게 가장 알맞은 소재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제와 콘셉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소재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회랑 시리즈’ 를 보면 한국의 전통적 공간과 스토리에도 작가의 많은 관심이 기우는 것을 읽을 수 있어요. 실재로도 한국적인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지요? 어떤 기회를 통해 회랑을 모티프로 작업을 하게 됐나요?
회랑 시리즈를 작업하며 한국적인 가구를 처음 접하게 됐어요. 외할머니께서 절에 자주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절’이란 전통 건축물에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커갈수록 한국적인 건축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어느 순간 이러한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회랑 시리즈’였어요.
전통 궁전의 어떤 부분에서 착안해 디자인했나요? 궁전 가운데 어떤 곳을 실재 모델로 했는디, 영감을 받았는지도 소개해주세요.
첫 시작은 절 지붕 밑을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건축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국 건축 요소를 조사하다 찾은 단어가 ‘회랑’이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일지 모르지만, 회랑은 쉽게 생각해 한쪽이 트인 긴 복도입니다. 특히 고궁에서 그 장엄함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회랑들이 존재하는데 제가 찾은 이미지가 바로 종묘의 회랑이었습니다. 기둥의 반복, 그리고 특유의 나무 짜임을 통해 느껴지는 느낌은 말로 표현 못 할 감동을 가져왔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히 종묘뿐만 아니라 한옥, 그리고 한국 고가구들을 참고하여 회랑 시리즈를 제작하게 됐습니다.
‘회랑’이 굉장히 전통적인 느낌의 목가구라면 ‘슬라이스’ 시리즈는 모던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 돋보입니다. ‘슬라이스’ 시리즈를 작업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슬라이스 시리즈는 박형호 디자이너와 함께 제작한 가구로 저 뿐만 아니라 박형호 디자이너의 색깔도 많이 묻어나오는 작업이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예전에 표출하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둘이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다 외줄 타기, 즉 아슬아슬한 감정을 형태적으로 제작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았죠. 개념적인 걸 형태적으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저희가 가장 중요시 생각했던 것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이 대중에게 잘 전달되어 다양한 매체에 소개될 수 있었어요.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저로서는 가까운 미래에 개인전을 여는 것이 목표에요. 화병과 같은 생활 속 디자인 소품부터 다양한 가구 작품들을 하나의 주제 아래 소개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_가구 디자이너 고정호
여러 비정형적인 도형들이 ‘슬라이스’ 시리즈에 변형된 형태로 등장하는데요. 개인적으로 고정호라는 작가는 어떤 도형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도형으로 비유하자면 원형에 가까운 사각형인 것 같습니다. 작업 특성상 자신의 의견, 생각을 뚜렷하고 강하게 주장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둥글게 지내는 타입입니다. 워낙 불편한 상황에 둘러싸이는 걸 싫어해 언제나 웃으면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저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에 대해서 최대한 포용하려고 합니다.
밀란 디자인 위크, 파라다이스 시티 인테리어 작업 등 비교적 짧은 작가 활동 중 다양한 국내외 프로젝트와 전시에 참여했어요.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소개할 만한 프로젝트나 전시가 있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어떤 작품을 소개했었고, 국내외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소개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밀란에서 선보인 Mete 가구 전시였습니다. 졸업 이후 우연한 기회로 Mete 가구의 오프닝을 밀란에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물론 회사의 직원으로서 참여해 크게 제 의견을 내세울 일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해외에서 페어를 경험했습니다. 한국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내던 저에게는 신세계였어요. Mete또한 현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월간 <디자인> 표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이노메싸와 제휴를 맺어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 가구 피스부터 모빌 또는 작은 화병까지, 모든 작품은 디자인만 담당하고 제작은 별도 진행을 맡기는지요? 혹은 작가가 모든 제작까지 직접 이루는지, 작업의 전반적인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최대한 제 손안에서 모든 것을 제작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완성도나 시간적인 면에서 의뢰를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작할 때 처음부터 어디에 맡겨야 할지 구상을 하며 만들고는 있지만, 쉬운 작업들은 제 손을 거치기도 합니다. 아마 제가 직접 제작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 의뢰하는 데도 큰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작품 판매 또한 작가 입장에서는 주요한 부분일 텐데요. 그간 판매된 작품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인상적인 ‘콜렉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판매 작품은 플로팅 모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첫 판매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보니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신당창작아케이드 전시를 통해 우연히 구매 의사를 받았는데 신기하게도 구매자 분이 바로 옆 동네에 거주하셨어요. 첫 판매다 보니 설명도 잘 못 드리고 작품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포장도 많이 서툴렀던 점이 기억에 남아요. 아직도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언제나 발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업을 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고정호 작가의 작업 스타일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작업을 하는 이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작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업입니다. 직업 특성상 개인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작업이 단순히 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으면 합니다. 그것이 행복일지 희망일지 저도 모르지만 최종적으로 저는 따뜻한 감정을 가진 디자이너 & 작가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1년 간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활동하며 가장 좋았던 점, 작업에 있어 큰 동력이 되었다면 어떤 점들을 꼽을 수 있을까요?
신당은 저에게 아마 평생 기억될 공간인 것 같습니다. 졸업한지 얼마 안된 작가로서 처음으로 입주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다른 분야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다뤄보지 못한 도자도 활용해보고 철제나 목재에 대한 구조적 문제도 함께 이야기하며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다른 작가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보며 옆에서 긍정적인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개인 작업실을 얻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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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고정호 – ARTMINING, SEOUL, 2020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고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