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둑, 후-두-두둑.” 싸리 빗자루가 연상되는 거친 붓 끝에서 파란 물감이 흩날린다. 마치 키로 낱알을 고르는 소리처럼 또렷하다. 화폭이 여백 없이 온통 파래질 만큼 물감을 흩뿌리는 과정을 끝낸 작가는 물통 가득 손을 담궈 채색 방식을 달리한다. 손가락을 튀기며 흩뿌린 물방울은 화폭 어딘가에 닿아 하나의 세상이 된다. 언뜻파란 물감 같지만 작가가 직접 만든 천연 피그먼트다. “지금부터가 제 작품의 하이라이트에요!” 폭이 2m에 이르는 캔버스의 채색을 끝낸 작가는 작품을 새워 콘크리트 벽에 비스듬히 새운다. 윗면을 응시하길 잠시. 물방울이 모여 흘러 내리기 시작하자 무수한 곡선이 작은 물결들을 이루기 시작한다. 계곡을 거쳐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처럼, 물방울이 흐르며 써 내려간 자리는 ‘대지’ 그 자체다. 작가는 유체의 흐름이 마르지 않도록 수시로 분무기를 뿌렸다. 캔버스의 각도를 조금씩 움직이며 선의 형태를 변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작가에게 허락된 대지 위에 하나의 우주가 담겼다. 자연이 만들어낸 결과물, ‘흙의 작가’라 불리는 채성필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WRITE 박나리 (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 박우진 (키메라앤스튜디오) VIDEO 황승헌(매거진 아트마인 영상 매니저)
콘크리트 바닥에 캔버스를 내려놓은 뒤 직접 제작한 피그먼트를 화폭에 흩뿌리는 것으로 채성필 작가의 작업은 시작된다. 물의 용량을 조절해 세밀하게 밑그림을 만지는 작업은 철저한 작가의 직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처럼 드라마틱한 퍼포먼스에 숨을 죽이게 된다.
그는 ‘경계’의 작가다. 한국에서 동양화, 프랑스로 건너가 조형예술을 전공한 뒤 일년의 한 철은 한국, 나머지는 프랑스에 머문다. 작품은 잭슨 폴락이 연상되는 현대적인 액션 페인팅, 동양의 산수화적 작업이 공존한다. 2004년 파리 첫 개인전에서 전 작품을 판매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는 현재 해외시장에서 더욱 유명한 글로벌 작가다. 맑게 개운 흙물을 캔버스에 흩뿌려 태초의 자연을 그리는 ‘익명의 땅’ 시리즈는 쓸쓸하면서도 역동적인 기운, 표현의 독창성으로 일찌감치 세계 최대 예술애호가 재벌 피노 재단Fondation Pinault, 배우 김남주와 배용준, 다음카카오 김범수 의장의 콜렉션으로 자리 잡았다. 파리 드루오 리슐리 경매Paris Drouot Richelieu Auction에 출품된 ‘원시향’은 4만 유로에 낙찰되며 최고가 기록을 남겼고, 2016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는 ‘익명의 땅’이 7만 3천 8백 달러에 거래되기도 했다. 데뷔 이래 유럽을 비롯한 아랍 왕실 등에서 300여 점을 구입했다.
고흐의 도시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연고를 둔 작가는 일년의 한 철은 한국을 찾아 작업에 매진한다. 긴 시간 영은미술관에서 제공한 레지던시에 머물다 3년 전부터 경기도 광주로 작업실을 옮겼다. 200호, 300호를 훌쩍 넘는 작품 스케일 때문에 일년에 한 차례 한국에 들어와 국내 전시를 위한 작품들을 그린다. 프랑스로출국을 앞둔 5월 초순 채성필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의 작업실 한켠에는 그가 손수 만든 다양한 붓이 가득하다. 작업의 특성상 흙물을 흩뿌리고 털어내는 데 최적화했다.
채성필 작가의 작업에서 '밑그림'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섬세한 붓 결을 이용해 리드미컬하게 피그먼트를 화폭위에 털고, 흩뿌리는데 이 작업이 완벽히 마무리되야 '유체가 흐르는' 하이라이트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붓으로도 미처 표현하기 힘든 밑그림 작업은 손가락의 미세한 터치를 이용한다. 피그먼트를 덧대고 다시 덧대며 겹겹의 레이어를 쌓아야 작품을 새웠을 때 다양한 유체의 흐름을 얻을 수 있다. 파란 피그먼트로 물든 화폭이 마치 햇살에 일렁이는 바다 같다. 채성필은 자연 그 자체의 본질을 그린다.
매번 받는 질문이겠지만 다시금 여쭙게 되네요. 여러 회화 소재 가운데 ‘흙’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게는 흙이 참 자연스럽게 다가왔어요. 진도라는 섬에서 나고 자라 1986년 중학교 2학년 즈음 서울로 상경했는데 당시 제게 서울은 지옥 같았어요. 처음 1년 간은 울고 다녔던 것 같아요. 서예와 동양화를 배웠던 터라 서울에서도 미술을 계속했는데 늘 향수 가득한 ‘고향’을 그리고 싶었죠. 그때 고향이 흙이라는 소재로 다가왔어요. 어렸을 때 뒷동산에서 흙장난하며 구르며 느끼던 바람, 소리, 촉감, 냄새 모든 것이 되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공간을 떠오르게 했어요.
처음부터 흙물을 흘러내려 자연스럽게 골을 만드는 이런 ‘흘러내리기 작업’을 했었나요?
아니요. 기법은 프랑스 유학 시절 또 우연한 기회에 고안한 거죠. 처음에는 흙을 물에 짓이기고 여러 번 섞어 고운 흙물만 걸러 사용했어요. 붓으로 그리거나 고무 주걱으로 긁기도 하고, 일부를 굳혀 뜯어내는 것도 해봤죠. 자연적인 현상, 화면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담기 보다는 좀더 자의적인 페인팅이 강했던 것 같아요. 2003년 프랑스 유학 중 부엌에서 흙물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아내가 요리를 하다 음식물을 엎게 된 거에요. 그걸 치우려고 작업하던 캔버스를 세워놨는데거기서 지금의 아이디어를 얻게 됐어요.
작품의 밑작업이 끝나면 벽에 새우고 작품에 스프레이를 뿌려 유체의 연속적인 흐름을 유도한다.
시간이 흐르며 생기는 흐르는 곡선들은 보는 이에 따라 보는 관점도 다르다. 나무의 나이테, 지층의 단면, 해일, 파도 등 종국에는 대지 그 자체다.
몸을 훌쩍 덮을 만큼 대형 사이즈의 캔버스를 홀로 지탱하고 움직이며 원하는 유체의 형태를 완성한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흙의 작가’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숨을 크게 들이키며) 너무 감사한 일이죠. 흙을 가지고 작업해온 지 25년 정도 됐는데 흙이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모르겠고, 더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요. 흙은 결국 자연 같아요. 소재주의든 뭐가 됐든 이름 앞에 ‘흙’이라는 수사가 붙어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영광이에요. 흙은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미적 바탕을 지니죠. 앞으로 제 작업에 기법적인 표현방법이라던가 조형적인 부분에서는 꾸준한 변화가 있겠지만 흙이라는 소재 자체는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평생을 다해 그린다 한들 그 ‘흙’에 대해 티끌만큼이나 알고 가지 않을까요?
맞아요. 흔히 흙으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고도 하니까요.
지금 그 말씀을 조금 더 되돌아보고 싶은데요. 제가 프랑스에서 살다 보니 고국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 같은 느낌들을 늘 흙을 만지며 느끼고 있거든요. 개인적인 감상을 떠나 크게 자료를 찾아보면 문사철 文史哲에 거쳐 흙, 대지란 곧 ‘본질’을 뜻해요. 자연과 코스모스가 형성된 계기로 음양과 다섯 가지 원소, 오행五行을 말하죠. 그 바탕이 결국 흙이고요. 원소적인 입장에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된 ‘4원소론’이 있는데, 이것 역시 흙이라는 베이스 위에서 시작되는 거죠.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신이 인간을 만든 첫 번째 도구가 흙’이라 말하고 있고요.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제가 왜 흙에 깊은 애정을 보이느냐 하는 거에요. 현대미술이라고 하는 장르 안에서 수없이 많은 변화와 유행, 말초적인 것들을 접해오며 제 공간, 제게 주어진 가상의 화면 안에서만큼은 무언가 변치 않는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민족과 역사와 시간의 흐름은 각자 다르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 모두 흙에 대한 공통분모는 가지고 있단 생각을 했죠. 작품의 주제도, 재료도,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 또한 흙이라고 한다면 제 그림은 곧 흙 그 자체이지 않을까··· 제게 주어진 공간 안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은 어찌 보면 무모하지만 ‘흙’이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본질적인 회화,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같고요.
매일 같이 전 세계 다양한 흙을 만지고 게우는 작업을 하다 보니 미세한 질감이나 발색의 차이도 구분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요. “개울만 건너도 흙이 틀리다”는 옛말도 있으니까요. 가는 곳마다 색감, 점성, 입자, 냄새 하다못해 촉감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요. 그 자체가자연인 거죠. 예전에는 전시를 여는 공간의 흙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니스에서 전시가 열리면 니스의 흙으로 작품을 만드는 식으로요. 흙이라고 하는 건 재료이면서 동시에 그곳 삶의 산 증인이자 생존의 공간이니까요. 그 흙을 통해 내가 느끼는 그곳 이미지를 표현한다는 의미로 그런 작업들도 했었어요. 한국의 흙은 해남, 고흥에서 주로 가져다 써요. 고향 진도와 가까워 묘하게 어떤 감정 이입도 들고요. 어떤 단순한 물질이 아니고 그것에 제 마음을 담는 거죠. 절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제가 직접 만지고 온 몸에 튀겨가며 재료를 만들어요. 작품에 사용하는 붓도 직접 제가 제작한거예요. 일련의 모든 것이 물질 안에 내가 그리웠던 것을 담아내고 친해지는 과정 같아요.
그간 작품의 컬러도 다양한 변화를 거쳐 왔어요. 흙 본연의 물성과 가장 닮은 ‘익명의 땅’ 시리즈를 시작으로 황색, 녹색 최근의 ‘블루’까지. 유체의 흐름을 통해 대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동일하지만 작품이 주는 임팩트는 저마다 달라 흥미로워요.
제 작품의 가장 큰 테마는 ‘익명의 땅’이에요. 유년시절 서울에 올라와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시골에 돌아갔는데 그리워했던 그 땅이 없는 거에요. 익명의 땅은 그게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에도 없고, 그래서 그립고 다가가고 싶은 공간인 거죠. 어찌 보면 슬픈 얘기에요. 없어서, 사라졌기 때문에 익명의 땅인 거니까요. 되돌아 갈 수없는 결국은 이상향, 노스탈지어인 거죠. 지난해 서울 오페라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히스토레 데 블루’에서 40여 점의 신작을 선보였어요. 기존 작업이 보여줬던 ‘익명의 땅’이 지향하는 시원과 근원의 세계가 희망과 자유의 다채로운 형상의 블루로 확대된 거죠.
익명의 땅(120917).300x200cm. terre, pigment et encre de Chine sur toile. 2012
terre de vent(150707). 240x360cm. pigments natuels sur toile. 2015
블루의 역사(170517). 240x360cm. pigments naturels sur toile. 2017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로 꼽고 있어요. 한국 작품의 ‘세계화’에 대한 일종의 어떤 무게감을 느끼지 않나요?
한국적이라는 것을 그림 이전에 감히 얘기하자면요. 어눌하고 어설퍼 보이지만 그 안에 찌그러진듯 꽉 차 있는, 마치 달항아리처럼 넉넉한 포용력을 가진 게 한국인들이 지닌 가장 큰 미적 감성이 아닌가 싶어요. ‘한국적이다’라고 하는 것이 한국성 안에 머물렀을 때는 결코 한국적일 수 없을 거에요. 요즘은 예전과 다르게 지역, 경계, 국가, 사조에 관계없이 오픈 된 세상이잖아요. 결국 ‘비교’라는 단어로 통하게 되는데, 한국성을 지닌 작가의 작업, 한국성에 대한 것들이 ‘한국성’으로 보이게 된다면 반드시 그것과 비교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담았을 때 한국적 미감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경계’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제 자신이 서로 다른 존재와 문화들이 만나는 지점, 곧 프론티어frontier라고 생각해요. 경계와 경계가 만나는 지점에는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죠. 이것과 저것을 나누는 지점이 아니라 서로 만나는 지점이란 생각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기죠. 그런 것들이 제가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작가들과 개별성을 지닐 수 있는 요소인 것 같아요.
흩뿌린 물감이 흘러내리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개입되지 않는 부분에서 주는 경이로움이 있어요. 위에서 아래로 흐를수록 유체의 폭이 넓어지는 거 같아요.
강물이 샛강에서 시작해 바다로 흐르는 것을 생각하시면 되요. 작품에 좌우를 두지는 않아요. 땅이라는 것이 내가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이 그림 안에서도 특별하게 형상을 지닌 작품을 아닌 다음에는 크게 방향성을 두지는 않아요.
여러 작품을 완성한 뒤 선별해내는 과정 또한 궁금한데요. 온전히 작가의 직관에 의해 선별하는 건가요.
제 작품은 동시에 여러 점을 같이 진행해요. 한 점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진 않지만 여러 작업을 치열하게 끝낸 뒤 엄선해서 고르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지워버리기도 하고요. 끊임없이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하는 작업입니다.
작품이 마무리되면 재료가 미처 마르기 전에 화폭의 단면을 깨끗히 닦아내야 한다. 초를 다투는 작업이다 보니 작가는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동시대 활동하는 한국 회화 작가들 가운데 세계의 주목을 받는 몇 안 되는 작가인데. 기억에 남는 콜렉터가 있나요?
아직까지 같은 기법, 재료로 작업하는 작가를 만난 적이 없으니 그런 부분에서 독창적이라는 표현을 해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예전 프랑스 갤러리 오베라는 곳에서 전시를 열 때 중간 정도의 작은 사이즈 그림을 산 콜렉터가 있었어요. 초등학교 교사가 된 지 얼마 안 돼 제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본인 차를 팔고 월급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 1년간 갚아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죠. 거대한 부호나 훌륭한 콜렉터 집안에 관한 에피소드도 많지만 오늘은 그 분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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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채성필 – ARTMINING, SEOUL, 2018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