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미래에 대한 전통이다.
고려청자하면 삼강기법이 떠오르듯, 윤주철의 첨장기법이라는 또 하나의 전통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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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윤주철

WRITE 박나리(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Y 박우진 VIDEO 매거진 아트마인 영상팀

윤주철 작가는 전통 귀얄기법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첨장기법'으로 새로운 도자조형을 완성한다.
도자 표면을 붓으로 쓸어내고 말리기를 150~300여 차례. 날카로운 침처럼, 선인장의 가시처럼, 무수한 돌기를 두른 독창적인 첨장이 완성된다.
윤주철 작가는 전통 귀얄기법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첨장기법'으로 새로운 도자조형을 완성한다. 도자 표면을 붓으로 쓸어내고 말리기를 150~300여 차례. 날카로운 침처럼, 선인장의 가시처럼, 무수한 돌기를 두른 독창적인 첨장이 완성된다.

손을 뻗어 쓰다듬고 만져보고 싶은 욕망을 참는다는 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 앞에서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청아한 백자의 미감과 청자의 오묘한 빛깔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끊임없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고 일깨운다. 그런 것이 여백의 공간 속에 드러나지 않는 도자의 생명이라는 것에 기꺼이 동의하는 것은, 미려한 도자를 만났을 때 종종 드는 생각이다.
매끈한 표면과 유려한 곡선, 다채로운 자연의 빛을 품은 도자만이 최고의 공예라고 믿어온 시대에 윤주철의 도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뾰족한 장식을 꾸미는 기술이라는 뜻의 첨장기법(尖裝技法)’. 마치 선인장처럼, 얇고 성근 돌기로 뒤덮인 도자를 마주한 관객의 반응은 갈렸다. 2005, 작품을 외부에 처음 선보이던 당시를 소회하는 작가의 얼굴은 당시 대중의 반응이 얼마나 적나라했는가를 방증하고 있었다.낯설다며 거부감을 표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 뭐지?’ 흥미롭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도자에 대해 잘 알거나 관심이 높은 이들은 전반적으로 의외라는 반응이었죠.”

윤주철 작가의 대표작가운데 하나인 '화이트 첨장(WHITE CHEMJANG)'. 지난 2월 KCDF에서 연 개인전에는 스무 점이 넘는 화이트 첨장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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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철 작가의 대표작가운데 하나인 '화이트 첨장(WHITE CHEMJANG)'. 지난 12월 KCDF 개인전에는 스무 점이 넘는 화이트 첨장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

평면에서 입체로, 눈에서 손으로, 조형언어의 새로운 감상 포인트를 제시한 첨장 시리즈는 이후 윤주철이 세계적인 작가로 도약할 수 있는 든든한 발화점이 됐다. 사실 도예가의 길은 태생부터 이미 그러했던일인 지도 모른다. 대대로 문경에서 옹기를 제작해온 외가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흙과 친숙했던 덕분이다. 전통 도자의 귀얄기법(─技法, 넓고 굵은 붓으로 형체가 완성된 기면 위에 백토를 바르는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표현한 작품들은 기묘하고 신비로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종종 해석되어왔다. 바늘처럼 뾰족한 돌기를 두른 첨장 도자는 늘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왔다. 해저 깊숙이 자리한 오색 찬란한 산호초, 동굴 속 종류석, 고슴도치에서 복어까지 조형형태를 해석하는 다채로운 시선이 존재한다.
20061회 개인전 <CHEOMJANG>을 통해 첨장기법을 선보였으니 올해로 13. 2006년 일본 신세계 공예관 기획전, 2008 필라델피아 크라프트쇼, 2009 청주공예비엔날레, 2011 한국-프랑스 갤러리 교류전 등에 참여하며 국내외를 무대로 작업을 확장해왔다. 특히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타이완국제도예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입상은 첨장도자로 작업할 수 있는 큰 동력이 됐다. 2017V&A 뮤지엄의 작품 소장, 지난해 연말 열린 KCDF 중견작가 지원전시 <백색첨장White Cheomjang> 전을 마치며 스물 여덟 해 도예가의 삶에 중요한 지점에 서있다. 지난 2월 런던 콜렉트 페어를 시작으로, 4월과 5월에는 밀라노와 파리에서 아트마이닝 글로벌 프로모션에 참여한다. 작업과 생활의 근간인 경기도 고양, 윤주철 미술관을 완성할 10년 뒤를 꿈꾸는 공예가 윤주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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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아내와 두 딸의 생활공간이 이웃한 윤주철 작가의 고양 작업실. '첨장기법'으로 완성한 종지와 문고리, 설치작품들이 흥미롭다.

‘한국적인 색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첨장기법’은 어느새 윤주철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고유명사가 됐어요.
첨장기법은 기존에 없던 기법이에요. ‘뾰족한 장식’이라는 뜻을 담은 한자어로 도자 표면에 뾰족한 돌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뜻하죠. 흙물의 퇴적현상을 통해 장식을 하는데, 분청사기의 귀얄기법을 무한 반복하다보면 도자 표면에 돌기가 형성되죠. ‘흙물을 발라 어떻게 저렇게 뾰족하게 만들까?’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는데, 도자기가 갖고 있는 흙의 장점과 물성을 이용한 거에요

손으로 물레를 돌리며 붓으로 도자 표면을 훑다 보면 자연스럽게 돌기가 형성된다는 작업이 호기심을 자아내요. 어떤 계기로 참장기법을 터득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해외 교류를 통해 외국 작가들을 만나며 ‘한국적인 색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전통’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됐죠. 곰곰이 돌이켜보니 작가로서의 정체성, 작업에서 드러나는 고유색을 찾기가 힘들었죠. 기존까지 해오던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어요. 앞으로 수십 년 더 작가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데 매듭을 짓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적인 것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2002년 즈음의 일이니 삼십 대 초반 일찍이 작업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왔다고 볼 수 있겠어요. 한국성에 대한 고민을 어떤 식으로 구체화해 나갔는지, 그 과정에서 첨장기법이 탄생한 일화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2002년경 ‘뭔가 내 색을 찾자’는 결심을 안고 작업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됐어요. 가장 대표적인 한국 도자로 꼽히는 청자와 백자 순으로 모든 자료를 훑고 작업에 다양하게 접목했죠. 한국의 도자사는 청자, 백자, 분청, 옹기 이렇게 네 파트에요. 상감기법은 워낙 독보적이고 역사가 길고, 그 다음으로 잘 알려진 것이 ‘백자’라는 조선의 혼을 담은 도자장르죠. 청자로 작업을 하자니 이미 유명해서 그 안에서 제가 찾아낼 틈이 없었고, 백자는 제 작업과 결이 맞지 않았어요. 분청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만의 한국적인 기법이에요. 서민들이 만들어 쓰던 도자이기 때문에 기법 면에서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백토로 작업하니 제가 추구하는 작품과도 소재적인 면에서 결이 맞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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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 기존에 익숙하던 것과 전혀 다른 현상을 목도할 때 우리는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저항감을 갖죠. 첫 개인전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전통적인 백자에 대한 저항감이 컸을 것 같거든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의외라는 반응이었죠. 평면적인 도자의 단면이 입체적으로 바뀐 거잖아요. 2006년 첫 개인전을 열고 나서 ‘이게 무엇이냐?’ ‘어떻게 만드느냐?’ ‘귀얄기법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런 질문들에 답변 할 수 밖에 없었죠. 1년 정도 설명을 하고 나니 레파토리가 생기더라고요. 그때까지는 ‘첨장기법’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이름을 지으면 훨씬 제 작업을 소개하기 수월하고 하나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인정받고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목표는 ‘아시아를 섭렵하자’는 것이었어요. 한자를 붙인 것도 그런 이유죠. 뾰족할 ‘첨(尖)’, 장식 ‘장(裝)’, 그렇게 ‘첨장 기법’이 출생신고를 마친 거죠.

서른 초반의 젊은 나이에 도예가로서 평생을 매진할 수 있는 자신 만의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했다는 건 일종의 축복인 것 같아요. 비교적 실험적인 작업을 뚝심 있게 밀고 갈 수 있던 건 적절한 타이밍에 국내외 기관에서 상을 수여 받은 것도 한몫 하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오랜 시간 여러 방법을 활용해 실험한 끝에 2004년 첨장기법이 안착됐고, 2005년부터 공모전에 작품을 내기 시작했어요. 일본 미노국제공모전을 먼저 냈는데 그때만 해도 돌기가 뭉치기도 하고 모양이 균일하진 않았어요. 이후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대상을 받으면서 작업에 확신을 얻게 됐죠. 실재로 첫 개인전을 연 것도 수상 후에 연결된 일이고요. 그 이후 형태나 기법적으로 안정화가 됐어요. 크기, 두께, 모양 균일화 됐고, 데이터가 확보 되면서 원하는 데로 도자모양을 잡을 수 있었죠.

삼강청자의 형태, 백자 달항아리에서 형태의 모티프를 차용한다면, 소재적인 면에서는 백토를 사용해 전통 분장 방식을 따르고 있어요.
돌기를 만들 때는 캐스팅 한 도자 표면에 붓을 쓸어가며 바르고 굳히는 작업을 무한 반복합니다. 석고의 형태는 전통 항아리, 청자나 백자에서 모티프를 삼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현대적인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의외로 해외에서는 제 작품을 전통적인 한국 도자로 보는 시각이 커요. 도자의 형태가 굉장히 한국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죠.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고, 보고 자라온 한국 적인 것들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아요.

곁에서 지켜보니 손물레를 치며 일일이 돌기를 형성하고 그 ‘첨장’ 끝부분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것 같아요.
기계로 작업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있어요. 물레를 치며 붓으로 기물 표면을 쓸고, 2~3분 말린 뒤 다시 돌기를 잡아가는데, 이 과정을 100~150회 정도 반복해야 작은 첨장 한 점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말리다 보면 소위 ‘침’을 살릴 수 없어요. 바르고 말리다보면 표면이 조금씩 올라오면서 자연스러운 돌기가 형성되요. 흙물 농도에 따라 점성이 달라지고, 바르는 방향에 따라 돌기의 형성과정에서 기물의 표면에서 건조와 수축이 이루어지죠. 첨장은 3cm 정도까지 만들 수 있는데, 그쯤 되니 무게 때문에 불속에서 처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돌기를 만져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다 상품화 한 것이 KCDF 우수공예품으로 지정돼 판매 중인 ‘첨장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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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구 표면과 돌기에 금박을 입힌 ‘화이트 첨장’ 외에도 다양한 색감의 첨장 작품들이 인상적이에요. 돌기가 입체적이다 보니 각도나 빛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화이트 첨장에 덧입히는 금은 순금 함량이 16% 정도 됩니다. 도자 상부에 바르는 것도 모두 동일하죠. 금 바르는 것은 아무래도 작품가가 조금 더 높을 수밖에 없어요. 재료도 고가인데다 소송도 더 해야 하기 때문이죠. 금이 녹여진액체를 만들어 바른 뒤, 그걸 가마에 넣고 800℃에서 구우면 액체는 타서 날라가고 실재 금만 남아 붙는 거죠. 한번 작업으로는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얼룩덜룩해서 보통 세 번 정도 발라요.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
주로 바닷속 생명체, 특히 산호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제 작품에서 강한 보색을 사용하는 것도산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들이에요. 색을 중첩해서 바르며 깊이 있는 컬러감을 내고자 노력해요. 같은 빨간색이라고 해도 이를 테면 노란색에서 주황색, 빨간색 순으로 단계별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거죠. 그래야 색이 깊어져요.

한 작가의 작업을 제대로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과정을 기록화하고 동시대 미술 사조 안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들여다보는 작업들이 필요하죠. 해외에서는 이런 시스템들이 잘 정착되어 있고요. 그에 반해 한국 도예는 물론, 윤주철 작가의 첨장기법과 작품에 대한 자료가 아직까지 많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에요.
해외에서 작품을 선보이다 보면 ‘한국 도예’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종종 있어요. 나라 크기에 비해 공예 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은 편인데 큰 특징이 없는 것 같아요. 런던 COLLECT나 시카고 SOFA에 참여하는 작가군도 대부분 유사하고요. 그만큼 도예가로서의 기본기나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소위 해외에서 소개할 수 있는 작가군이 많지 않다는 방증이겠죠. 도자 쪽은 해외 프로모션을 중요하게 생각한 시점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2008~2009년 KCDF가 해외 사업을 시작하면서 2009년 필라델피아 크래프트쇼를 발판 삼았으니 이제 10년 정도 온 거죠.  최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활발히 해외 무대의 발판을 만들면서 젊은 작가들의 지원도 활발해졌어요. 그 안에서 제 작업의 체계적인 기록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2006년 첨장기법으로 첫 전시를 연 뒤 윤주철 작가의 첨장기법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색상과 돌기의 구현방식, 조형미 등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해외 전시를 많이 참여하면서 ‘한국성’에 대한 고민도 남다를 것 같아요. 한국 공예에 대한 해외의 시선은 어떠한가요?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공예가를 양성하겠다는 대학 기관들의 정책으로 많은 작가들이 공예분야에 쏟아져 나왔어요. 그렇다 보니 활로는 한정적인데 경쟁은 굉장히 치열한 거에요. ‘내 색은 무엇이지’, ‘한국적인 것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라는 강박이 심했던 것 같아요. 2000년 초반에만 해도 한국 도자가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어요. 2000년대 넘어 재료에 대한 탐구가 많아지며 유약을 바르는 컬러도 다양해진 거고요. 도자 작업의 시작은 그 지역, 특성, 재료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시작하는 전통이 그런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게 됐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미래의 재산, 가치가 되고 지금 제가 진행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죠. 첨장이라는 것이 시각적으로는 전혀 다른 기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재료적인 특성이건, 문화적인 특성은 결국 전통이라는 맥락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결국 행위자, 즉 작가의 생각이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전통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결과로 나오는지가 중요한 거죠.

도자에 대해 역사가 깊은 중국과 일본에서 거의 매년 전시를 열어오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첨장작업’을 어떻게 느끼고 평가하는 지 궁금합니다.
5~6년 전부터 중국에서 매해 꾸준히 전시를 열고 있어요. 중국은 도자에 대한 관심도 높고 워낙보수적이라 새로운 형식의 도자에 대한 거부감도 센 편이에요. 인증되지 않은 것들을 신뢰하지 않고 처음에는 약간 배타적이죠. 하지만 2~3년 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중국 문화에 있어 도자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잖아요. 우리나라 장인들이 그러하듯, 전통적인 것을 지키려는 노력에 공을 들이는데 최근 중국 정부에서 전통을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접목해 변화해야 한다는 정책에 힘을 싣고 있어요. ‘현대의 중국 도자기’를 생산하라는 거죠. 그 전의 요장들이 유약이나 형태 정도만 조금씩 바꿔왔다면 지금은 굉장히 격변의 시기에요. 그렇다 보니 제 작품에 관심을 많이 표하고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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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18년 런던 V&A 뮤지엄에 작품이 소장되며 더욱 주목 받는 계기가 됐어요.
동그란 항아리와 볼링핀 같은 호리병 형태의 첨장 두 점이 영구 소장됐어요. 앞에서 소개했듯 중국 내 다양한 지역에서 꾸준히 워크숍을 열고 있는데, 대부분의 작품을 판매하고 돌아오는 편이에요. 중국 쪽 컬렉터분들은 V&A 뮤지엄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부분에서 제 작업을 믿고 신뢰하는 측면이 있더라고요. 그것 하나면 다른 경력은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작가의 작업을 보증할 수 있는 명확한 타이틀이 하나 있으면 다른 것들은 잘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최근 KCDF에서 연 개인전은 윤주철의 ‘첨장’을 집대성한 하나의 거대한 실험터였던 것 같아요. ‘화이트 첨장’으로 채운 스케일이 큰 전시였는데 일주일 밖에 열지 않아 기간적인 면에서 아쉬웠어요.
KCDF 사업 중 중견작가 공모전에 당첨되면서 두 달 동안 준비한 전시였어요. 백자처럼 새하얀 둥근 달항아리를 닮은, 돌기 부분에 금칠을 한 ‘화이트 첨장’을 스무 점 넘게 소개했어요. 도예가로서 늘 전시 공간 연출을 고민하게 되는데, 이번에 영상도 촬영하고 좌대에 작품을 올리는 방식도 다양하게 연출하며 새로운 시도들을 했죠.

이렇게 힘든 작업을 펼쳐오고 있는데, 작가 입장에서는 작품이 판매 됐을 때 작가의 가장 큰 동력을 얻는 게 아닐까요. 그간 작품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컬렉터가 있다면요?
3~4년 전에 미국에서 건너온 한 컬렉터 분이 떠올라요. 비엔날레 차 한국에 들렀다가 제가 아는 잡지 편집장을 통해 작가 공방투어 차 작업실을 방문했죠. 제작 과정을 보여주니 떠나기 전 세 점 정도를 본인 개인 갤러리에 소개하겠다며 구매하는데, 의외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작품들을 고르더라고요. “작품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말을 상기하게 됐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감도 얻었고요. ‘작품은 작가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다’, ‘작업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온 결과물을 봐주는 이들은 결국 따로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만들었지만 좋다, 나쁘다는 정의를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던거죠.

2006년 일본 신세계 공예관 기획전을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크라프트쇼(2008), 한국-프랑스 갤러리 교류전(2011) 등 공예에 있어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 작품을 소개해 왔어요. 해외 컬렉터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새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공예, 특히 흙으로 빚는 도자의 경우 컬렉터 분들은 그 나라, 지역,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그 작가의 생각도 고려의 대상인 건 당연하고요. 그렇다보니 저 스스로도 작품을 설명할 때나 매체 인터뷰를 할 때, 뭔가 생각을 정리해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머릿속 생각들이 정리되는 부분이 있고요. 3년 전부터 쓰는 단어가 있는데 ‘전통이라는 게 지금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미래에 대한 전통이다’라는 말을 해요. 현재 하고 있는 것은, 지금 현재 진행형은 미래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인 거죠. 20년 넘게 작가 활동을 해오다 보니 단어, 문장, 생각들이 정리가 조금씩 돼 가는 것 같아요.

향후 어떤 계획들이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대학 시절부터 도자를 만들어 온 것이 어느덧 28년이 됐어요. 향후 100~200년이 흘렀을 때 ‘한국의 청자’하면 삼강기법을 떠올리는 것처럼 첨장기법을 어떻게 하면 세계화 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러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미술관을 운영할 토대를 다지는 중이에요. 나이에 비해 빠르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10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고 향후 제가 작업할 수 있는 것들을 글로벌화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입니다. 시연, 워크숍 쪽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해외에서 꾸준히 열고 있는데, 첨장기법에 대한 홍보, 한국적인 색을 굳히기 위한 행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상품 쪽에 관심이 많아 도자와 3D 프린트를 어떻게 활용할지, 첨장 기법과 돌기 형상을 가지고 3D 프린트로 어떤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 자료를 축적해 왔어요.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제 작업으로 가능한 모든 것들을 하나씩 이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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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 Cheol Yun | Ceramic Artist
전통 도자의 귀얄기법(─技法, 넓고 굵은 붓으로 형체가 완성된 기면 위에 백토를 바르는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표현한 ‘첨장기법’으로 독자적인 도자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청주대학교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도예학교 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과에서 디자인학 박사를 마쳤다. 2006년 1회 개인전 <CHEOMJANG>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첨장 시리즈를 선보여왔다. 2006년 일본 신세계 공예관 기획전, 2008 필라델피아 크라프트쇼, 2009 청주공예비엔날레, 2011 한국-프랑스 갤러리 교류전 등에 참여하며 국내외를 무대로 작품을 선보여왔다. 특히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열린 한국 현대도예 특별전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V&A 뮤지엄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타이완국제도예비엔날레 국제공모전에 입상했다. 대학원 졸업 후 ‘윤처예가 도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제전 및 세미나, 워크샵 등 전시 외의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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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윤주철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