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초록'에 물들었다. 작가의 실내 가드닝은, 특별한 도구 없이 오로지 손에 의한 힘의 강약만으로 재료를 느끼며 형태를 완성해내는 '기(vessel)' 작업과 결이 같다. 한 줄 한 줄 가죽을 켜켜이 쌓아올려 완성하는 '느린 작업'은, 씨앗에서부터 발아해 수백 년을 사는 나무와 같이 '자기의 속도'로 성장하는 존재와 같은 성질을 닮았다.
사람과 근원적으로 불가분의 친밀성과 동질성을 지닌 동물의 피부인 가죽을 연구하고 다루는 김준수 작가는 ‘생명력과 온기 담는다’는 주제로 기물을 만든다. 금속공예를 전공하던 중 이탈리아 가죽 워크숍을 경험하며 특히 ‘베지터블 가죽’에 매력을 느낀 작가는 이후 서로 상반되는 물성을 가진 두 재료를 결합한 작업을 시도했다. 재료의 성질도, 다루는 기법도 상이한 두 가지를 혼용해 만드는 작업은 계속 연구 중이다. 좀 더 집중하는 쪽은 가죽과 옻칠을 활용한 ‘레더 볼’ 시리즈의 발전적 작품이다. 아무래도 스크래치에 민감한 물성의 가죽을 다루는 작업대와 망치와 모루, 불을 사용해 다루는 금속 작업대가 구분되어 있는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서면, 먼저 식물성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겨울에도 ‘초록’ 에너지로 꽉 찬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는 그는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고 생장을 돕는 작은 가드닝을 한다. 이 일상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작가 주변의 것, 자신의 관심사와 호기심을 통해 작품 주제와 작업 방향성을 이끌어내온 김준수는 ‘자기다움’이 깃든 활동을 하는 작가적 삶을 추구한다. 그릇을 꺼내고 원두를 갈고 물을 덥혀 커피를 내리는 사소한 행위조차도 그러하다.
종일 창으로 드는 일광이 풍부한 작업실에서 김준수 작가는 자신의 생활과 취미에 닿아있는 기물과 도구들을 대부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작업 공간 곳곳에 식물이 많아요.
식물을 좋아해요. 씨앗부터 발아해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보람이 있어요. 아주 소박한 자연친화적인 활동인 셈인데, 평소에 흙 만질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실내 공간 안에서 가드닝을 하며 눈도 손도 즐거운 시간을 가져요. 주로 제가 가진 관심사에서 작업으로 연장되는 편이라, 금속으로 만든 커피 도구도, 식물 물조리개나 삽도 그렇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작가를 이야기하는 키워드로 ‘식물성’을 꼽을 수도 있겠네요. 화가 앙리 마티스는 덩굴성 관엽식물인 몬스테라를 친애했다고 해요. 그의 작품 속에도 사사로이 몬스테라가 등장하죠. 그와 같이 김준수 작가만의 식물 콘텐츠가 있을까요?
저기 로즈마리가 있는데, 자라며 바뀌는 모양을 매일 보고 가지치기도 하며 형태를 매만져요. 식물마다의 특성과 습성 같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작업 스타일에 반영되어 흘러가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형상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영향 받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실을 공동으로 사용 중이에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료에요. 제 예전 작업실이 지하였는데, 햇빛 에너지를 받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작업실 오픈 계획을 가진 친구와 함께 옮기게 되었어요. 혼자 앉아서 하루에 보통 9~11시간을 작업하면 분위기도 가라 앉게 마련인데, 동료와 함께 있으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요. 서로 나태해지는 순간에 마음을 다잡는 효과도 있고요. (웃음)
2017 공예트렌드페어에 참여하며 올해의 작가상 KCDF 원장상, 2019 영국 콜렉트 선정 작가상, 2018 파리 메종&오브제 선정 작가상에 이르기까지 3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글로벌 아트 페어 현장에 직접 다녀왔어요. 작가는 어떤 목적의 창구로서 ‘페어’형 전시를 활용하나요?
기물 작업인 ‘레더 볼(Leather Bowl)’을 선보이기 이전까지만 해도 페어를 단순한 홍보 수단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2018년 공예트렌드페어 전시 이후 얻은 반응이 좋았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좋은 기회들이 파생되며 연결된 일들이 많았어요. 그런 후속 반응들을 얻으며 ‘준비하는 만큼 기회가 따라온다’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페어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 공예트렌드페어는 젊은 작가들이 실험성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홍보적 성향이 강하다면, 홈테이블데코페어나 리빙디자인페어는 판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비즈니스에 노련한 젊은 작가들에게 유리해 보여요. 부스비에서도 차이가 있고요. 2018년 9월 참가한 파리 메종&오브제는 제 첫 해외 활동이었는데, 당시 소개받은 프랑스 프로모터를 통해 유럽권 바이어들의 반응에 대한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어요. 메종&오브제는 공예트렌드페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더군요. 규모뿐만 아니라, 바이어 대상 전문 페어인 만큼 사업성을 고려한 제안들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에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콜렉트의 경우는 KCDF와 같은 기관이나 갤러리를 통해 참가 가능한 하이엔드 공예 시장이라서 좀 더 작품성이 강한 작업을 중요시해요. 오브제적인 성격이 강조된 작품을 선호하는데, KCDF 초대작가로 2019 콜렉트에 참여하며 레더 볼을 중점적으로 선보였어요.
금속과 가죽이라는, 재료의 물성이 상이한 두 소재를 결합한 이종적인 작업의 ‘레더 볼’로 크게 주목을 받았어요.
금속을 결합한 한 점을 완물취미에서 가진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는데, 아직은 발전시켜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보여서 우선은 가죽만 사용하는 작업부터 집중하고 있어요. 가죽으로 가능한 다양한 방법들을 풍부하게 다뤄본 후에 다른 재료들도 결합을 해보려고요. 금속은 워낙 기법도 적용할 부분이 많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요.
leather bowl, 2017. 가죽, 옻칠. 400 x 340 x 100 mm (좌) 265 x 320 x 120mm (우) © JUN-SU KIM
현대공예는 동시대 라이프스타일 디자인과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레더 볼’은 기능적인 측면도 있지만, 오브제성이 강한 조형으로도 보여요. 작가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미술 및 공예, 디자인 시장을 포함한 비즈니스 적인 측면에서도 고민을 하나요?
처음에는 공예 베이스인 레더 볼 작업에서도 ‘기능’을 중요시했어요. 가죽이지만 물에 닿았을 때의 사용성을 고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으로 작업하다 보니 아무래도 표현에서 소극적인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러한 과정에서 기물의 사이즈를 키우고 기능성보다는 오브제성을 강조한 표현을 더 하다 보니 좀 더 현대미술 성향을 띠는 조형으로 흘러갔다고 보이고요. 하지만 아직은 미술시장을 내다본 작업이라고 하기에는 먼 것 같아요. (웃음)
작업의 방향성에 대한 부분으로 본다면요?
아무래도 공예품은 대중들에게 생활 사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는 점은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아직 국내 공예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가격에 제한이 있어요. 물론 현대미술 작품이라고 해서 대단히 높은 가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예품에서는 수용할 수 있는 규모와 사이즈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현대미술은 무엇보다 표현에 자유로움이 크다는 장점이 있으니, 그러한 방향도 고려하게 되고요. 서로의 분야가 가진 장단점이 있는데, 무엇보다 저는 더 지속적으로 오래 작업할 수 있는 방향에 무게를 따지게 되더라고요.
디자인 제품과는 어떤 측면에서 차별화 전략을 취하나요?
제가 지금 하는 작업도 물론 ‘디자인한 것’이지만,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 상품과는 반대 지점에 있어요. 또한 제 작업방식 자체가 대략적인 스케일이나 스타일은 머리 속으로 구상하고 만드는 편이라는 점에서도 다르고요. 자른 가죽 끈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면서 형태가 바뀌기도 하고, 생각한대로 되지 않을 때는 즉흥적으로 방향을 틀기도 하거든요. 지금 작업하는 레더 볼도 예전에 만든 것과 비슷한 크기지만 투 톤으로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는데, 끝 라인 처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에요. 당장 무언가 생각나지 않을 경우에는 좀 나뒀다가 다른 작업하면서 보고 고치기도 해요.
로에베 공예상(Loewe Craft Prize)을 수상한 독일 출신 목공예가 에른스트 갬펄(Ernst Gamperl)는 철학적인 바탕이 강한 공예작품을 만들죠. 현대미술 작품과 같다고 평가 받아요. 분명한 자기 방식을 가진 작가들을 보면, 지식의 기반에서가 아니라 소재나 표현, 기법적인 접근에서도 자기 ‘철학’을 이끌어내지요. 작가가 다루는 베지터블 가죽의 소재나 활용하는 기법에도 철학이 붙는 고민들이 생겨날 것 같아요. 작가적인 철학을 이루는 베이스라고 한다면 어떤 부분들이 있을까요?
철학이라고 하니 거창해 보이는데, 작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성격과 성향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작업이면 된다고 봐요. 저는 쾌활하고 활달한 성격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한 자리에서 잔잔히 가죽 끈을 올려가며 형태를 만드는데, 식물을 좋아하는 제 성격이 자연스럽게 작업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보여요. 식물이 성장하듯 자연스럽게 철들어 가는 작업적인 성장이 녹아 드러난다면, 언젠가는 저만의 ‘철학’으로 뼈대가 서겠지요.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다양한 공예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죽을 접하게 되었어요. 세계 최고수준의 가죽 장인들과 기업이 참여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산 미디아토(San Miniato)에서의 가죽 워크숍 참여는 가죽에 몰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이후 국제적인 전시회 참여와 논문연구 작품으로도 이어져 왔고요. 이탈리아 워크숍 내용이 궁금해요.
대학원 시절에 재료와 기법 수업이 있었어요. 대학교 때부터 가죽공예를 취미로 해온 저는 언젠가 대학원 수업에서도 가죽을 다뤄볼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에 이탈리아 베지터블 가죽 워크숍 기회를 만났어요. 교수님 한 분과 전 세계 디자인 학교에서 선발된 멘토 한 명과 디자인 학생 1명으로 이뤄진 그룹의 총 10개 팀이 견학을 갔어요. 가죽 공장 견학을 하고 각각의 레시피로 특징 있는 가죽을 만드는 테너리(tannery: 무두질 공장)들에서 만든 재료를 제공받아요. 1주일간 워크숍 기간 동안 공장 견학과 강연을 제외한 기간에는 실험을 해볼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이후에 각 테너리마다 학생 한 명씩을 매칭해 제공한 가죽으로 미니 컬렉션을 3점 정도 만들어요. 그 결과물은 파리에서 열리는 가죽박람회에서 전시하는 과정까지가 포함된 프로그램이에요. 그때 베지터블 가죽에 대한 성격, 특징, 느낌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 경험 이후로 가죽 표면을 활용하는 작업이 아닌 잘라서 사용하는 방법을 실험하면서 ‘레더 보울’ 작업이 태동됐어요. 가죽이 가진 다양한 표현 가능성과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가능성을 알게 된 소중한 기회였죠.
물 성형 기법으로 형태 가공이 가능한 베지터블 가죽에서 어떤 특징을 발견하고 매료되었나요?
사람 피부와 비슷해요. 원래 살아있던 동물에서 얻은 재료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최소한으로 가공을 한 재료라서 햇빛을 받으면 태닝이 되고 마찰할수록 광택이 나면서 부들부들 맨질맨질한 질감이 만들어져요. 피부에 상처가 나듯 긁힌 자국도 그래도 남고, 손때가 묻기도 하는, 자연스러운 물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기, 오브젝트(vessel, Object), 2017. 소가죽, 옻칠. 275 x 275 x 430 mm | 피처, 2017. sterling silver, pylex glass, ebony, purple heart. 140 x 90 x 210 mm © JUN-SU KIM
“나는 저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들과 다양한 두께의 가죽들을 변주하여 유일한 패턴을 만들어낸다. 틀(frame)이나 특별한 도구없이 오로지 손에 의한 힘의 강약만으로 재료를 느끼며 형태를 완성해 나가는데, 이 과정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각각의 고유성을 부여받는 동식물의 생장 모습과 닮아있다.” _작가 노트 中
가죽을 끈 단위로 잘라 겹겹이 쌓아 올려 형태를 만드는 도자의 ‘코일링’ 기법처럼 사용하는 이 외의 다른 기법이 있나요? 재료적인 특성을 살린다거나 다른 물성의 재료를 다룰 때 사용하는 기법을 응용해 활용하는 부분이요.
마냥 쌓고 끝나는 게 아니라, 최종 단계에서 표면 마감을 할 때 제가 만든 연마 툴을 문지르면서 매끈하게 다듬어요. 그 부분은 베지터블 가죽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죠. 가죽 연마 도구들을 팔기도 하는데, 제 작업에 맞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주로 면을 다듬는 도구가 많아요.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형태 만들기에 편한 재료가 나무더라고요. 베지터블 가죽은 수분을 머금으면 다듬기가 더 편해져요. 이 부분에서도 매력을 크게 느꼈죠. 물을 뿌리고 문지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질감에 차이가 분명히 있어요. 촉감에서요.
제가 직접 염색한 가죽을 부분부분 적용해 패턴을 이루게도 만들고, 가죽에 스며들어 형태를 단단하게 해주는 옻칠도 사용하고 있어요. 옻칠은 기능성을 고려하면서 선택한 재료에요. 음식을 올려도 괜찮은 천연재료 중에 옻칠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 찾은 표면 마감 재료 중에 옻칠이 제일 적합하다고 보였어요. 학교에서도 재료와 기법 시간에도 많이 다뤄봤고요. 인터넷, 책도 찾고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면서 작은 작업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습득하며 큰 작업으로 적용해왔어요. 사실 옻칠은 아직도 어려워요. 잘 하는 분들이 많고 저는 프로로 배운 것이 아니라서 금속 마감할 때 사용하듯이 쓰고 있는데, 계속 연구하는 중이에요.
기물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왜 볼 형태를 생각하고 만들었나요?
처음에는 평면으로 시작했는데 점차 입체가 되면서 이런 식의 볼 형태까지 이르게 됐어요. (웃음)
채도가 낮은 컬러를 선호하는 편인가요? 뉴트럴 계열의 무채색 톤에서 작가가 지향하는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한 감성이 느껴져요.
맞아요. 원색은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컬러에 강한 액센트를 주기보다는 기물의 앞 뒤 톤을 다르게 의도해 질감으로 차이를 표현하기도 하고, 하나의 접시라도 어떤 방향으로 놓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게도 만들어요.
커피와 연관된 사물을 금속 작업으로도 만들어 왔어요.
드리퍼는 학부 시절 졸업전시 때부터 만들어 계속적으로 형태 개선을 해왔어요. 대학원 수업 때도 카페에서 일한 경험을 더해 개선점을 반영했고, 지인 바리스타들에게 부탁해 맛에도 영향을 끼치는지 테스트를 받기도 했어요. 쓰임이 제대로 작동하는, 기능적으로 괜찮은 물건을 만들고자 노력해요. 안 좋게 말해서 ‘예쁜 쓰레기’가 되면 안 되니까요. 금속은 기법 베이스가 강한 작업인데, 저는 망치질을 좋아해서 무언가 하나의 금속 판을 성형해 형태를 만드는 판금작업을 주로 했어요. 현재는 가죽에 집중한 작업으로 흘러 가고 있지만, 베이스인 금속을 완전히 손에서 놓진 않고 있어요. 지금 목표는, 금속을 다루던 가죽을 만지던 “이것은 김준수 작업이다” 라는 느낌이 나도록 보여지는 작업을 만드는 일이에요.
작가의 사적 취미와 경험들이 작업으로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순환 고리를 이루고 있는데, 요즘은 어떤 문화에 가장 호기심을 가지나요?
가드닝이요. 화원에 자주 들르고, 작업실에서 함께 사는 식물들의 분갈이도 직접 해요. 저 창가에 토분에 난 싹은 아보카도에요. 먹고 심은 씨앗을 심어 발아시키는 일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어요. 모과도 심어놓고 싹 트기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그냥 심으면 자라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매일 커피를 준비해 마셔요. 산미가 있는 드립 커피를 좋아하는데, 커피를 준비해서 내리는 과정의 행위를 좋아해요.
세대와 시대에 구분 없이 감동을 느낀 예술작품이 있다면요?
한국에서 열렸던 에른스트 갬펄 개인전을 봤는데, 작업과 함께 보여준 제작 영상이 인상 깊더군요. 버려진 나무들을 가져다가 톱으로 잘라서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추구하는 정신성이 느껴지는 영상이었어요.
leather bowl, 2017-2018. 가죽, 옻칠. 500 x 500 x 350 mm / 300 x 300 x 145 mm © JUN-SU KIM
Slice of Life, 2019. 가죽, 옻칠. 320 x 320 x 240 mm © LEE EUGEAN GALLERY
“유년시절부터 19년을 함께한 반려견과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재료와 작품을 마주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기게되었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당시에 느꼈던 상실감과 그리움 등의 감정들은 유한한 수명의 동물과는 달리 최적의 조건에서 수천년을 살아가는 식물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관심으로 이어졌다. 재료의 물성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였으나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나서 재료 본질의 의미를 담고자 한 것이다. 얇은 두께의 가죽 선들이 쌓여나가면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나무의 나이테를 연상케하며 요동치는 패턴은 한서를 견뎌낸 생장의 기록이다. 본래의 삶을 다한 재료가 작가의 손을 거쳐 식물적인 공예품으로 영원한 삶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지난 겨울, 이유진 갤러리 그룹전 <뜰에 깃들>에 참여했어요. 바쁜 현대인들의 여가활동 가운데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식물과 공생하는 삶을 열망하고 이들로부터 안식을 얻는다"고 말했는데, 작가 역시 그러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고요. 이 전시에서 선보인 '가드닝 시리즈(Gardening series)'는 나무를 주제로 한 작업이에요.
식물 가운데 나무는 최적의 조건에서 수백 년을 살아가요. 작가 노트에도 썼듯, 계절을 보내면서 생성되는 나이테를 통해 나무가 자라온 환경을 알 수 있죠. 볕이 잘 드는 방향으로 치우치기도 하고, 날씨에 따라 간격이 좁거나 넓어지는 나이테와 마찬가지로, 가죽 역시 동물의 최전선의 방어벽으로 생장의 기록을 담고 있어요. 이미 재료로 가공되었으나 주름이나 상처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죽을 사용하는 작업을 통해 동식물의 생장을 묘사해보자고 생각했어요.
2019년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냈어요. 2020년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작년에는 크고 작은 전시를 8개 정도 진행했어요. 상반기에 런던 콜렉트, 예올 기획전, 하반기에 청주국제공모전과 <뜰에 깃들> 그룹전, 더불어 5월에는 중국 상해에 위치한 SanW 갤러리/스튜디오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초대받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바쁜 일정을 보냈어요. 이때 한국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오브제 작업들을 시도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전시 활동 이외에도 패션 브랜드 화보 촬영, 팝업 스토어 작품 협찬 등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고요. 2020년 계획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상반기에는 직접 기획한 그룹전과 차도구 개발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하반기에는 KCDF 신진작가 전시공모에 선정되어 9월 한달 간 KCDF 윈도우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져요. 이 외에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다양한 활동들을 구상 중입니다.
김준수 | JUN-SU KIM
일상에서 쓰임이 있는 사물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제작해온 김준수 작가는,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및 동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다. 강하고 단단하지만 불을 만나면 부드러워지는 금속과 식물성 원료인 탄닌으로 가공한 '베지터블 가죽'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생활의 경험이나 소소한 취미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고 주제를 정한다. 금속과 가죽, 나무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해온 작가는 제작하려는 사물을 정하고 그것에 적합한 재료를 찾아 사용한다. 2012년 익산공예공모대전 금속부문 입선, 미국 아칸사스 아트센터 입선,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 졸업전시 최우수작품상, 2013년 프랑스 파리 국제가죽페어 현장관객 최다득표상, 2017년 독일 뮌헨 탈렌테 입선, 2017-2018 KCDF 선정 '파리 메종&오브제' 초대작가상, 2017/2019 런던 콜렉트 국제아트페어 초대작가상, 2017년 공예트렌드페어 올해의 작가상 및 원장상 등을 수상한바 있다. 2017년 갤러리 완물취미에서 <레더 볼(Leather bowl) 생명감을 전하는 그릇> 개인전을 가졌다. 2011년부터 미국, 태국, 서울,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다수의 그룹전 및 기획전,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http://kimjuns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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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김준수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최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