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개인전을 준비하던 어느 날 불현듯 '나의 그림 안에는 서로 다른 것들이 동시에 기어코 함께 있다' 라는 말이 되뇌어졌다.
그리고 나의 상념은 바로 메를로 퐁티(Merleau-Ponty)가 언급한 '동시성'으로 이어져갔다." _Artist note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서로 허물어뜨리는회화는,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인 색감으로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다.
창에서 들어온 햇빛으로 채워진 '실재'일까, 실재의 공간을 침범한 창틀의 '환영'으로 가려진 부분일까? 2017-18 개인전 <In Certain Place>, 2015 <기울어지는(Inclined)>, 2010년 <침범하는(Invading)> 연작을 통해 가려진 뒤쪽 사물을 앞에 보이게 하면서 원근법의 질서를 왜곡하고 변형하는 작업을 해온 송은영 작가는 '어떤 것이 차지한 빈 공간 드러내기'라는 개념에 바탕하는 풍경들을 그려왔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면 형태의 윤곽선을 침범하거나 분할하는 방법이 눈에 띈다. 침대에 파고든 창틀, 커튼에 합체된 인물, 집을 덮은 산등성이 등 하나의 풍경 안에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무엇이 주인공이고 부차적인 대상인지 정확하게 짚어내기 힘들다. 작가가 던져 놓은 '제목'도 적확한 단서는 아니다. 그저 가장 잘 보이는 대상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지점은, 일상적 풍경과 장소에 서로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 대한 '관계'이다.
송은영 작가는 주변의 풍경 혹은 영화의 한 장면 등 수집된 이미지를 소재로 일상적 공간에 재배치한다. 풍경들은 그림 속의 사물과 공간의 경계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단절된다. 이 단절의 지점에서 가려져 있던 사물들과 공간들이 전경의 영역으로 침범한다. 뒤(밖)에 있으면서도 앞(안)에 있고, 명확하면서도 모호하다. 전체적이면서도 부분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이중적이다. 시점을 옮겨보자. 당신이라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작가가 공간에 데려다놓은 '사물'의 중심으로 이동해보자. 보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의미로서 각자의 존재를 이해하는 '관찰'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서 이미 공존하는 중이다.
오직 그림만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서로 '외부적이고',
낯섦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함께 있다는 것, 즉 '동시성'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_Merleau-Ponty (L'Œil et l'Esprit(1964), Paris, éd. Gallimard, 1997, p.84)
51(Turquoise Wall), 2019. oil on linen. 162.2 x 242.4 cm (2 pcs. 162.2 x 112.1 cm, 162.2 x 130.3 cm)
종종 작가는 작품 속 장면(scene)들을 2개의 캔버스로 분할하거나 꺾어서 배치하는 설치 작업의 형태로 확장시킨 회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서로 낯설고 반의적인 것들이 규정되어지지 않고, 작품 안에서 공존하기를 원하는 작가는 학습된 보기의 습관에서 벗어나 눈과 마음을 열고 낯선 경계를 감지해보기를 바란다. 2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제15회 개인전 <비확정적 풍경(Uncertain Landscape)>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2020년 1월 31일까지 아틀리에 아키에서 열린다.
송은영 | EUN-YOUNG SONG
1970년생 송은영은 세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프랑스 베르사이유 미술학교 조형예술 (사진, 회화) 전공, 프랑스 빵테옹-소르본느 빠리 1대학 조형예술학과 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는 형태의 윤곽선을 침범 혹은 분할하는 방법으로 전통적인 원근법과 형태에 왜곡과 변형을 통해 보편적인 시각의 확장성을 제시하며, 화려한 색감과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회화의 본질에 대해 고찰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갤러리 현대(윈도우갤러리),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리각미술과, 아뜰리에 아키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스페이스 K-대구, Santa Fe Convention Center(산타페), China World Trade Center(베이징) ,Scope Basel Art Asia(바젤) 등 다수의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제주 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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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송은영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EUN-YOUNG SONG, ATELIER 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