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크지 않은 작업 공간은 작가의 작업스타일을 짐작하게 한다. 책상 위에는 가지런히 놓인 책 몇 권, 작업의 과정에서 나온 이미지 몇 컷, 그리고 작가의 작업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컴퓨터가 전부이다. 강이연 작가는 예술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화가 였어요. 그림이 전부였죠.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리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커다란 캔버스와 재료로 둘러 싸인 작업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재료라는 물성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제가 입력하는 수치에 따라 디지털 공간에서의 결과값이 달라지고, RGB를 섞어 색을 만들어요.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논리적이고 깔끔하죠. 이런 작업 방식이 훨씬 잘 맞았어요.” 작가는 오랜 과정 끝에 작품 연구를 바탕으로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리해냈다.
몇 년간 강이연은 작가로서 큰 성장기를 맞이했다. 회화적 방식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초기의 작업은 3차원의 공간으로 확장되며 완벽하게 공간을 점유했다. 사실 강이연 작가의 작업을 짧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녀의 작업 방식 ‘프로젝션 맵핑’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작업을 둘러싼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 공간적으로 무한히 확장 될 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음악 건축 등 다양한 분야와의 접목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다. 작품과 관람객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만들어내는 공감대, 경험의 순간이 작업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의 설명은 빠르고 막힘이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을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고민해 왔는지, 얼마나 수없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왔을지 그동안의 노력이 느껴진다.
WRITE 이윤지(아트마인 영국 통신원) PHOTOGRAPHY 라마
오랜만에 한국에서 그룹전에 참여했어요.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올해 초, 일민 미술관 <불멸 사랑(Immortality in the Cloud)>전에 참여했어요. 전시의 주제는 ‘디지털 환경에서 역사는 어떻게 변화 하는가’ 였어요. 제가 생각하는 역사는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생각해요. 프랑스 대혁명부터 현재 브랙시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왔죠. 그리고 모든 정보는 클라우드상에 존재하며 불멸해요. 이번 작품 ‘Continuum’에는 모델링에 쓰이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들과 컴퓨터 컬러인 RGB를 사용했어요. 그리고 전시장 바닥에 거울을 깔아 관객이 작품에 둘러 쌓이는 경험을 하도록 계획했죠. 거울에 반사된 영상물들과 실제 영상물들은 서로 작용, 반작용하면서 전시장 내에 또 다른 차원을 만들어내요. 마치 다른 차원에 들어온 것처럼요. 작품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완벽하게 디지털의 차원의 이야기였다면, 법고 소리와 함께 작업의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적혈구와 백혈구를 떠오르게 하는 형상이 등장해요. 사람을 깨우치는 소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이 있는 존재로서의 디지털. 결국 우리와 디지털은 하나로 이어져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에 우리는 주체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강이연 작가 하면, 가장 먼저 V&A 삼성 디지털 아트 레지던스가 떠올라요. 현재의 강이연 작가를 있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2016년 V&A 캐스트 코트(Cast Courts)에서 보여주신 작업 ‘CASTING’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이런 저런 소식에 어두운 편이었어요. 친구가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걸 알려줬는데,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V&A 는 제가 공부하고 있던 학교와 가까웠고 리서치를 위해 전시장에 정말 많이 갔어요. 기획안을 제출했고 6개월 간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죠. ‘CATING’을 처음 전시한 날, 담당 큐레이터가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논의를 시작했고 작업 소장까지 1년이 걸렸죠.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작업을 규정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 작업이 다른 장소에 설치된다면 같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여러 궁금증이 일어요. 제 작업은 장소, 공간이 중요해요. 이 작업을 다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V&A 캐스트 코트에 다시 프로젝션 하는 방법 뿐이에요. 실수로 프로젝터가 꺼져버린다면 그 공간은 원래의 전시 공간으로 돌아가요. 만약, 로마의 실제 기둥에 프로젝션을 하게 된다고 해도 같은 작업이라고 할 수 없어요.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업의 소장과정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알고 있어요. 가장 큰 화두는 모든 기술들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 이 작업을 ‘어떻게 아카이브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였어요. V&A가 선택한 방법은 제 작업의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것 리서치, 드로잉, 모델링, 모형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소장하는 것이었죠. 소장 리스트가 100개가 넘어요. V&A에서도 ‘프로젝션 맵핑’ 작업을 소장한 첫번째 케이스 스터디였어요. 제 작품이 속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없어서 관련 부서분들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웃음)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개념을 알고 싶어하는 큐레이터들의 요청으로 테크닉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기준을 만들어가는 일이라는 공통된 생각이 까다로운 과정을 재미있게 겪어낼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많은 변화가 있었죠. 운이 좋았어요.
이 프로젝트 이후 대형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했어요.
2017년에 패션브랜드 막스 마라(Max Mara)와 함께 ‘Deep Surface’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막스 마라의 70년의 이야기를 담는 전시공간과 관람객 동선을 기획하는 큰 프로젝트였죠. 밀라노 건축가와 협업해 돔 형태의 구조를 세우고, 돔의 내부 천정 면에 제 작업을 설치했어요.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유사한 다른 전시들을 리서치 했는데 입구와 출구가 정해져 있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관람동선을 제지 받는다.’ ‘강압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여러 개의 입구와 출구를 두고 관람객이 자유롭게 전시를 둘러볼 수 있는 동선을 계획했죠. 이태리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광장(Piazza)의 개념도 중요했어요.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신념, 기술에 대한 고집이 있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어려운 점들도 분명 있었어요. 본사가 있는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를 3번 방문했고 디자인 팀과 대표를 만나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전시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작가로써 내 작업을 지켜내기 위한 설득의 과정도 필요했죠. 건축가와 함께 협업 하면서 많은걸 경험했고 시너지를 낼 수 있었죠. 미술관이나 갤러리, 화이트 큐브라는 정형화 된 공간을 벗어나 제 작업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 패션이라는 새로운 컨텍스트를 경험하고, 새로운 관람객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색달랐죠. 또 다른 짜릿함을 느꼈어요. 작가로써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전시였고,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프로젝트에요. 2018년에 이 전시가 레드닷 어워드(Red Dot Award)를 수상하기도 했어요.
Deep Surface, full dome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2018 (서울 DDP, 막스마라 Coat exhibition). 작가는 사방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의 중앙.
돔의 천정 면에 프로젝션 맵핑작업을 설치했다. 관람객은 편안하게 앉거나 눕고, 걸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떻게 디지털이라는 매체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10여년 전만해도 이런 작업 경향이 주류가 아니었어요. 매체에 대한 작가님의 관심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커리큘럼이나 자료들이 부족했을 것 같아요.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했어요. 매체수업에서 영상을 처음 접했죠. 컴퓨터와 캠코더만 있으면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물질적인 면에서 깔끔하고 간결했죠. 2차원적인 평면을 넘어 시간이라는 개념 쓸 수 있다는 것도, 설치를 더해 3차원적 공간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졸업 전시에 대형 멀티채널 영상설치 작업을 선보였는데 회화과 전시에서는 낯선 풍경이었죠. 당시 학교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최신 매체가 비디오 였기 때문에 나비아트센터에 가서 디지털 아트 수업들을 듣곤 했어요. 2006년 즈음에 처음으로 물질이 없이, 순수하게, 디지털만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감성적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전공에 대해,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매체를 통해 슬럼프를 자연스럽게 극복했고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깊이 공부하기위해 유학 길에 올랐죠.
그 이후 UCLA에서 미디어를 공부하셨어요. 어떤 것들을 주도 다루고 배웠나요?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미디어 석사과정은 정말 잘한 결정이에요. 그때 배웠던 기술들은 여전히 제 작업의 기초가 되죠. 매일 밤을 세워가며 코딩, 회로, 2D, 3D, 웹 등을 익혔어요. 뉴로사이언스, 컴퓨터사이언스, 디자인, 건축 등 모두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모여 있었는데, 컴퓨터가 전공인 학생들의 코딩 실력을 제가 어떻게 따라 가겠어요. 그 가운데에서 생존전략을 세웠죠. 회화를 전공한 저만의 백그라운드를 살려서요. 그때 만난 제 지도 교수님 제니퍼 스타인캠프(Jennifer Steinkamp)에게 정말 많은걸 배웠어요. 그리고 졸업작품으로 ‘Between(2009)’을 만들었죠. 사실 이 작업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요. 나름 잘 해왔다고 생각했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지만 넘을 수 없는 어떤 벽을 느꼈거든요. 하얀 천 뒤에서 들어가서 직접 퍼포먼스를 하고 촬영한 영상을 캔버스에 프로젝션 했죠. 개인적인 이야기 이지만, 익명성이 중요했어요. 여성성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표면의 긴장감을 강조했죠. 재미있게도 많은 테크놀로지를 배웠지만 결국 페인팅으로 돌아온 작업이었어요.
그 이후 몇년간 국내에서 활동하다, 다시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셨어요.
3년정도 한국에서 활동을 했어요. 전시도 열고, 강의도 나가고, 레지던스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바쁘게 지냈죠. 작가들이나 평론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가끔씩 공유가 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당시만해도 프로젝션 맵핑과 비디오의 차이가 정확히 구분되지 않았거든요. 사실 제 작품은 사회정치적 이슈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요. 이 부분은 항상 제 작업에 약점처럼 느껴졌죠. 당시 우리나라의 정서나 울타리 안에 속하지 못하고 겉도는듯한 느낌을 받았던 게 가장 첫번째 이유에요. 두번째는 더 늦기 전에 해외에서 작가로 활동해 보고 싶었어요. 한국의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부족한 시절이어서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죠. 미국 석사과정 이후 도망치듯 귀국한데 대한 후회도 있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부족함도 느꼈어요. 작가로서 미래에 대한 고민, 연구에 대한 필요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어요. 막연하게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박사과정은 정말 다른 우주였어요. 사실, 작가로 활동하면서 전시에 참여하고 작품의 캡션을 작성할 때마다 고민이 많았어요. 제 작업을 정의 하고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나 이론이 부족했거든요. 개인적 필요에 의해 시작한 연구이고 ‘프로젝션 맵핑’으로는 전 세계 첫 번째 박사 논문이에요. 재미있는 점은 1960년대부터 실내,외 공간을 거대하게 맵핑하는 필름 프로젝션 작업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거에요. 싱글/멀티 채널 비디오 작업이 주류가 되며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되었던 것 뿐이죠. 그러한 작업들을 추적해 정리하면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 맥락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제 작업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았어요.
강이연 작가에게 디지털이라는 재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실 디지털은 페인팅과 같아요. 마우스를 클릭 할 때, 내 손에서 XYZ 축이 달라지고, 이것이 실제 공간에 더해지면 완전히 새로운 공간, 경험을 만들어 내죠. 이 매체로 어떤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지, 어떤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지 작가로써 끝없는 고민이 필요해요. 하나의 재료를 이해하기 위해서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이야기 하죠? 디지털 미디어도 마찬가지예요. 아직도 디지털을 기술로 치부하는 현상이 안타까워요. 역으로 생각해보면 쉽죠. 디지털 작업을 하는 제가 갑자기 회화 작업으로 전시를 한다면, 모두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디지털이라는 재료와 철학을 이해하고 작업하는 작가군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에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작가로써 이러한 변화를 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도 재미있어요.
지금까지 해오신 작품이나 프로젝트들을 보면 다른 작가들과 작업 방식이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과 비슷한 면이 많아요. 건물이 들어설 장소가 결정되어야 건축 디자인이 시작되는 것처럼 제 작업도 공간이 먼저 결정되어야 하죠.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일종의 클라이언트라고 할 수 있어요. 작업은 공간의 도면을 짜는 것부터 시작해요. 프로젝트가 결정되면 공간을 먼저 둘러보고 공간을 그대로 사용할 것인지, 컨셉에 따라 부수적인 구조를 만들 것인지를 결정하죠. 작업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정말 많은 시뮬레이션 작업을 하고 협의와 수정의 과정을 거쳐요. 그리고 사운드 작업을 더하죠. 전시 막바지에 다다르면 실제 공간에서 프로젝션을 설치해 맵핑을 해보는데 느낌이 많이 달라요. 또 여러 차례의 수정이 필요하죠. 제가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이(Between)’, ‘물질과 비물질(Material and Immaterial)’, ‘주체성(Agency)’같은 큰 틀의 주제는 있지만, 작업 자체는 프로젝트가 결정되기 전에 시작될 수 없어요. . 커다란 줄기에서 전시의 컨셉에 따라, 혹은 공간에 따라 가지를 치고 변화하는 것이죠. 프로젝트가 없을 때는 주로 책 읽고, 프로그램 배우고, 테스트도 해보고 해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지점이 있다면요?
예전에 ‘Artificial Vessel(2012)’이라는 작업을 했는데 텅빈 전시장 형광등을 프로젝션 맵핑하는 작업이었어요. 의도치 않게 전등 갓에서 빛이 반사되면서 프로젝션 하지 않은 벽에 마치 빛으로 드로잉을 하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었죠. 그때부터 제가 프로젝션을 하는 대상에 대해 고민했어요. 한동안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에 집착했어요(웃음). 예술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이제 이 경험을 위해 투자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공간적인 요소를 최대한 활용해 강렬한 경험을 주고 싶어요. 제 작품은 특히 그 장소, 공간을 실제로 느끼는 것이 중요해요. 관람객이 몸을 움직이며, 모든 감각을 활용해 작품을 느껴줬으면 좋겠어요. 작가로서 저는 기술과 작품의 컨셉 사이에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기술이 주는 순간의 ‘와우 이펙트’를 넘어 작품이 주는 시적이 의미를요.
강이연 작가의 런던 작업실. 노트에는 작업 구상에 관한 메모가 빼곡하다.
요즘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 주제가 있다면요?
주체성(Agency)이 가장 큰 이슈에요. 제가 제일 관심 갖고 있는 제 작품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디지털이라는 매체가 과연 비물질 적인가? 생각해보면, 전세계 해저에는 광케이블이 깔려 있어요. 데이터를 움직이기 위해선 엄청난 공간과 전력이 필요해요. 어마어마한 물질성이 있다는 거죠. 우리가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구매할 때, 이것은 온전히 우리의 선택일까요? 많은 부분 자동화된 정보에 의존해 살고 있어요. 사람과 디지털의 관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디지털과 디지털 사이의 관계도 엄청나요. 우리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사실 관심도 없죠.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대는 지나갔어요. 신이 만들어낸 인간이 지구를 집어 삼키고 있다면, 우리가 만든 디지털이 우리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죠. 작가로써 디지털이라는 재료, 개념, 이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디지털을 기술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술에 잠식당할 수 있어요.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깨어있어야 해요.
앞으로 예정되어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9월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10월 켄트(Kent)에서 잠비나이이 공연과 함께 건물의 외관을 맵핑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또 하나, 2-3년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 중 하나인데 런던에 대형 디지털 미디어 설치 작업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틀리에 데 루미에르(Artelier des Lumieres), 아트 텍 하우스(Art Tech House) 같은 공간이요. 아우치(Ouchhh), 레픽 아나돌(Refik Anadol), 마시멜로우 레이저 피스트(Marshmallow Laser Feast) 같이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충분히 연구해, 자신만의 컨셉을 보여주는 디지털 미디어 작가군이 탄탄하게 형성되고, 작업을 해석 할 수 있는 비평가들이 등장하면서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예산의 문제가 있어서 실현가능성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작업 이외에 어떤 걸 좋아하세요?
사이언스 픽션, 테러 시리즈물 같은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해요. 그 안에 자본주의, 종교, 인간의 탐욕 등 모든 것이 담겨있어요. 그 속에 담긴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건을 추리하는 것들이 재미있어요. 제 작업도 사실 어떤 공감각적인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써서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음악도 전자음악을 좋아해요. 비트나 코드 같이 비물질적인걸로 물질적인 걸 만드는게 재미있어요.
Media Artist | Yiyun Kang
강이연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야 비로소 작업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디지털 작업을 다룬다.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UCLA 에서 미디어 아트석사,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정보경험디자인(Information Experience Design)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16년 V&A삼성 디지털 아트 레지던스에 참여해 ‘Cating(2016)’을 선보였고, 이는 V&A의 첫번째 ‘프로젝션 맵핑’ 작업으로 소장되었다. 이후 ‘프로젝션 맵핑’이라는 개념을 연구주제로 졸업논문을 발표하였고, ‘수정사항 없음’이라는 기록적인 결과를 얻으며 박사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국내외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과 2014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연계 전시, 2017년 막스마라(Max Mara)의 ‘막스마라 코트!서울’전 공간계획 및 커미션 작업 ‘Deep Surface’, 올해 초 일민미술관 불멸 사랑(Immotality in Cloud)전 등에 참여했다. 런던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왕립예술학교 객원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www.yiyun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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