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징’ ‘철컥철컥’··· 실험실 장비들이 작은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프로그래밍을 입힌 3D 프린터가 어제 저녁부터 성실한 숙련공처럼 바지런히 움직인다. 다른 한 켠에 비치된, 라면 상자 크기의 기계에 SD 카드를 삽입한 작가는 ‘SOBAN’ ‘VASE’ 같은 파일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프로그램 값이 입력되면 프린터가 고정값에 따라 서서히 움직이며 판 위에 드로잉을 시작한다. 긴 용수철처럼 압축한 옥수수 전분을 물감처럼 녹여 형태를 쌓아 올리는 이 작업은 족히 일주일간 움직이며 소반 한 점을 완성한다. ‘디지털 크래프트’라는 신세계가 작가 류종대를 통해 실제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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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W WORLD CALLED
DIGITAL CRAFT

류종대 작가는 21세기 공예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펼친다.
목공예와 디지털 3D 기법을 활용한 '디지털 크래프트' 작업으로
전통 소반, 목가구, 오브제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공예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때 류종대 작가의 작업을 최전선에 놓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손 끝에서 완성되는 공예만의 특징과 매력에서 류종대 작가는 ‘미래의 공예’를 고민하고 담론의 장을 마련하는 힘을 갖고 있다. 홍익대학교에서 목조형을 전공한 작가는 기계의 힘을 빌린 3D 작업과 작가의 ‘손맛’이 공존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목공작업으로 소반 상판을 제작하고, 하부는 3D 작업으로 모델링해 접합하는 식이다. 요트와 목공예를 기반으로 아트 퍼니처를 만들던 작가가 디지털 3D 프린터를 접목한 작업을 시작한 것은 3년 전. 옥수수 전분으로 소반 하부를 제작한 모던하고 현대적인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다. 발전과 고민을 거듭한 작가의 작업은 디자인한 화병, 문구 수납품 등 작은 오브제로까지 확장했다. 그는 교수로 몸담고 있는 홍익대학교 외 몇 곳에서 작업실을 분산 운영중인데, 인터뷰는 신당창작아케이드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3년 간의 ‘디지털 크래프트’ 작업과 앞으로 계획중인 흥미로운 작업들에 관한 질문들이 오갔다.

최근 슈페리어갤러리에서 열린 <예술 속 일상, 오브제를 즐기다> 단체전에 소개된 류종대 작가의 '디지털 헤리티지' 시리즈
최근 슈페리어갤러리에서 열린 <예술 속 일상, 오브제를 즐기다> 단체전에 소개된 류종대 작가의 '디지털 헤리티지' 시리즈
류종대 작가의 소반 시리즈. Mint & Magenta
류종대 작가의 소반 시리즈. Mint & Magenta
소반 원목 상부. D-SOBAN(flower)
소반 원목 상부. D-SOBAN(flower)

“제 작품을 단순히 소재나 과정의 특이성에만 국한해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도하는 공예들은 다른 부분에서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_작가 류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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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인터뷰를 나눠온 공예가들의 작업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요. 3D 기계를 통해 작품 일부를 제작하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정교함에 놀라요. 무엇보다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컴퓨터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먼저 그린 뒤, 데이터를 가공해 기계 안에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방식이에요. 컴퓨터로 작업할 패턴을 스케치 하고 나면 3D 모델링을 합니다. 기계의 힘을 빌리는 과정은 사람이 손으로 만드는 것보다 모든 조건이 더 까다롭게 고려 되야 해요. 제품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모델링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보니 작업을 하다 보면 ‘이럴 거면 조각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요. (웃음) 프린터가 기존 산업기술 대비 생산 원가를 혁신적으로 낮춰준다고 홍보를 많이 하는데, 제가 ‘디지털 크래프트’라고 주제를 변경한 것처럼 생산적이지 않은 과정이 있어요. 전통적인 방식이 더 빠를 수 있는데 기계가 가진 특성이 있다 보니 프로그램 제작에만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210℃ 강화유리 표면에 소반 작업 출력을 하는데, 면적이 넓은 출력을 정교하게 진행하다 보니 초반 접착력의 질이 아주 중요해요.

일종의직조프로그래밍을 가동하는 셈인데요. 열과 같은숫자 매기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수학적이네요. 결과물은 감성을 자극하는아트인데, 과정은 상당히 이성적이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서로 상충된 개념 같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소반 몸체 부분의 경우 단색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색상 값이 일정하지만, 여러 색을 섞어 만든 꽃병이나 오브제의 경우 색상 값도 각각 다르게 적용하죠. 제 작업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부위별, 층별로 원하는 색을 선택해 조형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컬러 조립을 하거나 단계를 주어가며 작업을 해요. SD 카드에 프로그램을 저장한 뒤 프린터에 인식하면 작업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 부분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해서 소반 하나가 완성되는 데에는 밤낮 프로젝터를 작동할 경우 일주일 정도 소요 되죠.

소반 몸체를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하는 과정. 프린터가 움직이며 형태를 적제하는 과정을 일일이 값을 입력해 오차를 최소화한다.
소반 몸체를 컴퓨터 프로그래밍 작업하는 과정. 프린터가 움직이며 형태를 적제하는 과정을 일일이 값을 입력해 오차를 최소화한다.
모델링한 프로그램을 3D 프린터에 입력하면 파일을 불러들인 기계가 작업을 시작한다.
모델링한 프로그램을 3D 프린터에 입력하면 파일을 불러들인 기계가 작업을 시작한다.

옥수수 전분이라는 신소재, ‘바이오 플라스틱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어요. 작업적인 측변에서 디지털 방식을 도입한 것은 물론, 소재적인 측면에서도 공예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두루 이야기 할만한 포인트가 많은 보입니다.
옥수수 전분이 갖고 있는 재료적 기법이자 단점이 작업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는 거에요. 그걸 극복하는 방법들을 고민하게 됐어요. 더 두껍게, 더 느리게 제작을 해보니 옥수수 전분 같은 바이오 플라스틱에서 흐릿한 결정, 입자를 얻게 되더라고요. 지금 제 작업에 대입해 3D 프린터로 계단식 성형을 하면 마치 불투명한 유리 표면처럼, 흐릿하고 반짝이는 효과가 생겨요. 이것이 빛을 받게 되면 반사율이 넓어지며 마감을 하지 않아도 매력적인 마감을 뽑을 수 있어요. 얇고 가는 실타래처럼 옥수수 전분들을 색상별로 준비한 뒤, 프린터 뒤편에 연결을 하면 고온의 노즐로 재료들이 이동을 하며 녹아요. 프린터는 그 녹은 재료로 프로그래밍에 따라 작품을 형태를 적층 합니다.

옥수수 전분이기 때문에 물에 녹지 않을까요?
5~10년 정도 물에 담그면 녹겠죠. (웃음)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이라고 해도 98%만 식물성 레진이고 나머지 2%는 화학적 성분이 들어가 있어요.

소재가 대중적이기 때문에 작가로서 완성된 작품에 대한 시장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었을 같아요.
미술관에서 거래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결국 새로운 방식의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데 이르렀고, 소비자와 교감하고 설득하려면 화병이나 생필품이 아닌 ‘오브제’을 제작해야 한다는 데 이른 거죠. 그렇지만 제 작품을 단순히 소재나 과정의 특이성에만 국한해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시도하는 공예들은 다른 부분에서 가치가 있다고 믿어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다는 재료적 측면은 물론, 스튜디오나 작업실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는 거죠. 3D 프린터 작업을 하다 보면 부산물이 많이 남아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섞어 다양한 컬러로 작업에 적용하다 보니 일종의 ‘업사이클링’ 작업으로도 봐 주시고요. 확장성을 토대로 한 이런 방식 자체가 어느 순간 새로운 주류가 되는 것 같아요.

 옥수수 전분을 녹인 뒤 드로잉하듯 움직이는 3D 프린터
옥수수 전분을 녹인 뒤 드로잉하듯 움직이는 3D 프린터
일주일 정도 쉬지 않고 프린터를 작동하면 중간 크기 소반이 완성된다.
일주일 정도 쉬지 않고 프린터를 작동하면 중간 크기 소반이 완성된다.

소반의 몸체나 사방탁자의 표면 등에 화려한 원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안료를 섞기 때문에 환한 색이 나오는 것 같아요. 팬톤 컬러 칩 도색을 하는 업체의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하는 색상이 자유롭게 가능해요. 구현할 수 있는 색은 무궁무진 합니다. 제조 회사에서 제조하는 배합에 따라 같은 컬러라도 컬러감이 달라요.

다양한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컬러칩'
다양한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컬러칩'

상판 접합에 목공예 작업을 더한 것은 작가의손맛 더한 공예적 미감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요?
목공예를 전공한 제게 나무는 디지털 소재 못지 않게 중요해요. 소반 본체랑 접합할 나무 상판은 색상이나 재질감을 주요하게 봅니다. 호두나무나 화이트 오크, 메이플, 레드 오크 같은 수종들과 어떻게 매치를 해야 아름다운가를 봐요. 호두나무 같은 어두운 나무는 밝거나 아예 어두운 컬러의 본체와 잘 어울리고, 중채도와 붙여 놓으면 색이 탁해지고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상판에 옻칠을 한 작품도 있어요. 처음 소반을 만든 뒤 전시를 열고 싶었는데, 나무, 옥수수 전분 프린팅 방식을 갖고는 판매까지 이뤄지기가 힘들겠더라고요. 미술시장에서 유통되기에는 가격이 맞질 않았어요. ‘고급스런 전통 공예 마감재와 결합 하면 좀 더 아름다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고민 끝에 유남권 옻칠 이수자 작가분과 협업을 해서 소반 작업을 하게 됐죠.

화려한 색상이나 모던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돋보여 젊은 컬렉터 층의 인기가 높을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작품 중에선 소반의 판매가 가장 높아요. 비용이 저렴하진 않아 젊은층보다는 갤러리나 컬렉터들이 주로 구매 하세요. 소반 시리즈 중에서는 오리지널 작품의 반응이 제일 좋죠. 흰색이나 회색 같은 ‘점잖은’ 색상을 많이들 선호하고요. 전시에서는 아무래도 이목을 끌기 위해 제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밝은 색 재료를 활용하고 있어요. 전반적으로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을 흥미롭게 받아들여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밝은 색상 제품 위주로 소개하는 편이에요. 작품을 컬렉션 한 데 감사드리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작가가 되야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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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창작아케이드 10기 입주작가로 활동 중인 류종대 작가. 목공과 금속 작업을 할 수 있는 별도의 공동 작업실이 있어 사이즈가 작은 작업은 대부분 이곳에서 진행한다.

디지털 크래프트라는 것이 개념적으로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작가 입장에서는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전통 공예를 하는 이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나 비판의 주체로 여겨지는 시선은 없는지 궁금하네요.
지난 공예트렌드세미나 패널로 참석했을 때도 그와 유사한 질문을 받았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게 무슨 새로운 공예냐”는 공격이나 비난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의외로 새로운 흐름에 대해 소비자나 업계가 굉장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하기 대문에 공격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연구의 대상,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아닐까요?
기존 방식이 아니다 보니 늘 작업을 대할 때 개념적으로 접근해요. 논문이나 저서 작업을 박사 과정에서 함께 진행해 이론적으로 토대를 쌓아가려 하고요. 새로운 공예방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있고, 아직까지 제대로 이 분야를 아는 작가들이 적어 제대로 공격을 받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거에요. 새로운 방식의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것에 명분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론과 작업을 확장하고 병행해 나가야겠죠.

어떤 계기로 지금의디지털 크래프트 안착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3년 전 일본의 마루노 아트파크라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공모작가로 선정된 일이 있어요. 그곳이 목공작업을 할 만한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외의 실험적인 작업들을 해야만 했죠. 당시 요트 디자인과 목공예라는 상반된 디자인을 동시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두 분야가 아날로그적 요소와 디지털 도구를 동시에 요했어요. 익숙지 않은 어려운 시도였지만, 새로운 텍스처나 구조, 마감, 형상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작업이 되겠다는 생각에 네덜란드에서 프린터를 구입해 일본에 가져갔어요. ‘요트’라는 상업 디자인을 하며 디지털 기기를 자연스럽게 접했기 때문에 그런 우연한 상황이 작업을 시도하도록 이끈 거죠.

목공예와 요트 디자인을 병행하며 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독립 디자이너,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요트 디자인이라는 상업적인 작업을 통해 작가로서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죠. 요트 디자인을 먼저 하면서 대학원 진학을 목공예나 아트 퍼니처 작가로 이어갔었어요. 차츰 대학원 진학을 하며 그때부터 요트 디자인 지속해서 하게 된 거죠. 힘들어도 병행해 나가다보니 어느 순간 공모전에도 당선되고 작가로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어 만족해요.

마루노 아트 파크 레지던시 작업실. 3년 전 이곳에서의 프린터 작업이 지금의 '디지털 크래프트' 작업의 단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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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노 아트 파크 레지던시 작업실. 3년 전 이곳에서의 프린터 작업이 지금의 '디지털 크래프트' 작업의 단초가 됐다

사실디지털 크래프트 테마로 공예의 맛과 기계의 정교함을 담은 소반으로 주목을 얻어왔는데요. 의자, 사방탁자, 화병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죠.
기존에는 나무를 구부려 형태를 잡는 대표 기법인 ‘우드 밴딩’을 활용한 조형적인 목가구를 작업했어요. <인셉션 체어(Inception Chair> 같은 작업을 들 수 있겠죠. ‘어떻게 하면 기존 밴딩 기술을 가지고 나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조형 작업을 연출할 수 있을까?’ ‘2D 밴딩을 조형적으로 결합해 독특한 조형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에요. 그 뒤 ‘디지털 크래프트(Digital Craft)’라는 주제로 넘어와서는 ‘너무 불편한 디지털 기술을 저 같은 디자이너나 아티스트가 뭔가 만들어 전시를 하고 미술 시장에서 판매해보면 어떨까?’ 그런 의무감을 실행하게 됐습니다. 기술이 초기 미완성 단계였기 때문에 작업을 할만한 개연성,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소반을 만들게 됐죠. 저는 공예 기반의 작가이자 아트 퍼니처 작가이기 때문에 전시하고 콜렉터와 교감하고 미술시장에서 판매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시장에서 통용되기 위해 소반의 크기나 용도를 변형하고 확장하며 본격적으로 디지털 크래프트 작업을 시작했어요.

전통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헤리티지' 시리즈
전통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지털 헤리티지' 시리즈
사방탁자 틈새에 전통 기와, 단청 무늬를 3D 프린터 작업으로 더한 'D-SABANG'
사방탁자 틈새에 전통 기와, 단청 무늬를 3D 프린터 작업으로 더한 'D-SABANG'

지난해 서울 문화재단과 협업프로젝트 <레트로 서울> 진행했어요. 신당창작아케이드 작가들과 함께 전시가 상당히 흥미로웠는데요.
‘신당 창작아케이드’가 자리한 중앙시장은 개화기 때 조성된 대표적인 제례시장입니다. 이 공간에서 시장 상인과 예술작가들이 공생하는 이질적이면서 재미난 조합을 통해 레지던시와 중앙시장이 발전해온 역사적, 환경적 배경, 1920년대를 전후해 개화기 때 시대상을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당시의 공예상, 발전 과정, 경향에 관해 자료를 찾아서 유추해본 거죠.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 서양과는 다르게 산업 공예가 발달하지 못했고, 서울에서 발전해온 공예 디자인이 기존 미술시장과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었던 걸 알 수 있었어요. ‘조선 목가구’라고 하는 우리의 대표적인 목공예분야도 제대로 된 현대성을 겪지 못했더라고요. 입식문화나 서양 가구들이 반 강제로 들어오면서 대한제국에서 사용했던 가구들도 서양의 입식 가구들이 주를 이뤘죠. 그 과정에 유일하게 소반만 가장 유연한 변화의 흐름을 겪은 공예품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서민들도 특별히 현대화하지 않아도 입식에선 ‘트레이’, 좌식에선 ‘소반’으로 사용할 수 있던 거죠. 소반 만이 유일하게 당시 서민들이 아직까지 쓰고 있다는 자료를 봤어요. 새로운 기술이 기존 공예와 어떻게 공생하며, 기존 공예가 하지 못하는 작업을 어떻게 해 나가는가 경향을 분석했더니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죠. 2010년대 새로운 공예의 방식으로 조선 목가구의 구조나 장식을 대체할 수는 없을까, 당시 오리지널 조선 목가구 방식으로는 표현할 수 없던 것을 새롭게 구현하고 싶은 바람 끝에 나온 작업이 작년부터 선보인 ‘디지털 헤리티지(Digital Heritage)’ 작업이에요. 목공예와 디지털 헤리티지, 디지털 크래프트, 디지털 2.0이라는 작업들로 제 작업을 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지털 헤리티지> 작업이란 전통 목가구의 패턴, 기왓장 무늬 같은 부분들을 3D 프린터를 활용해 디지털 요소로 변환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우연한 기회에 전통 건축의 요소를 디지털 가공기술로 작업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게 됐어요. 전통적인 것, 기존 작업에 존재하는 것과 대비를 이루며 융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와라는 전통 건축 양식과 3D 프린터를 위시한 새로운 방식이 만났을 때 에너지가 증폭되는 느낌이었죠. 새로운 것에 대한 반작용을 완충시키는 부분도 있고요. 아무래도 관객들은 새로운 것에서 기존의 익숙한 요소를 찾을 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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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크래프트 2.0 시리즈 중 '버블컵'. 옥수수 전분 소재로 만든 친환경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디지털 크래프트 2.0 시리즈 중 '버블컵'. 옥수수 전분 소재로 만든 친환경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서랍장, 소반 여러 가지를 해왔는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디지털 크래프트, 디지털 헤리티지, 디지털 크래프트 2.0까지 작업이 넘어 왔어요. 디지털 헤리티지 작업의 연장선으로서 작업 프로세스를 완전히 뒤집어 작업 중입니다. 구상과 도면을 그려 조형을 성형하는 목공기계나 가마를 사용 되는데요. 이것을 반대로 구상한 것을 스케치하고, 혹은 조형을 해서 디지털 스캐닝 뒤 최종적으로 디지털 3D프린팅이나 CNC또는 레이저로 뽑아내는 작업을 해보고 있어요. 개념도 정립하고, 작품으로 임팩트 있게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언젠가는 인간이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대가 같아요.
기능적으로만 기술 문화가 발전되고 정착되면 기계에 종속될 수 밖에 없겠죠. 판결, 작업 모든 분야에서 말이에요. 다른 측면에서 기술문화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어요. 기계가 정복할 수 없는 여지를 남기고 만들어가는 거죠.

목공예, 요트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다양한 직함 가운데 어떻게 불리고 싶어하나요?
굉장히 고민되는 지점이에요. 저와 비슷한 범주의 활동을 하는 분들을 유심히 보는데, 어떻게 불리는 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굳이 선택하자면 아트 퍼니처 작가라고 소개를 하는 편이에요. 계속 예술 작품 같은 가구, 생활 오브제들을 만들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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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류종대, 이주연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JONGDAE RYU, JUYEO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