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일이 예술이라는 고도의 인공적 장치를 통해 구현한 동물은 자연 그대로의 단순함도, 다양성도 억제되어 있다. 그것은 복잡하면서도 균질적이다. 거기에는 모든 것을 조금씩 겸비한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가 발견된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WRITE 박나리(매거진 아트마인 콘텐츠 디렉터) PHOTOGRAPHY 김동오 VIDEO 김햇살(매거진 아트마인 영상 매니저)
해외 관광이 일상이 된 시대. 인천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영종대교 휴게실에는 한국을 찾고 떠나는 여행객들이 제일 먼저 마주하는 작품이 하나 있다. 삼각, 오각형 다양한 금속 직면을 조립해 올린 높이 24m에 이르는 초대형 파란 곰은 머리 위에 석양빛을 닮은 아기 곰을 얹고 한국을 들고 나가는 수많은 객을 반긴다. 높이 23.57m, 길이 9m, 폭 9.7m 규모의 스테인리스로 만든 이 ‘곰 부자’의 무게는 약 40톤. 2014년 제작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철저 조각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작품 ‘포춘베어(Fortune Bear)’는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설치작품으로 꼽힌다. 당시 서른 넷의 금속작가 장세일은 인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규격화된 동물들을 모티프로 작업한 ‘스탠다드 애니멀’ 시리즈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획득했다.
“작가로서 비교적 어린 나이에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았기 때문에 무조건 완성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는 장세일은,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며 우리 생활 곳곳에 ‘스텐다드 애니멀’을 소개하는 스타 작가로 자리잡았다. 하남 스타필드, 일원동 삼성생명 등 다양한 공공 시설에 장세일 작가의 입면체 형식으로 완성한 ‘동물들’이 늘 함께한다. 지난 3월 홍콩에서 열린 하버 아트 페어(Harbor Art Fair)에서는 해저 터널 내 거북이, 돌고래 등 다양한 바다 동물을 선보이며 주목을 끌었다.
장세일 작가에게 조각은 생의 절반을 함께 해온 일상의 행위다. 일찍이 예술 고등학교 재학 중 조소를 선택한 그가 대학원을 졸업해 전업작가에 이르기까지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걸어올 수 있던 건 오로지 “뭐든 구현 가능한 형태로 속도감 있게 밀어 부칠 수 있는 금속 만의 매력 때문”이었다고 소회한다. 여름의 길목, 여섯 점의 분홍색 플라멩코 작품 제작에 한창인 남양주 작업실을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접합과 그라인더 작업으로 ‘번쩍번쩍’ 섬광이 이는 공간, 그 뜨거운 현장에 한 젊은 조각가의 진심이 있었다.
많이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같아요. 무엇보다 동물을 모티프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곤충을 만들었는데 제가 의도한 메시지가 잘 담기지 않는 것 같았어요. 현대사회에 적응하며 자신의 본 모습을 변이시켜 현 상황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거든요. 초창기 작업은 야생성을 부여하고자 늑대나 북극곰을 만들어봤어요. 그러다가 서울대공원 유인원관 공모전 소식을 듣고 ‘오랑우탄’을 제작해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원숭이처럼 똑같이 보여지는 것이 싫어 몸통을 면 분할해 입면체 형식으로 각면 제작을 했어요. 당시 ‘환경파괴’ 이슈가 한창이던 때였죠. 야생동물을 인위적인 느낌으로 만들어서 환경오염으로 고통 받는 야생동물을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작업을 발전시켜오다 2010년경 전시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야생동물이 아닌 강아지를 만들어봤어요.
3D 작업으로 작품을 면 분할 한 뒤, 실제 크기의 금속 조각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6점의 홍학 설치작업 의뢰를 맡아 제작에 한창인 장세일 작가. "다리 부분이 얇고 디테일한 다각면 작업이 요구되는 조류 제작은 좀 더 노동의 강도를 요한다"고 설명한다.
최초의 작업은 동물 몸체를 직선형태로 면 분할 작업 했지만, 반면 표정 같은 경우는 지금 작업보다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기 동물 시리즈는 레진으로 표정을 자세하게 구현했어요. 그러다가 야외 설치 작업을 하면서 내구성 이슈로 얼굴 부분까지 전부 금속으로 작업하게 됐죠. 동물의 몸체는 면분할이 비교적 쉽지만, 얼굴이나 손, 발 부분은 디테일한 요소가 많고 곡선 처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보니 서로 다른 조형언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각진 부분과 둥그스름한 두 극단적인 요소를 합쳐서 극명한 대비를 이루도록요. 원숭이 같은 경우는 눈·코·입이 거의 없고 꼬리가 굉장히 유선적이죠.
동물이 인간의 목적에 의해 도심 내 공존화 되면서 형태가 변이된다는 것이 결국 인간의 이기심기고 돌아봐야 할 부분이 있죠. 작품에 담긴 메시지에 반해 결과적으로 완성된 작품은 귀엽고 유쾌한 인상을 받아요. 작가로서 의도한 부분인가요?
주제가 무거운 편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심각하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실 강아지 같은 경우, 집에서 키울 수 있도록 개량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병이 있단 말이죠. 말티즈(Maltese) 의 심장병이 대표적이에요. 동물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해 그렇게 된 거죠. 예전에는 변화, 진화, 적응과 같은 용어로 제 작품의 주제를 표현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결국 ‘개량’이라는 뜻이 맞는 것 같아요. 귀엽고 익살스런 동작의 동물들을 보며 작품을 귀엽다고 평하는 분들이 많은데, 나중에 숨겨진 메시지를 듣고 반대로 한번 놀랐으면 하는 의도가 숨어 있죠.
플라멩코, 북극곰, 고래 같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물들로 작업한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어린 시절 종교적인 내용을 접하며 야생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초원에서 사람들과 껴안고 뒹구는 그런 장면 말이죠. ‘한 소년이 키우던 사자를 정글로 돌려보냈는데, 수년 뒤 어른이 된 자신을 알아보더라’ 같은 이야기요. 처음에는 제 작업의 메시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일상성을 지닌 동물들을 피했어요. 지금은 반려견과 생활하는 것이 또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대상에 구애 없이 작업하고 있어요. 12간지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만들어봤고, 이제 고양이만 남았네요.(웃음)
개인적인 반려동물을 모티프로 한 커미션 작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나요.
이 작업을 진행하며 굉장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작업 요청을 받으면 보통 의뢰인의 강아지를 자주 만나며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데, 그러던 중 의뢰자 분의 반려견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어요. 나중에 완성된 작품을 보고 정말 좋아하셨던 모습이 기억에 선합니다. 동물들을 오랜 시간 관찰하며 어떤 모습을 담아 작품화 할 것인지를 오랜 시간 논의하는 편이에요. 스케치를 한 다음 컴퓨터그래픽 제작으로 넘어가는데, 실제와 닮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일반적인 작업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한번에 ‘오케이’되는 경우도 드물고. 사실 ‘초상화’ 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강아지 주인은 그 강아지를 누구보다 곁에 오래 두고 봐왔으니 특징이나 직관적인 이미지에 좀 무던한 감이 있거든요. 최대한 마음에 들 수 있도록 충분한 대화 끝에 그래픽 작업에서 합의가 되면 실 제작에 들어갑니다.
예술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찍이 조각을 선택했어요. 생의 절반 이상을 조각가로 살아온 데에는 어떤 강렬한 동기가 있었나요?
당시에는 다른 것은 생각을 못해봤어요. 마냥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어서 예술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싶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모두가 다 그림을 그리니까 그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죠. 조소는 어떻게 보면 삶의 일부,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던 것 같아요. 의심의 여지조차 없었던.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나서도 당연히 작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각면이 특징인 금속 작품의 기본 공정은 전체 모형을 다면체로 분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장세일 작가가 선택한 다면체 형태의 기하학적인 방식은 마치 퍼즐 피스를 맞추는 것과 같아, 동일한 숫자면을 맞대어 접합하고 표면을 그라인더 처리해 구조를 쌓아 올리는 식이다. 번쩍이는 섬광, 그라인더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장세일 작가가 말한 "금속 특유의 차가움과 긴장감 있는 형태"가 무엇인지 느끼게 된다.
금속이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재료가 품은 특유의 ‘차가움’이 있어요. 무게 대비 굉장한 내구성도 마음에 들었죠. 돌이나 흙이 구현하지 못하는 긴장감 있는 형태를 금속은 가능하게 하더라고요. 표현의 영역이 더 넓다는 생각을 했고요. 고 2부터 대학교까지 흙으로 작업을 했는데 한계를 느꼈어요. 우연히 용접 작업을 알게 되며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엇보다 진행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작업량이 눈에 확 띌 정도로 밀고 나갈 수 있고, 물성 자체는 차갑지만 도장하고 코팅하며 얼마든지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어요.
장인정신에 입각해 접합한 작품 표면에 자동차 페인트를 입혀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형태를 완성하는데요. 이 같은 도장 재료를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업 메시지로부터 온 영향이 있어요. 인간도시에 적응한 동물이라는 이야기 틀에 맞추다 보니까 자연스레 도장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마치 주변에 많이 보아온 자동차처럼, 제가 만든 현대 도시에 길들여 규격화된 동물들이 그 빌딩과 자동차 사이 어딘가 놓여도 이질감이 없도록요.
12지간을 모티프로 작업한 장세일 작가의 '스탠다드 애니멀' 시리즈. 초기 야생동물에서 일상의 동물까지 작업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시도를 읽을 수 있다.
2014년 제작한 ‘포춘 베어’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철제 구조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어요. 제작 당시에도 방대한 규모로 화제가 됐는데 이것이 어찌 보면 작가로서 큰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제작 당시의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건물 사이즈는 물론 주변의 큰 기대와 작업 과정의 스트레스로 마음 고생이 굉장히 많았던 작품이었어요. 당시 제가 서른 넷이었는데, ‘이렇게 큰 작품을 내 인생에서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만들 기회가 오겠나’ 싶은 마음으로 그냥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작품이 설치될 영종대교 휴게소 근처 영종대교를 하루에도 수없이 넘나들며 ‘외국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한국적인 콘텐츠는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을 제작해보자는 아이디어에 닿았죠.”
실제 작업을 진행하며 애로사항은 없었나요?
그때까지 제가 가장 크게 만들었던 작품이 3m였어요. 그러던 제가 갑자기 24m 크기의 작품을 만들자니 완성 뒤 어떻게 보일지 모두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픽을 만들어놓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거죠.’ 밑에서 올려다보면 작품 얼굴이 안 보일 텐데,’ ‘도로를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잘 보이려면 어떻게 제작해야 하나.’ 대교를 드나들며 지출한 통행료만 엄청 났어요. ‘밤에는 어떻게 보일까’, ‘낮에는 어떤 모습일까’ 대교를 넘나들며 무수한 사진을 찍었죠. 저녁 무렵 지나가는데 바다에 노을이 지는 모습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파란색과 주황색으로 도색 하면 어떨까? 협력 가능한 공장을 섭외해 현장에서 모든 공정을 직접 진행했어요. 크레인을 들어 조각을 하나씩 용접하는데 곰 발바닥 한 피스가 지금 제 작업실 철문 크기 정도인 거죠. 바람이 한번 불 때마다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지. (웃음)
동물을 의인화, 구조화하는 작가들이 많잖아요. 제프 쿤스도 그렇고요. 유사한 작업을 하는 동종 작가들과 종종 비교하는 시선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각면으로 말을 조각하는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an) 1:05)이 있어요. 주변에서 차별점을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작가로서 ‘아류’라는 이야기는 정말 듣고 싶지 않거든요. ‘포춘베어’를 기폭제로 스텐다드 애니멀 시리즈를 이어온 지 수년이 흘렀는데 장세일 만의 작업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작품 안에 이야기를 담는데 더 집중하고, 선과 얼굴을 풀어내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좀 더 심혈을 기울이고요. 제프 쿤스 이야기도 많이 듣는데, 개인적으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에요. 광택을 내는데, 전체적으로 가볍지 않고 깊이 있는 완결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죠.
굿즈 제작에 대한 관심에 대한 제안도 많이 받을 것 같아요.
관심이 많죠. 예전에 향수병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각면으로 케이스를 만들어 브랜드와 협업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작은 토끼, 귀를 돌려서 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죠. 언젠가 좋은 제안이 들어오면 해보고 싶어요.
작가의 손이 아닌 기계 공정이 아니냐는 오해도 받을 것 같아요. 계획 중인 향후 작업 가운데 도색을 생략하고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주는 금속 작품들도 계획하고 있다고요.
제가 다 다듬어서 깔끔하게 도장을 올리는데 이걸 굉장히 쉽게 보시는 거에요. 중간 공정 하나를 생략하고 거친 날 것 느낌을 보여주면 작업의 강도를 짐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도장을 하지 말고 표면을 더 다듬어 광택을 내볼까 하고요. 그렇게 되면 디자인 제품 같다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작업 과정 속에서 그런 힌트를 얻으며 여전히 발전시켜가고 있습니다.
SE-IL JANG | METAL ARTWORK
‘인간 세상에 개량화된 동물들’을 주제로 각면을 활용한 구조적인 금속 조각을 선보여왔다. 늑대, 곰, 토끼, 닭처럼 친숙한 동물 군상을 다각면으로 변이시켜 도시문화에서 그들이 인간과 어쩔수 없이 적응하게 된, 개량화된 모습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안양예고에서 일찌감치 조각을 전공, 수원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재27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미구상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필두로 2009년 수원 대한공간 눈의 <숨기다> 전을 시작으로 코사 스페이스, 노블레스 콜렉션 등에서 개인전을 열어왔다. 임피리얼 팰리스호텔의 <도어즈 아트페어>, 서울시립미술관 <불시착, 낯선 풍경>, 목암 미술관 특별기획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작업 세계를 넓혀왔다. 주요 소장처로 한국미술협회, 경기도미술관, 임피리얼 팰리스호텔 서울, 이랜드 문화재단 등이 있다. 지난 3월 홍콩 아트바젤 위성페어인 하버 시티에서 대형 설치작품을 선보였으며, 하반기 이랜드 본사에서 개인전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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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이미지 © 장세일 – ARTMINING, SEOUL, 2019
PHOTO © ARTMINING – magazine ARTMINE / 김동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