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손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물수 있도록, 멀쩡해도 쉬이 사물을 버리는 요즘 사람들에게, 낡아도 쉽게 버리지 못할 소중한 물건으로 만들어 전달하려는 사람. 김태연 작가는 그 옛날 "나무 표피를 쪼개 실을 잣고 직물을 짰듯",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비닐봉투로 실(plastic threads)을 만들고 직물을 짠다. 누군가는 이미 알아보았으나, 여전히 눈 앞에 두어도 잘 못보는 '가치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플라스틱 비닐'을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변이시키는 방법으로 재조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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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 OF SEEING

아마존에서 구입한 책 한 권의 '거대한 포장 비닐'로 만든 비닐 실로 태피스트리 발을 짜는 일과 같이
작가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재료로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김태연은 오늘 아침 다 쓰고 남은 휴대용 휴지 '껍데기'를 따로 챙겼다. 작업실에 출근해 그것에 다른 비닐 몇 장을 겹쳐 같은 크기로 자르고 재봉질로 시접을 해두었다. 사용자를 잘 만난 '그것'은 작가의 마음에 따라 지갑이나 명함첩, 또 다른 휴지 케이스같은 디자인 소품으로 재탄생 될 터이다. 큐레이터 홍경아는 <꽃, 함축의 시간> 전시 서문 '오직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을 통해, "직물은 삶을 지속하는 의생활, 주생활의 차원을 넘어 사용하는 이의 시대 철학과 비한적 지성의 표현수단을 느끼게 하는 생활 속의 예술품이다. 김태연은 20세기 이후 산업사회는 물론 현대인의 생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온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다. 플라스틱 소재는 광택으로 인한 빛의 반응과 내구성이라는 강점에 작가의 부드러운 의도를 더하여 신소재의 직물로 재조명을 받게 된다. 현시대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결국 소모품이 된 재료들을 작가는 마치 그리스 신화의 아라크네를 연상하듯 실을 잣는 것을 비롯해서 다양한 형물을 만들어낸다. 그 가체가 현대 산업사회와 소모적 대량생산에 대한 풍자라 하겠다"고 쓰며 현대섬유작가 김태연의 작업에 대한 가치 해석을 더한바 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핀란드 디자인 10000년>에서 본 내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재활용(Recycle)' 섹션 소개에 따르는 내용은 이렇다. '쓰레기는 현대적 개념이다. 핀란드 농촌 사회에서 ‘낭비’란 개념은 생소한 것이었다. 핀란드의 열악한 기후적 조건 때문에 핀란드 사람들은 자원 활용에 대한 독특한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사물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발함과 지략으로 모든 물질 자원과 잔재는 전략적으로 사용되었다. 하나의 사물은 또 다른 사물이 되었다. 20세기, 저비용 대량생산과 일회용 소비가 가능해지며 오늘날 우리는 모든 것을 쉽게 버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대량생산은 점점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재활용은 대안의 하나로 여겨진다. 환경과 자원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고민은 버려지는 부산물을 이용한 그릇 또는 타일의 개발로 이어졌다. 과거에도 재활용의 개념은 존재했는지 모른다. 동물의 작은 뼈 조각은 유용한 송곳이 되었으며, 구하기 어려운 청동으로 만든 도구는 그 기능을 상실하여도 이후에 작은 장식 등으로 재활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비단 핀란드인들에게만 있었던 디자인적 사고나 활동은 아니다. 산업사회 이전, 오래지 않은 과거의 우리들은 역시나 '공예' 활동을 통해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에 기술을 더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사용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공예적 사고'를 가진 김태연 작가는 그 사실을 되짚으며 오늘날의 소비 문화에 대한 나름의 문제의식을 갖고 '비닐봉투'를 새롭게 활용하는 작업을 연구하고 실험하며 자기만의 개성을 더한 작품 만들기에 천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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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물건으로 취급되는 '검정색 봉지'로 대표되는 비닐봉투를 아름답게 변신시키는 과정에서 김태연 작가는 자기 사용법에도 새 눈이 틔었다.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하는 질문은 단지 작가 만들어온 물건들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간관계도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작업 덕분에 더 깊은 생각에 나아가 닿았다는 작가는, 사람들과 공감을 넓혀가는 일을 고민한다. 흥미로운 포인트는, ‘비닐봉투라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단숨에 알아보도록 만드는 방법을 고민한 지점이다. 작가에게는 왜 알아본다는 사실에 주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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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cel from United States, 2013. plastic bags, plain weave. 110 x 79 cm (좌) | Plastic Fabric, 2012. plastic bags, plain weave. 59 x 29 cm (우)

처음에는 그냥 나만의 실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으니 잘 만들면 됐다 했는데, 그 실로 짠 직물을 놓고 실이 조금 독특해 보이네정도의 반응을 보니 서운함이 일었어요. 새로운 실을 만들어 썼다는 사실을 알아채주길 바랐으니까. 이건 김태연 거!” 라는 차별성 있는 나만의 직물을 짜고 싶어서였으니까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알아봐주지 못한다면 기존의 전통적인 태피스트리 작업과 다를 바 없잖아요. 좀 더 깊이 천착한 이유는, 저 역시 처음부터 비닐이 무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여러 가지 연구와 실험 과정을 겪으며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고 선택한 재료였을 만큼 저한테도 비닐이 안중에도 없는 대상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것이 굉장히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준 재료였단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비닐의 변신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번은 노란색 비닐만으로 몸통을 만들고 실로 쓰기에 부적합해 떼놓은 밑 끝 단과 손잡이 부분을 다시 연결해서 온전히 비닐봉투모양 그대로 살려낸 작업이 있어요. 하지만 완전한 비닐 상태에서부터 중간 과정, 완성 작품을 함께 벽면 설치 했는데도, 비닐의 존재를 몰라보더라고요.”
그야말로 ‘무가치’하다 여기는 대상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비닐봉투 모양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몇 십 원짜리 ‘일회용 플라스틱 비닐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굉장한 편견에 부딪힌 순간, 작가 김태연은 가치 있는 대상이란 무언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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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대상에서 형태를 차용하는 디자인은 많지만, 비닐봉투라는 사물을 그 그 자체로 반영시킨 것과 같은 ‘변환’ 작업은 가치 척도에서 제외된 대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합니다.
진짜 비닐봉투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나서야 “진짜요!” 외쳐요. 그만큼 우리는 비닐에 대해서 가치를 두지 않았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대했고요. 하지만 특히나 까만 봉지로 작업을 할수록 대단한 매력을 느껴요. 어떤 색을 얹어도 서로를 어울러주는 ‘까만 바탕’에 힘이 커서, 어떤 색 실을 배합해도 자연스러워 보여요. 이전에는 색깔과 채도 별로 실패들을 정리해두고 배색을 선택했는데, 언젠가부터 실패들이 섞여도 그대로 두고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해요. 새로운 배색들을 발견하는 방법으로요.

다채로운 색실로 그림을 짜 넣는 태피스트리는 실과 실의 색을 조합해도 물감처럼 완전히 섞여서 제 색을 잃는 것과 다르게 온전히 ‘자신의 색’을 유지해요.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타인과 섞이는 모습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고요.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든 놀랍게도 ‘내 이야기’로 귀결되는 면이 있어요. 색 실로 태피스트리 작업을 하면서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실들은 제 각각의 자신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새롭고 풍부한 색을 내는데, “왜 인간 관계에서는 그렇게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저는 엉킨 실도 잘 푸는데, 하다 보면 세상에 못 풀 문제가 뭐가 있겠나 싶더라고요. (웃음) 작업이 선생님이에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태피스트리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직관적인 이끌림이었다고요.
대학에 가기 이전까지 태피스트리가 뭔지도 몰랐는데, 보자마자 그 앞에서 발이 붙었어요. “잘 모르지만, 이걸 할거야!” 결심했죠. 배울수록 ‘이거 진짜 내 것인가!’ 싶었고요. 작업하면서 되짚으니, 저희 아버지는 나염 일을, 어머니는 의상 디자이너 스튜디오에서 일하셨던 이력이 보였어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외할머니 댁이 실크 염색하는 일을 했고요. 저는 몰랐던 내력이지만 무언가 영향이 없지는 않았겠다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 섬유를 다루는 일이 내 작업이라고 깨달았나요?
일단은 미대 입학과 동시에 학교만 다니고 작업만 하다가 대학원 과정 중에 우연히 ‘물건’을 만들게 되었어요. 사람들에게 굉장히 밀접한 소재가 ‘섬유’인데도, 그 뒤에 미술, 예술, 공예, 디자인과 같은 다른 단어가 와서 붙으면 갑자기 거리가 훅 멀어지는 ‘괴리감’을 크게 느꼈어요. 저를 어릴 때부터 봐온 가족들, 주변 친구들도 제가 하는 태피스트리 작업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보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어떻게 이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고민하다 벽에 걸어놓고 감상만 하는 사물이 아닌, 좀 더 세월 속에 파고드는 작업들을 떠올렸고, 물건을 만들어보자 생각해 ‘가방’을 만들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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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줄갤러리에서 열린 <경계적 유희> 전에서 선보인 'Plastic sea_sewing' 설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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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양갤러리 <Yarn: the beginning where it all ends>전에서 선보인 'Plastic sea_sewing (100 x 3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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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스페이스 원 개인전 <자르고 잇고 박는다(cut, tie, sew)>에서 작업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으로 '외부의 자극을 비우고 내면을 채우는' 작가의 체험을 관객들과 공유했다.

2018년 개인전 <Thread>를 열며 스페이스 소에서 선보인 위빙 퍼포먼스. © SPACE SO
2018년 개인전 를 열며 스페이스 소에서 선보인 위빙 퍼포먼스. © SPAC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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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피스트리 작업과 대형 설치부터 작은 디자인 소품 등 비닐 실과 천을 활용해, 그야말로 작품에서부터 물건까지 너른 범위의 작업을 해왔어요. 그것을 꿰주는 핵심 소재는 ‘비닐’이고요.
만약 아직도 제가 일반 실로 작업했다면 이렇게 물건을 만들지 못했다고 봐요. 비닐이 여러 모로 저에게 고마운 재료에요.

일정한 간격으로 자른 비닐을 재봉해 비닐 실로 만드는 과정을 봤어요. 실 만들기에도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포기한 경우도 있나요?
기본적으로는 봉지를 잘라 잇는 방법으로서 ‘비닐’을 그 자체로 쓰는 것, 재봉틀로 박아서 텍스처와 색을 바꿔 쓰는 것, 최대한 가늘게 비닐을 늘여 만들어서 써왔어요. 예전에는 전통적인 실 만들기 방법처럼 꼬임을 줘서 만들어도 봤고요. 근데 작업을 하면서 늘 비슷한 작업이 있는지 찾아보는 편인데, 어느 날 정말 비닐봉지를 균등하게 잘라서 핸드 스피닝 한 실로 직조 작업을 하는 네덜란드 디자이너를 알게 됐어요. 너무 완벽하더군요! 정말 그 직물은 비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를 만큼 너무 곱고 섬세한 직물이었어요. 그래서 그 방법은 제외하고, 애초에 제 방법대로 재봉틀로 박아 만든 실을 사용하는 작업에 매진했죠.

세상에 이러한 비닐 실을 쓰는 사람이 작가뿐이라는 ‘유일무이함’이 무엇보다 큰 힘인데요, 앞으로 다른 실을 만들 수도 있을 텐데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나요?
없어요. 우연히 비닐을 쓰게 된 것처럼, 작업을 계속 하는 과정 중에서 새로운 형태나 재료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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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고, 잇고, 박는, 단순한 과정을 통해 비닐 실을 만들지만,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하는 김태연 작가의 '생각'은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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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사용해온 다채로운 컬러와 소재로 만들어진 작업의 원재료인 비닐과 짜임 텍스처를 파일로 아카이브 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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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ation Paused>, 2006. plain weave. 88 x 88 cm | <켜지 못한 61개의 초>, 2002. plain weave. 80 x 10 cm. 61 pieces. | <Six Faces>, 2007. plain weave. 85 x 85 cm

거슬러 올라가, 인간에게 태피스트리는 어떤 필요와 의미에 닿는 사물 혹은 예술이었나요?
인간에게 추위를 막아주는 벽걸이? 일단은 추위를 막아주는 바닥의 깔개, 벽걸이였어요. 거기에 화려한 문양을 더하면 굉장히 고급스러운 장식의 효과도 있었고.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냥 물건이었던 것인데, 1960년대 즈음부터 작품이 되었죠. 지금도 작품으로 보는 분들도 있고, 그걸 쓰임이 있게 짰다고 하면 그냥 물건으로 보는 분들도 있고요.

예술, 공예, 디자인 영역에 교집합되는 작업을 하며 작가로서 겪은 혼란스러움은 없었나요?
최근에도 받은 질문이 있어요. 섬유 공예가, 섬유작가라고 불리기보다 그냥 작가라고 호명되는 편이 활동하기에 더 낫지 않느냐고 얘기들을 해요. 하지만 저는 어떻게 불리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지금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불려도, 다채롭게 비춰져도 좋아요. 저 스스로 물건을 만든 3년쯤 된 제 작년, 덜컥 겁이 났어요. 물건과 작품을 만들어 낼 때가 달라서요. 어쩌다가 물건에 계속 무게를 두고 작업을 하다 보니 작품 활동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물건 만들기를 중지하고 작품 전시를 계획해 개인전을 치렀어요. 제 이전 작품 활동을 아는 이들도 있지만, 가방으로 저를 먼저 만난 분들은 개인전 소식을 전하니, “이번에 ‘신상’이 나오냐?” 묻더라고요. (웃음) “가방은 없다” 하니 의아해하며 전시장을 찾았는데, 현장에서 작품 제작 과정을 보면서, 제가 만들어온 물건을 조금 더 가치 있게 봐주더라고요. 물건 이전 과정을 이해하고부터는 좀 더 소중하게 다뤄주시고요. 그래서 힘들지만 둘 다 하는 것, 괜찮구나! 사실은 물건이 엉뚱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작업을 하면서 거기서 계속 연결되어 나왔으니까요.

초기에 해왔던 태피스트리 작업이 궁금하네요. 작가가 꼽는 대표작을 소개해주세요.
첫 번째 개인전 주제 작품이요. 대학원을 다니던 봄,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2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서 극심한 상실감이 느껴졌어요. 오래 지나서야 문득 찾아온 이 감정은 무얼까, 밤 달을 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던 감정을 작품에 담았어요. 매일 반복되는 날을 연상시키는 365개의 태피스트리를 짰고, 고민을 거듭다 <다녀왔습니다(Dear Father)>라고 제목을 지어 내놨어요.

첫 개인전 이후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고요. 왜 작가가 되려는가, 하는.
앞으로 또 무엇을 할지 도저히 답을 못 찾겠더군요. 형태와 색을 모두 걷어낸 작업해보자고 막연히 시작했는데, 중간에 뭘 해도 밑그림은 있어야 되겠다 싶어 선을 그어놓고 태피스트리를 짰어요. 조금 지나 변덕이 일어 하기 싫어졌고, 남은 면을 흰색으로 다 밀어버렸는데, 재미있게도 그때 경사에 네임펜으로 그은 흔적이 비춰 나온 형태를 발견했어요. 본래 태피스트리는 위사로 무늬를 표현하는데, 거꾸로 경사가 드러난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그렇게 표면에 보이는 것과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연관 지은 주제를 붙들고 한동안 작업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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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날'들이 흐르며 쌓이는 시간을 '밤 달'로 표현한 김태연 작가의 태피스트리 작품 <다녀왔습니다(2000. plain weave. 30 x 5 cm. 365 pieces)>. 1998년 봄 작업을 시작해, 2000년 관훈갤러리에서 가진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다. 2019년, 1년 간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관한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 전시 <한국 공예, 어제와 오늘>을 통해 다시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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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CDF 갤러리 2전시실에서 가진 <Plastic bag yarn & fabric> 전시 전경.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명제야 말로 김태연의 작업을 꿰는 대주제라고 보여요.
작업하며 또 한번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을 경험했어요. 초봄에 잔디밭을 활보하는 까치 한 마리가 너무 한가로워 보여서 “좋겠다” 했는데, 동시에 퍼뜩 “내가 저 까치의 기분에 대해 뭘 알아서!” 하고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아는 만큼만 보는, 인간이라는 존재,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다른 하나는, 스케치북 사이즈의 작업들인데, 책이라는 형태는 가져오지만 글자나 이미지를 읽을 수 없게 의도한 작업도 있어요. 아무 것도 없어 보이게 표현을 넣는 방식으로요.

태피스트리 작업은 가까이, 부분적으로 볼수록 형태 없는 한 점 ‘픽셀’로만 인식돼요. 전체를 볼 때에만 무늬와 형태가 온전히 드러난다는 점에서 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연결해 ‘그림’을 만드는 작업이에요. 픽셀을 깨뜨리는 재미를 크게 느낀, 원래 ‘비닐’에 프린트 되어 있던 텍스트나 이미지를 재조합 한 작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아마존에서 책 한 권을 싸 보낸 거대한 포대를 풀어내 다시 짠 작업이 있어요. 어마어마한 비닐포장 뭉치를 눈 앞에 두고 고민하다가 작업으로 만든, 제가 가장 아끼는 하나에요.

스치듯 다가온 만남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최근에는 어떤 마주침들을 겪었나요?
씨알콜렉티브 <패브릭하우스(fabric house)> 기획전시요. 다른 작업을 하게 해준 기회로, 씨알 대표님의 ‘벌레를 위한 집’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비닐 실을 열처리해 굳혀 형태를 만드는 방법적인 부분에서는 이전과 동일했지만, 주제를 해석하고 저의 표현으로 담아내는 ‘관점’이 필요했어요. 신작 <미물(微物)을 위한 미물(美物): 하찮은 것을 위한 하찮은 것으로 만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며 작업 노트에도 썼듯, 사람들이 하찮은 미물의 대표주자로 생각하는 벌레를 생각하며 세상에 미물 아닌 것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굉장히 상대적인 ‘바라보기’에 대해 깨달았어요. 내가 어떤 물건이든 상황이든 간에 상대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듯이, 남들이 나를 볼 때에도 그렇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항상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든, 제 얘기로 정리되곤 해요. 가장 잘 아는 대상이 저이기 때문인 것 같은데, 모든 상황을 어쩌면 너무 제 중심으로 바라봐서인지도 모르고요. 여러 측면에서 씨알 작업을 준비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래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작업을 다시 하고 싶어졌고요. 다시 주제로서 다루지만, 그전과는 또 다른 방식, 또 다른 형태로 하면 좋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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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stic Bags, 2014. plastic bags, Tyvek, sewing. (좌) | Wine Bag, 2013~2014. plastic bags, sewing. (우)

Taeyoun Bag, 2014. plastic bags, Tyvek, sewing.
Taeyoun Bag, 2014. plastic bags, Tyvek, sewing.

프라이탁이 부럽지 않은 ‘태연백’을 창조한 작가로서, 마케팅에 대한 고민도 있을 텐데요.
주변에서 제안이 많아요. 혼자 재봉틀로 원단 만들기부터 박음질까지 다 하지 말고 타인의 손을 빌어 공정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라고요. 좀 더 수월하게, 빨리, 많이 만들어서 널리 팔면 좋겠다는 뜻인데, 저는 ‘비닐’을 사용하지만 그것으로 많이 만들어 파는 일에 대한 반감도 갖고 있어요. 처음에 만들 때부터 이렇게 물건이 넘쳐나는 때에 나까지 보태도 되나? 되물었으니까요. 무언가를 빠르게, 많이 생산해내는 일은 안 하고 싶어요.

직접 만든 백을 활발히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구성 테스트도 하는데, 가장 오래 곁에 둔 백의 사용 기간이 어느 정도 되나요?
5년 가까이 되네요. 실이 좀 터지기는 했지만 멀쩡해요. 수리도 가능해요. 지난 주에도 가방 4개를 리터칭해서 다시 전달했는데, 저는 제 물건을 쓰시던 분들이 낡으면 다시 리터칭해서 쓰다가 형태가 지루해지면 뜯어서 다른 형태의 아이템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를 바라요. 비닐 소재 가방이라 천년 만년 쓰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버려질지라도 어떤 사물이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려가고 싶은 바람이에요.

제가 마주친 주변 작가들과 전시 기획자 등 많은 이들이 ‘김태연의 비닐 가방’을 애용하고 있어요. 이들에게 받은 피드백을 작업에 반영하기도 하나요?
처음 생산한 물건은 양면 가방이에요. 안감을 대지 않고 안팎으로 색을 달리해 만들었는데, 주변에서 사용성에서 실 터짐을 걱정하더라고요. 그들의 ‘안감’ 요청을 반영해도 봤고, 주머니도 달아봤어요. 지퍼 요청도 테스트를 해봤지만 영원히 달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고요. 그 외에도 작은 사이즈 제작 요청 등, 가능하면 피드백에 대해 한번씩은 테스트를 해봤어요. 오렌지 색 사이즈의 가방도 작게 만들어드렸더니 와서 비교해보고 결국은 큰 게 더 멋지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처음에는 밑면 없이 납작하게 만든 큰 가방도 ‘밑면’을 더해 만들었고요. 주변의 의견을 통해 ‘불편함’을 파악하면서 물건 만드는 재미를 느끼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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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younBag (Tote), 2017. plastic bags, Tyvek, se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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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 지갑이 비닐이었다고 믿어지지 않게 예쁘다. 빛이 난다.

예쁜 옷이 담겼던 비닐봉지, 저녁 찬거리가 담겼던 비닐봉지, 약이 담겼던 비닐봉지, 작품에 쓰일 재료가 담겼던 비닐봉지, 야식이 담겼던 비닐봉지…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고 반들거리던 형형색색의 비닐봉지는 제각각 정해진 용도에 따라 갖가지 물건들을 담아 우리네 일상의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다. 그렇게 담았던 물건을 풀어내고는 단박에 버려지기 일쑤인 비닐봉지. 그렇게 버려지기엔 아직은 충분히 쓸모 있는 비닐봉지를 모아 자르고 늘이고 박으며 실을 만들고 직물을 짠다. 하나 둘 실과 직물조각이 늘어가는 동안 느낀 소소한 재미와 함께 깨달은 것이 있다. 그 어떤 것도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것의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 과정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더는 쓰지 않을 비닐봉지와 꽃 그림을 받아 각자 나름의 소소한 일상을 담았던 비닐봉지로 실을 만들어 그들만의 꽃을 짰다. 전시장 한편에서 잠시 ‘내가 비닐봉지다!’ 하고 뽐내고 난 후 본래 주인에게로 꽃이 되어 돌아갈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꽃으로. -2012 작업노트 중. 김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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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 TAE-YOUN KIM
김태연은 직물구조의 기본 재료인 실을 잣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직조와 재봉기법을 활용해 자신만의 고유한 섬유소재인 '비닐 실'과 '비닐 천'을 제작한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섬유미술과 박사 졸업. 2009년 노팅엄트렌트대학교 아트&디자인 텍스타일 디자인(Nottingham Trent University, Art & Design, Textile Design & Innovation (MA))의 학업을 통해 섬유미술을 전공하고 태피스트리 작업을 해온 작가는, 전통적인 태피스트리라는 작업 방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재의 제약과 표현의 한계에 대한 고민과 갈증의 해소를 위한 연구로 신문지, 종이, 포장재, 터진 풍선, 테이프 등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해 '실'로의 전환 가능성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비닐이 가진 텍스타일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작업을 해왔다. 쓰임을 다하고 쉽게 버려진 비닐봉투들을 작업 재료로, 작품으로 다시 탄생시키는 김태연은 2000년 관훈갤러리 <1998 봄>, 갤러리 아침 <Imagination Paused>, 유나이티드 갤러리 <김태연 태피스트리전>, 이양갤러리 <Yarn: the beginning where it all ends>, KCDF 갤러리 <Plastic Bag Yarn & Fabric>, 스페이스 원 <cut, tie, sew>, 스페이스 소 <Thread> 등 8회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다.  2012년 국제리사이클링아트전을 시작으로 2020년 포스코미술관 기획 특별전 <예술, 그냥 즐겨!-JUST ENJOY IT!>까지 40여 회의 단체전 및 기획전에 참여해왔다. 2002년 단원미술대전 우수상, 2003년 한국공예대전 특별상, 2010년 북경국제섬유비엔날레 우수상, 2013년 Small Tapestry International 3: Outside the Line – Teitelbaum Awards 위너로 선정되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문화재단 신당창작아케이드 입주작가, 2018년부터 서울새활용플라자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텍스타일 디자인과 섬유미술론, 직조, 디자인발상 등을 홍익대학교 및 대학원, 서울여자대학교, 목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해왔으며, 현재 성신여자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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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김태연 – PHOTO © magazine ARTMINE/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